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全南 康津·海南에서 慶南 統營까지 ‘봄마중 加勢’|여성동아

連載記事

낭창낭창 휘적휘적 가고 싶은 길

全南 康津·海南에서 慶南 統營까지 ‘봄마중 加勢’

글 | 김화성 東亞日報 專門記者 寫眞 | 김종식(康津郡靑) 提供, 동아일보 寫眞DB파트

2012. 03. 05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활짝 핀 冬柏. 2 天然記念物 第151號인 康津 白蓮寺 冬柏나무 숲.



봄꽃의 北上 速度는 하루 20km. 가을 丹楓의 南下 速度는 하루 25km. 봄은 더디 오고 가을은 쏜살같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한瞬間. 해마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금세 더워지기 始作한다. 봄이 오면 쉬이 갈까 두렵고, 봄꽃이 피면 곧 질까 또 걱정스럽다.
都大體 봄은 언제부터 봄인가. 立春(올 2月4日)부터인가. 아니면 陽曆 3月부터인가. 立春은 왜 漢字로 ‘들일 입(入)’의 入春(立春)李 아니고, ‘설 립(立)’의 立春(立春)일까. 그렇다. 立春은 그저 ‘봄기운이 들어섰다’는 뜻일 뿐이다. 決코 ‘봄이 始作되는 날’이 아니다.
24節氣는 古代 中國 荒墟 江 周邊人 화베이(華北) 地方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화베이 地方은 緯度가 北緯 34.8度로 우리나라 濟州道(33~34度)와 釜山(35度) 사이에 位置한다. 우리나라 全羅南道 康津·海南과 慶尙南道 南海·統營과 비슷한 位置다. 한참 北쪽에 사는 서울(37.6度) 사람들이 立春에 봄을 느끼기는 힘들다. 봄이 와도 도무지 봄 같지 않은 것이다(春來不似春).

하루 平均 氣溫 5度 넘어야 眞짜 봄
氣象學的으로 봄은 ‘하루 平均 氣溫이 5度가 넘을 때’를 말한다. 우리나라 最近 30年間(1981~2010) 하루 平均 氣溫이 5度가 넘어선 날은 3月12日이었다. 立春 지난 뒤 無慮 36~37日이나 걸렸다. 서울은 立春 뒤 39~40日 지난 3月15日에야 5度를 넘었다. 이에 비해 釜山은 立春 뒤 7~8日밖에 걸리지 않았다. 올해 境遇 釜山보다 아래인 强震·海南 統營은 2月10日 以前에 이미 봄이 上陸했다는 計算이다.
지난 30年間 立春 날 平均 氣溫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南韓) 全體로는 零下 1.5度, 서울은 零下 2度를 記錄했다. 中部 地方인 淸州(-1.9度)와 비슷했지만 光州(0.7度) 江陵(1.0度) 釜山(3.1度)보다 훨씬 추웠다. 立春 날 봄 날씨를 보인 것은 濟州(5.2度)가 唯一했다. 濟州엔 진작부터 봄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
봄은 韓半島 아랫도리에서부터 온다. 全南 康津·海南과 慶南 統營이 바로 그렇다. 그곳은 韓半島의 튼實한 밑동아리다. 질펀하고 너른 갯벌이 齷齪같이 바다에 뿌리박고 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 차르르? 次兒~ 철썩?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닷 물소리, 끼룩대는 갈매기 떼, 눈부시게 부서지는 銀빛 햇살…. 그곳은 生命 가득한 이 땅의 子宮이다. 꼬물꼬물 까르르 웃어대는 ‘아기들의 宮殿’이다.

/ 姜 / 陳 /
뻘밭에 봄 내음 질펀하구나
月出山은 우뚝우뚝 뼈로 서 있다. 너른 벌판에 忽然히 자리 잡고 있다. 全南 羅州·靈巖에선 우람한 月出山 등짝이 보인다. 씨름 選手 登板 같다. 어깨 등뼈가 頑强하다. 봉우리 巖壁이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밤새 얼었던 바위얼음이 봄 햇살에 파드닥거린다. 康津에서 月出山은 앞가슴 쪽이 보인다. 靈巖에서 보는 等 쪽이 굵고 뭉툭하다면, 康津에서 보는 앞쪽은 線이 가늘고 華麗하다. 바위 봉우리가 王冠처럼 뿅뿅뿅 솟았다. 屛風처럼 둘러서 있다. 천황봉(809m)은 그 頂點이다.

濟州 流配를 떠나는 이들이 넘던 누릿재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强震에는 ‘月(月)’字로 始作되는 洞네가 많다. 신월, 상월, 越南, 월하, 월송, 貸越마을이 그렇다. ‘月(月)’은 月出山을 뜻한다. 月出山 南쪽 마을이 ‘越南’이고 月出山 아래가 ‘月下’다. 越南마을은 統一新羅 때부터 있었던 千年이 넘는 洞네다. 월남사 터엔 3層石塔이 默默히 서 있다.
1801年 겨울, 귀양길에 나선 茶山 丁若鏞은 누릿재(黃치·黃峙)에 닿았다. 누릿재는 靈巖과 强震을 가르는 黃土고개. ‘康津 橘이 누릿재 넘어 靈巖에 가면 탱자가 된다’는 바로 그 고개다. 1840年 9月 秋史 金正喜도 바로 누릿재를 넘고 强震·海南을 거쳐 濟州 流配를 떠났다. 强震·海南 선비들이 漢陽 가는 길도 그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丁若鏞은 罪人 身分이었다. 발아래 强震 邑內 草家집들이 굴 딱지처럼 닥지닥지 엎드려 있었다. 짭조름하고 알싸한 겨울 바닷바람이 얼굴을 아프게 때렸다. 문득 오른쪽을 보니 月出山의 바위 봉우리가 보였다. 마치 漢陽에서 보는 道峯山 萬丈峯 자운봉 봉우리 같았다. 그때 이 詩를 썼다.

