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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半導體 市場 뒤흔든 게임체인저, 李健熙 會長|週刊東亞

週刊東亞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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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半導體 市場 뒤흔든 게임체인저, 李健熙 會長

허문명 동아일보 記者의 베스트셀러 2彈 ‘李健熙 半導體 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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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경 記者

    hklee9@donga.com

    入力 2022-10-2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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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동아DB]

    이건희 三星그룹 會長. [東亞DB]

    이병철 회장(왼쪽)과 이건희 회장.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이병철 會長(왼쪽)과 李健熙 會長. [寫眞 提供 · 三星電子]

    2023年은 三星 創業主 湖巖 이병철 會長이 半導體 市場 進出을 宣言(1983)韓 지 꼭 40年 되는 해이자, 李健熙 會長이 新經營을 宣言(1993)韓 지 30年 되는 해다. 湖巖과 李健熙 會長은 半導體産業을 통해 韓國 社會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追擊者)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先導者)로 가야 한다고 앞서 主唱하고 또 이를 行動으로 옮겨 結果로 보여준 世界的인 經營者들이다.

    “三星도 한瞬間에 亡할 수 있다” 數없이 들어

    韓國 메모리 半導體의 世界 市場占有率은 2021年 基準 70%를 넘어선다. 檀君 以來 大韓民國이 이렇게 世界 市場에서 壓倒한 輸出 品目은 없었다. 李健熙 會長 逝去 2週期인 10月 25日에 맞춰 發刊된 ‘李健熙 半導體 戰爭’에는 삼성전자가 이룬 半導體 神話가 담겼다. 앞서 베스트셀러 ‘經濟思想家 李健熙’를 펴낸 허문명 동아일보 記者는 2彈 格인 이 冊을 쓰면서 “온 國民이 半導體의 ‘飯’ 字도 모르던 時節 오로지 未來만 생각하며 뛰어들었던 湖巖 이병철 會長의 慧眼과 勇氣, 그리고 글로벌 1位가 되겠다는 一念으로 熱情을 불살랐던 李健熙 會長의 非凡하고 卓越한 意思 決定과 推進力에 壓倒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三星이 半導體 事業으로 세 番 亡할 뻔 했다.”

    李健熙 會長이 生前에 들려준 告白이다. 남의 것을 뒤쫓는 追擊者에서 벗어나 맨 앞으로 나아가려면 旣存 組織文化와 敎育 方式, 想像力을 모두 바꿔야 한다. 湖巖과 李健熙 회장은 “半導體처럼 리스크가 큰 事業에 投資하다 三星이 한瞬間에 亡할 수 있다”는 소리를 數없이 들었지만 孤獨한 決斷의 瞬間과 數없이 마주하면서도 超人的 힘으로 事業을 밀고 나갔다.



    始作은 三星半導體 前身인 韓國半導體 引受였다. 1974年 1月 京畿 富川에 세워진 韓國半導體는 칩 設計부터 當時로서는 最尖端인 3인치(75㎜) 웨이퍼(半導體 原材料가 되는 동그란 실리콘 基板) 生産 라인까지 前 工程을 갖춘 最初 半導體 工場이었다. 서울대 電子工學科 出身인 강기동 博士가 美國人 投資者와 共同 設立한 會社는 時間을 數字로 標示하는 디지털 손목時計用 칩 生産을 目標로 했지만 出發부터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돈이 不足했다. 또 運도 좋지 않았다. 1973年 午日쇼크 餘波로 裝備와 資材 값이 天井不知로 뛰었다.

    “1974年 12月 初였다. 韓國半導體 강기동 博士의 合作 파트너인 서머스 氏가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自己가 갖고 있는 會社 折半의 持分을 넘겨주고 事業에서 손을 떼고 싶다는 거였다. 삼성전자가 電子 事業을 하는 以上 半導體를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持分을 引受하면 큰 機會가 될 것이라고 했다. (中略) 그렇지 않아도 半導體 없는 電子 會社는 엔진 없는 自動車 會社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次였다. 이튿날 湖巖께 ‘사야겠다’고 報告하자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承認이 난 것이다. 1974年 12月 6日子로 韓國半導體㈜의 株式 50% 引受가 確定된 것이다.”

