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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신동아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全南 莞島郡 蘆花島

  • 글·김동률│ 西江大 MOT大學院 敎授 yule21@empas.com 寫眞·권태균│ 寫眞作家 photocivic@naver.com

    入力 2012-08-22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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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黃昏에 물든 蘆花島.

    ‘그리워’라는 李殷相의 詩가 있다. 어머니 世代는 어느 程度 알고 있는 試鍊만 只今의 世代는 거의 알지 못하는 듯하다. 設使 안다 하더라도 그다지 感興을 느끼지 못하는 舊닥다리로 여겨진다.

    내가 靑少年 時期에 읽은 이 詩를 如前히 記憶하는 것은 ‘갈꽃만 바람에 날린다’는 句節 때문이다. 갈꽃이 무엇일까. 가을꽃의 준말일까 아니면 갈꽃이 따로 있을까 하는 疑問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사람들이 歌手 고복수의 ‘으악새 슬피 우는’이란 句節에 登場하는 으악새(?)를 記憶하는 것과 같은 理致다. 갈꽃이 登場하는 詩의 前文은 다음과 같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 뵈고/

    들菊花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네/



    마음은 어디고 부칠 곳 없어/

    먼 하늘만 쳐다보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歲月/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엔 그대 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盡終日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韓半島 南쪽 끝 蘆花島를 찾아가는 길은 내게는 ‘그리워’의 對象을 찾아가는 길과 같은 意味로 다가온다. 蘆花島(蘆花島), 漢字를 가만히 풀이해보자면 갈대꽃의 섬이다. 이렇게 浪漫的인 이름의 섬은 아득하다. 하기야 하루 終日 달려도 地平線밖에 없는 몽골 草原이나 北美 大陸을 旅行해본 사람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겠지만 서울 사람들에게 韓半島 最南端 莞島를 거쳐 連絡船을 타고 蘆花島로 가는 길은 그리 碌碌지 않은 旅程이다.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連絡船에서 본 風景.

    映畫의 한 場面 같은 風景

    서울에서 대여섯 時間 달려 到着한 완도읍을 거쳐 섬의 西쪽 바닷가 火흥포 項에 닿는다. 蘆花島 가는 배便은 하루 서너 次例 있다. 張保皐의 淸海鎭 遺跡地를 뒤로한 채 連絡船을 타고 40餘 分 가다보면 안개 속에 갑자기 그림 같은 작은 浦口가 눈앞에 登場한다. 蘆花島 洞天項이다. 映畫 속 멋진 場面에 나오는 그런 風景이다.

    蘆花島는 莞島와 甫吉島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섬이다. 甫吉島를 찾는 사람들은 自動的으로 老化度를 거치게 된다. 甫吉大橋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작은 다리가 두 섬을 이어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섬의 東쪽으로 배로 1時間 거리에는 이미 有名稅를 탄 청산도가 있다. 韓半島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리밭이 있다는 바로 그 靑山島다. 그래서 蘆花島는 有名한 섬들 사이에 있는, 全혀 存在感 없는 작은 섬이 되고 말았다.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露天 鑛山.

    그러나 朝鮮 中期로 거슬러 올라가는 섬의 歷史는 길다. 섬 이름과 關聯해 여러 가지 說이 傳來한다. 朝鮮時代 宣祖 當時 孤山 尹善道가 이 섬으로 올 때 어린 種을 데리고 온 데서 노아도(奴兒島)라는 이름이 由來했다는 說이 있다. 가을이 되면 섬의 갯벌 여기저기 핀 엄청난 量의 갈대꽃이 長官을 이룬 데서 이름이 由來했다는 게 定說이라고 한다. 蘆花島는 甫吉島 等과 함께 朝鮮時代를 통틀어 倭寇들의 巢窟이었다고 한다. 政府의 統制力이 全혀 미치지 못했고 倭寇와 數的들의 틈바구니에서 漁民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苦難을 겪었다고 木浦大 圖書文化硏究所 論文集이 傳한다. 16世紀 末葉에는 住民들이 完全히 떠나 오랫동안 無人島로 남아 있었다는 記錄도 있다. 民草들이 겪은 苦痛을 斟酌할 만하다.

    倭寇들의 巢窟

    只今의 老化度의 가장 큰 特徵은 여느 섬答紙 않은 풍요로움에 있다. 老化도 船着場에 가서는 돈 이야기 하지 말라는 말이 있고 老化度에서는 지나가는 개도 5萬 원짜리 한 張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登場한다. 多少 誇張이 있긴 하지만 完全한 虛風은 아니다.

    오랫동안 가난에 허덕이던 이 困苦했던 섬은 이제 國內 最高의 顚覆 養殖場으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潮水干滿의 差가 큰 데다 水深이 얕고 거기다가 全鰒의 먹이가 되는 미역과 다시마가 至賤에 널려 있다. 顚覆 樣式의 最適地라는 것이 해돋이養殖場을 運營하는 伊布里 住民 서병식(58) 氏의 說明이다.