누리令 山봉우리는 바위가 우뚝우뚝/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월남리로 고개 돌려 月出山을 보지 말게/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道峯山 같은지

現在 누릿재는 우거진 나무와 풀로 지워졌다. 옛 서낭堂 자리도 사라졌다. 월출산국립공원 野生花團地에서 痕跡을 더듬어 올라가야 한다. 요즘은 洞네 村老들만 運動 삼아 넘나든다. 고개는 가파르지 않고 밋밋하다.

누릿재~越南마을~월하마을~性前三거리 15km
누릿재에서 내려오면 신월, 상월마을이다. 그 아래가 바로 千年이 훨씬 넘은 越南마을이다. 큰 절집 月南寺가 있었던 곳이다. 월남사 터는 月出山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다. 丁若鏞도 누릿재에서 越南마을을 지나 無爲寺~월하마을~聖戰三거리로 내려갔다. 누릿재~聖戰三거리는 約 15km 거리.
無爲寺(無爲寺)는 化粧氣 없는 절이다. 六字배기 酒幕집 酒母처럼 善하게 웃으며 맞는다. 極樂寶殿(國寶 第13號)도 素朴하고 端雅하다. 절 마당 梅花 꽃망울은 탱탱 불어터져 今方이라도 벙글 듯하다. ‘수월관음도’의 觀音菩薩이 유난히 豐滿하다. 섹시하다. 봄바람이라도 난 걸까. 마치 콧노래를 부르는 듯, 차림새가 날아갈 것 같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봄을 가득 품고 있는 康津의 너른 들판.



南浦마을~해창마을 강진만 둑길 따라 4km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강진만 西쪽 海岸道路인 23番 國道 끝에 있는 마량항.



康津의 봄은 色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黃土는 촉촉이 젖어 더욱 붉다. 軟豆빛 보리들이 우우우 종주먹질을 해댄다. 누런 강진만 갈대 숲이 바람에 뒤척인다. 파릇파릇한 마늘밭이 싱그럽다. 강진만 넘어 겹겹이 이어지는 山과 山들이 아슴아슴하다. 검은 갯벌과 그 너머 바다가 뿌옇다. 논두렁 마른풀 타는 냄새 고소하다. 저녁밥 짓는 냄새도 구수하다. 강진만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가슴을 흔들었다. 상큼한 매생이 냄새가 묻혀 있다. 검고 차진 뻘흙이 잔뜩 버무려져 있다.
南浦마을 入口~해창마을까지 강진만 둑길을 따라가는 길(4km)은 온몸으로 봄바람 샤워를 하는 곳이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철새들이 갯벌에 코를 박고 있다. 고니 떼들이 한낮 갯벌에 엎드려 죽은 듯이 자고 있다. 步哨 한 마리만 눈을 뜨고 警戒를 편다. 해 질 녘이 되면 一齊히 일어나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난다. 陸地는 늘 바다에 발을 적신다. 그리고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엔 만(灣)을 만든다. 强震만도 발가락 틈새처럼 兩쪽으로 갈라져 있다. 봄은 바로 그 발가락 틈새로 흠뻑 젖어온다.

茶山草堂 앞바다~東쪽 18番 軍도 24km
茶山草堂 앞바다에서 始作하는 東쪽 海岸道路(18番 軍도)는 어찔어찔 멀미 나는 ‘봄길’이다. 길이 24km. 길은 바다 옆구리에 바짝 붙어 있다. 觀衆席과 競技場이 붙어 있는 蹴球 專用 競技場 같다. 이 길 따라 땅끝마을 海南이 나온다. 軟豆빛 바다, 軟豆빛 아기보리밭, 파릇파릇 마늘밭, 아릿한 푸른 하늘, 노란 갈대 숲. 강진만 넘어 겹겹이 이어지는 山과 山들의 아슴아슴한 稜線. 느릿느릿 걸어도 4~5時間 程度면 充分하다. 걷다 보면 봄 바다의 여린 숨소리가 들린다. 새콤 달착지근한 바다 냄새가 난다. 나른한 봄볕에 눈꺼풀이 한瞬間 무거워진다.
강진만 西쪽 海岸都市는 23番 國道다. 七樑~高麗靑瓷陶窯址~馬良으로 이어진다. 七樑은 바지락과 傳統 甕器가 有名하고, 馬糧(馬良)은 濟州島에서 말을 실어 내린 곳이다. 서울로 말을 보내기 前에 살을 찌운 곳이라 해서 馬良이라 불렀다. 앞바다엔 까막섬이 있다.
이 길도 봄빛 가득 軟豆色이다. 언뜻언뜻 푸른 보리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銀빛 바닷물이 눈부시다. 하지만 煩雜하다. 自動車들이 隨時로 오간다. 길도 맞은便 18番 群島처럼 바다에 바짝 붙어 있지 않다. 乘用車 드라이브 코스로 괜찮다. 먼발치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는 景致가 一品이다. 저물녘 黃金빛에 물든 바다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설움이 울컥 쏟아진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冬柏꽃의 꿀을 먹으며 修正을 해주는 동박새. 2 茶山 丁若鏞은 流配 時節 白蓮社의 혜장과 交流하며 學問과 市와 茶를 論했다. 3 無爲寺의 봄을 알리는 紅梅花. 4 茶山草堂 가는 길에 있는 杜沖나무 숲길.



