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山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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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山 金氏
商山金氏
異稱 尙州 金氏(尙州金氏)
나라 韓國
貫鄕 慶尙北道 尙州市
時調 金睟(金需)
原始鳥 김알지 (金閼智)
中始祖 김록(金綠)
金演(金璉)
集姓村 全羅北道 益山市 오산면 송학리
全羅南道 咸平郡 나산면 , 靈光郡 대마면 , 長城郡 삼서면
慶尙南道 晋州市 이反省面 , 咸安郡 칠북면 , 山淸郡 신등면 , 居昌郡 가조면
慶尙北道 尙州市 낙동면
主要 人物 金睟 系統 : 金匕弓, 김성, 김일, 김거도, 金睟(金遂), 김득배, 김득제, 김선채, 김준, 金範, 김홍민, 김귀영, 김덕겸, 김덕함, 김거도, 김수균, 김흡, 김일남
金銚 系統 : 김藥, 김공숙, 김국량, 김억동, 金廣斗, 김우하
尙州 金氏: 김건호 , 金泰浩 , 金泰欽
人口(2000年) 63,528名

上山 金氏 (商山金氏)는 只今의 慶尙北道 尙州市 貫鄕 으로 하는 韓國의 姓氏 이다. 時調는 高麗 初 甫尹(甫尹)을 지낸 金睟 (金需)이다. [1]

歷史 [ 編輯 ]

文獻에 依하면 始祖 金睟 (金需)는 新羅 경순왕 김부 (新羅 敬順王 金傅)의 後裔로, 高麗 (高麗) 時代 初葉이던, 高麗朝 第10代 君主 定宗 (靖宗) 時節에 甫尹(甫尹)을 歷任했다. 그의 本貫은 本來 慶州 인데, 移籍(移籍)하여 尙州 (尙州. 上山(商山)의 고호)로 分的(分籍)하였다. [2] [3]

《增補文獻備考》·《朝鮮氏族通報》 等의 文獻에 尙州 金氏 (尙州 金氏)의 始祖 金睟 (金需)는 경순왕 의 後裔인데, 移籍(移籍)하여 喪主(尙州)로 分的(分籍)하였으며 後에 各 派(派)로 나뉘었다고 한다. 일운(一云) 尙州 金氏는 版殿意俟奢(判典醫寺事) 김록 (金綠)의 後孫, 또는 戶長(戶長) 金銚 (金祚)의 後孫, 또는 板宗簿司社(判宗簿寺事) 金演 (金璉)의 後孫이며, 이들의 仙界는 모두 金睟 (金需)의 後裔라 하였다. [4]

關聯性 [ 編輯 ]

《高麗史》에 依하면 상주의 鄕里(鄕吏) 金銚 (金祚)의 딸 金彎弓(金萬宮)李 長成하여, 尙州의 鄕里(鄕吏) 김일 (金鎰)에게 시집가서 김록 (金祿)을 낳았다. 김일 (金鎰)은 金睟 (金需)의 8世孫이다. 따라서 金睟 (金需)와 金銚 (金祚)는 本貫은 같으나 서로 다른 一族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後孫들이 金睟 (金需)와 金銚 (金祚)를 別途 性向 始祖로 삼고 上山 (商山)을 本貫으로 하여 世界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戶長(戶長) 金銚 (金祚)에 對해서《김씨 分貫祿》·《增補文獻備考》等의 文獻에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朝鮮氏族通報》에 金睟 (金需)의 後裔라 한다.

李朝 同姓 同本 [ 編輯 ]

우리나라 姓氏 가운데 吏曹(異祖) 同姓同本(同姓同本)으로 祖上이 서로 다른 데도 不拘하고, 같은 地域에 뿌리를 두고 같은 姓氏를 쓰며, 마치 두 집안이 同姓同本(同姓同本)인양 誤認 받는 境遇가 더러 있는데 上山 金氏 (商山 金氏)도 그中 하나이다.

하나는 高麗 初 甫尹(甫尹) 金睟 (金需)를 始祖로 하는 系統이고, 또 다른 하나는 高麗 戶長(戶長) 金銚 (金祚)를 始祖로 하는 系統이다. 이에 對해서는 文獻이 없어 仔細히 上告할 수 없다.

