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장수 우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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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장수 우투리 》는 韓國의 說話이다.

歷史 [ 編輯 ]

舌禍 는 口碑 文學으로 正確한 創作年도는 알 수 없다. 韓半島 全域에 傳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地域에 따라 조금씩 內容이 다르다. '우투리'의 語源은 '우두머리', '웃통만 있는 아이' 等 다양한 설이 存在하며, 비슷한 說話로 몽골語 로 하늘을 뜻하는 댕그리(taŋri)에서 나온 말인 '둥구리舌禍'가 存在한다. [1]

줄거리 [ 編輯 ]

國文學者 최래옥은 各地에 퍼져 있는 아기장수 說話의 內容과 構造를 유형화하여 整理하였다.

  1. 옛날 어느 곳에 한 平民이 살았는데 山의 精氣를 받아서 겨드랑이에 날개(비늘)가 있고 태어나자 以內 날아다니고 힘도 센 長壽 아들을 奇跡的으로 낳았다(아기장수의 出生).
  2. 그런데 父母는 이 아기장수가 크면 張差 逆賊이 되어서 집안을 망칠 것이라고 해서 아기장수를 돌로 눌러 죽인다(아기장수의 1次 죽음).
  3. 아기장수가 죽을 때 遺言으로 콩 다섯 섬과 팥 다섯 섬을 같이 묻어 달라고 하였다(아기장수의 再起)
  4. 얼마後 官軍이 와서 아기장수를 내놓으라고 하여 이미 父母가 죽었다고 하니 무덤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을 그 어머니가 實吐하여 가 보았더니 콩은 말이 되고 팥은 軍士가 되어 아기장수가 막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 官軍에게 들켜서 成功 直前에 죽임을 當하였다(아기장수의 2次 죽음).
  5. 아기장수가 죽은 뒤 아기장수를 태울 龍馬가 近處의 龍沼에서 나와서 主人을 찾아 울며 헤매다 龍沼에 빠져 죽었다(아기장수의 죽음이 確實한 것이 되었다는 證市) [2]

여기서 아기장수가 태어난 以後의 줄거리 展開는 다양한 갈래로 나뉘는데, 우투리가 張差 逆賊이 될까 두려워 돌 等으로 눌러죽이는 舌禍, 父母가 우투리를 英雄으로 보고 깊은 山속으로 숨기는 舌禍, 죽었던 우투리가 山짐승 德澤에 다시 살아난다는 說話 等으로 변이되기도 한다.

共通的으로 우투리는 죽음과 復活을 經驗하며, 뜻을 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結末로 이어진다.

아기장수 우투리와 阿只발도 [ 編輯 ]

이 아기장수 說話가 實際 歷史 속에 登場하는 倭寇 長壽 阿只발도와 聯關이 있지 않은가 하는 說明이 存在해 왔다. 정영현은 智異山 隣近에서 傳承되는 우투리 說話 속에서 李成桂와 對立하는 役割인 아기장수는 곧 黃山大捷에서 李成桂에 依해 죽임을 當한 阿只발徒라는 젊은 敵將과 관련지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實存 人物인 阿只발도(라 高麗人들이 불렀던 倭寇 長壽)가 南原 地域의 우투리(둥구리) 說話 形成에 影響을 주었다는 直接的인 證據는 없지만 ①阿只발徒에게 '아기장수'라는 意味의 이름이 붙고 ②舌禍 속에서 둥구리가 李成桂에게 죽게 되는 事件은 時間的, 空間的으로 同一한 地域에서 일어났다는 點으로 미루어 서로 어떤 聯關性을 가지고 일어났음을 想定해 볼 수 있다고 主張하였다. [3]

實際로 남아 있는 史料들을 보아도 掠奪, 拉致, 破壞로 一貫되어 高麗의 官民들에게 많은 被害를 입혔던 倭寇에 對해 當時 高麗人들이 支配層, 被支配層을 莫論하고 至極히 否定的인 視角을 가지고 있었을 것은 쉽게 推測하기 쉽다. 또한 이들 關聯 史料들은 敵將이자 侵略者, 加害者인 阿只발徒라는 倭寇 長壽에 對해서 武裝으로서의 뛰어난 모습에 對한 認定도 보여 주고 있는데, 支配層에게 있어서는 基本的으로 阿只발度를 稱讚함으로써 그런 阿只발度를 쓰러뜨린 國調 李成桂의 偉大함을 더욱 强調하려는 意圖가 있었다. [4]