茶山草堂~白蓮寺 오솔길
茶山 丁若鏞은 康津에서 17年餘를 살았다. 그中 邑內에서 7年, 다산초당에서 10年을 살았다. 처음엔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洞門 밖 酒幕집 할머니만 그를 따뜻하게 對했다. 茶山은 그 酒幕집에서 4年 동안 얹혀살았다. 춥고 쓸쓸했지만 할머니의 情을 듬뿍 느낀 歲月이었다.
茶山이 숨筒을 튼 건 1806年 강진읍 뒷山 庵子 報恩山房(고성사)에 묵을 때부터였다. 當時 海南 大興寺의 큰 學僧이었던 慧藏禪師의 配慮였다.
茶山과 혜장의 사귐은 茶山이 1808年 봄 다산초당에 있을 때부터 絶頂을 이뤘다. 혜장이 그곳에서 800m 떨어진 白蓮社에 居住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隨時로 白蓮寺 冬柏 숲을 지나 茶山草堂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오갔다. 學問과 詩를 論하고 삶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期間은 3年이 채 되지 못했다. 1811年 曲車를 너무 좋아했던 혜장(39歲)李 病으로 쓰러졌던 것이다.
白蓮寺 數百 年 묵은 冬柏나무들은 지난해 섣달부터 꽃을 피웠다. 이미 땅바닥엔 통꽃째 떨어진 핏빛 꽃잎들이 狼藉하다. 푸른 잎사귀마다 潤氣가 자르르하다. 동박새가 그 이파리 사이를 촉촉 조르르~ 분주하게 오간다. 앙증맞다. 3月 中旬이면 피보다 붉은 數千數萬 송이의 꽃들이 우르르 피어날 것이다. 윗녘 高敞 禪雲寺 冬柏나무들은 4月 中旬이나 돼야 슬슬 기지개를 켜고 꽃망울을 맺기 始作한다.
茶山草堂~白蓮寺 오솔길엔 봄빛이 가득하다. 솔바람 솔솔 불고, 대숲 바람 颯爽하다. 山새들도 부산하다. 茶山과 혜장은 그 오솔길에서 길을 찾아 헤맸다. 그들은 果然 길을 찾았을까. 봄은 말없이 익어간다.
白蓮寺 아래엔 代案學校 ‘늦봄문익환學校(2006年 個校 中·高統合型)’가 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라는 돌碑石이 눈에 띈다. 고성사에서 永郞生家까지 가는 길도 봄 냄새가 물씬하다. 橘洞里는 茶山草堂 아랫마을이다. 곽재구 詩人은 그 橘洞里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壁에 붙은 빛바랜 指名手配者 傳單을 본다. 문득 茶山 丁若鏞이란 사내를 떠올린다.

정다산 1762年 京畿 光州山/깡마른 얼굴 날카로운 눈빛을 지님/전직 暗行御史 牧民官/機敏視 애절양 等의 愛民을 憑藉한/유언비어 날포로 民心을 洶洶케 한/자생적 共産主義者 및 天主學 怪獸 -橘洞里 一泊.

流配地에서 富者 相逢한 정약용
고성사 報恩山房과 다산초당에 깃든 事緣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고성사 報恩山房.

1805年 겨울, 정학연이 洞門 밖 酒幕집에서 살고 있던 아버지 丁若鏞을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5年 만의 富者 相逢. 아들은 앙상한 새끼 唐나귀에 依支해 千里 南道길을 내려왔다. 鬚髥은 더부룩했고, 옷은 黃土 범벅이었다. 丁若鏞은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올해는 무슨 農事를 지었느냐?” 아들이 對答했다. “밤나무 옻나무를 심고, 배추와 겨자도 심었습니다. 마늘 몇 이랑 심었는데 豐年이 들어 그걸 市場에 내다 팔아 그것으로 老子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그는 罪人의 몸. 于先 當場 아들 宿食부터 解決해야 했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귀양客에게 食口 하나 보태졌으니/내 재주로는 굶주림 求할 수 없어/…기구하게 절間에 찾아들어/구걸하는 顔色이 卑屈하네/다행히 半 칸짜리 房을 빌려/세 때 鐘소리를 아들과 함께 듣노라

丁若鏞은 그해 겨울 고성사(高聲寺) 報恩山房에서 큰아들과 함께 보냈다. 慧藏禪師의 配慮였다. 혜장은 나이가 多産보다 열 살이나 아래였지만 學問 交流엔 나이가 問題 되지 않았다. 丁若鏞은 겨우내 큰아들에게 ‘周易’과 ‘禮記’를 問答으로 가르쳤다. 그 內容을 整理한 것이 ‘僧庵問答(僧庵問答)’이다.
둘째 아들 學諭는 1808年 4月20日 丁若鏞이 다산초당에 있을 때 찾아왔다. 7年 만의 만남이었다. 귀양 當時 15歲였던 學諭는 鬚髥이 덥수룩한 22歲 靑年이 돼 있었다. 學諭는 술을 좋아해 康津에 있던 茶山이 늘 걱정을 했다. 작은아들은 後에 ‘農家月令歌’를 지어 이름을 날렸다.


