이명식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이명식( 1720年 ~ 1800年 )은 朝鮮 後期의 文身이다. 本貫은 沿岸 .

生涯 [ 編輯 ]

英祖 때 文科에 及第하여 保安察訪이 되고 書狀官으로 中國에 다녀온 뒤 문학을 거쳐 御史로 나갔다가 副校理, 집의, 敎理, 宣敎官, 應敎 等을 거쳐 承旨 , 大司諫 을 거쳐 다시 左副承旨 , 大司成 , 吏曹參議 , 大司諫 을 하고 慶尙道觀察使로 昇進, 大司諫 , 承旨 , 吏曹參議 를 거쳐 바로 正祖 때 左承旨 가 된다. 以後 司憲府 大司憲 으로 任命되어 大司憲 時節 嚴正한 管理로 稱頌을 받았고 洪忠道觀察使와 忠淸道觀察使를 거쳐 京畿道觀察使가 되고 成均館 大司成 , 司諫院 大司諫 , 司憲府 大司憲 을 하다가 바로 大司憲 , 好調參判 을 거쳐 工曹判書 가 되고 弘文館 提學 을 거쳐 刑曹判書 司憲府 大司憲 을 한 뒤에 大司憲 으로 知經筵事를 겸하다가 判義禁府事 가 되고 禮曹判書 , 吏曹判書 를 거쳐 다시 判義禁府事 가 되었다가 연이어 吏曹判書 , 兵曹判書 , 判義禁府事 를 거쳐 곧 左參贊 이 된다. 議政府 左參贊 時節 正祖의 信任을 받아 判義禁府事 를 하다가 兵曹判書 , 藝文館 提學 을 거쳐 兵曹判書 , 判義禁府事 를 거쳐 咸鏡道觀察使가 되고 以後 刑曹判書 判義禁府事 를 다시 한 뒤 工曹判書 吏曹判書 를 거쳐 判義禁府事 로 다시 任命되고 以後 吏曹判書 判義禁府事 를 번갈아 하다가 刑曹判書 에 昇進, 弘文館 提學 으로 知經筵事를 겸하다가 刑曹判書 가 된다. 以後 判義禁府事 , 左參贊 , 吏曹判書 , 兵曹判書 를 하는데 議政府 左參贊 을 여러次例 하기도 했다. 以後 判義禁府事 , 兵曹判書 等을 거쳐 刑曹判書 兵曹判書 를 번갈아 한 뒤 바로 議政府 右參贊 , 藝文館 提學 , 判義禁府事 를 두루 거쳐 左參贊 , 判義禁府事 , 藝文館 提學 , 禮曹判書 를 거쳐 平安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갔다가 바로 弘文館 提學 으로 朝廷에 돌아와서 吏曹判書 , 判義禁府事 , 禮曹判書 等을 거쳐 藝文館 提學 으로 있다가 知中樞府事로 退職했지만 다시 判義禁府事 로 調整에 復歸, 書寫官을 겸하다가 藝文館 提學 에 任命되고 곧 戶曹判書 判義禁府事 를 하다가 知中樞府事에 任命되었는데, 곧 水原留守로 任命되어 正祖의 水原화성 建築을 管理하게 된다. 以後 判中樞府事로 昇進한 뒤, 兵曹判書 로 復歸했고 判中樞府事로 任命되었다가 奉朝賀에 除授된 뒤 1800年에 死亡하였다. 事後 官職이 追奪되었지만, 나중에 福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