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哲秀 (189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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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哲秀 (金綴洙, 1893年 ~ 1986年 3月 16日 )는 韓國의 社會主義系列 獨立運動家이다. 朝鮮共産黨 3次 執行部 責任祕書로 活動했으며, 줄곧 反(反) 박헌영 系列에서 活動했었다. 號는 지운(芝雲 或은 遲耘)이다.

지운 김철수는 全北 扶安 白山에서 태어난 뒤 1912年 젊은이들의 留學을 督勵하는 獨立志士 聲優 이명직 先生이 돌린 沙鉢通文을 보고 感化되어 日本 와세다대학 政治學科에 留學하였고 1915年 9月 7日 이명직 先生이 日帝에 毒殺 當한 消息을 듣고 獨立運動에 投身 1915年 '裂指同盟(裂指同盟)' 1916年 '穀貴段(哭鬼團)'과 '신아同盟團(新亞同盟團)'을 組織하였다 [1] . 우범선의 아들 우장춘에게 韓國을 選擇하도록 民族意識을 鼓吹시키고 意識化 시킨 張本人 이다 [2] . 日本과 러시아 中國을 오가며 獨立運動과 코민테른 等 社會主義活動을 벌였다.

그는 韓國 草創期 社會主義 運動을 이끌었고 解放空間에서 左翼과 右翼의 架橋役割을 自任했고 李承晩-박헌영 會談을 推進하는 等 社會主義 統一 政府 樹立을 推進한 社會主義系列 元老였다.

1947年에는 極甚한 左右翼 勢力다툼에 幻滅을 느끼고 扶安 白山으로 落鄕하여 움幕을 짖고 蟄居하다 生을 마쳤다.

事後 [ 編輯 ]

2005年 建國訓長 독립장을 追敍하였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