分派 [ 編輯 ]

  • 金匕弓(金匪躬) : 玄孫, 定評공(靖平公) 김희일(金希逸)의 아들로, 벼슬이 贊成(贊成)이었으며, 一派(一派)를 이루었다.
  • 김성(金成) : 金睟의 6世孫, 이름을 金柳(金?)로 고쳤다. 김희일(金希逸)의 曾孫으로, 文科에 及第하여 벼슬이 翰林學士(翰林學士)였으며, 一派(一派)를 이루었다.
  • 김일(金鎰) : 孫子, 翰林學士(翰林學士) 김지연(金之衍)의 아들로, 高麗 元宗(元宗) 때 벼슬이 大護軍(大護軍)이었으며, 一派를 이루었다.
  • 김거도(金居道) : 5世孫, 김지연(金之衍)의 玄孫, 判書(判書) 김원리(金元理)의 아들, 벼슬이 戰서(典書)였으며, 一派를 이루었다.
  • 金睟(金遂) : 6世孫, 김지연(金之衍)의 5世孫, 祗候(祗候) 김치경(金致經)의 아들, 벼슬이 判事(判書)였으며, 一派를 이루었다.
  • 김준(金浚) : 벼슬이 府使(府使)였으며, 一派를 이루었다.
  • 김수균(金守勻) : 또는 김수균(金守鈞), 僉知中樞府事(僉知中樞府事)였으며, 一派를 이루었다.
  • 김흡(金洽) : 同知中樞府事(同知中樞府事)ㆍ摠制使(摠制使)였으며, 一派를 이루었다.
  • 김일남(金?南) : 專攻 判書(典工 判書)였으며, 一派를 이루었다.

金睟 系統 [ 編輯 ]

時調 金睟 (金需)는 高麗 初 甫尹(甫尹)을 지내고, 累代(累代)에 上山(商山. 尙州(尙州)의 고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仙界는 新羅국(新羅國)의 김성(金姓)에서 分派되었다고 하며, 文獻이 없어 相計를 正確히 考證 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後代에 溯及(溯及)하여 그 時代的 背景을 통해 歷史 事實을 參照하여 曾驗(證驗)할 뿐이다. [5]

人物 [ 編輯 ]

高麗 [ 編輯 ]

  • 김희일(金希逸) : 市中(侍中), 定評공(靖平公)
  • 金匕弓(金匪躬) : 贊成(贊成)
  • 金柳(金?) : 超名이 김성(金成), 文科 及第, 翰林學士(翰林學士)
  • 김일(金鎰) : 高麗 元宗 (元宗) 때 大護軍(大護軍)
  • 김록(金祿) : 원(元)나라 制科(制科)에 及第, 判典儀寺事(判典醫寺事)
  • 김득배(金得培) : 文科 及第 後 例文檢閱(藝文檢閱), 佃客部令(典客副令), 右副代言(右副代言), 樞密院直學士(樞密院直學士), 簽書樞密院事(簽書樞密院事), 東知樞密院事(同知樞密院事)等을 歷任. 수充補絶頂願功臣 政堂文學(輸忠保節定遠功臣 政堂文學), 문충공(文忠公), 崇義殿(崇義殿)에 背向
  • 김득제(金得齊) : 金得培의 동생, 大將軍(大將軍), 板刻文士(判閣門事), 醫朱怨讐(義州元帥)를 歷任, 上山群(商山君)에 封해짐
  • 김선치(金先致) : 金得培의 동생, 戶部郎中(戶部?中), 密直副使(密直副使), 계림府尹(鷄林府尹), 桐知密直(同知密直), 全羅道都巡問使(全羅道都巡問使)를 歷任, 秋成益胃功臣(推誠翊衛功臣)·秋充補絶讚化工新(推忠保節贊化功臣)을 下賜 받음, 상성群(尙城君)·낙성군(洛城君)에 封해짐 아들 김추(金錘)·金前(金銓)·김균(金鈞)을 두었다.
  • 김준(金浚) : 府使(府使)

朝鮮 [ 編輯 ]

  • 金範(金範) : 金睟의 14世孫, 玉과 縣監(玉果縣監), 書院에 背向
  • 김홍민(金弘敏) : 김범의 아들, 文科 及第, 傳한(典翰), 書院에 背向
  • 김귀영(金貴榮) : 김득제의 9世孫, 文科 及第, 左議政(左議政), 功臣, 上洛府院君(上洛府院君)에 封해짐
  • 김덕겸(金德謙) : 김선치의 6世孫, 文科 及第, 同知中樞府事(同知中樞府事)
  • 김덕함(金德?) : 김덕겸의 아우, 文科 及第, 大司憲(大司憲), 시호 忠情公(忠貞公), 淸白吏(淸白吏), 書院에 背向
  • 김우석(金禹錫) : 김덕함의 孫子, 文科 及第, 刑曹判書(刑曹判書)
  • 金演(金演) : 김우석의 아들, 文科 及第, 戶曹判書(戶曹判書)
  • 김동필(金東弼) : 김연의 조카, 文科 及第, 吏曹判書(吏曹判書), 시호 衝惠空(忠惠公)
  • 김거도(金居道) : 翰林學士(翰林學士) 김지연(金之衍)의 玄孫, 判書(判書) 김원리(金元理)의 아들, 戰서(典書)
  • 金睟(金遂) : 김지연(金之衍)의 5世孫, 祗候(祗候) 김치경(金致經)의 아들, 判事(判書)
  • 김수균(金守勻 : 또는 김수균(金守鈞), 僉知中樞府事(僉知中樞府事)
  • 김흡(金洽) : 同知中樞府事(同知中樞府事)ㆍ摠制使(摠制使)
  • 김일남(金?南) : 前公判서(典工判書)

