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갸 롱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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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갸 롱코도 ( 滿洲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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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ggiya Longkodo , 韓國 漢字 : ?佳 隆科多  同家 융過多 , ? ~ 1728年 )는 靑 帝國 將軍 政治가 이다. 滿洲 洋黃機 (?黃旗) 퉁갸 家門 出身으로, 康熙帝 末年에서부터 雍正帝 初年까지 活動하였다. 康熙帝의 顧命大臣 으로 雍正帝의 卽位를 支持하여 功臣이 되었으나, 雍正帝에 依해 肅淸되었다.

퉁 구워워이 의 3男이자 康熙帝의 後宮이었던 孝義人皇太后 의 男동생으로 雍正帝를 비롯한 康熙帝의 子息들에게는 外叔父뻘이다. 롱코도는 康熙 末年에 理藩院 尙書로 在職하였으며, 또한 北京의 步群統領 을 兼任하여 有事時 首都 地域을 統制할 수 있는 軍事力을 가졌다. 때문에 롱코도는 雍正帝가 康熙帝를 暗殺하고 卽位하였다는 루머의 한복판에 位置하고 있는 人物이다.

生涯 [ 編輯 ]

雍正帝 登極 前後 [ 編輯 ]

1722年 (康熙 61年) 롱코도는 步群統領으로서 북경성 內省과 外城의 城門의 警備를 맡고 있었다. 康熙帝의 病勢가 危篤해지자 롱코도는 康熙帝의 옆에서 그 遺詔를 받아적으며 顧命大臣 이 되었다. 以後 康熙帝가 崩御하자 油槽에 적혀있는 대로 제4황자 옹親王 尹軫을 모셔와 대筒을 傳하니 바로 雍正帝이다. 그러나 이 過程은 그리 順坦치만은 않았다. 一旦 롱코도는 本來 第8皇子 윤四의 黨與에 屬하였으나 步群統領의 職務를 잘 알고 있던 윤진이 그를 包攝하였다. 흔히 알려진 野史에 따르면 康熙帝의 油槽가 롱코도에 依해 ‘14皇子 輪梯에게 물려준다.’(傳位十四皇子)에서 ‘4皇子 尹軫에게 물려준다.’(傳位于四皇子)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러나‘語助辭 禹’(于) 字가 널리 쓰이지 않았고 皇室 文書에서는 ‘語助辭 어’(於) 字만이 쓰였다는 點과 油槽같이 重要한 公式 皇室 文書에서는 滿洲 文字와 漢字를 다 써야 하나, 이 留鳥는 漢字로만 쓰였다는 點, 黃者들에게는 반드시 태어난 順序에 따라 그 앞에 黃(皇) 字를 붙여서 쓴 點이다. 例를 들어 4黃自認 윤진은 황사자(皇四子)로 쓰는 것이 올바른 表現이었다.

그리고 現存하는 康熙帝의 油槽에는 黃4字 옹親王 尹軫(皇四子雍親王胤?)이라고 明示되어 있으므로 롱코도가 遺詔를 造作했다는 루머는 說得力이 떨어진다. 그러나 윤진이 皇位에 오르는데 롱코도가 顧命大臣으로 主要한 役割을 했던 것은 事實이었고 또한 黃者間의 勢力 다툼에서 尹軫의 策士 役割까지 하였기 때문에 이런 루머가 傳해진 것이다.

肅淸 [ 編輯 ]

西北方면 大將軍이자 雍正帝의 또다른 卽位功臣 年갱요 는 自身이 能力 있는 將軍이며 또한 누이( 돈熟荒貴妃 )가 雍正帝의 後宮이라는 點을 過信하여 奢侈와 橫領, 獵官을 일삼았다. 地方에 駐屯한 연갱요는 中央에 있던 롱코도와 腐敗 커넥션을 形成하고 있었다. [1] 이에 따라 雍正帝는 自身의 卽位功臣인 연갱요와 롱코도에 對한 肅淸 作業에 들어갔다. 放恣하게 行動한 연갱요와 달리 老鍊한 政治人이던 융過多는 不正蓄財한 財物을 여기저기 나누어 保管하고 스스로 벼슬에서도 물러나는 等 눈치껏 行動했지만, 雍正帝가 그를 찍어내기로 마음먹은 以上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特히 康熙 年間 雍正帝(當時 4아거)와 後繼者위를 競爭했던 8阿거와 롱코도가 몰래 接觸했음이 밝혀지자 雍正帝는 롱코도에 對한 肅淸意志를 굳히게 되었다. [2]

雍正帝는 于先 臣下들에게 나누는 密旨에서, 롱코도를 먼저 失脚한 연갱요와 都賣金으로 묶어 小人輩라고 非難하고 그들과 距離를 둘 것을 公公然히 慫慂하였다. [3] 雍正 4年에 롱코도가 皇室 族譜인 玉牒을 個人的으로 챙기고 있었음이 偶然히 밝혀졌다. 이것이 決定的인 트집으로 作用했다. 當時 롱코도가 러시아와의 外交 業務 때문에 外勤을 나가 있었기에 暫時 기다려 보자는 一部 意見이 있었으나, 雍正帝는 듣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롱코도를 逮捕하였다. 雍正帝는 玉牒을 사사로이 가진 罪를 始作으로, 佛經, 欺瞞, 黨派 形成, 朝廷 紊亂 等等 갖은 罪狀을 들어 롱코도를 彈劾했는데, 罪狀 中에 “敢히 건방지게 스스로를 諸葛亮 에 比喩한 罪” 따위 荒唐한 것도 있었다. [4]

雍正帝는 연갱요와 달리 롱코도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창춘원 밖 草家三間에다 幽閉시키고 죽을 때까지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옹정 5年). 롱코도는 軟禁된 지 1年만인 雍正 6年에 죽었다.

各州 [ 編輯 ]

  1. 미야자키 이치사다 저, 차혜원 驛, 《雍正帝》, 離散, 2001年. 171쪽 ~ 172쪽.
  2. 둥豫쥔 저, 황보경 驛, 《雍正 原典 治國》, 시아출판사, 2004年, 226쪽.
  3. 둥豫쥔, 위의 冊 227쪽 ~ 228쪽.
  4. 둥豫쥔, 위의 冊 228쪽 ~ 229쪽

틀:雍正帝의 代理淸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