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홍수
(禹洪壽,
1355年
~
1392年
)는
高麗
後期의 文身이다. 本貫은
丹陽
(丹陽)이다. 知申事·
大司憲
·簽書密直司事·동지밀직사사 等을 歷任하였으며, 1392年
정몽주
一派로 몰려 罷免되었다가
朝鮮
建國 後 귀양가서 杖殺되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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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丹陽백(丹陽伯)
우현보
(禹玄寶)이다. 1377年 文科에 合格하여 郎將에 任命되고 成均博士를 겸하였다. 以後 여러 벼슬을 거쳐 知申事(知申事)·
大司憲
等을 歷任하다가 昌王 初 簽書密直司事에 除授되었다. 1389年 (昌王 1) 李成桂(李成桂)를 除去하고 禑王을 復位하려 한
金佇
(金佇) 事件에 連累되어 1390年 인주(仁州)에 流配되었다. 以後 赦免되어 1391年 동지밀직사사에 任命되었으나 1392年 鄭夢周가 殺害된 後 그 一派라 하여 罷免되고 永久히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罰을 받았다. 朝鮮 開國 後 高麗의 維新(遺臣)들을 論罪할 때 全羅道로 귀양갔다가 그곳에서 場을 맞고 죽었는데, 이때 亦是 全羅道로 流配된 막내동생
우홍명
(禹洪命)과 江原道로 귀양간 셋째동생
우홍득
(禹洪得)도 함께 맞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