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미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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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미 番 ( 日本語 : 斗南藩 도나미韓 [ * ] )은 日本 메이지 時代 初期에 생겨난 番으로, 시모키타半島 에 位置하였다.

補身 戰爭과 아이즈 番 [ 編輯 ]

1868年 (게이오 4年), 幕府 勢力과 新政府軍이 벌인 補身 戰爭 이 勃發했다. 當時 아이즈番 은 區 幕府 勢力의 中心으로 看做되어 新政府君의 敵, 나아가 朝廷의 敵이 되고 말았다. 아이즈番 무쓰 , 데와 , 에치高 等地의 番 勢力의 支援과 쇼나이番 과의 同盟 關係를 背景으로 新政府軍에 맞서 싸웠으나 結局 敗하여 降伏하였다. 그 結果 아이즈番 의 影池는 아이즈가 로부터 沒收되었고, 번주 마쓰다이라 伽陀모리 는 禁錮刑에 處해졌다.

도나미 番의 誕生 [ 編輯 ]

이듬해인 1869年 (메이지 2年) 11月 3日 , 當時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이던 伽陀모리의 맏아들 伽陀하루 는 아이즈 마쓰다이라價의 假名(家名) 存續을 윤허받았고, 1870年 (메이지 3年) 1月 5日 에는 옛 아이즈의 番社들 4千 7百餘 名이 謹愼에서 풀려났다. 아이즈番 을 沒收받은 代身 마쓰다이라 家門에게는 혼슈 北壇의 시모키타半島 의 시모키타 軍, 加味키타 軍, 山盧헤 軍, 니盧헤 軍 一帶의 3萬 席이 封地로 주어진 것이다. 새로이 받은 領地의 이름은 도나미 (斗南)로 지어졌는데, 이는 '북두 以南은 모두 皇帝의 땅이라'(北斗以南皆帝州)는 句節에서 나왔다. 4月 18日 , 移住를 위한 第1陣 3百 名이 하치노헤(八戶)에 上陸했고, 번주 伽陀하루는 燔師 도미타 시게미쓰 (?田重光)의 품에 안겨 고노헤(五戶)에 이르렀다. 最初의 番靑(藩廳)은 옛 고노헤 다이칸쇼(五?代官所)였다. 나중에 아오모리縣 무쓰視 에 있는 엔쓰지 (円通寺)로 番廳을 옮겼다. 또한 홋카이도 의 禹타스쓰 等 네 個의 軍에도 지배지를 두었다.

도나미 番의 試鍊과 廢止 [ 編輯 ]

도나미 番은 3萬 石의 領地라고는 하나 不毛의 땅으로, 實際로는 7千 石 程度의 領地에 지나지 않았다. 森林 資源이 豐富하나 林業을 제대로 活用하기 어려웠다. 番으로 入植해 들어온 이들도 겨우 220餘 名이었으며, 추위와 飢饉 속에 목숨을 잃는 番社들도 적지 않았다. 結局 1871年 폐번치현 으로 도나미 番은 도나미 現 이 되었고, 나중에는 히로사키 縣 에 包含되었다가 아오모리縣 으로 編入되었다. 番 領地 中 一部인 니盧헤 軍은 이와테縣 으로 編入되었다.

歷代 번주 [ 編輯 ]

폐번치현 以後 [ 編輯 ]

도나미 現 [ 編輯 ]

도나미 現 ( 日本語 : 斗南? 도나미켄 [ * ] )은 日本 의 옛 行政區域名이다. 도나미 番移 폐번치현 으로 인해 1871年 8月 29日 縣으로 바뀐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히로사키 縣 에 編入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