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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像] 國民의힘 간 金榮珠 “40萬 택시 家族 支持에 慰勞받았어요”|신동아

[映像] 國民의힘 간 金榮珠 “40萬 택시 家族 支持에 慰勞받았어요”

[2024 總選_이 사람] 民主黨→國民의힘 國會副議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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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記者

    kjy@donga.com

    入力 2024-03-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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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位 20%? 내 政治 人生 毁損

    • 한동훈 眞情性에 마음 움직여

    • 非命橫死, 親명橫財에 共感

    • 李在明 判斷 잘못 立證하겠다

    [映像] 李在明과 한동훈 差異點은요



    김영주 국민의힘 서울 영등포갑 후보. [홍태식 객원기자]

    金榮珠 國民의힘 서울 영등포甲 候補. [홍태식 客員記者]

    “요새 잠도 안 오고 속이 많이 傷했습니다. 眞짜 많이….” 3月 8日 서울 永登浦區 選擧事務所에서 만난 金榮珠 國民의힘 候補(서울 영등포甲)는 “疲困해 보인다”는 記者의 말에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平生 파란色과 함께하리라고 스스로도 疑心하지 않았기에 黨籍을 옮기기까지 마음苦生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그는 2月 19日 더불어民主黨 公薦管理委員會(以下 公官委)로부터 ‘議員 評價 下位 20%’를 通報받은 直後 記者會見을 열고 脫黨을 宣言했다.

    “이제 민주당을 떠나려고 합니다. 오늘 民主黨이 저에게 議政 活動 下位 20%를 通報했습니다. 영등포 住民을 代表하는 國會議員으로서 侮蔑感을 느낍니다.”

    그의 脫黨 消息이 傳해지자 한동훈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이 直接 迎入에 나섰다. 한 委員長은 3月 1日 晩餐 會同을 하고 “함께 政治하고 싶다”는 뜻을 그에게 傳했다. 한 委員長은 言論을 통해 “經綸 있고 常識 있고 合理的인 政治를 하는 큰 政治人”으로 그를 評價했다.

    勞動界 뜨거운 支持받은 入黨

    1955年 서울 胎生인 金 候補는 韓國勞總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以下 金融老鍊) 最初의 女性 常任副委員長 出身이다. 1999年 새천년민주당 創黨 發起人으로 政治에 入門해 2004年 17代 總選에서 比例代表로 國會에 入城한다. 19∼21代 總選에서 서울 영등포甲 地域區에서 내리 當選한 4選 議員이다. 國會 環境勞動委員長, 雇傭勞動部 長官, 國會副議長으로 일했다.



    全國택시勞動組合聯盟(택시老鍊)은 金 候補가 3月 4日 國民의힘에 入黨하자 支持 宣言으로 和答했다. “우리 聯盟과 40萬 택시 家族은 堂堂한 勞動者의 地位와 보람찬 勞動環境을 되찾아줄 適任者인 4線 김영주 議員의 行步에 全幅的 聲援과 支持를 보낸다”는 內容이다. 全國纖維·流通勞組聯盟(纖維·流通勞聯)도 같은 날 “김영주 議員의 原則과 所信 政治를 歡迎한다”는 支持 聲明을 發表했다. 國會議員의 脫黨에 勞動界가 이처럼 積極的 支持를 나타낸 것은 이番이 처음이다.

    國民의힘에서 새出發을 始作한 金 候補는 3月 5日 영등포甲 候補로 單數 公薦됐다. 영등포구 영등포동6街에 서둘러 차린 選擧事務所에는 選擧 유니폼인 빨강 점퍼를 입은 그의 포스터가 大門짝만 하게 걸려 行人의 視線을 끈다. 인터뷰를 위해 記者와 마주한 그는 “이番 選擧에서 最善을 다해 勝利하도록 하겠다. 힘 있는 與黨 國會議員으로 持續 可能한 永登浦 發展을 이뤄내겠다. 영등포가 서울 3代 都心에 걸맞게 文化 인프라와 住民 便宜施設이 豐富한 未來 尖端 都市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검은色 재킷 안에 받쳐 입은 빨간色 터틀넥 티셔츠가 決然한 그의 意志를 엿보게 했다.

    민주당을 脫黨한 決定的 理由가 뭔가.

