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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敎 (草原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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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原王 儒敎 (楚元王 劉交, ? ~ 紀元前 179年 )는 傳한 初期의 皇族이자 諸侯王으로, (游)이다. 高調 의 아우다.

生涯 [ 編輯 ]

젊어서 글을 좋아하고 재주가 있어, 목生(穆生)·백생(白生)· 神功 과 함께 荀子 의 門下生인 不九百 에게서 《 市警 》을 익혔다. 秦始皇 焚書坑儒 를 저지르자 各自 흩어졌다. [1]

高調가 觀衆에 入城한 後 文身軍에 봉해져, 蜀漢 入城·三振 平定·項羽 誅滅에 함께했다. 高調가 皇帝 에 卽位하자 노관 과 함께 恒常 高調를 示威했다. 高調 6年(紀元前 201年), 阪神 을 母斑 嫌疑로 잡아들여 鳳國을 廢하고 回音 로 格下시키고서, 韓信의 鳳國 中 화이허 西쪽의 설軍 · 東海 · 팽성 의 36絃을 받아 초왕이 됐다. 화이허 東쪽은 從兄 有故 가 받아 형나라 를 이루었다. [1] [2]

高調 11年(紀元前 196年), 회남왕 영포 가 謀反해 有故 를 죽이고 兄나라 軍士까지 아울러 쳐들어오자, 楚나라에서는 서현과 同縣 사이에서 이를 沮止하며 軍士를 셋으로 나누어 서로 돕는 形勢를 만들었다. 軍士를 쪼갰다가 일군이 敗하면 나머지도 다 흩어져 서로 돕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고, 楚나라 長水는 이를 듣지 않았으나 果然 영포의 攻擊에 일군이 敗하자 나머지도 흩어져 달아났다. [3] 초왕은 설로 달아났다. [4]

冤枉은 楚나라에 와서는 목生·백생·申供을 모두 自身의 中隊部 로 삼았다. 高皇后 의 時節에는 自己 아들 유영客 을 부구白에게 보내 배우게 했다. 詩經을 좋아해 아들들에게 모두 詩를 읽게 했으며, 神功은 《 市警 》에 前(傳)을 짓기를 始作해 奴視(魯詩)를 만들었고, 草原王都 前을 지어 冤枉詩를 만들었다. [1]

在位 23年 만에 죽었고, 맏아들 乳癖비(劉?非)가 일찍 죽었으므로 유영客이 뒤를 이었다. [1]

家計 [ 編輯 ]

各州 [ 編輯 ]

  1. 班固 : 《 漢書 》 卷36 草原王前提6
  2. 위와 같음, 卷35 炯然午前
  3. 위와 같음, 卷34 한烹영노午前
  4. 위와 같음, 卷1 下 고제기 下
先代
阪神
第2代 傳한 의 초왕
紀元前 201年 正月 病午日 ~ 紀元前 179年
後代
아들 超已往 유영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