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자령 戰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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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자령 戰鬪 1933年 7月 韓國獨立軍 지청천 部隊, 中國軍 部隊와 聯合하여 日本軍을 大破한 戰鬪이다. 봉오동 戰鬪 , 靑山裏 戰鬪 에 이어 韓國 抗日武裝鬪爭史 3代 大捷으로 評價받는다.

槪要 [ 編輯 ]

韓國獨立軍과 中國軍은 둥澄淸을 確保하기 위하여 닝안[寧安]을 占領해야 할 必要가 있었다. 그러나 한 ·中 聯合軍은 戰鬪에서는 이겼지만 人員과 裝備 때문에 1933年 6月 28日 라오쑹링[老松嶺]으로 移動하였다. 이때 다뎬쯔[大甸子]에 駐屯하던 日本軍 이즈카[飯塚] 部隊는 移動하는 한 ·中 聯合軍을 全滅할 計劃을 세웠으나, 7月 1日 日本軍의 動靜(動靜)에 對한 情報를 얻은 한 ·中 聯合軍은 日本軍의 攻擊에 對備하여 韓國獨立軍 2,500名, 中國軍 2,000名을 대전자령에 潛伏시켰다가 大接戰을 벌였다.

4時間의 激戰 끝에 이즈카 部隊를 전멸시키고, 戰利品(戰利品)으로 軍服 3,000벌, 迫擊砲 5門, 軍用物資 200마차분, 毯요 3千 張, 平射砲(平射砲) 3門, 小銃 1,500자루 等을 얻은 이 戰鬪는 獨立軍의 항일전에서 特記할 만한 大勝利였다. 그러나 戰利品의 分配問題로 한 ·中 間에 對立이 생겨 그 後의 한 ·中 聯合에 큰 支障을 주었다. 같은 해 9月 1日에 韓國獨立軍은 둥닝현[東寧縣]의 敵軍을 攻擊했는데, 援兵을 보내주기로 約束한 中國 救國軍은 獨立軍의 總司令(總司令) 以下 數十 名의 高級幹部를 拘禁했다.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