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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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광 (崔永光, 1940年 ~ )은 第35代 서울地方檢察廳 檢事長, 第19代 法務硏修院 院長, 第6代 韓國刑事政策硏究院 院長을 歷任한 法曹人이다.

生涯 [ 編輯 ]

1940年 태어나 1959年 경기고등학교 와 1964年 서울大學校 法學科를 卒業하고 1964年 第4回 司法試驗 에서 合格하여 1967年 大邱地方檢察廳 檢査에 任用되었다.

서울地方檢察廳 檢事長으로 在職할 때 民主黨 改革모임이 1994年 10月 28日에 國家保衛 非常對策委와 國家保衛 立法會議를 檢察에 內亂 嫌疑로 告發된 事件이 全斗煥 , 盧泰愚 에 對한 5.18 告訴 告發 事件을 搜査의 一環으로 搜査하는 것과 關聯하여 1980年 國保委 立法會議 專門委員으로 在職한 것이 搜査 主體의 適合性 論難이 있었다. [1] 特히 5.18 광주민중항쟁연합(議長 정동년 )은 "惡法을 直接 企劃한 張本人이라는데 驚愕을 禁할 수 없다"면서 "光州虐殺의 眞相을 밝히기 위해 搜査 指揮者인 서울地檢長을 卽刻 交替해야 한다"고 主張했다. [2]

1972年 9月 高麗大學校 學生 서클인 검은 10月團을 만들어 現 政府의 顚覆을 企圖했으며 地下新聞인 '野生花' 250部를 校內에 뿌린 嫌疑로 拘束되어 [3] 10月 維新 以後 最初로 學生이 起訴된 '검은 10月團' 事件에서 "고려대生들이 南山 時頃分室에서 拷問을 받아 虛僞自白을 한 뒤 이 事實을 말했다"고 主張한 사람이 當時 搜査와 起訴를 했던 檢事가 최영광이라고 밝혔다. [4]


‘聖水大橋 崩壞事件 原因糾明鑑定團 活動白書’라는 이름으로 서울地方檢察廳 이 發行한 白書 發刊辭에서 최영광은 “犧牲者의 高貴한 生命과 家族의 苦痛을 昇華해 不實工事 時代의 終焉을 告하기를 期待한다”고 했다. [5]

經歷 [ 編輯 ]

各州 [ 編輯 ]

  1. 1995年 2月 15日子 한겨레
  2. 1995年 2月 17日子 한겨레
  3. 京鄕新聞 1974年 3月 1日子
  4. [1]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