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施工 超越한 悅樂의 寶物箱子는 敎科書 밖에 있다!|신동아

施工 超越한 悅樂의 寶物箱子는 敎科書 밖에 있다!

歷史 工夫가 따분하다고?

  • 최광식 高麗大 敎授·韓國史 kukh@korea.ac.kr

    入力 2007-10-05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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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暗記, 圖表, 制度, 鳶島…. ‘歷史’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많은 學生에게 歷史 科目은 ‘따분한 暗記科目’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려대 韓國史學科 최광식 敎授는 “歷史 科目이 재미없는 건 入試 爲主의 工夫法 때문”이라고 말한다. 冊, 다큐멘터리, 博物館 等 敎科書 밖에서 만나면 歷史만큼 흥미로운 科目도 없단다. 敎科書가 아닌 體驗으로 배우는 살아 있는 歷史 工夫法.
    시공 초월한 열락의 보물상자는 교과서 밖에 있다!

    롯데월드 民俗博物館에서 朝鮮時代 宮中儀禮 模型을 지켜보는 아이들.

    筆者가 歷史를 工夫하기 始作한 것은 우리 世代가 흔히 그렇듯 中學校 때부터다. 國史와 世界史 授業時間에 敎科書를 보고 先生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歷史에 關心을 갖게 됐다. 歷史敎育으로 由緖 깊은 高等學校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特히 國史와 世界史를 擔當하신 先生님들이 敎科書에 있는 內容 以外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歷史 科目에 興味가 붙었다.

    歷史는 連帶를 외우고, 制度를 외우고, 事件을 외우는 따분한 科目으로 認識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國定敎科書와 入試라는 制度的 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國史나 世界史 先生님들은 “敎科書에 나오지 않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入試 負擔 때문에 試驗에 나오는 內容만 가르쳐야 한다”며 안타까운 現實을 呼訴한다. 그래서 歷史 科目은 朝鮮時代의 王命(王名)과 事件의 連帶를 외우는 재미없는 科目이라는 誤解를 받게 됐다. 中·高校 時節 歷史를 배울 때 韓國이나 世界의 歷史的 人物 또는 事件에 對해 好奇心과 興味를 갖게 해야 하는데, 그저 斷片的인 歷史的 知識을 注入하는 데 汲汲하다 보니 지루한 科目으로 轉落하고 말았다.

    現場을 찾아라

    筆者는 大學에 들어와서야 本格的인 歷史 工夫를 할 수 있었다. 史學科에 進學해 古跡踏査를 하며 歷史 工夫의 妙味를 느끼기 始作했다. 恩師이신 김준엽 敎授님은 “歷史는 발로 쓰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오래 새겨 이제 비로소 現場 가까이 다가가 直接 느끼게끔 가르치게 됐다.

    勿論 歷史는 過去의 人物, 事件, 制度를 硏究하는 學問이다. 그러나 그 歷史의 現場에 가 있을 때 過去와의 對話가 생생하게 이뤄진다. 考古學은 말할 것도 없고 古代史도 마찬가지다.



    筆者가 효성女大(現 大邱가톨릭大)에 在職할 때는 경상남·北道를 中心으로 한 考古學 發掘 現場과 古代史 現場을 直接 踏査하며 新羅와 統一新羅의 佛敎文化를 工夫했다. 고려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祭祀遺跡 發掘 現場을 中心으로 백제의 歷史 現場을 두루 踏査했고, 그 內容을 담아 ‘백제의 神話와 提議’라는 冊을 펴냈다. 그야말로 現場 中心의 工夫였다. 또한 中國이 東北工程으로 高句麗史를 歪曲하자 이에 對應하기 위해 ‘高句麗硏究財團(現 東北亞歷史財團)’을 發足했고 ‘高句麗史歪曲對策委員會’에서 活動했다. 이런 重責을 맡게 된 것도 現場 踏査에 對한 熱情 德分이었다.