    “比例代表로 政治를 始作해 16年째 國會議員을 하는데 돈 封套라든지, 非理라든지, 賂物이라든지, 政治資金法 違反이라든지 하는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한 番도 없다. 지난해 全國 地域委員會 評價를 中央黨에서 했는데 서울 49個 地域 中 6군데가 賞을 받았다. 그때 내 地域區인 영등포甲이 賞을 받았을 程度로 國會議員으로서 議政 活動이나 地域 민주당을 위한 活動에 最善을 다해왔다. 그렇기에 民主黨 公薦管理委員會로부터 議政 活動 下位 20%라는 通報를 받는 瞬間 宏壯한 侮辱感을 느꼈다. 公薦管理委員長이 電話했을 때 그 자리에 우리 保佐陣이 있었다. 電話를 받으면서 ‘민주당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앞뒤를 재며 左顧右眄(左顧右眄)하지 않았다. 딱 끊고 나서 保佐陣에 ‘記者會見을 準備하라’고 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온 삶을 毁損당했다는 생각이 컸다”

    1級 褒賞 2回, 優秀議員上 2回 받았어도 下位 20%?

    김영주 의원이 21대 국회 임기 중 받은 당대표 1급 포상과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왼쪽부터 1급 당대표 포상(이재명), 1급 당대표 포상(이해찬), 국정감사 우수의원상(홍익표), 국정감사 우수의원상(김태년).

    김영주 議員이 21代 國會 任期 中 받은 黨代表 1級 褒賞과 國政監査 優秀議員上. 왼쪽부터 1級 黨代表 褒賞(李在明), 1級 黨代表 褒賞(李海瓚), 國政監査 優秀議員上(洪翼杓), 國政監査 優秀議員上(金太年).

    그는 21代 國會 任期 中 민주당 代表가 주는 1級 褒賞을 2回, 民主黨 院內代表가 주는 國政監査 優秀議員像을 2回 受賞했다. 그中에는 李在明 民主黨 代表가 지난해 9月 表彰한 1級 褒賞도 있다.

    下位 20%를 定하는 基準이 뭔가.

    “모르겠다. 내가 그 基準을 公開하라고 했는데 안 했다.”

    候補의 支持者들은 “김영주가 變心한 게 아니라 민주당이 變했다”고 指摘하더라.

    “택시聯盟이라든지 勞動組合은 利害關係, 또 組合員 性向에 따라 贊反이 많이 갈린다. 근데 그분들은 내가 勞動組合에서 일할 때나 勞動部 長官을 할 때나 國會議員을 할 때 어떻게 處身했는지 잘 알기에 支持를 보낸 것이다. 내가 민주당을 脫黨하고 一週日 사이에 1500名이 함께 脫黨했다. 어떤 분은 내가 强要한 줄 아는데 全혀 아니다. 그런 支持者가 곁에 있다는 걸로 요즘 慰安을 삼고 있다.”

    民主黨 公薦을 두고 ‘非命橫死 親명橫財’라는 批判의 소리가 나왔다.

    “共感한다. 이番에 旣存 議員이 議政 活動 下位 20%, 10%에 든다는 名目으로 公薦을 받지 못한 地域을 보면 영락없이 李在明 民主黨 代表와 聯關이 있는 候補가 갔다. 本人이 迎入한 人材든지 아니면 城南市長이나 京畿道知事를 하던 時節 因緣이 있는 人士가 大部分이다. 몇몇을 除外하고는 다 그렇기 때문에 泗川(私薦)이라고 보는 거다.”

    脫黨 後 無所屬 出馬를 考慮하진 않았나.

    “無所屬 出馬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無所屬을 甘受하면서까지 出馬하는 건 國會議員을 하려는 執着으로 보인다. 入黨 提案이 여러 番 왔어도 바로 決定할 수 없었다. 내가 國民의힘을 擇하기까지 열흘 以上 잠을 못 자고 苦悶한 가장 큰 理由는 下位 20% 通報에 政治를 그만둘 순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나와 함께해 온 周邊 사람들을 명예롭게 해야 한다는 所信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다. 나는 김대중 大統領이 새천년민주당에 迎入해 (當選과 距離가 먼) 比例代表 39番으로 政治를 始作했다. 1999年부터 지켜온 이 黨을 떠나는 것과 繼續 남아 있는 것 中 어느 쪽이 내게 더 價値가 있는지 생각할 時間을 가졌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家族과 많이 議論한 끝에 結論을 내렸다. 내가 國民의힘에 入黨한 것은 李在明 代表가 公薦을 잘못했다는 것, 下位 20% 通報가 잘못됐다는 것을 立證하고 싶은 생각도 한몫했다.”

