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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마투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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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마투라나 (Humberto Maturana, 1928年 9月 14日 ~ 2021年 5月 6日 )는 認知生物學者이자 哲學者 이다. 1947年 리쎄오 마누엘 데 살라스에서 高等學校를 마치고 칠레의 醫科大學에서 工夫를 始作하였으나 生物學 으로 學位를 마쳤다.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解剖學 神經哲學 을 硏究하였으며 하버드 大學에서 生物學으로 博士 學位를 받았다. 以後 認知生物學 領域에서 弟子이자 同僚인 프란시스코 바렐라 와 함께 自己生産 (Autopoiesis)槪念을 創案하였다. 認識 에 對하여 實在論 幼兒 론도 아닌 觀察者的 槪念을 主張함으로써 두 認識論의 中間 位置를 代表하는 構成主義者로 評價받는다. 相對主義的 認識論인 急進的 構成主義 의 先驅者로도 알려져 있다.

著書 [ 編輯 ]

代表的 著書로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共同 執筆한 <앎의 나무>, <自己生成과 認知>, <認識 : 實在의 組織과 具現>, 對談集 <있음에서 함으로> 等이 있다.

主要槪念 [ 編輯 ]

認知 [ 編輯 ]

“말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은 누군가에 依해 말해지는 것이다.” 움베르또 마투라나는 生物學的 認知 槪念과 함께 認知에 對해서 需用者 主觀性 의 重要함을 强調하는 ‘觀察者’ 槪念을 導入했다. 인지는 觀察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觀察者 없이는 存在할 수 없다. ‘觀察者’ 라는 用語는 通常的으로 ‘距離를 維持하고 따라서 間接的으로 中立性을 主張한다.’는 分離的 槪念을 지니고 있는데 마투라나는 觀察者의 槪念이 距離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認知 槪念에 보다 적합하다고 主張한다. 觀察者는 體驗 과 區分되어 있기 때문에 觀察者이며 體驗과 區分되지만, 區分되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體驗으로부터 孤立되지 않는다고 說明한다.

마투라나는 1940年代 美國 生物學者 爐底 스페리 도롱뇽 實驗 을 再解釋하여 神經體系 認知體系 主觀性 을 說明했다. 爐底 스페리의 도롱뇽 實驗에서 爐底는 도롱뇽의 한쪽 눈을 빼내 視神經 을 切斷하고 눈을 180度 회전시킨 다음 다시 집어넣었다. 이 때 도롱뇽은 外部의 먹이를 視覺的 으로 認知할 수는 있지만 혀를 180度 反對 方向으로 뻗었다.

마투라나는 스페리의 實驗을 통해 神經體系는 外部의 刺戟을 網膜 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도롱뇽의 혀가 實際 먹이가 있는 方向이 아니라 自身이 知覺하는 方向을 向해 뻗는 다는 것은 도롱뇽의 認知가 內的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卽 有機體 情報處理 는 外部에서 오는 刺戟을 處理하여 適切한 行爲를 하는 것이 아니라 有機體의 內部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有機體의 情報 處理는 主觀的 利器 때문에 眞理 라고 말할 수 있는 外部 世界는 없다. 마투라나가 말하는 實在 는 外部 世界의 實存 이 아니라 觀察者가 知覺하는 主觀的인 實在를 意味한다. 따라서 觀察者는 環境 없이는 아무것도 知覺할 수 없고, 環境은 觀察者 없이는 知覺될 수 없다.

마투라나에 依하면 오직 觀察者 들만이 內部와 外部, 또는 投入 算出 을 區分할 수 있고 따라서 內的 過程들 과 有機體에 加해지는 外的 刺戟의 衝擊 또는 外部 世界에 加하는 有機體의 刺戟을 糾明할 수 있다. 內部와 外部 또는 投入과 算出의 區分은 觀察者들의 두 世界를 比較하는 二重보기의 觀點을 통해서만 可能한 것이며 이中보기는 客體 客觀化 對象 으로 하는 人間의 言語 위에서 비로소 可能한 일이다.

觀察하기에는 觀察者 本人이 무언가를 觀察 하고 있다는 觀察과 함께 觀察을 共通的인 洞察 의 空間에서 다른 觀察者들과 協力할 수 있는 言語的 能力이 包含된다. 共通的인 洞察의 空間은 觀察者의 主觀的인 實在가 打者들에게 說明되어 實際로 이러하다는 主張의 根據를 갖는 空間이다. 人間의 認知는 ‘觀察하기’라는 命題 를 통하여 有機體의 人指와 區分된다.