    1985年 日本留學 時節엔 우리나라 古代史 現場을 踏査하기 위해 中國 本土 入國을 試圖했지만 國交가 樹立되기 前이라 거절당한 아픔이 있다. 그 일을 契機로 中國과 修交한 以後 中國은 勿論 北韓의 高句麗 文化遺産 現場을 여러 次例 踏査하며 남다른 感懷를 맛봤다. 그 後 只今까지 高句麗의 歷史와 文化에 對한 現場硏究를 進行하고, 中央아시아의 실크로드와 우루무치 等地를 先後輩, 弟子들과 함께 오가고 있다.

    4곳부터 돌아보라

    筆者의 이 같은 體驗에 비춰보건대 歷史를 工夫하는 데 있어 가장 重要한 것은 歷史에 興味와 關心을 가질 수 있는 契機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歷史의 現場에 가까이 다가가 直接 體驗하고 踏査하는 게 必須的이다.

    하지만 學生이나 一般人이 歷史 現場을 一一이 찾아가기란 簡單치 않은 일이다. 이들을 위한 代案이 있다. 歷史의 現場과 그곳에서 나온 갖가지 資料를 間接的으로 體驗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博物館과 美術館에 가는 것이다. 博物館에는 先史時代부터 現代에 이르기까지 各種 考古學 資料, 美術史 資料, 文獻 資料, 民俗 資料가 展示돼 있다. 또한 資料들에 對한 說明이 곁들여져 있다.

    筆者는 交換敎授로 日本에 1年間 머무를 때 週末마다 日本의 博物館을 찾아다녔는데, 日本의 歷史와 文化를 理解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 이를 통해 韓國의 古代文化와 日本의 古代文化를 比較해 그 共通點과 差異點을 體感할 수 있었다.

    中國 베이징대에서 한 學期 동안 講義할 때도 週末이면 中國의 博物館들을 돌아봤다. 博物館 觀覽을 통해 中國의 오랜 歷史와 文化를 立體的으로 理解할 수 있었다. 그다지 세련되게 꾸며지진 않았지만 遺書 깊은 中國의 博物館을 觀覽하며 中國과 韓國의 古代文化를 比較하는 觀點을 갖게 됐다.

    이처럼 筆者는 外國에 가면 그 나라를 理解하기 위해 으레 國立博物館, 民俗博物館, 百貨店, 在來市場 等을 돌아본다. 國立博物館에서는 그 나라의 最高級 傳統文化를 맛볼 수 있으며, 民俗博物館에서는 그 나라의 民俗文化를 體驗할 수 있다. 百貨店에서는 現代의 最高級 文化 水準을 엿볼 수 있고, 在來市場에서는 庶民의 生活文化를 느낄 수 있다. 이 네 곳만 돌아보면 比較的 짧은 時間에 過去부터 現在까지 그 나라의 高級文化와 庶民文化를 모두 把握할 수 있다.

    시공 초월한 열락의 보물상자는 교과서 밖에 있다!

    옛 高句麗의 首都였던 中國 지안시 將軍塚 앞에 선 學生들.

    宮殿을 活用한 유럽의 博物館들은 大槪 自國의 遺物뿐만 아니라 이집트나 그리스 等 다른 나라의 遺物들도 함께 展示하고 있다. 유럽 國家들은 帝國主義 時期 植民地로부터 많은 遺物을 强奪하거나 購入해 所藏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美國의 博物館은 恐龍이나 매머드 等을 展示한 自然史博物館이 特徵的이다. 美國에도 다른 나라의 遺物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自國의 歷史가 짧기 때문에 自然史博物館을 通해 ‘그레이트 아메리카나’를 보여주려 한다. 이처럼 博物館의 性格은 그 나라의 歷史的 傳統에 따라 달라진다.

    여럿이 함께 움직여라

    歷史의 現場 또는 博物館을 찾거나 歷史冊을 읽을 때는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하는 게 效果的이다. 같은 遺物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낌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意見을 交換하는 訓鍊을 할 수 있다. 筆者는 學生들에게 親舊와 만나거나 데이트를 할 때 꼭 博物館에 함께 가보라고 勸한다. 한두 時間 博物館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相對方의 人生觀과 世界觀을 把握할 수 있기 때문이다.