被支配層인 民衆의 立場에서 阿只발徒라는 倭寇 장수가 젊고 容貌와 舞踊이 뛰어났다고 한들 民衆 英雄으로 일컬어지는 아기장수의 이미지를 자국을 侵略하러 와서 掠奪을 일삼는 '이방인'인 外的에게 投影하는 것이 可能한가의 問題에 對해, 정영현은 '侵略者' 阿只발徒에게 '民衆英雄' 아기장수를 投影시킨다는 發想에 對해 記錄에 登場하는 이른바 假倭(假倭) 或은 附倭人(附倭人)과 같은 逸脫이나 아노미的人 狀況으로는 解釋할 수 없고, 高麗 百姓들이 阿只발도 自體를 肯定的인 人物로 보았다거나 倭寇 全體에 對해 어떤 期待感을 품었다는 式으로 一般化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고 指摘하였다. [5] 說話 속에 登場하는 '아기장수'라는 人物이 비록 民衆의 念願이 投影된 '民衆英雄'이기는 하지만 아기장수의 說話 속에서의 役割은 支配層과의 對立를 통해 體制 顚覆을 圖謀하는 程度가 全部이고 體制 顚覆 以後의 새로운 社會에 對해 어떠한 肯定的인 抱負를 내놓는 事例를 찾아 볼 수 없는 等 特別히 船人으로 그려지지는 않으며 善惡을 딱 잘라 斷定할 수 있는 어떠한 要素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點을 指摘하고, 朝鮮의 儒敎 社會에서 아기장수 說話 속 아기장수는 秩序를 破壞하는 안티 히어로的인 英雄이었다고 보는 것이 適切할 것이며 [6] 掠奪과 殺戮을 일삼은 惡人 阿只발度를 보고 旣存 支配 體制를 뒤엎으려다 失敗한 아기장수에게 그 이미지를 投影시키는 것에 對하여 倫理的 次元에서의 制動은 없었을 것이며, 中世 高麗 地方 社會에서 彼我 區別이란 現代의 '民族' 槪念과는 달랐고 高麗 末期 權門勢族의 土地兼倂과 租稅 및 徭役의 紊亂에 政府 支配力이 弱化되고 倭寇 侵略에 따른 益軍制로의 改編 等으로 인해 갈수록 疲弊해지는 삶 속에서 支配層인 高麗 政府에 對한 不滿이 가득한 狀況에서 高麗 官軍과 맞서 乘勝長驅하는 阿只발度의 모습에 某種의 代理滿足을 느꼈거나, 麗末鮮初에 생겨나 朝鮮을 거치는 戰勝 過程 속에서 民衆의 支持가 아니라 軍事 쿠데타를 通한 王位 簒奪이라는 不法的인 手段으로 새로운 王朝의 創業者가 된 李成桂라는 人物에 對한 否定的인 鑑賞, 나아가 朝鮮王朝가 들어선 뒤에도 民衆들의 삶이 疲弊해져서 支配 階層에 對한 不滿이 高調될 때마다 自身들을 收奪하는 王朝를 否定하고 그 國調인 李成桂와 對立했다가 失敗한 '半英雄'(안티히어로) 阿只발度를 '失敗한 半英雄' 우투리 說話와 같은 形態로 되새겨 보면서 阿只발徒라는 侵略者에게 아기장수라는 民衆英雄의 모습을 投影시키게 되었다 [7] 는 것이다.

參考 文獻 [ 編輯 ]

  1.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0153
  2. 최래옥 《韓國口碑傳說의 硏究》일조각, 1981, 35~36쪽
  3. 정영현 「倭寇 ‘阿只拔都’의 名稱과 高麗 民의 時刻」《韓國民族文化》Vol.58, 2016年, 218~222
  4. 정영현 「倭寇 ‘阿只拔都’의 名稱과 高麗 民의 時刻」《韓國民族文化》Vol.58, 2016年, 225쪽
  5. 정영현 「倭寇 ‘阿只拔都’의 名稱과 高麗 民의 時刻」《韓國民族文化》Vol.58, 2016年, 230쪽
  6. 後代의 創作 小說인 《壬辰錄》 等에서 朝鮮을 侵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에 對해서도 "13朔만에 태어나 黃龍의 胎夢을 얻었으며 나이 17歲가 되자 氣骨이 壯大하고 智謀가 남달랐다"고 美化하고 있는데(소재영 장경남 譯註 《壬辰錄》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93, 19~23쪽) 《壬辰錄》은 어디까지나 虛構의 小說로 實際 歷史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決코 風采가 뛰어난 人物이 아니었으며 一般的으로 그의 外樣에 對해서는 '矮小한 體軀에 원숭이를 닮았다'는 式으로 描寫되고 있는데(池淳 '도요토미 히데요시上의 創出' 韓日關係史學會/東北亞歷史財團 篇 《戰爭과 記憶 속의 韓日關係》京仁文化史, 2008) 그럼에도 數十萬 大軍을 이끌고 他國을 侵略할 程度의 카리스마的인 人物이라면 그에 걸맞은 威嚴과 風貌를 가졌을 것이라는 漠然한 생각으로 자국을 侵略하고 수많은 人命을 殺傷한 否定的인 感情의 對象인 히데요시에게도 그와 같은 描寫를 남기는 것이 可能하였다(정영현 「倭寇 ‘阿只拔都’의 名稱과 高麗 民의 時刻」《韓國民族文化》Vol.58, 2016年, 227쪽).
  7. 정영현 「倭寇 ‘阿只拔都’의 名稱과 高麗 民의 時刻」《韓國民族文化》Vol.58, 2016年, 226~2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