生物學的 認知 [ 編輯 ]

神經系 는 外部 世界와 獨立된 閉鎖的 體系이다. 一般的인 認識처럼 神經體系는 外部의 情報를 處理하여 適切한 反應을 이끌어 내는 入力 算出 에 根據한 體系가 아니다. 神經體系는 그 自身만의 獨特한 作動 方式을 갖춘 救助 敵으로 決定된 體系’ 이며 이 體系 안의 變化는 但只 誘發 될 뿐 外部 世界의 特質이나 性質에 依해 決定 되지는 않는다. 神經體系는 相互 作用하는 要素들의 閉鎖的인 네트워크 이다.

여기서 말하는 閉鎖는 物理的 槪念이 아니며 神經體系는 完全히 外部와 遮斷될 수는 없다. 그러나 閉鎖는 體系의 境界를 의미하며 이것은 神經體系를 하나의 ‘具體的으로 決定된 存在’로 만드는 體系의 作動을 意味한다.

環境의 救助는 神經系에 變化 를 誘發할 뿐 그것을 決定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觀察者는 神經系와 環境의 構造를 함께 살필 수 있다. 이른바 二重보기 라 불리는 이것은 人間이 內部에서 일어난 일과 外部狀況을 比較하여 두 領域에서 본 것을 自身의 結論과 관련지을 수 있는 認知 能力을 의미한다.

言語的 領域 [ 編輯 ]

둘 以上의 有機體들이 再歸的 으로 相互作用 할 때 社會的 接續 이 생겨난다. 有機體들은 接續을 통해 서로 엮인 채 自己生成을 實現하며 이 社會的 接續의 領域에서 생긴 行動 方式이 바로 意思疏通 行動 이다. 醫師疏通的 行動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배운 것일 수도 있는데, 그 中 배운 醫師疏通的 行動을 가리켜 言語的 領域 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言語의 바탕이 되지만 그 自體로 言語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人間은 社會的 삶 속에서 言語的 領域을 算出하는 唯一한 動物 은 아니지만 言語的 行動 調整을 통해 새로운 現象系인 ‘言語의 나라’를 算出한다. 言語는 人間의 行動 領域을 크게 變形시키며 言語的 區分인 客體 의 發生을 통해 省察 이나 意識 과 같은 새로운 現象 을 가져 왔다. 이런 言語의 根本的인 特徵은 言語를 가지고 作業하는 이에게 周圍 狀況과 自己 自身을 技術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言語와 함께 말할 줄 아는 存在인 ‘觀察者’가 생겨난다. 言語는 觀察者 인 人間의 特徵인 省察과 觀察하기 를 可能케 해주는 道具 이며 言語 안에 바로 사람다움 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自律性 [ 編輯 ]

體系 自律性 이란 體系가 外部에 依해 決定되는 것이 아니라는 點을 일컫는다. 外部로부터의 刺戟은 構造的인 變化를 誘發하기만 할 뿐, 그에 따른 모든 結果들은 體系 自體의 救助 에 依해 특징지어지고 決定된다. 魔뚜라나에 依하면 어떤 體系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體系의 構造에 依해 決定되는 것이며 外部의 影響力에 依해 具體的으로 決定되는 것이 아니다. 體系의 自律性은 構造的 決定論과 깊이 聯關되어 있다.

生命體系의 組織 閉鎖性 은 環境에 對해 自律性을 附與하는 役割을 한다. 閉鎖性은 觀察者들로부터 體系가 解釋 되는 正體性 을 保存하며, 閉鎖的이기 때문에 外部와 相互作用할 수 있는 能力을 가진다.

構造的 決定論 [ 編輯 ]

마투라나가 主張하는 自律性은 構造的 決定論 에서 비롯된다. 構造的 決定論이란 우리가 어떤 體系를 作動시킬 때 作動 하는 體系가 決定되어있기 때문에 어떠한 式으로 作動될 것이라고 期待할 수 있음을 말한다. 마투라나는 錄音器 例示를 통해 構造的 決定論을 說明한다. 錄音器를 누를 때 個人은 錄音器가 作動하기를 期待하고 누르며 이것이 바로 錄音器를 하나의 體系로 다룬다는 ‘構造的 決定論 ’이다. 人間은 構造的으로 決定된 體系만을 다루며 人間 또한 構造的으로 決定된 體系들이다. 構造的 決定論을 통하여 體系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미 ‘決定된 構造’에 依해 決定되는 것이며 外部의 影響力에 依해 決定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組織과 構造 [ 編輯 ]

  1. 組織  : 어떤 것을 特定 部類 에 屬한 것으로 看做하기 위하여 그것의 構成要素 들 사이에 있어야만 하는 關係이다.
  2. 救助  : 特定 個體를 具體的으로 構成 하여 그 組織을 實現 하는 構成要素들과 그것들 사이의 關係이다.

救助 組織 의 區分을 통하여 體系가 變化하였을 때에도 그 體系가 어떻게 變할 수 있었는지 把握 수 있으며 또한 變化한 體系가 以前의 것과 同一한 體系인가 捕捉할 수 있게 된다.