찾아가는 길
KTX : 서울 龍山~光州(光州市外버스터미널에서 講進行 버스), 서울 龍山~木浦(木浦市外버스터미널에서 講進行 버스), 서울 龍山~羅州(羅州市外버스터미널에서 講進行 버스)
高速버스 : 서울 江南高速버스터미널 하루 6回(5時間20分 所要)
乘用車 : 서울~西海岸高速道路~木浦~靈山河口둑~靈巖防潮堤~77番國道~康津, 서울~湖南高速道路~光州광산나들목~13番 國道~羅州~靈巖~康津
먹거리
强震 이슬食堂(海物湯, 自然産 長魚 061-432-5181), 兵營 囚人館(煉炭불고기白飯·주꾸미 專門, 4人 한 賞 2萬4千원, 061-432-1027), 버스터미널 앞 해태食堂(061-434-2486), 明洞食堂(韓定食, 4人 한 賞 10萬원, 061-434-2147)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海南 땅끝마을. 2 땅끝 展望臺. 3 海南 마늘밭.



/ 해 / 南 /
오메! 땅끝마을에 봄이 와부렀네!!
軟草綠 봄은 이미 땅끝 海南에도 上陸했다. 앞 섬들이 힐끔힐끔 뭍을 바라보는가 했더니, 한瞬間 우르르 떼를 지어 밀려왔다. 땅끝 展望臺에서 左右 海岸 따라 이어진 77番 道路는 이미 봄의 占領軍에 무너져 나른하게 脈이 풀렸다. 마늘밭은 草綠으로 가득하다. 보리밭도 검푸르다. 아지랑이 떼들은 海南 邑內 벌판 논두렁에서 꼼지락거린다.
요즘 海南 땅은 새물내가 물씬 난다. 갓 빨래한 새 옷 냄새가 새록새록 우러난다.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면 손에 잡힐 듯 올망졸망한 섬들이 점점이 橫隊로 떠 있다.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當日도 장구도 甫吉島 蘆花島…. 아뿔싸? 섬들은 이미 파릇파릇 봄이다.

땅끝 展望臺 左右로 77番 海岸道路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海南 땅은 온통 붉은 黃土다. 보리밭과 마늘밭이 그 붉은 黃土밭에 굳게 뿌리를 박고 있다. 가녀린 軟草綠 싹들이 칼칼한 바닷바람에 이를 앙다물고 맞서고 있다. 바닷바람은 겨우내 아기보리, 아기배추, 아기마늘을 ‘검푸른 억센 풀’로 단련시켰다. 海南은 黃土 흙의 부드러움과 꼬리뼈 같은 달마산의 强骨이 버무려져 있다. 頭輪山 大興寺는 아늑하다. 달마산 미황사는 素朴하고 豪放하다.
땅끝은 끝이 아니다. 바다의 始作이다. 아니다. 바다의 끝이자, 땅의 始作이다. ‘끝의 끝은 다시 始作(오세영 詩人)’인 것이다. 땅과 바다가 그어놓은 ‘출렁 金’이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가슴이 울렁인다. 어찔어찔 머리가 어지럽다. 발바닥이 간질간질, 귓속이 우렁우렁 젖어온다.

땅끝에/왔습니다./살아온 날들도/함께 왔습니다./저녁/파도 소리에/동백꽃 집니다 -고은 ‘땅끝’ 專門

77番 海岸道路를 따라 康津 쪽으로 걷다 보면, 顚覆 김 파래養殖場이 햇살에 자글자글 빛난다. 통통배 漁夫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海岸 등성이 마늘밭 農夫들은 黃土 땅에 코를 박고 호미질에 바쁘다. 마을 어귀 堂山나무 아래에선 洞네 개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왁자하게 씨름판을 벌인다.
海南의 봄은 어느 길이든 다 좋다. 달마산(489m·松村마을~松村貯水池~修正骨~林道~觀音峯~작은 바람재~美黃寺 3時間 코스)에 오르면 한쪽에선 南海 바다가 출렁이고, 또 한쪽에선 정갈한 海南 벌판이 눈을 반짝인다. 달마산은 南海바다와 平行으로 칼금을 내며 우뚝우뚝 凜凜하게 서 있다. 작은 月出山이다. 팔짱을 낀 채 바닷바람을 頑强하게 막아준다. 도솔암은 달마산 어깻 죽지에 새집처럼 매달려 있다.

名筆 展示場인 大興寺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秋史가 쓴 無量水閣 懸板.

