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央情報硏究委員會
(中央情報硏究委員會, 略稱:中庭 또는 情報委)는
1960年
11月 11日
에 組織된
大韓民國
의 情報 機關이자 情報, 諜報, 搜査 業務를 專擔하는 機關이었다. 略稱은
中央情報位
(中央情報委
[1]
) 또는
정보연位
(情報硏委
[2]
)였다. 國外 情報 및 國內 保安 情報의 蒐集·作成 및 配布, 國家 機密에 屬하는 文書·資材·施設 및 地域에 對한 保安 業務, 刑法 中 內亂의 罪, 外換의 罪, 軍刑法 中 叛亂의 罪, 暗號不正使用罪, 軍事機密保護法에 規定된 罪, 國家保安法에 規定된 罪에 對한 搜査, 職務와 關聯된 犯罪에 對한 搜査, 情報 및 保安 業務의 企劃·調停에 關한 事務를 管掌하는
大韓民國
의 中央行政機關이었다.
諜報 蒐集의 必要性을 느낀
場面
大韓民國
總理
는
11月 11日
中央廳에서 情報硏究委員會 設置를 議決하고
[1]
, 그날 委員會를 設置하였다.
[3]
中央情報委員會는 韓國의 最初의 公式 諜報機關으로,
金鍾泌
等은
중정
의 母胎라는 說을 不正하나, 中央情報위가 中央情報部의 全身으로 본다.
[4]
設置 根據 및 所管 業務
[
編輯
]
- 中央情報硏究委員會規定 [國務院令 第98號, 1960.11.16 制定] 第1條
[5]
- 中央情報硏究委員會規定 [國務院令 第98號, 1960.11.16 制定] 第1條
[5]
, 第2條
[6]
, 第3條
[7]
[8]
沿革
[
編輯
]
創設
[
編輯
]
情報機關의 必要性을 認識한
場面
總理
는
美國 中央情報局
의 勸告를 受容하여 中央情報硏究委員會를 創設한다.
1960年
11月 11日
中央情報위를 設置하고 中央情報硏究委員會規定 [國務院令 第98號, 1960.11.16 制定]을 制定하였으며
11月 16日
官報에 公示한다.
그밖에도
場面
總理는
1961年
3月 2日
總理 情報祕書館
이귀영
을 首長으로 하는 또다른 情報機關인
時局정화단
을 設置하여 民情을 把握하는 한便
윤치영
一波,
이범석
과
박병권
一波,
朴正熙
,
金鍾泌
一派를 監視하게 했다.
組織
[
編輯
]
歷代 委員長
[
編輯
]
委員長
[
編輯
]
共和國
|
臺數
|
이름
|
任期
|
出身地
|
出身學校
|
備考
|
第 2 共和國
|
招待
|
場面
(張勉)
|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5月 20日
|
競技 漢城
(現 서울)
|
水原高等農林
(現 서울大)
|
第4代 副統領&第2代, 7代 國務總理&中央情報部長&制憲·5代 國會議員&민주당 最高委員&週 美國 大使
|
副委員長
[
編輯
]
歷代 委員
[
編輯
]
- 場面
(張勉),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3月 1日
, 國務總理&當然職 委員
- 정헌주
(鄭憲柱),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3月 1日
, 國務院 事務處長&當然職 委員
- 정일형
(鄭一亨),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3月 1日
, 外務部長官&當然職 委員
- 현석호
(玄錫虎),
1960年
11月 11日
~
1960年
11月 20日
, 內務部長官&當然職 委員
- 신현돈
(申鉉燉),
1960年
11月 21日
~
1961年
3月 1日
, 內務部長官&當然職 委員
- 金映宣
(金永善),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3月 1日
, 재무부長官&當然職 委員
- 조재천
(曺在千),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3月 1日
, 法務部長官&當然職 委員
- 이병하
(李炳夏),
1961年
5月 3日
~
1961年
3月 1日
, 法務部長官&當然職 委員
- 권중돈
(權仲敦),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1月 30日
, 國防部長官&當然職 委員
- 현석호
(玄錫虎),
1961年
1月 30日
~
1961年
3月 1日
, 國防部長官&當然職 委員
- 이귀영
(李貴永),
1960年
11月 11日
~
1961年
3月 1日
, 總理情報祕書官
歷代 室長
[
編輯
]
情報室長
[
編輯
]
硏究室長
[
編輯
]
情報室 副室長
[
編輯
]
硏究室 副室長
[
編輯
]
中央情報部와의 連繫性
[
編輯
]
中央情報部의 初代 部長이기도 했던
金鍾泌
은 中央情報部와 中央情報位와의 連續性을 否認했다. 그러나
이후락
이나 다른 이들의 立場이 確認되지 않았다.
金鍾泌
은 中央情報部를 創設하면서 中央情報硏究위 組織을 引受하거나 參考하지 않았다고 反駁했다. “(이후락이) 情報 經驗이 있는 사람이라고 (場面 總理가) 옆에 놓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情報機能이 아니라 私的인 活動 水準이었다 ”는 것이다.
[11]
1961年
봄부터
場面
總理는 十餘 次例나 쿠데타 企圖 情報를 보고 받거나 入手했다.
[4]
그래서 겨우
1961年
3月
이 되어서야 또다른 情報機關인
時局 淨化 運動 本部
라는 直屬 情報 機關이 設置 되었지만 별다른 役割은 못했다.
[4]
情報위와 時局정화단은
1961年
5月 20日
統廢合되어
中央情報部
로 發足된다.
기타
[
編輯
]
1961年
봄부터 場面 總理는 十餘 次例나 쿠데타 企圖 情報를 보고 받거나 入手했다.
[4]
그래서 겨우
1961年
3月
이 되어서야 또다른 情報機關인
時局 淨化 運動 本部
라는 直屬 情報 機關이 設置 되었지만 별다른 役割은 못했다.
[4]
情報위와 時局정화단은
1961年
5月 20日
統廢合되어
中央情報部
로 發足된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照
[
編輯
]
- ↑
가
나
"中央情報位 設置", 東亞日報 1960年 11月 12日子 1面, 政治面
- ↑
"정보연位 新設, 11日閣議서 議決", 京鄕新聞 1960年 11月 11日子 1面, 政治面
- ↑
"中央情報年位 11日下午 첫會合", 京鄕新聞 1960年 11月 12日子 1面, 政治面
- ↑
가
나
다
라
마
정윤재, 《政治 리더십과 韓國 民主主義》(나남출판, 2003) 274페이지
- ↑
가
나
第1條 (目的) 行政各部, 處에 亘한 國家安全에 關聯되는 內外情報를 綜合的으로 硏究, 檢討하기 위하여 國務院에 中央情報硏究委員會(以下 委員會라 한다)를 둔다.
- ↑
第2條 (委員會의 組織) 委員會는 國務總理를 委員長으로 하고 國務院事務處事務處長, 外務部長官, 內務部長官, 재무부長官, 法務部長官 및 國防部長官,을 委員으로 한다.
- ↑
① 委員長은 委員會를 代表하며 委員會의 事務를 總括하고 所屬公務員을 指揮監督한다.
- ↑
②委員長이 事故가 있을 때에는 前條에 列擧된 順位에 따라 委員이 그 職務를 代行한다.
- ↑
1副委員長
- ↑
2副委員長
- ↑
"이후락 79號室·情報硏究位 情報部 만들 때 참고 안 했다"
中央日報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