自己生産 [ 編輯 ]

마투라나는 弟子이자 同僚인 바렐라와 함께 自己生産 이라는 槪念을 創案했다. 自己生産의 槪念은 ‘生物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살아있는 것인가?’에 對한 探索에서 出發한다. 마투라나는 살아있다는 事實은 物質matter 屬性 이 아니라고 主張하며 살아있는 存在 들은 自律的이고, 規定된 限界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것들이 그들에게 屬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가에 對한 境界線 이 있음을 바탕으로 自己生産의 槪念을 定立하였다. 마투라나는 生物을 特徵짓는 基準으로 自己 自身을 持續的으로 生成하는 特徵을 提案하였으며 이런 뜻을 內包한 單語로 生物을 定義하는 組織을 自己生成autopoiesis 組織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어로 autos 自己自身 을, poiein' 만들다 를 의미한다. 하나의 生命體를 觀察해보면 서로 相互作用 하는 分子 들을 生産 하는 體系를 發見하는데, 이 體系는 分子들을 生産하고, 이番에는 이 分子들이 分子들을 生産하는 體系를 生産하고 自身의 境界線을 限定시킨다. 이와 같은 네트워크를 自己生産的이라고 부른다. 이 體系는 物質의 投入에는 開放 되어 있지만 그것을 낳는 關係들의 움직임과 關聯하여서는 閉鎖的이다.

마투라나는 自己 生成組織을 定義하는 關係를 細胞 水準에서 例로 들었다. 細胞는 自己生成個體인 分子要素들이 끊임없는 相互作用을 하며 細胞 內에서 이뤄지는 化學 敵 相互作用들은 細胞의 物質代謝 라고 불린다. 自然系 에서 일어나는 다른 分子變化와 다르게 細胞의 物質代謝에서 重要한 點은 細胞의 物質 大使를 통해 生成된 構成要素들은 다시 生成恨 變化 作用 안에서 統合된다. 몇몇의 要素들은 이 變化 作用의 테두리 를 이룬다. 空間 안에 무엇이 생길 수 있게 해주는 테두리 構造物을 形態學 敵 槪念으로 이라고 한다. 은 單純한 構成要素로 空間을 區分 짓는 物質 大使의 産物이 아니라 變化 作用의 크기를 制限하고 變化 自體에도 參與한다. 細胞의 物質代謝는 에 依해 制限되지만 막은 다시 物質代謝에 作用을 하면서 現象 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막 自體가 細胞 變化의 一部이다.

物質代謝와 幕의 作用, 力動性 과 테두리의 作用은 順次的인 것이 아니라 統一된 現象이다. 自己生産은 自律的이고 自身의 自律을 實現하는 生命體系들에게 固有한 특수한 方式이자 方法이지만 自律보다는 一般的이며, 自律과는 嚴格하게 區分되어야 하는 作用으로 보았다. 反對로, 自己 自身 以外의 다른 것을 創出하는 體系는 타자 生産 體系 라고 부른다.

構成主義 [ 編輯 ]

構成主義 는 區分理論的人 思惟에서 始作되었다. 急進的 構成主義 라고도 불리는 硏究 傾向性은 認知理論과 認識論 敵 思惟傾向을 말한다. 構成主義는 하나의 統合된 理論의 틀로 完成되지는 못하였으나 各各의 構成主義者들은 ‘觀察하기’와 ‘區分하기’, ‘自律性’과 ‘調節’, ‘組織의 閉鎖性’과 ‘救助結晶性’, ‘環境’과 ‘體系’ 等에 對해 다루고 있다. 急進的 構成主義에서의 認識論은 認知理論이면서 非還元主義的이며, 旣存의 認識論과는 다르게 認識의 對象 이 아닌 認識에 焦點을 맞추어 認識過程과 結果에 對해 硏究를 進行하였다. 構成主義의 非還元性 은 神經生理學的 側面에서부터 始作되며, 頭腦 는 環境을 入力하는 反射體系가 아니라 對象을 內部에서 處理하는 閉鎖된 體系라는 論點을 根幹으로 하여 認識論을 발달시켰다.

目的論 [ 編輯 ]

魔뚜라나가 主張하는 目的論 칸트 한스 요나스 에 基底를 둔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印刷物 [ 編輯 ]

  • 움베르토 마투라나(2006), 있음에서 함으로, 갈무리
  • 움베르토 마투라나(2007), 앎의 나무 : 人間 認知 能力의 生物學的 뿌리, 갈무리
  • 프란시스코 바렐라(2009), 倫理的 노하우, 갈무리
  • 지크프리트 J. 슈미트(1995), 構成主義, 까치글房
  • 이득재,이규환(2010), 오토포이에시스와 通涉 , 써네스트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