蔚山 율리 영축사지

율리영축사지
(栗里靈軸寺址)
대한민국 蔚山廣域市 記念物
種目 記念物 第24號
( 1998年 10月 19日 指定)
面積 9,203m 2 [1]
位置
울산 영축사지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울산 영축사지
蔚山 영축사지
蔚山 영축사지(대한민국)
住所 蔚山廣域市 蔚州郡 淸凉邑 율리 822番地 外 1筆地
座標 北緯 35° 31′ 44″ 東京 129° 13′ 57″  /  北緯 35.52889° 東京 129.23250°  / 35.52889; 129.23250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蔚山 율리 영축사지 (蔚山 栗里 靈軸寺址)는 蔚山廣域市 蔚州郡 淸凉邑 율리에 있는, 英祝辭 절터이다. 1998年 10月 19日 蔚山廣域市의 記念物 第24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영축사지(靈鷲寺址)는 영축산, 문수산, 남암산 等의 山등성이와 丘陵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영축산 자락의 末端部 平地에 位置한다. 영축사지 周邊으로 統一新羅時代의 寺刹인 망해사地와 靑松死地가 1km內外의 距離에 있어, 이 一帶가 統一新羅時代 蔚山 佛敎文化의 中心地였음을 알 수 있다.

英祝辭의 創建 由來는 『三國遺事』에서 그 痕跡을 찾을 수 있다. 683年(신문왕 3), 溫泉에서 沐浴하고 돌아오던 宰相 充員공(忠元公)은 꿩이 매에게 쫓겨 굴정현(屈井縣) 현청(縣廳) 北쪽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꿩은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감싸고 있고, 또 매는 이를 잡지 않는 것을 보고 感動하여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여겼다. 이를 王께 아뢰어 縣廳을 옮긴 뒤 그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2012年 蔚山博物館의 發掘調査가 이루어지기 前, 統一新羅時代 樣式의 三層石塔 不在가 東西로 나누어져 있었고, 南쪽에는 鬼斧(龜趺)가 確認되었으며, 周邊에서 ‘零縮’名 기와便이 採集되었다.

發掘調査(1次) 結果, 統一新羅時代 金堂址 1棟, 桐?서탑, 중문지 1期, 石燈의 下臺石 1基 等이 確認되었다. 이를 通해 金堂址를 中心으로 雙塔이 位置한 典型的인 統一新羅時代 嘉藍配置임을 알 수 있었다.

금당지는 正面 5칸, 側面 5칸의 正方形 構造로, 이는 只今까지 國內에서 確認되지 않을 만큼 特異한 形態이다. 桐?西塔은 基壇部, 塔神父, 相輪部를 갖춘 典型的인 8世紀 統一新羅時代의 三層石塔이다. 이 外 石燈 下臺石과 正面 3칸, 側面 1칸의 중문지가 確認되어, 金堂址-탑-石燈-중문지라는 基本 伽藍構造였음을 알 수 있다. 遺物은 碑石便, 金銅佛像 等이 出土되었다. 영축四肢는 蔚山地域 佛敎文化 硏究에 相當한 重要한 遺跡으로 評價된다.

出土 遺物 [ 編輯 ]

2015年 蔚山博物館이 發掘調査 結果 收拾된 靑銅遺物은 銅塔 不在(部材)의 精密 實測을 위해 무너져 있던 石塔 不在들을 옮기고 上層의 腐植土를 걷어내는 過程에서 發見되었으며, 出土 位置는 東塔의 東北쪽 모서리에서 東쪽으로 2m 떨어진 地點이다. [2]

거꾸로 엎은 靑銅시루 아래에서 香爐가 넘어져 半쯤 걸친 狀態로 發見되었으며, 시루 안에 꽉 차있던 흙 內部에서 靑동완과 시루의 나머지 손잡이 한쪽도 함께 確認되었다. 出土 狀態로 보아, 지름 50cm의 구덩이를 파서 靑銅香爐를 놓고 그 위에 뚜껑 用途로 靑銅완을 덮은 뒤, 그 위에 다시 靑銅시루를 덮어서 묻은 것으로 보인다.

높이 25.7cm, 바닥지름 23.5cm의 靑銅香爐는 세 個의 다리가 달린 原形받침 위에 香爐의 몸體가 얹혀 있는 形態로, 다리와 받침, 몸體를 따로 만들어 各各 3個의 못으로 固定하여 完成하였다.

高麗 時代 靑銅香爐는 現在 몇몇 알려진 事例가 있긴 하나, 영축사지 靑銅香爐는 出土地가 明確하고 保存狀態가 매우 良好하며 裝飾이 華麗하여 그 價値가 큰 것으로 보인다. 製作技法과 形態 等을 볼 때 現在까지 發見된 香爐 中 比較的 이른 高麗 前期(11~12世紀)에 만들어진 것으로 推定된다.

靑銅시루는 높이 24cm, 입지름 42cm, 바닥지름 37cm의 크기로, 몸體는 圓筒形이며 中間 地點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시루 바닥은 2段으로 區劃하여 코끼리 눈 模樣의 안상문(眼狀文)을 뚫었다. 바닥에 몇 군데 修理 痕跡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랜 期間 使用한 것으로 보인다.

高麗 時代 靑銅시루는 淸州 詞腦死地에서 確認된 例가 있으나 出土 當時 完全히 破損된 狀態여서, 영축사지 靑銅시루가 現在 우리나라에서 完全한 形態로 發見되는 가장 이른 時期의 金屬製 시루로 보인다. 영축死地에서 出土된 기와 等을 勘案할 때 靑銅香爐와 같은 時期의 것으로 斟酌된다.

靑銅완은 高麗 時代의 典型的인 靑銅製 그릇 形式을 갖추고 있으며 지름 15.5cm, 높이 9.5cm이다. 靑銅香爐의 아가리 部分을 덮고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묻을 當時에는 元來의 用途가 아닌 靑銅香爐의 뚜껑으로 使用된 것으로 보인다.

靑銅遺物 3點은 一括로 發見되어, 淸州 詞腦사지, 慶州 亡德四肢, 서울 道峯書院의 事例와 같이 退場 遺物(退藏遺物, 戰亂 等과 같은 非常時 掠奪에 對備해 묻어두는 遺物)일 可能性도 있어, 英祝辭의 斃死(廢寺) 關聯 遺物로도 推定해 볼 수 있다. 이番 調査結果는 高麗 前期 英祝辭의 狀況을 알려주는 重要한 資料이자, 當時 蔚山 地域의 佛敎文化를 理解하는데 도움이 된다.

各州 [ 編輯 ]

  1. 蔚山廣域市 告示 第2017-188號 , 《蔚山廣域市 文化財 指定 및 文化財區域 追加 指定 告示》, 蔚山廣域市腸, 2017-11-02
  2. 蔚山 율리 영축死地에서 高麗 時代 靑銅遺物 一括 出土 , 文化財廳 報道資料, 2015-06-08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