    代를 이은 攻擊的 投資, 三星 時代를 열다

    2017年 別世한 강진구 前 三星前者 會長의 自敍傳 ‘三星電子 神話와 그 祕訣’(1996)에 실린 內容이다. 三星의 合作投資 會社로 다시 出發한 韓國半導體는 1年도 채 되지 않아 LED(發光다이오드) 電子손목時計龍 칩 開發에 成功하지만 1976年 末 市場이 萎縮되면서 또다시 危機를 맞는다. 結局 강기동 博士가 나머지 50% 持分을 모두 三星에 팔고 美國으로 떠나겠다고 宣言한다. 다시 姜 前 會長의 回顧다.

    “湖巖께 韓國半導體 나머지 持分 引受와 關聯해 報告를 드렸더니 다 듣고 난 다음 바로 그 자리에서 李健熙 理事에게 電話를 걸어 意見을 물었다. 電話를 끊은 다음 湖巖은 내게 ‘이 理事가 半導體 事業은 대단히 重要하며 안 하면 안 될 事業이니 自身이 個人 出資까지 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해줬다. 이렇게 해서 韓國半導體 完全 引受가 決定됐다.”

    1983年 2月 도쿄 宣言을 통해 最尖端 半導體産業 進出을 公式 宣言한 以後 湖巖과 李健熙 會長은 極甚한 好況과 不況을 오가는 半導體 産業의 特性으로 地獄 같은 터널을 지날 때도 工場을 짓고 人材를 모았다. 다들 이대로 가면 亡한다고 아우聲을 쳤지만 湖巖은 “올인 하라”고 했다. 湖巖은 生前에 赤字만 보고 눈을 감았건만 三星은 이듬해인 1988年 奇跡的으로 半導體 好況이 到來하면서 起死回生했다.

    웨이퍼 크기 늘리기로 대표되는 攻擊的인 設備投資는 李健熙 會長 때도 繼續됐다. 1990年과 1991年 世界 D램 市場에 또다시 不況이 닥치자 世界 先頭를 달리던 日本 業體들도 新規 投資를 躊躇했지만 李健熙 會長은 신경영이 한창이던 1993年 6月 D램 業界 最初로 8인치 量産 라인인 5工場을 竣工했다. 그리고 이 勝負手는 三星電子가 1993年 메모리 半導體 部門 世界 1位로 떠오르는 神話創造로 이어진다.

    著者는 李健熙 會長이 半導體 事業의 本質로 ‘타이밍’을 强調했는데 이는 半導體 업(業)의 本質에 正確히 닿아 있는 말이라고 說明한다. 半導體業體들의 스피드 競爭으로 決定이 하루나 一週日 單位로 늦어지면 몇 年 後 몇十條 원 損害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李健熙 會長이 生前에 ‘超一流 精神’ ‘1等注意’를 强調하고 “앞으로 5年 뒤, 10年 뒤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며 危機를 말했던 것도 典型的인 勝者 獨食 構造를 지닌 半導體 産業의 特性에 基盤한 것이라고 分析한다.

    著者가 技術 發展이 가져올 未來에 對한 樂觀과 希望을 共有하려는 趣旨에서 써내려간 冊은 結局 技術에서도 가장 重要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 國際秩序 판이 技術 中心으로 새롭게 짜이는 狀況에서 韓國이 美國 主導의 ‘칩4 同盟’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半導體 德分이라는 說明과 함께 다만, 只今 三星에는 過去와 달리 變化를 向한 뚜렷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傳하고 있다.



    이한경 기자

    이한경 記者

    安寧하세요. 週刊東亞 이한경 記者입니다. 關心 分野인 巨視經濟, 不動産, 財테크 等에 關한 取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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