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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柳 (1653年)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本文으로 移動

金柳 (165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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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柳 (金?, 1653年 ~ 1719年)는 朝鮮後期 吏曹參判 兼 文型을 지낸 文身이다. 字는 辭職, 號는 檢第, 諡號는 聞慶, 本貫은 淸風이다. 아버지는 監査 김징이고, 祖父는 正郞 金極刑이다.

生涯 [ 編輯 ]

박세채(朴世采)·宋時烈(宋時烈)의 文人. 正郞(正郞)으로 1699年(肅宗 25) 增廣文科(增廣文科)에 甁과(丙科)로 及第, 饌需郎官(纂修?官)으로「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增補(增補)했으며, 1701年에 高陽郡守, 司䆃寺僉正(司導寺僉正) 掌禮院社評(掌隷院司評), 漢城府庶尹(漢城府庶尹), 富平縣監(富平縣監), 1707年 黃海道(黃海道) 沿岸縣監(延安縣監)時節 善政(善政)을 베푼 공으로 明紬옷감 안팎의 下賜(下賜)를 받고, 1708年에 戶曹正郞(戶曹正郞)李 되었다. 1712年에는 侍講院史書(侍講院司書), 1713年에는 奉朝賀(奉朝賀)職을 띠고 司憲府(司憲府)掌令(掌令) 司諫院(司諫院)에 사간(司諫), 弘文館 修撰 等을 歷任하고 1714年 侍講院輔德(侍講院輔德) 水原府使(水原府使)로 通政大夫에 올랐다. 平安道觀察使(平安道觀察使)를 壽命하고 品階가 嘉善大夫(嘉善大夫)에 올랐다. 平安道에서 돌아와 弘文館副提學, 司憲府 大司憲(司憲府 大司憲), 漢城府右尹(漢城府右尹)에서 吏曹 參判(吏曹參判) 兼 兩館大提學(兩館大提學)에 이르렀다. 同知春秋館事(同知春秋館事), 典牲署(典牲暑)製造(提調)等을 歷任하고 議政府 左贊成(左贊成)에 追贈(追贈)되었다.

家族 [ 編輯 ]

  • 할아버지 : 金極刑(金克亨) 和順縣監, 工曹正郞
    • 아버지 : 김징 (金澄) 全羅道觀察使, 同副承旨
    • 어머니 : 이의길(李義吉) 景陵參奉 의 딸
      • 兄님 : 金九 (金構) 右議政
        • 조카 : 김희로 (金希魯) 好調參判
          • 宗孫 : 김치만(金致萬)
        • 조카 : 김재로 (金在魯) 領議政
          • 孫子 : 김치인(金致仁) 領議政
      • 동생 : 김무(金楙)
        • 조카 : 김흥로(金興魯)
          • 孫子 : 김치복(金致福)
      • 否認 : 이명진(李鳴震)의 딸, 송朴(宋搏)의 딸
        • 長男 : 김정로(金正魯)
        • 次男 : 김취로(金取魯) 六曹判書
          • 孫子 : 김치영(金致永) - 生父 김상로(金尙魯)
        • 三南 : 김성로(金省魯)
        • 사남 : 김약로(金若魯) 左議政
          • 孫子 : 김치공(金致恭) 大司諫, 承旨
        • 오남 : 김상로 (金尙魯) 領議政
          • 孫子 : 김치양(金致讓) 吏曹參議, 承旨

關聯 文化財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 金奎植의 7代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