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先生墓
(申叔舟先生墓)는 朝鮮 初期의 大學者이며 文臣이었던 保閑齋(保閑齋)
신숙주
의 墓이다.
議政府市
고산동
에 있다.
1985年
9月 20日
京畿道의 記念物
第88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霧淞郡夫人 尹氏의 墓와 나란히 雙墳을 이루고 있으며 墓 앞에는 墓碑石, 床石, 문인상, 神道碑, 한글創製寺跡碑 等 各種 石物들이 있다. 그 中
한글創製寺跡碑
는 最近에 建立한 것이다.
墓는 夫人 尹氏와의 墓와 나란히 雙墳을 이루고 있으며, 封墳은 2基가 있다. 封墳 사이에는 1897年에 세운 墓碑가 있고, 앞에는 床石과 香爐石이 있다. 封墳 左右에는 文人石 2雙이 서 있다. 墓域 아래에는 이승소가 글을 지어 成宗 8年(1477)에 세운 神道碑(神道碑:王이나 高官 等의 平生 業績을 기리기 위해 무덤 近處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다.
신숙주
는 朝鮮 初期의 學者이며, 政治家로서 者는 범웅, 號는 保閑齋·희현당이고 共助參判醬의 아들로 태어났다.
世宗
때부터
成宗
에 이르기까지 여섯 임금을 忠誠으로 輔弼하였고, 特히
癸酉靖難
以後부터는 朝廷에서 中樞的 役割을 擔當하면서 業績을 남겼다. 著書로는 成宗의 特命으로 刊行된 《保閑齋集》 17卷을 비롯하여,
世祖
6年(
1460年
) 餘震征伐을 마치고 北征에 關한 것을 編纂한 《北征錄》 6卷,
世宗
25年(
1443年
)
日本
書狀官으로 갔을 때의 見聞錄인 《海東諸國記》 1卷과 그 밖에 《東國正韻》,《四聲通攷》,《五禮儀》,《經國大典》 等이 있다.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