秋史는 1840年 濟州 流配길에 大興寺의 초의를 찾았다. 秋史가 물었다. “저 ‘大雄寶殿(大雄寶殿)’ 懸板 글씨는 누가 썼는가?” 초의가 對答했다. “원교 李匡師일세.” 秋史는 “쯧쯧, 어떻게 글씨를 좀 안다는 자네가…”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초의에게 ‘无量壽閣(무량수각)’이라는 懸板 글씨를 써줬다. 초의는 곧 李匡師의 글씨를 떼어내고 秋史의 글씨를 달았다. 秋史는 1840年 9月27日 바로 海南 李瑱(梨津)에서 배를 타고 濟州 流配길에 올랐다.
1848年 12月 秋史의 귀양살이가 풀려 다시 大興寺를 찾았다. 秋史가 초의에게 물었다. “這番 원교 李匡師의 글씨는 어디 있는가?” 초의가 對答했다. “倉庫에 保管해뒀네” 秋史가 말했다. “내 글씨를 떼어내고 그의 글씨를 다시 달아주게. 내가 그때는 잘못 보았네.”
8年餘의 귀양살이가 도도하고 自尊心 剛한 秋事를 부드럽고 넉넉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現在 大興寺 ‘大雄寶殿(大雄寶殿)’에는 원교 李匡師의 懸板이 걸려 있고, 그 왼쪽 僧坊에는 秋史의 ‘무량수각(无量壽閣)’ 懸板이 걸려 있다. ‘千佛殿(千佛殿)’ ‘枕溪樓(침系루)’도 李匡師의 글씨다. 또 있다. 秋史 當代 3代 名筆 中 하나인 蒼暗 이삼만의 ‘駕虛樓(街虛漏)’ 글씨도 있다. 正祖大王이 쓴 ‘表忠祠(表忠寺)’ 扁額度 빼놓을 수 없다. 유홍준 前 文化財廳長은 말한다. “원교의 글씨는 劃이 가늘고 빳빳하여 花崗巖의 골기(骨氣)가 느껴진다. 손칼국수의 국숫발 같다. 秋史의 글씨는 劃이 살지고 潤氣가 난다. 糖水肉이나 난젠완쯔를 聯想케 한다.”


大興寺의 구림長春 十 里 길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大興寺 前景.



大興寺 駐車場에서 大雄殿에 이르는 길은 ‘오래된 숲길’이다. 이른바 ‘아홉 숲’에 ‘긴 봄’이라는 ‘구림長春(九林長春)’이다. 4km에 가까운 十 里 길이다. 늙은 나무들이 아치형으로 나무 터널을 이룬다. 여름이면 햇볕이 거의 들지 않을 程度다. 頭輪山(706m)은 大興寺를 품고 있다. 賣票所~장춘동~大興寺~三거리~북미륵암~천년수~萬一再~두輪棒~~진불암~물텅거리骨~表忠寺~大興寺 코스는 천천히 걸어도 4~5時間이면 充分하다.
頭輪山은 영락없이 ‘누워 있는 부처님 形象’이다. 일지암은 부처님 머리 바로 아래에 木枕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1786~1866)가 1824年 서른여덟 때 손수 짓고 42年 동안 머물렀던 庵子다. 초의가 同甲내기 秋事를 만난 것은 1815年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였다. 秋史가 濟州島 流配 時節엔 5番이나 그를 찾아가 慰勞했다. 초의와 秋史의 關係는 각별하고 허물이 없었다. 秋史가 초의에게 보낸 便紙를 보면 그 關係를 斟酌할 수 있다.
‘이 白手 늙은이가 可笑롭게도 한때 絶緣할 생각까지 품었음을 告白하네. 나는 스님은 勿論 스님의 글까지도 보고 싶지 않네. 다만 茶와의 因緣을 끊어버릴 수 없으니… 두 해나 쌓인 滯納稅를 보내시게.’

봄동은 ‘봄의 똥’인가
문득 풋것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봄동 배추.

봄동은 ‘봄의 똥’인가? 그렇다. ‘봄 강아지가 쪼르르 길가다가 눈 똥’이다. 今方 눈 軟豆빛 강아지똥이다. 겨우내 한뎃잠을 盞 ‘露宿 배추’를 그렇게 부른다. 어떤 배추든 露地(露地)에서 추운 겨울을 나면 모두 봄동이다.
봄동은 늦가을 찬 서리와 겨우내 눈발을 뒤집어 쓴 채 보낸다. 얼었다 녹았다 온 몸이 녹작지근 풀어진다. 잎이 옆으로 펑퍼짐하게 벌어진다. 넉장거리로 땅에 바짝 누워 ‘나 잡아먹어라’며 헤프게 웃는다. 속이 꽉 차지 않아 영 볼품이 없다. 그나마 鷄卵 프라이처럼 가운데가 노랗다는 게 多幸이랄까. 봄동엔 된서리 한줌, 함박눈 한줌, 칼바람 한줌, 살얼음 한줌이 各各 들어 있다. 性質이 차서 熱 많은 사람들에게 安城맞춤이다. 입에 넣으면 “사각사각! 아삭아삭!” 沙果 먹는 소리가 난다. 혀끝이 파르르 떨린다. 새콤하고 풋풋하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상큼한 香이 새록새록 나온다. 물氣가 많고 纖維質이 豐富해 便祕에도 좋다.
봄동 겉절이의 레시피는 簡單하다. 양념醬으로 봄洞을 살살 버무리機만 하면 된다. 양념醬은 참기름, 참깨, 梅實額, 멸치液젓, 다진 마늘, 고춧가루 等으로 만든다. 봄동 된醬무침은 一旦 봄洞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야 한다. 봄동줄기는 若干 긴 時間, 잎은 조금 짧은 時間 따로따로 데친다. 데친 봄동은 찬물에 한番 헹군 뒤, 손으로 살짝 물氣를 짜낸다. 그 다음엔 깨소금, 된醬, 梅實額, 大파, 마늘 等의 양념醬으로 조물조물 뚝딱 무쳐내면 끝이다. 들큼하고 구수하다. 김 펄펄 나는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온몸의 실핏줄이 달뜬다. 듬뿍 들어있는 비타민 C와 칼슘은 덤이다.


