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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民科學센터, 너의 이름을 記憶할게!|주간동아

週刊東亞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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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知識 블랙박스

市民科學센터, 너의 이름을 記憶할게!

20年 이어온 市民團體의 自進 解散, 그 事緣은?

  • 入力 2018-01-02 18: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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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年, 돌아보면 正말 많은 일이 있었다. 相當數는 時間이 지나면 그저 그런 삶의 한瞬間으로 잊히겠지만, 어떤 일은 그 存在感이 갈수록 또렷해질 것이다. 長談컨대 2017年 11月 10日 서울 西村에서 지난 20年間 活動을 조용히 整理하고 접은 한 市民團體의 事緣은 갈수록 아쉬움을 자아낼 것이다. 

    그 市民團體 이름은 ‘市民科學센터’. 外換危機 直前이던 1997年 11月 22日 ‘科學技術 民主化를 위한 모임’으로 始作한 이 團體는 20年 만에 自進 解散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 이 자리에서 市民科學센터가 걸어온 길을 여러 讀者와 共有하고 싶다. 

    市民科學센터의 正體性은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科學技術 民主化.’ 거칠게 背景을 說明해보자. 1987年 大統領 直選制를 비롯해 節次的 民主化를 獲得한 以後 韓國 社會는 政治뿐 아니라 經濟, 社會, 文化 等 各 領域에서 民主化가 深化해가고 있다.

    왜 民主主義가 科學技術 앞에서 멈춰야 하는가

    1997년 11월 22일 시민과학센터(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 창립총회 모습. 김환석 초대 소장(국민대 교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왼쪽). 시민과학센터는 2004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에서 ‘전력 정책의 미래에 대한 합의회의’를 열었다. 원자력 에너지의 미래를 시민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모델을 이미 실험한 것이다. [사진 제공·강양구]

    1997年 11月 22日 市民科學센터(科學技術 民主化를 위한 모임) 創立總會 모습. 김환석 初代 所長(國民大 敎授)李 人事말을 하고 있다(왼쪽). 市民科學센터는 2004年 10月 8日부터 11日까지 서울에서 ‘電力 政策의 未來에 對한 合意會議’를 열었다. 原子力 에너지의 未來를 市民이 直接 參與해 決定하는 모델을 이미 實驗한 것이다. [寫眞 提供·강양구]

    지난 30年間 韓國 社會의 民主化가 얼마나 深化했는지는 그 自體로 重要한 討論 主題다. 그 가운데 唯獨 外面받은 領域이 바로 科學技術이다. 科學技術은 1970年代나 現 21世紀나 經濟發展의 手段일 뿐이다. 오죽하면 憲法도 科學技術을 ‘國民 經濟發展’의 道具로 規定했을까(제127조). 

    市民科學센터는 바로 이런 흐름에 反旗를 들면서 登場했다. ‘政治, 經濟, 社會, 文化 等 모든 領域에서 民主化가 深化해야 한다면 科學技術은 왜 例外가 돼야 하는가?’ 지난 20年間 市民科學센터가 걸어온 길은 바로 이 質問에 答하고, 또 實踐해온 過程이었다. 그리고 그 成就는 團體의 작은 規模를 念頭에 둔다면 決코 적지 않았다. 



    市民科學센터는 科學技術 民主化를 위해 크게 세 가지 實踐에 힘을 쏟았다. 먼저 官僚, 政治人, 科學技術者가 獨占해온 科學技術 分野의 意思決定 過程에 一般 市民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市民 參與의 必要性을 强調했다. 市民 參與의 正當性을 力說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韓國 社會에 곧바로 適用 可能한 制度까지 디자인하고 實驗했다. 

    알다시피 文在寅 政府가 들어서자마자 新古里原電 5, 6號機 工事 中斷을 놓고 이른바 ‘公論調査’ 形態의 熟議民主主義 모델을 實驗했다. 바로 이런 熟議民主主義에 基盤을 둔 科學技術 領域의 市民 參與 모델을 1990年代 後半부터 國內에 紹介하고, 合意會議(Consensus Conference) 같은 制度를 直接 實驗한 곳이 바로 市民科學센터였다. 