    한동훈 非對委員長과 만나고 入黨을 決定했다.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나.

    “누구를 만나 30分에서 1時間 程度 얘기하다 보면 相對의 眞情性이 느껴진다. 한동훈 委員長도 그랬다. 얘기를 나누며 나를 영등포甲에 出馬할 國民의힘 候補로 迎入하려는 眞情性을 보여줬다. 첫 대면한 자리에서 한 委員長이 ‘汝矣島 사투리를 안 쓰겠다’고 했는데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에 對해 周邊 評判도 듣고 어떤 法案을 냈는지도 工夫해 왔다. ‘只今 민주당은 너무 左側에 가 있고 國民의힘은 너무 右側에 가 있다. 國民의힘에도 左側에 가 있는 議員이 있듯이 民主黨에도 右側에 와 있는 人士가 있다. 나랑 함께 새 政治를 하자’고 說得했다. 그날은 내가 答을 못 주고 歸家해 이틀 동안 苦悶했다. 한쪽에서는 저를 버렸고, 한쪽에서는 내 能力이 아직 남아 있으니 함께하자고 했다. 그 差異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勞動者 ‘삶의 質’은 抛棄할 수 없는 價値

    一角에선 保守政黨 政策과 결이 다른 行步를 보인 候補가 國民의힘과 한食口가 될 수 있을지 疑懼心을 갖는다.

    “黨論이라면 自己와 正體性이 달라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黨이 自己를 뽑아줬고 公薦을 줬으니 민주당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大部分은 議員들 個個人의 自律에 맡긴다. 國民의힘에서도 내가 只今까지 지켜온 價値를 지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내게 가장 重要한 價値는 勞動이다. 고용주 外에는 다 大韓民國 勞動者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勞動者의 삶의 質을 改善하기 위한 役割에 疏忽함이 없을 거라고 自信한다.”


    영등포甲은 民主黨 텃밭으로 認識돼 왔다. 5線이 可能하겠나.

    “只今 그건 생각하지 않는다. 內 眞情性을 우리 永登浦 有權者들이 알게 되고, 내가 해온 議政 活動을 한番 돌아보면 나를 믿고 選擇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選擇을 받을 수 있도록 最善을 다하겠다.”

    民主黨은 영등포甲 候補로 채현일 前 영등포區廳長, 改革新黨은 國民의힘 比例代表 出身 허은아 黨 首席代辯人을 戰略 公薦했다. 두 候補와 다른 差別化된 競爭力을 묻자 金 候補는 “누구보다 영등포를 잘 아는 것”이라고 答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허은아 議員은 國民의힘에서 서울 東大門 黨協委員長 申請도 했고 여러 가지를 했다. 채현일 候補는 國會議員 補佐官으로 일한 바 있다. 京畿 安養에서 李鍾杰 前 議員, 서울 動作에서 전병헌 前 議員을 補佐했다. 서울市에서 勤務했고, 靑瓦臺에서 일했다. 영등포에 뿌리가 있지 않은 것이다. 文在寅 大統領이 執權할 때 영등포區廳長이 됐는데 그때는 靑瓦臺에서 行政官을 했으면 ‘묻지마 投票’가 될 程度였다. 區廳長을 4年 했어도 코로나19 事態 長期化로 영등포에 對해 잘 알지 못한다고 본다. 나는 택시勞組 40萬 名이 支持 宣言을 해주고, 纖維勞組가 支持해 줄 程度로 信賴를 重視해 온 사람이다. 한番 因緣을 맺으면 그 사람들과 特別하게 어긋나지 않는 限 오래간다. 1987年 영등포에 移徙 와서 只今까지 살고 있다. 1999年 새천년민주당 創黨 發起人 推進委員으로 政治權에 들어와 25年 동안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내 眞情性을 안다. 그게 다른 候補들과 差別化되는 地點이다.”

    신동아 4월호 표지.

    신동아 4月號 表紙.



    2024 總選

    김지영 기자

    김지영 記者

    放送, 映畫, 演劇, 뮤지컬 等 大衆文化를 좋아하며 人物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文化와 不動産, 流通 分野에도 특별한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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