    大韓民國 섬 中에서 都會로 나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唯一한 섬이라고 한다. 西 氏의 말에도 돈의 힘이 들어가 있다. 막상 얘기를 듣고 보니 섬의 곳곳에 生氣가 있어 보인다. 집 지붕과 담牆은 壁畫로 裝飾되어 있는 等 다양한 模樣으로 限껏 멋을 내고 있다.

    그러나 全鰒은 섬 老人들이 키우는 水産物이 아니다. 쌀알만한 크기의 顚覆 種貝가 競賣場으로 나가는 주먹만한 商品으로 크기까지는 大槪 5~6年 걸린다. 그렇다 보니 나이가 七十에 가까워오면 섬사람들이 徐徐히 全鰒 樣式을 抛棄한다고 徐 氏가 傳한다. 하기야 民謠 한五百年의 한 자락처럼 明年 봄에 다시 피는 海棠花 진다고 설워할 必要는 없겠지만 七十이 넘은 마을 老人에게는 한 해가 가는 것이 어찌 서럽지 않겠는가. 그래서 顚覆 樣式은 이제 돈 많은 서울 사람이 主로 資本을 대고 섬에 緣故가 있는 歸鄕民이 일손을 부치는 式으로 運營되고 있다.

    全鰒과 갈대의 섬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朝鮮耐火 創立者 이훈동 會長賞.

    갈대가 흐드러지게 많은 蘆花島에서 貴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갈대의 막내 동생쯤 되는 잔디다. 섬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집 마당에 잔디떼를 가꿔왔다고 한다. 그래야 죽은 뒤 自身의 무덤 封墳에 最小限의 떼라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당마다 잔디 키우기에 熱心이었다고 하니 南녘 바닷가 작은 섬이 갖는 特別한 意識이었다고 할 만하다.

    蘆花島를 둘러보노라면 露天 鑛山이 눈길을 끈다. 製鐵高爐나 原子爐에 使用되는 蠟石 鑛石을 캐내는 곳이다. 至賤에 널려 있는 蠟石을 加工해 製鐵所에 파는데 生産物量의 90% 以上이 日本으로 輸出된다. 木浦 富者인 朝鮮耐火㈜ 設立者 이훈동 先生의 耐火工場도 여기서 生産되는 蠟石을 主原料로 쓴다고 한다. 露天 鑛山 事務室 앞에는 이훈동 先生의 挫傷이 우뚝 서 있다. 예전에 서너 番 찾아간 木浦 儒達山 기슭 그의 집은 그가 世上을 떠난 後 이훈동庭園으로 이름을 바꿔 一般人에게 開放하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朴正熙 前 大統領이 湖南地方으로 나들이할 때마다 萬事를 제쳐두고 이훈동 自宅에서 잠을 請했다고 한다. 그 이훈동定員의 母胎가 이름 없는 작은 섬 老化度의 蠟石 鑛山이라고 하니 世上의 理致는 참으로 妙하다.

    섬에서 보낸 새벽은 寂寞하다. 前날 낮에 보았던 風景은 간 데 없고 갑자기 바다는 낯설기만 하다. 새벽 바다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表現처럼 夢幻的이다. 말라르메는 ‘바다의 微風’이라는 詩에서 “오! 肉體는 그저 슬프기만 하고 그래서 떠나버리자, 그리하여 뱃사람들의 노랫소리를 들어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老化度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連絡船에 뱃사람의 노래는 없다. 凄凉한 트로트 流行歌 가락만 되돌이標로 反復되고 있다. 連絡船은 바다 안개에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船尾 쪽으로 椅子를 돌려놓고 바라다보는 먼 바다는 외로워 보였다. 후텁지근한 날씨, 老化度가 거느리고 있는 크고 작은 無人島들이 눈앞에 다가왔다 사라진다.

    나의 단골 ‘섬’ 술집

    섬이라는 말은 한 時節 내가 가졌던 東京, 漠然한 孤獨함, 외로움이 절절이 배어 있는 象徵이다. 그래서 서울 신촌 골목 어디와 이화여대 後門 高架道路 옆에 있던 섬이라는 술집은 나의 단골집이었다. 그 술집 壁에는 張 그르니에의 퀭한 얼굴을 그려놓은 천이 걸려 있었다. 그 천에 새겨진 詩句가 떠오른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時 ‘섬’이다. 單 두 줄이 前婦人 시다. 사람들 間의 斷絶과 疏通을 섬을 통해 形象化한 것으로 보인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張 그르니에의 얼굴과 정현종의 詩를 통해 섬이 갖는 斷絶, 외로움, 淑明 또는 運命쯤을 어슴푸레 斟酌하게 된다.

    蘆花島를 떠나는 이른 아침, 마음은 안개 짙은 浦口를 떠나지 못한다. 寂寞한 갯벌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나는 이 짧은 旅行을 통해 蘆花島 앞바다의 소금 냄새와 짙은 海棠花 香氣를 文身처럼 몸에 새기게 된다. 그리운 모든 것은 갈꽃 섬이라는 센티멘털한 말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겼다. 招待하지 않은 가을이 뱃전에 와 맴돈다.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浦口 안 마을 風景(왼쪽). 아름다운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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