    筆者는 歷史 現場을 踏査할 때 專攻이 같거나 關心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갈 때가 많다. 家族과 同行할 때도 많은데,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契機가 된다. 그래서인지 筆者의 딸도 佛敎美術史를 硏究하는 歷史學徒가 됐다.

    筆者가 大學을 다니던 1970年代 初盤에는 休校를 하지 않은 學期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때의 노트를 보면 모든 科目이 統一新羅 때까지만 筆記가 돼 있다. 韓國文化史, 韓國政治史, 韓國經濟社, 韓國思想史 等 다양한 科目의 노트가 하나같이 新羅의 骨品制, 新羅 村落文書, 敎宗과 禪宗, 石窟庵과 佛國寺 等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筆者더러 왜 韓國古代史를 專攻했느냐고 물으면 “大學 다닐 때 韓國古代史밖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弄談 아닌 弄談을 하곤 한다.

    그런데 筆者가 歷史를 제대로 工夫하기 始作한 契機는 ‘호박回’라는 讀書 서클이었다. 當時 최동호 學兄(現 高麗大 大學院長), 李相洙 學兄(現 勞動部 長官) 等의 會員들과 一週日에 한 卷씩 冊을 읽고 討論을 했는데, 이것이 知的 好奇心을 刺戟했다. 特히 2學年 겨울放學에는 韓國思想史와 關聯된 冊을 集中的으로 읽고 討論했는데, 結局 그때의 討論 內容이 筆者의 專攻分野가 되고 말았다.

    當時엔 歷史, 哲學, 文學을 中心으로 한 社會學科 人類學 等 모든 分野의 冊이 讀書討論의 對象이었다. 이러한 廣範圍한 讀書가 歷史를 硏究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韓國史를 硏究하더라도 東洋史와 世界史에 對한 理解가 바탕이 돼야 世界史의 普遍性에 비춰 韓國史의 特殊性을 理解할 수 있다. 또 古代를 硏究할 때는 考古學的 知識과 人類學的 方法論을 알아야 韓國 古代의 歷史와 文化를 다양하고 豐富한 視角으로 解釋할 수 있다.

    冊과 TV를 活用하라

    歷史小說을 읽는 것도 有用하다. 비록 픽션이지만 歷史的 想像力을 刺戟하는 觸媒劑 구실을 한다. 筆者는 放學이 되면 ‘林꺽정’ ‘장길산’ ‘太白山脈’ ‘토지’ 等 歷史小說을 잔뜩 쌓아두고 몇날며칠 讀書三昧境에 빠지곤 했다.

    小說과 歷史를 結合한 팩션 ‘로마인 이야기’는 歷史的 事實과 作家的 想像力이 理想的으로 結合된 作品이다. 이 冊을 읽다 보면 로마 歷史를 立體的으로 理解할 수 있으며, 西洋 歷史의 背景과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또한 왜 우리는 ‘新羅人 이야기’나 ‘高句麗人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어내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래도 요즘은 歷史를 素材로 한 드라마나 映畫가 쏟아지고 있다. 最近에는 高句麗史를 主題로 한 ‘朱蒙’ ‘연개소문’ ‘大祚榮’ 같은 드라마가 人氣를 끌었는데, 歷史的 事實과는 동떨어진 內容이 많지만 어떤 部分에서는 作家가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奇拔한 解釋도 엿볼 수 있다.

    또한 歷史 다큐멘터리 ‘歷史 스페셜’이나 히스토리 채널, 디스커버리 채널 等을 통해서도 다양한 歷史를 間接 體驗할 수 있다. ‘歷史 스페셜’은 韓國史를 集中的으로 다루고, ‘아시아 奇行’이라는 프로그램은 아시아로 舞臺를 넓혀 우리의 視野를 틔운다. 히스토리 채널이나 디스커버리 채널은 아시아를 비롯한 世界 여러 나라의 歷史와 文化에 對한 特輯 프로그램이 많아 다양하고 豐富한 世界史 知識을 얻을 수 있다. 中國 古代文明, 이집트 古代文明, 멕시코 摩耶文明 等에 對한 새로운 硏究 成果도 迅速히 接할 수 있다.