分的 [ 編輯 ]

  • 鳳山 金氏(鳳山 金氏)
  • 瑞山 金氏(瑞山 金氏)
  • 延風 金氏(連? 金氏)
  • 醴泉 金氏(醴川 金氏)
  • 濟州 金氏(濟州 金氏)
  • 弘遠 金氏(洪原 金氏)
  • 咸平 金氏(咸平 金氏)

朝鮮 王室과의 姻戚 關係 [ 編輯 ]

金銚 系統 [ 編輯 ]

時調 金銚 (金祚)는 高麗 때 喪主(尙州)의 鄕吏(鄕吏)로 戶長(戶長)을 지냈다. 그의 仙界는 資料가 없어 正確히 上告할 수 없다. 《金氏 分貫祿》·《增補文獻備考》等의 文獻에도 言及이 없고, 다만 《朝鮮氏族通報》에 金睟 (金需)의 後裔라 한다.

人物 [ 編輯 ]

  • 김藥 : 會寧 縣監
  • 김공숙 : 郎將群
  • 김국량 : 通政大夫, 載寧郡數, 谷山府使
  • 김억동 :
  • 金廣斗(金光斗) : 號 日묵재, 성균進士(成均進士), 壬辰倭亂 때 創意(倡義)
  • 김우하(金遇河) : 通政大夫(通政大夫)

分派 [ 編輯 ]

  • 尙州派(尙州派)
  • 載寧派(載寧派)
  • 先産婆(善山派)
  • 星州派(星州파)

本館 [ 編輯 ]

上山(商山)은 慶尙北道 西쪽에 位置하는 尙州(尙州) 地域의 옛 地名이다. 三韓時代에는 津한(辰韓)의 領土였으나, 3世紀頃 新羅 의 勢力圈에 들어가 524年 (新羅 法興王 11)에 尙州(上州), 진흥왕 때 上洛群(上洛郡), 신문왕 때 沙伐州(沙伐州), 757年 (景德王 16)에 尙州(尙州), 776年 (惠恭王 12)에 沙伐州(沙伐州) 等의 行政區域이 設置되었다. 940年 (高麗 太祖 23) 尙州(尙州)라 하였다가 安東大都護府(安東大都護府)로 바뀌고, 1018年 (玄宗 9) 때 賞注目이 되었다.

1392年 (太祖 1)에 競走로부터 觀察使영이 喪主로 옮겨와 慶尙道의 政治·行政의 中心地가 되었으며, 1408年 (太宗 8)에 慶尙監營이 喪主로 옮겨왔다가, 1596年 (宣祖 29)에 觀察使寧殷 慶尙道의 中央에 位置한 大邱 로 옮겨갔다. 別號는 上洛(上洛)?上山(商山)?他我(陀阿) 等이었다.

1895年 (高宗 32)에 地方制度 改正으로 賞注目이 尙州郡으로 改編되었다가 1896年 慶尙北道에 所屬되었다. 1914年 軍면 廢合으로 檻倉軍이 編入되었고, 1931年 에 尙州面이 邑으로 昇格되었다. 1986年 에 상주읍이 市로 昇格되어 分離되었고, 1995年 尙州郡이 尙州市 에 統合되었다.

人口 [ 編輯 ]

人口는 2000年 基準 63,528名이다.

外部 링크 [ 編輯 ]

各州 [ 編輯 ]

  1. 혹稱(或稱) 尙州 金氏 ( 尙州 金氏 )라 한다. 또는 尙州 金氏 ( 商州 金氏 ), 사벌 金氏 ( 沙伐 金氏 )라 한다.
  2. 一說에 時調 金睟 (金需)는 新羅 원성왕 김경신(新羅 元聖王 金敬信) 의 孫子이자 헌坪太子 김의영(憲平太子 金義英)의 아들인 上大等 김숭빈 (金崇斌)의 後裔라 한다.
  3. 또한 一說에 김숭빈은 新羅 원성왕 의 太子인 김인겸(金仁謙)의 아들이라 한다.
  4. 《朝鮮氏族統譜》 尙州金氏 始祖 甫尹 ○本新羅 敬順王 之后 移籍 尙州后 分籍 爲各派 ○一云 尙州金氏 判典醫寺事 金綠 之后 敬順王后 ○又 戶長 金祚 之后 ○又 判宗簿寺事 金璉 之后) 其先皆 金需 後也
  5. 始祖 金睟(金需)에 對해 ‘敬順王 後孫 설’, ‘純웅(順雄) 將軍 後孫 설’, 尙州 ‘才地土豪(在地土豪) 설’ 等이 있으나, 경순왕 또는 純웅 將軍 後孫 說은 김수와 連帶가 맞지 않아 連結性이 缺如되고 있다는 點에서 說得力을 잃고 있다. 또한 關聯 文獻 等도 없어 어느 系統(系統) 인지 仔細히 上告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