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누스 4歲
(
스웨덴語
:
Magnus IV
,
1316年
4月 또는 1316年 5月 ~
1374年
12月 1日
) 또는
망누스 에릭손
(
스웨덴語
·
노르웨이語
:
Magnus Eriksson
)은
스웨덴
의 國王(在位: 1319年 7月 8日 ~ 1364年 2月)이자
노르웨이
의 國王(在位: 1319年 8月 ~ 1343年 8月 15日)이다.
폴쿵가
(Folkung, 非엘보가(Bjelbo)) 出身이며 노르웨이의 國王
망누스 7歲
(
노르웨이語
:
Magnus VII
)에 該當한다.
生涯
[
編輯
]
쇠데르萬란드
의 에리크 網累손(Erik Magnusson) 公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노르웨이의 잉에보리(
스웨덴語
:
Ingeborg
, 노르웨이의 잉에非에르(
노르웨이語
:
Ingebjørg
))는 노르웨이의
호콘 5歲
國王의 딸이다.
1319年
7月 8日
에 스웨덴의 國王으로 卽位했으며 같은 해 8月에는 노르웨이의 國王으로 卽位했다. 卽位 當時에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인 잉에보리가
攝政
役割을 遂行했다.
1331年
부터 親庭을 始作했고
1332年
에는
덴마크
의 領土로 있던
스코네
,
블레킹에
,
할란드
를 스웨덴 國王의 領地로 사들였다.
1336年
7月 21日
에는
스톡홀름
에서 스웨덴, 노르웨이 國王 戴冠式을 擧行했다. 그렇지만 망누스 國王에 對한 反感을 갖고 있던 노르웨이의 貴族들은
1343年
8月 15日
에 망누스 國王을 노르웨이의 王位에서 退位시켰고 망누스의 아들인
호콘 6歲
를 노르웨이의 國王으로 推戴했다.
1356年
에는 스코네 編入 費用을 마련하기 위한 稅金 賦課 政策에 不滿을 품은 스웨덴의 貴族들이 敎會의 支援을 받으면서 叛亂을 일으켰다. 스웨덴의 貴族들은 망누스의 아들인
에리크 12歲
를 스웨덴의 國王으로 推戴했지만 에리크 12世는
1359年
에 死亡하고 만다.
1363年
에는 스웨덴의 貴族들이 망누스 國王에 對抗하는 叛亂을 일으켰다.
1364年
2月 18日
스웨덴의 貴族들이
메클렌부르크
의
알브렉트
를 스웨덴의 國王으로 推戴하면서 王位에서 退位했고 노르웨이로 亡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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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時代
外國系 同君聯合은
기울임꼴
로, 論爭 餘地가
있으면 (括弧)로 標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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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마르 同盟
(1387年?152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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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노르웨이
(1524年?181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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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노르웨이
(1814年?190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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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 以後
(1905年?現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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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
攝政
- d
덴마크 君主 兼任
- e
잉글랜드 君主 兼任
- s
스웨덴 君主 兼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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