찾아가는 길
KTX : 서울 龍山~光州驛(光州버스터미널에서 海南行 버스), 서울 龍山~木浦行 列車 나주역 下車(영산포터미널에서 海南行 버스). 海南에서 땅끝까지 가려면 버스로 40~50分쯤 걸린다(해남교통 061-533-8825).
高速버스 : 서울 江南高速버스터미널~海南(5時間10分 所要), 서울 東서울터미널~海南(5時間30分 所要)
乘用車 : 湖南高速道路→光州 非我나들목→羅州→영산포→海南, 西海岸高速道路→木浦나들목→2番 國道→113番 國道→海南
먹거리
땅끝바다膾집(송지면 땅끝마을 061-534-6422), 南道飮食競演大會 大賞 龍宮海物湯(해남읍 061-536-2860), 顚覆구이 專門 웰빙顚覆(목포시 상동 061-284-7845), 한성정(韓定食, 해남읍 061-536-1060), 眞一貫(韓定食, 해남읍 061-532-9932), 천일食堂(떡갈비, 해남읍 061-535-1001)
쌈밥 : 정든보리밥(삼산면 061-534-4774)
宿泊
大興寺 境內 韓屋 유선관(遊仙館 061-534-3692) 2人 4萬원, 4人 7萬원. 한끼 1人 7千원.
가볼 만한 곳
땅끝海洋自然史博物館(송지면 061-535-2110). 全 世界에서 蒐集한 2千7百餘 種, 4萬餘 點의 海洋 生物 展示. 140kg이 넘는 式인 조개, 8m에 이르는 고래상어, 大型 鐵甲상어, 1億 年 넘는 魚貝類 化石을 볼 수 있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統營 미륵섬의 미륵산 頂上에 이르는 케이블카.



/ 통 / 英 /
미륵섬에 꽃이 피었네
統營 미륵섬에 꽃이 피었다. 붉디붉은 冬柏꽃이 피었다. 봄은 도둑처럼 왔다. 시린 바다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西湖市場엔 도다리 쑥국에 미역, 파래무침, 쪽派무침…. 봄이 한 床 가득하다. 돌미역으로 싸먹는 回에선 갯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統營 앞바다엔 1百50餘 個의 섬들이 떠 있다. 누군가 물수제비를 뜬 듯, 바다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섬들은 봄빛에 醉해 아득하다. 아지랑이가 끊임없이 꼬물대며 올라간다. 미륵섬은 ‘섬 中의 섬’이다. 陸地와 統營大橋, 충무교, 海底터널로 連結돼 있어 ‘陸地와 다름없는 섬’이다. 이 섬은 그 몸통 自體가 미륵산으로 이뤄져 있다. 꼭대기(461m)에 오르면 수많은 섬들이 아련하다. 水平線 언저리에도 작은 섬들이 걸쳐 있다. 저 멀리 日本의 對馬島가 떠 있고, 가까이엔 閑散섬이 마주하고 있다. 섬 밖으로는 사량도~追悼~頭尾島~欲知島~연화도~소매물도~매물도~거제도가 빙 둘러싸고 있다. 봄기운이 뻐근하다.
壬辰倭亂 때 朝鮮 水軍의 烽燧臺度 미륵산 頂上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낮엔 演技로, 밤엔 횃불로 倭軍의 動靜을 傳했다. 때론 鳶을 날려 急報를 알렸다. 李舜臣 將軍은 한산섬 統制營에 머물렀다. 烽燧臺를 통해 敵의 動靜을 손금 보듯 알았다.

미륵산 頂上 느릿느릿 1時間
미륵산 오르는 길은 ‘소걸음’으로 걷는 게 좋다. 느릿느릿 올라도 1時間이면 頂上에 닿는다. 假令 龍華寺를 出發해 ‘관음사~도솔암~彌勒再~正常~未來事~띠밭等’을 거쳐 다시 龍華寺로 돌아오는 코스는 2時間 程度면 充分하다. 나이 드신 분들은 케이블카를 利用해도 된다. 하지만 미륵산은 걸어서 올라야 제맛이 난다. 山行이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꼭대기에 서면 섬과 바다, 하늘의 어우러짐이 恍惚하다.
작은 山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꿈틀꿈틀 龍틀임하는 늙은 소나무들, 奇妙한 形象의 바위들, 제법 傾斜가 甚한 깔딱 고개도 있다. 山 아래 쪽빛 바다는 사라졌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다. 절집들은 素朴하고 雅淡하다. 도솔암 大雄殿 뒤란의 대숲 바람 소리는 “쏴아, 쏴아” 波濤 소리를 닮았다. 法堂 앞 冬柏꽃은 벌써 속절없이 지고 있다.
山羊一周道路는 미륵섬 허리를 한 바퀴 도는 冬柏꽃길(藥 16km)이다. 韓國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의 하나다. 박경리 先生 墓所도 볼 수 있다. 걸어도 4時間이면 充分하다. 택시나 버스를 利用해 걷고 싶은 만큼만 걸어도 된다. 갯바람이 끊임없이 바다 냄새를 실어온다.
효봉스님 浮屠塔이 있는 未來事도 가볼 만하다. 효봉스님은 判事 出身. 한 被告에게 死刑 宣告를 내린 뒤 밤새 苦惱하다 法服을 벗어던지고 出嫁했다. 晩年에 坐禪하던 土窟도 남아 있다. ‘내가 말한 모든 法/그거 다 군더더기/오늘 일을 묻는가/달이 一千 江에 비치리’ 스님의 열반송이다.