    市民科學센터는 科學技術 民主化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구실도 했다. 科學技術을 經濟發展의 從屬變數로 놓고 ‘돈만 된다면’ 政治, 社會, 文化에 미칠 副作用 따위는 아랑곳없이 育成해야 한다는 主流의 論理와도 싸워야 했다. 延長線上에서 이 團體는 1990年代 後半부터 生命 複製 硏究에 政府가 올인(all-in)할 때 制動을 걸고 나섰다. 

    이런 브레이크 걸기는 結局 2004年 ‘生命倫理 및 安全에 關한 法律’ 制定으로 이어졌다. 눈치 빠른 讀者는 斟酌하겠지만, 이 싸움은 2005年 이른바 ‘황우석 事態’로 連結됐다. 當時 황우석 博士가 卵子를 不法賣買하고 또 學術誌 ‘사이언스’에 造作 論文을 실었던 일을 앞장서 파헤치는 데도 市民科學센터가 重要한 구실을 했다. 

    안타깝게도 科學技術 民主化를 위한 市民科學센터의 實踐에 (그 自身의 處地도 劣惡한) 科學技術者 多數가 도끼눈을 떴다. 어떤 이는 ‘博士學位도 없는’, 甚至於 ‘科學技術을 專攻하지도 않은’ 普通 市民이 科學技術을 놓고 曰可曰否하는 事實에 憤怒했다. 또 어떤 이는 ‘正答’이 있는 科學技術에 ‘民主化가 可當키나 하냐’며 冷笑했다. 

    市民科學센터는 이런 科學技術者를 相對로 끊임없이 科學技術이 社會에 미치는 엄청난 影響을 換氣하고, 科學技術者의 社會的 役割과 責任을 强調했다. 넓게 보면 이런 論爭 속에서 2016年 ‘變化를 꿈꾸는 科學技術人 네트워크(ESC)’ 같은, 科學技術者의 社會的 役割을 熾烈하게 苦悶하는 團體가 誕生했다.

    科學技術 民主化 實驗은 繼續돼야

    그렇다면 市民科學센터는 이런 成就에도 왜 自進 解散을 選擇했을까. 韓國 市民團體 大多數가 겪는 問題로부터 市民科學센터度 자유롭지 못했다. 작은 事務室을 維持하고 常勤職員 한 名을 두기도 벅찬 劣惡한 財政 狀況, 나이가 들어가는 旣存 멤버를 代身할 다음 世代 새로운 멤버의 不在 等. 

    市民科學센터가 지난 20年間 쌓아온 成就度 되레 負擔이 됐다. 市民科學센터가 論理를 開發하고 制度를 提案한 科學技術 領域의 市民 參與는 이제 政府에서 推進할 程度가 됐다. 市民科學센터의 意見과 緊張關係에 있긴 하지만, 科學技術界 곳곳에서 科學技術의 社會的 影響을 銳敏하게 認識하고 그에 따른 科學技術者의 社會的 役割을 苦悶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市民科學센터 處地에서는 20年間 活動을 整理하고 質的 變化를 해야 할 時點이었다. 바로 이런 狀況에서 이 團體는 果敢하게 自進 解散을 宣言했다. 初期 活力을 잃은 채 支離滅裂하게 命脈만 잇기보다 아예 組織을 없애는 게 낫다고 判斷한 것이다. 어찌 보면 20年間 그 나름대로 蓄積해온 相當한 發言權(權力)을 果敢히 抛棄한 것마저 이 團體의 正體性에 어울리는 듯하다. 

    이렇게 市民科學센터는 20年間 活動을 뒤로하고 歷史로 남았다. 걱정이다. 文在寅 政府마저 허깨비 같은 ‘4次 産業革命’을 운운하는 只今, 이 團體가 해야 할 役割이 더욱더 커졌으니까. 앞으로 科學技術이 日常生活 곳곳에서 豫期치 않은 副作用을 일으킬 때마다 이 團體의 不在가 아쉬울 것이다. 

    더 늦기 前에 20年 前 市民科學센터가 그랬듯, 젊은 世代가 새로운 ‘市民科學센터’ 結成을 推進했으면 좋겠다. 2018年 새해에는 市民科學센터의 再誕生을 알리는 消息을 期待한다. 萬若 그런 機關이 誕生한다면 20年 前 11月 22日 막내로 參與했듯, 다시 한番 기꺼이 멤버가 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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