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高宗 御極 40年 稱慶記念碑

서울 高宗 御極 40年 稱慶記念碑
(서울 高宗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私的
種目 私的 第171號
( 1969年 7月 18日 指定)
面積 579m 2
數量 4筆地
時代 大韓帝國 ( 1902年 )
所有 國有
位置
비각은(는) 서울특별시 안에 위치해 있다
비각
비각
비각(서울特別市)
住所 서울特別市 鍾路區 鍾路 1 (교보빌딩 앞)
Map
座標 北緯 37° 34′ 14″ 東經 126° 58′ 39″  /  北緯 37.57056° 東京 126.97750°  / 37.57056; 126.97750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서울 高宗 御極 40年 稱慶記念碑 (서울 高宗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 俗稱 비각 (碑閣)은 大韓帝國 의 皇帝 高宗 卽位 40年을 記念하여 1902年 세운 記念碑이다. 이 記念碑의 碑文에는 高宗이 帝位에 오른 것과, 光武 라는 獨自的인 年號를 使用한 것, 그리고 高宗이 卽位 40年이 된 事實 等을 記錄하였다. 1969年 7月 28日 私的 171號로 指定되었다.

歷史 [ 編輯 ]

이 비는 1902年 ( 光武 6年)에 세워졌다. 碑文에는 高宗 (在位 1863年~1907年)李 卽位한 지 40年이 된 것과 51歲가 되어 耆老所 에 入所한 것, 國號를 大韓帝國 으로 고치고 皇帝의 稱號를 쓰게 된 것을 記念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쓰여 있다. 돌거북 위에 세워진 碑石의 앞面에는 '大韓帝國 大皇帝 保寧 網六旬 御極四十年 稱慶記念송'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當時 皇太子인 純宗 이 글씨를 썼다.

비를 保護하기 위한 작은 規模의 비각에는 '記念비전'이라는 懸板을 달아 格을 높였다. 비각은 2中의 基壇위에 正面 3칸 側面 3칸으로 서 있는 丁字形 建物로, 20世紀 初 傳統的인 建築樣式이 사라지기 直前에 세워진 것 中 가장 아름다운 建物이다.

建物의 南쪽으로 돌기둥 위에 '萬歲文'이라 새긴 무지개 模樣의 門이 있다.

光復 後 1954年에 비각을 補修하면서, 日本人에게 팔렸던 돌로 된 萬歲文과 담을 찾아다가 一部를 復元하였고, 1967年頃에 光化門 地下步道 建設과 鍾路 擴張 工事로 인하여, 元來의 位置에서 北東쪽으로 若干 移轉하였다. [1] 1979年에 全面的으로 다시 고쳐 옛 面貌를 갖추게 되었다. 設置 當時 正宮인 景福宮 近處에 지었는데 皇帝의 記念碑이니 當時에 正宮으로 使用되고 있었던 景福宮의 近處에 設置한 것으로 推測되고 있다.

建築 [ 編輯 ]

大韓帝國의 有名한 建築技士 심의석 (沈宜錫)李 1902年 9月 景福宮 近處에 建立하였다. [2]

갤러리 [ 編輯 ]

各州 [ 編輯 ]

  1. “새서울의 靑寫眞 (12) 光化門立體交叉路新設” . 《東亞日報》 (동아일보사). 1966年 3月 15日. ...光化門立體交叉路工事 때문에 光化門郵遞局과 首都醫大附屬光化門病院이 撤去되고 由緖깊은 碑閣도 隣近 綠地帶로 옮겨진다.  
  2. 韓國民族文化大百科 - 심의석(沈宜錫)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