새벽 西湖市場에 가면 봄이 왁자하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都市는 線(線)이다. 길이다. 길을 따라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 보면 都市의 얼굴이 보인다. 統營의 새벽 鉏互市場은 갓 잡은 生鮮처럼 팔딱팔딱 뛴다. 도다리, 바다메기, 生멸치, 바다장어, 볼락, 털게, 갑오징어…. 生鮮이 至賤이다. 술꾼들 속 푸는 데도 딱이다. 市場通에 있는 시락국, 卒복국집을 찾으면 된다. 시락국은 바다장어 머리를 갈아서 넣고 밤새 끓인 시래기된醬국이다. 普通 새벽 3時 班부터 門을 연다. 졸鰒國은 統營 近處에서 많이 잡히는 졸鰒으로 끓인 복국. 콩나물을 넣고 맑게 끓여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午後쯤이라면 슬슬 걸어서 中央市場度 가볼 만하다. 膾감을 싸게 산 뒤 附近의 膾집에서 자릿貰와 양념값을 내고 먹을 수 있다. 요즘에는 ‘도다리쑥국’李 으뜸이다.
統營은 藝術人의 고장. 詩人 유치환 김상옥 金春洙, 小說家 박경리, 作曲家 윤이상, 劇作家 유치진, 畫家 전혁림氏 等을 낳았다. 청마文學觀, 전혁림美術館을 들러보면 ‘대꼬챙이’ 같은 統營 사람들의 얼을 느낄 수 있다. 統營엔 섬, 山, 바다, 하늘이 있고 꽃과 사람 그리고 맛있는 飮食이 있다. 여기에 格調 높은 文化까지 맛볼 수 있다. 統營의 길은 둥글다. 海岸線을 따라 올록볼록하다. 바다를 向해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세 꼬리를 감춘다. 統營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졸鰒國처럼 맑고 담백하다. 도다리쑥국처럼 상큼한 쑥 냄새가 난다. 늘 향긋한 바다 냄새가 난다.

찾아가는 길
乘用車·高速버스 : 大田통영고速度를 타면 4時間~4時間30分 所要.
飛行機 : 서울~社天幸이 있지만 篇數가 많지 않다.
먹거리
分所食堂(055-644-0495), 터미널회식당(055-641-0711), 修正食堂(055-644-0396), 한산섬食堂(055-642-8021), 名實食堂(055-645-2598), 동광食堂(055-644-1112), 금미食堂(055-643-2987), 好童食堂(055-645-3138), 慢性食堂(055-645-2140) 等이 붐빈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미륵산 頂上 烽燧臺 터에서 바라본 閑麗水道. 2 統營의 名物 졸鰒國. 3 봄철에 으뜸으로 치는 도다리쑥국. 4 活氣 넘치는 統營 西湖市場.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小每勿島에서 燈臺섬으로 이어지는 몽돌길.



/ 蘇 / 매 / 물 / 도 /
統營의 새끼발톱 같은 섬이여
누님
저 혼자 섬에 와 있습니다
섬에는 누님처럼 絶壁이 많습니다
푸른 緋緞을 펼쳐놓은 海岸가를 거닐다가
小每勿島 多率커피숍에 철없이 앉아
풀을 뜯고 있는 黑염소들의 뿔 사이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봅니다
누님이 왜 섬이 되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하룻밤 묵고 갈 作定입니다
-정호승의 ‘小每勿島에서 쓴 葉書’에서

山비탈엔 제비둥지 같은 집들
慶南 統營 미륵섬 꼭대기에 오르면, 발밑에 수많은 섬들이 蓮꽃처럼 떠 있다. 아니다. 섬들은 멈춰 있다. 물길 따라 흐르다가, 한瞬間 얼어붙은 듯 서 있다. 그래서 ‘섬’이다. 사람들도 그 섬들처럼, 어느 날 문득 바쁜 발을 멈추고, 저 하늘의 붉은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小每勿島는 손바닥만 한 섬이다. 메뚜기 이마빡만 한 땅이다. 面積 0.51㎢(藥 15萬4千餘 坪)에 海岸線길이 3.8km. 11家口 住民 20餘 名(2010年 4月 現在)李 山비탈에 제비 둥지 같은 집을 달고 산다. 섬마을 뒤쪽은 삐죽삐죽 바위山들이 둘러싸고 있다. 섬의 어깨가 美式蹴球 選手처럼 頑强하다. 마을은 兩팔 사이 가슴 아래 배꼽쯤에 붙어 있다. 오목거울 안쪽 가운데 옴팡 들어간 곳이다. 굴 딱지처럼 옹기종기 낮게 들어앉았다.
每勿島는 미륵산 頂上(461m)에서 보면 閑山島 너머 끝자리에 엎드려 있다. 東南쪽 4時 方向, 統營에서 直線距離 26km. 賣物도-소매물도-등대섬의 三兄弟 中 둘째다. 住民들은 웃매미섬이라고 부른다. 小每勿島 船着場에선 미륵산 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 있는 게 보인다. 미륵산은 小每勿島 보고 웃고, 小每勿島는 미륵산 보고 웃는다.
小每勿島 東쪽엔 燈臺섬이 있다. 燈臺섬은 小每勿島 등짝 海邊길을 짚으며 간다. 길은 깎아지른 絶壁 위를 따라 나 있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바람이 얼굴을 아프게 때린다. 자칫 두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날아갈 것 같다. 땅바닥에 떨어진 冬柏의 통꽃이 서로 껴안고 이리저리 나뒹군다. 波濤 소리가 우렁차다. 저 멀리 고기잡이 통통배가 갈매기 떼를 한 아름 싣고 간다. “끼룩~끼룩~” 갈매기들은 지악스럽게 따라붙는다.

