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月 20~22日 서울 혜화동 大學路 徐緩小劇場이 들썩였다. 統一演劇 ‘豊溪里 진달래’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때문이다. 招待券 한 張 돌리지 않았지만 4次例 公演 모두 萬石을 이뤘다. 事實 이 演劇에 出演한 俳優 8名 中 3名이 實際 脫北民이다. 나머지도 KBS 聲優 出身 等 非(非)演劇人이다. 團長을 맡은 金映洙(60) 서강대 敎授(寫眞 오른쪽 두 番째)도 北韓 專門家이지만 演劇 團長은 난生처음이었다. 그래도 俳優와 演出家가 넉 달 동안 每週 네 次例씩 退勤 後 3~4時間 손발을 맞췄고, 열흘間의 秋夕 連休도 返納하며 熱情的으로 公演을 準備한 德에 興行에 成功했다.
演劇은 核實驗 以後 洶洶한 豊溪里 雰圍氣와 脫北民의 삶을 그렸다. 病을 앓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돈을 벌러 中國으로 건너가 人身賣買를 當한 엄마가 痲藥 運搬冊이 돼 韓國에 온다. 그러나 아들이 죽고, 男便은 아내를 찾아 脫北해 韓國으로 오지만 아내는 이미 逮捕돼 收監 生活을 한다는 內容이다.
金 敎授는 “演劇 內容에 干涉을 받지 않기 위해 政府 支援도 申請하지 않고 出演陣 才能寄附 및 티켓 販賣로 費用을 充當했다”고 말한다. “數百萬 원의 赤字가 나긴 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經驗을 했다. 演劇을 準備하며 脫北民들의 複雜한 心境을 조금은 더 알게 됐고, 南과 北의 差異를 克服하고 서로를 理解하는 데는 文化的으로 接近하는 게 열 倍, 百 倍의 울림이 된다는 걸 確認했다. 또 南北韓 俳優들이 함께 올린 첫 公演이라 더 뜻깊다.”
金 敎授는 “앙코르 公演 要請이 잇따르고 있지만 俳優들이 모두 職場人이라 쉽지 않다”면서도 “脫北民에 對한 認識을 새롭게 하고, 統一에 對한 認識을 높이기 위해 俳優들과 再公演을 論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