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某德士

某德士
(慕德祠)
대한민국 忠淸南道 文化財資料
種目 文化財資料 第152號
( 1984年 5月 17日 指定)
數量 1棟
時代 朝鮮時代
位置
청양 모덕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청양 모덕사
靑陽 某德士
靑陽 某德士(大韓民國)
住所 忠淸南道 靑陽郡 木綿 나분동길 12 (송암리)
座標 北緯 36° 26′ 45″ 東京 127° 0′ 30″  /  北緯 36.44583° 東經 127.00833°  / 36.44583; 127.00833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某德士 (慕德祠)은 大韓民國 忠淸南道 靑陽郡 木綿 나분동길 12 에 位置한 祠堂이다. 1984年 5月 17日 忠淸南道의 文化財資料 第152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朝鮮 後期 愛國志士인 勉庵 최익현 (1833∼1906)先生의 位牌를 모신 祠堂이다.

崔益鉉은 이학로의 弟子로 文學과 道學에 造詣가 깊었으며 哲宗 6年(1855)에 文科에 及第하고 벼슬이 縣監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大院君의 政策을 批判하는 上疏文을 여러 次例 올리고 黑山島에 流配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年 日帝에 依해 强制로 乙巳條約이 締結되자 乙巳 5적을 處斷할 것을 主張하였고, 같은 해 日本의 罪狀을 16個 項目으로 적어 抗爭하며 全羅北道 태인에서 義兵을 募集, 日本軍과 싸웠다. 그러나 日本軍에 逮捕되어 對馬島에 流配되었고 敵이 주는 飮食을 먹을 수 없다며 斷食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風土病으로 殉國하였다.

後에 그를 追慕하는 士林들이 態인, 抱川, 谷城 等 여러 地域에 그의 祠堂을 세웠다. 이곳 모德社는 1900年부터 1906年까지 先生이 살았던 古宅에 마련된 祠堂으로, 많은 藏書를 保存하고 있는 藏書閣, 先生의 遺物을 展示하는 展示館, 先生의 影幀을 모신 影堂 等이 함께 들어서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