小每勿島와 燈臺섬 이어주는 열목개 몽돌길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小每勿島와 燈臺섬 사이는 자라목 같은 잘록한 길로 이어진다. 길이 70m의 열목개 몽돌길이다. 열목개에는 隨時로 물보라가 인다. 바닷물이 빠지면 열렸다가, 바닷물이 부풀어 오르면 지워진다. 사람들은 길이 열린 틈을 타서 燈臺섬으로 오른다. 一旦 燈臺섬에 들어가면 물이 차기 前에 서둘러 되돌아 나와야 한다. 1917年 불을 밝힌 燈臺(16m) 불빛은 48km까지 퍼져 나간다. 周圍엔 屛風바위 촛臺바위 等이 우뚝우뚝 護衛하듯 서 있다. 燈臺섬에서 小每勿島 오른쪽으로 보면 영락없이 恐龍을 빼닮은 恐龍바위가 눈에 걸린다.
燈臺섬은 소매물도에서 가장 높은 網泰封(157m)에서 내려다보는 게 一品이다. 網泰封 바로 아래 海上密輸監視所 꼭대기에 올라가도 잘 보인다. 監視所는 1987年 閉鎖돼 시멘트 望樓만 남아 있다. 하얀 燈臺와 푸른 하늘 그리고 燈臺에 오르는 푸른 풀밭이 그림 같다. 여기에 코발트빛 바다와 그 뒤에 점점이 서 있는 거무튀튀한 갯바위들…. 이생진 詩人이 이렇게 넋 나갈 듯한 燈臺섬을 지나칠 理 없다.

山 하나 넘어서/물이 길을 내주면/맨발 벗고 가는 길/엉겅퀴 민들레 진달래/모두 빠져 죽는 것들의 넋/왜 이곳에서 피느냐 했더니/‘살아서 燈臺를 좋아한 탓’이라며/쓸쓸히 웃는다/그 ‘탓’/나도 그 탓 때문에 燈臺로 가는 거다 -小每勿島 燈臺 ‘燈臺이야기 29’에서

섬마을 모래밭 길의 슬픈 男妹바위
小每勿島 섬마을 왼쪽 길은 厚朴나무 冬柏나무 숲길이다. 바람도 섬 등짝 안쪽이라 거의 불지 않는다. 아늑하고 호젓하다. 가끔 나오는 오솔길 걷는 맛도 쏠쏠하다. 군데군데 낮은 무덤들이 누워 있다. 섬에서 태어나 살다가 섬에 묻힌 사람들. 그들은 죽어서도 말없이 섬을 지키고 있다. 나무들은 마을을 向해 굽어 있다. 等으로 바람을 막아낸 탓이다. 쏴아? 쏴아? 나무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추임새로 새소리도 섞인다.
미니 海水浴場 모래밭 길도 꿈같다. 男妹인 줄 모르고 서로 사랑했다가 죽었다는 슬픈 傳說의 男妹바위도 만난다. 小每勿島에 해가 저물면 봄바람이 우당탕탕 찾아와 大門을 흔든다. 밤새 덜컹거리는 소리. 빈집 洋鐵 지붕 밟고 지나가는 소리, 차르르 철썩! 波濤가 海岸 絶壁에 부딪히는 소리…. 아침 해가 바람을 몰아내기 始作하면,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어디론가 사라진다. 안개는 바다 얼굴을 말갛게 씻겨주고, 새끼 섬들 사이로 띠처럼 흘러간다. 고깃배는 섬과 섬 사이에서 코를 박고 그물을 친다. 金빛 갈매기들은 어김없이 아침 바다를 떠돈다.
小每勿島는 머흘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뱃길이 끊긴다. 바다가 부글부글 끓기 始作하면 섬을 찾은 사람들도 발이 묶인다. 波濤가 거품을 품으며 으르렁거린다. 섬마을은 오로지 바람만 활개 친다. 사람들은 房에 처박혀 쥐 죽은 듯 꼼짝하지 않는다. 나무들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출렁인다. 잔뜩 물을 머금은 하늘은 먹빛이다. 船着場 마을은 그렇게 며칠씩, 눈썹달처럼 휜 섬 품 안에서 비바람을 견딘다.
찾아가는 길
乘用車 : 서울→京釜高速道路→大戰統營高速道路
高速버스 : 서울 江南高速버스터미널이나 南部터미널 統營行 4時間30分~5時間 所要
飛行機 : 서울 金浦空港~사천비행장(泗川에서 統營行 버스 1時間 所要)
統營~小每勿島 : 統營旅客船터미널에서 1時間30分~2時間 所要. 巨濟 猪仇港에선 30分 距離.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燈臺섬의 燈臺가 보인다. 2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뱃길이 끊기는 小每勿島의 거센 바람. 3 왼쪽 큰 섬이 賣物도, 오른쪽이 小每勿島다.



  • 推薦 0
  • 댓글 0
  • 目次
  • 共有
댓글 0
닫기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