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南 창원시 城山區는 進步 政治의 要衝地다. 進步 政治 1世代인 권영길 前 議員이 17~18代, 고(故) 노회찬 前 議員이 20代 때 當選된 곳이다. 盧 前 議員이 別世한 後 치러진 2019年 7月 23日 補闕選擧에서도 여영국 前 議員이 0.54%포인트 差로 강기윤 自由韓國黨(現 國民의힘) 候補를 누르고 當選됐다. 昌原國家産業團地 等 工團 地帶로 勞動者가 많아 選擧 때마다 保守와 進步가 伯仲勢 競爭을 펼쳐왔다.
最近 치러진 選擧에서는 保守가 勝利했다. 第21代 總選에서 강기윤 未來統合黨(現 國民의힘) 候補가 여영국 正義黨(現 綠色正義黨) 候補를 12.41%포인트 差로 눌렀다. 3位를 한 이흥석 더불어민주당 候補는 15.82%를 얻었다. 算術的으로만 보면 2~3位 間 單一化가 成事됐을 境遇 當落이 달라졌을 蓋然性도 있다. 20代 大選에서는 尹錫悅 候補가 55.28%를 얻어 39.90%에 그친 李在明 候補를 餘裕 있게 앞섰다. 이렇다 보니 慶南 內에서도 김해시와 巨濟市, 양산시가 민주당의 새로운 戰略 地球로 注目받는 形局이다.
민주당에서는 昌原市場을 지낸 허성무 候補가 일찌감치 單數公薦을 받았다. 許 候補는 地方自治制 復活 以後 민주당 系列로는 처음으로 昌原市場에 當選한 人物이다. 2018年 치러진 第7回 全國同時地方選擧에서 그는 48.02%를 얻어 30.02%에 그친 고(故) 조진래 自由韓國黨(現 國民의힘) 候補와 15.33%를 記錄한 安商守 無所屬 候補를 제쳤다. 창원시가 人口 100萬 名을 웃도는 준(準)광역시의 位相을 가진 터라 全國的 話題가 됐다.
1963年生인 許 候補는 故(故) 盧武鉉 前 大統領과 因緣이 닿아 政界에 入門했다. 1986年 부산대 行政學科 在學 中 釜山 美文化院 占據 事件으로 收監된 許 候補의 辯護人이 노무현 辯護士였다. 許 候補는 2002年 第16代 大選을 앞두고 노무현 새千年民主黨 大選 競選캠프에 昌原競選팀長으로 合流했다. 盧 前 大統領 當選 以後 大統領祕書室 民願·制度革新祕書官을 지냈다. 김두관 慶南知事 在任 時節 慶南道 政務副知事로 일했다.
2年 前 地方選擧에서 昌原市長 再選에 失敗한 그로서는 이番이 捲土重來(捲土重來)의 機會다. 許 候補는 1月 29日 昌原市廳에서 出馬를 宣言하며 “尹錫悅 政權이 들어선 以後 單 한時도 便安한 날이 없이 나라가 시끄럽다”면서 “尹錫悅 政權 審判은 時代精神이다. 最近 勞組 幹部, 國會議員 가리지 않고 恣行되는 煽情的 暴力을 통해 尹錫悅 政權이 過去 軍事政權보다 더 極甚한 獨裁로 치닫고 있음을 똑똑히 본다”고 强度 높은 목소리를 냈다.
이어 “昌原 성산은 권영길과 盧會燦 두 巨木을 輩出한 곳”이라며 “民主黨과 저는 單一化 協力을 통해 民主進步 勢力의 勝利에 힘을 보탰던 經驗을 바탕으로 汎民主進步 勢力 大團結로 總選에서 반드시 勝利하겠다”고 했다. 國民의힘에서는 現職인 강기윤 議員(再選)李 3選에 挑戰한다. 綠色正義黨에서는 여영국 候補가 公薦을 받았다. 許 候補와 與 候補 間 單一化 불씨가 살아 있지만, 單一化 方式을 놓고 兩側의 意見差가 커 成事 與否는 未知數다.
KBS昌原放送總局이 輿論調査 公表禁止(4月 4日 以後) 移轉인 3月 28~30日 韓國리서치에 依賴해 慶南 昌原 城山 選擧區에 居住하는 滿 18歲 以上 成人 男女 500名에게 携帶폰 假想番號를 利用한 電話面接 調査(95% 信賴水準에 標本誤差 ±4.4%포인트, 응답률은 13.7%, 仔細한 內容은 中央選擧輿論調査審議委員會 參考)를 實施한 結果 허성무 候補 38%, 강기윤 候補 27%, 여영국 候補 7%로 集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