    歷史 關聯書를 읽고, 現場踏査를 하고, 博物館을 다니다 보면 歷史와 文化에 好奇心을 갖게 되고 더 많은 關聯 資料를 求해 읽게 된다. 그런데 效果的인 學習을 하려면 그 過程을 글로 記錄하는 習慣이 必要하다. 읽은 冊에 對한 讀後感 또는 踏査한 地域에 對한 踏査記를 쓰는 동안 새로운 事實들을 發見하게 되고, 踏査한 內容들을 오래 記憶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自己가 살아온 生涯, 卽 ‘라이프 히스토리’를 쓰면서 時期 區分을 해보는 것도 색다른 歷史工夫가 될 것이다.

    記錄의 힘

    시공 초월한 열락의 보물상자는 교과서 밖에 있다!

    幼稚園生들이 서울 西大門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高句麗 古墳 壁畫 特別展’을 觀覽하고 있다.

    筆者가 티베트, 몽골, 윈난(雲南) 等을 踏査한지 10年이 지났지만 그때 익힌 內容은 아직껏 記憶에 鮮明하게 남아 있다. 다닌 곳들에 對한 踏査記를 써뒀기 때문이다. 踏査한 內容을 活字化해 出刊하면 더 잘 記憶할 수 있다. ‘우리 古代史의 城門을 열다’는 國內外 踏査를 하며 얻은 知識과 느낌을 담은 冊인데, 只今도 그 冊을 들여다보면 踏査 當時의 記憶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歷史에 對해 좀더 興味를 가지려면 ‘三國史記’ ‘三國遺事’와 같은 古典을 直接 읽어보는 것도 좋은 方法이다. 요즘에는 飜譯本이 많이 나와 古典을 接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筆者가 史學科에 入學해 처음으로 받은 課題는 ‘三國史記’와 ‘三國遺事’를 比較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漢文으로 된 原電을 볼 수 없어 飜譯本을 봤지만, 題目만 알고 있던 冊의 內容을 直接 읽어 보니 戰慄이 느껴졌다. 全體 內容을 다 理解할 순 없었지만 當代의 歷史를 直接 體驗해 남긴 硏究 業績물, 그것도 數百 年 前의 著作을 接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三國遺事’를 읽을 때는 어린 時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무당집과 절집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韓國 文化의 源泉을 엿본다는 興奮된 經驗이 結局 韓國 古代 信仰과 文化에 對한 關心으로 이어져 平生 硏究를 하게 된 것이다. ‘三國史記’는 情事(正史)를 年代記的으로 敍述한 冊이지만 흥미로운 內容도 꽤 많았다. 特히 斷片的으로 記錄된 三國의 神話와 提議에 對한 內容들을 여러 側面에서 再照明하면서 우리 古代의 思想과 文化를 立體的으로 理解하는 데 도움이 됐다.

    筆者가 工夫를 始作할 때는 韓國 古代史의 境遇 大部分 政治史에 關心이 集中돼 있었다. 文化史에 關心이 있더라도 佛敎史 硏究가 그 中心이었다. 그러나 筆者는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對한 好奇心 때문에 佛敎 以前의 土着信仰에 關心을 갖게 됐고, 結局 古代 土着信仰의 中心 信仰이 샤머니즘이 아니라 薦新信仰이나 山神信仰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또한 ‘土着信仰과 佛敎는 支配와 被支配 關係’라는 旣存의 通念과 配置되는 ‘兩者는 融和하는 關係’라는 事實을 糾明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融和와 融合이라는 用語가 流行처럼 使用되고 있지만 當時만 해도 흔치 않은 槪念이었다. 筆者는 줄곧 政治私뿐 아니라 文化史, 生活史 等에 關心을 가져온 德分에 只今까지도 歷史와 文化를 좀더 큰 幅으로 理解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新聞은 來日의 歷史

    歷史와 文化에 對한 關心을 키우려면 文化 體驗學習을 통해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重要하다. 斷片的인 事實을 외우는 工夫는 體驗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博物館이 마련하는 體驗 프로그램은 大槪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잘 活用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도 直接 陶瓷器를 만들거나 古墳 안에 들어가보는 것만 못하다. 間接體驗과 直接體驗의 差異다.

