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식
(金南植,
1925年
~
2005年
1月 7日
[1]
)은
大韓民國
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專門家이며 統一 運動家이다. 本名은
김동만
(金東滿)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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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忠淸南道
論山郡
(論山郡)에서 태어났다.
社會主義
系列에서 活動한 아버지에게 影響받았고
美軍政
下에서
남조선로동당
에 入黨하면서
左翼
活動에 뛰어들었다. 當時의 具體的인 活動 內譯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남로당 忠淸道黨에 屬해 있었던 것으로 記錄되어 있다.
韓國 戰爭
以前에 越北한 狀態였고 戰爭 中에는 特殊 任務를 받아 故鄕 論山 地域에서 活動하였다. 以後 後退하는
朝鮮人民軍
과 함께 다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으로 들어가
松島政治經濟大學
을 卒業했다.
1962年
12月에 工作員으로 南派된 直後 이듬해 1月
大戰
에서 檢擧되었다.
以後 轉向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
조선로동당
專門家로
高麗大學校
亞細亞問題硏究所,
大韓民國 統一部
國際問題調査硏究所 平和硏究院 等에서 勤務하였다. 著書 《北韓 摠監》(1968年), 《남로당 硏究 資料집》(1974年), 《北韓槪要》(1978年) 等을 發表했다.
特히
1984年
에 出刊한 《남로당 硏究》는
남조선로동당
이 大韓民國에서 不法化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도 낮게 評價되면서 그동안 크게 歪曲되거나 縮小되었던 남로당의 活動을 客觀的이고 實證的으로 分析한 첫 硏究로 好評받았다. 기타 著書로 《박헌영 路線批判》(1986年), 《韓國現代史 資料總署》(1986年) 等이 있다. 마지막 著作이 된 《21世紀 우리民族이야기》(2004年)의 日本語版 出版 問題로
日本
을 訪問했다가 死亡했다.
김남식이 初期에 한 硏究는 大韓民國에 情報를 提供하는 次元이었다. 이때 한 硏究를 本人은 ‘奴隸의 言語’로 말하고 써야했다고 表現했다. 그러나 權威主義 行政府가 弱化한
1980年代
以後로는 그동안 蒐集한 資料를 土臺로 더 自由롭게 著書를 出刊하면서 "民族 問題의 解決 없이는 階級 問題도 解決될 수 없다"는
民族 解放
다운 觀點을 分明히 하여,
保守主義
團體에 親北이라고 批判받기도 했다. 事後 김남식의 墓地에 '統一愛國志士'라는 文句가 적혀 있다는 理由로 保守團體가 墓所를 毁損한 일도 있었다.
[2]
著書로는 [北韓 摠監][남로당 硏究 資料집][北韓槪要][남로당 硏究][박헌영 路線批判 (1986)][韓國現代史 資料總署 (1986)][21世紀 우리民族이야기]가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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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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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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