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平 삼충단

삼충단
(三忠壇)
대한민국 加平郡 鄕土文化財
種目 鄕土文化財 第12號
( 1986年 6月 19日 指定)
時代 日帝强占期
位置
가평 하판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가평 하판리
加平 하판리
加平 하판리(大韓民國)
住所 京畿道 加平郡 조종면 韻樂理 488-1
座標 北緯 37° 51′ 56″ 東京 127° 20′ 55″  /  北緯 37.86556° 東經 127.34861°  / 37.86556; 127.34861

加平 삼충단 (加平 三忠壇)은 韓末 日帝의 無斷 侵略에 抗拒한 최익현 (崔益鉉), 민영환 (閔泳煥), 조병세 (趙秉世)의 넋을 기리기 위해 造成된 祭壇이다. 京畿道 加平郡 하면 하판리 488-1番地에 位置하고 있다. 1986年 6月 19日 加平郡의 鄕土文化財 第12號로 指定되었다.

正面 中央에 '殉國烈士 조병세先生 追慕碑'가, 왼쪽에 '殉國烈士 崔益鉉先生 追慕碑'가, 오른쪽에 '殉國烈士 閔泳煥先生 追慕碑'가 있다.

槪要 [ 編輯 ]

삼충단은 趙秉世, 민영환, 최익현 세 분 忠臣의 忠節을 기리는 祭壇이다. 書記 1905年 日帝가 强制로 乙巳保護條約을 締結하여 國權을 侵奪하는 蠻行을 恣行하자, 當時 조병세先生은 議政大臣(議政大臣)으로 있다가 加平에 隱居하고 있었는데 이 消息을 듣고 上京하여 乙巳條約의 無效를 主張하며 乙巳五賊 을 處斷하고 國權을 回復해야 한다는 上疏를 올리며 抗拒하였으나 倭헌들의 妨害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결故國重社民서(訣告國中士民書)라는 遺書를 남기고 自決하였다. 崔益鉉先生은 義兵을 蜂起하여 倭寇討伐에 앞장서 싸우다가 逮捕되어 對馬島에서 斷食抗拒中 殉國하였으며, 閔泳煥先生은 侍從武官(侍從武官)이었는데 大漢門앞에 나가 席藁待罪(席藁待罪)하며 國權回復의 上疏를 올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國民과 各國工事에게 遺書를 남기고 自決한 忠臣이다. 이 삼충단은 日帝治下이던 1910年에 설단되었으며 1989年에 復元되었으며 懸燈寺 一柱門 옆에 있던 것을 2005年 8月 13日 이곳으로 移轉하였다. 每年 11月 25日에 祭享을 올리고 있다. [1]

같이 보기 [ 編輯 ]

現地 案內文 [ 編輯 ]

삼충단 三忠壇

  • 加平郡 鄕土文化財 第12號

삼충단은 日帝의 無斷 侵略에 抗拒하다 自決한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 先生을 기리기 위해 內侍府知事 나세환, 僉知 김두환, 懸燈寺 住持 정금명 等 加平의 有志들이 1910年 만든 祭壇이다. 1905年 을사늑약이 締結되자 趙秉世, 閔泳煥先生은 그해 遺書를 남기고 自決하였으며 崔益鉉先生은 義兵을 組織하여 싸우다 體호되어 斷食을 하다 1906年 對馬島에서 殉國하였다. 1913年 滿洲事變 以後 段이 사라졌으나 1988年 維持 39人이 삼충단 復元 推進委員會를 構成하여 追慕碑를 復元하고 記念碑를 세웠다. 2005年 다시 現在의 位置로 移轉하였고 2019年 追慕碑文의 內容 誤謬 修正을 위해 다시 製作하였다.

寫眞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

  1. “鄕土遺跡 : 삼충단” . 《加平郡 홈페이지》 . 2021年 8月 11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