    고려대 博物館은 지난 1學期에 ‘文化藝術最高位過程’을 開設해 企業人을 中心으로 社會指導層의 文化藝術에 對한 理解를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文化藝術에 對한 特講과 歷史文化現場 體驗 프로그램을 竝行해 呼應을 받았다. 그런데 特講과 함께 進行한 博物館과 美術館 觀覽, 國內外 文化歷史 現場 踏査에 對한 反應이 매우 좋았다. 特히 우리 古代文化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先史時代 巖刻畫가 있는 蔚山 盤龜臺 巖刻畫와 천전리 巖刻畫, 高齡의 양전동 巖刻畫와 안화리 巖刻畫를 본 뒤로는 우리 歷史와 文化에 對해 더욱 關心을 갖게 됐다고들 한다. 그래서 2學期에는 文化體驗 行事를 더 늘릴 計劃이다. ‘百聞不如一見(百聞不如一見)’의 常識이 歷史를 工夫하는 데 있어 가장 重要한 要素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歷史學者 E.H. 카는 歷史란 過去와 現在의 끊임없는 對話이며, 事實과 歷史가 사이의 不斷한 相互作用이라고 했다. 歷史가 過去와 다른 部分은 但只 지나간 事實이 아니라 오늘을 뒤돌아보고 未來를 展望하는 거울이라는 點이다. 다시 말해 歷史는 過去의 것을 다루지만 그것을 보는 觀點은 現在에 있다. 따라서 歷史意識을 드높이려면 現在에 對한 올바른 認識이 더없이 重要하다.

    그런 面에서 歷史를 제대로 理解하기 위해 切實히 要求되는 것은 新聞과 雜誌를 꾸준히 보는 習慣이다. 新聞이나 雜誌는 그날, 그 週, 그달에 일어난 여러 事實(史實)들을 重要度에 따라 取捨選擇해 揭載함으로써 이른바 言官(言官)과 士官(史官)의 歷史行爲를 遂行한다. 오늘의 新聞이 來日은 ‘口文’李 되고, 歷史 記錄物로 남게 된다. 每日같이 新聞과 雜誌를 接하다 보면 時事 情報도 얻겠지만, 社會가 나날이 變化하는 모습을 目睹할 수 있다.

    시공 초월한 열락의 보물상자는 교과서 밖에 있다!
    최광식

    1953年 서울 出生

    고려대 史學科 卒業, 同 大學院 席·博士(韓國史)

    효성여대(現 大邱가톨릭大) 敎授

    現 고려대 韓國史學科 敎授, 고려대博物館長

    著書 : ‘古代韓國의 國家와 祭祀’, ‘韓國 古代의 信仰과 佛敎’, ‘우리 古代史의 城門을 열다’ 等


    歷史란 變化를 探究하는 學問이다. 時代에 따라 現實認識이 바뀌므로 그에 따라 歷史認識도 바뀌게 된다. 歷史學이란 歷史的 知識을 많이 習得하는 것보다 歷史的 變化를 제대로 認識하는 게 核心이다. 따라서 新聞, 週刊誌, 月刊誌 等을 통해 하루, 一週日, 한 달 동안 어떤 變化가 있었는지를 제대로 感知한다면 올바른 歷史認識을 涵養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끄적거린 落書帳, 大學時節의 빛바랜 노트, 한구석에 모아둔 서클活動 日誌 等이 筆者에게 歷史 工夫의 源泉이 됐다면 이것들을 移徙짐으로 옮겨가며 지켜준 父母님의 生活方式이야말로 歷史工夫 方法論의 큰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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