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隣村記念會
第 26回

2012 인촌賞 受賞者

이길여
公共奉仕 公的보기 | 受賞所感보기 이길여 街千길財團 會長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면 마음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奉仕한 것뿐인데 큰 賞을 받게 돼 榮光입니다.”

이길여 街千길財團 會長(寫眞)의 受賞 所感에는 平素 그의 奉仕에 對한 哲學이 묻어났다. 李 會長은 1959年부터 통통배에 看護師와 美容師를 태우고 西海 落島를 돌며 醫療 美容 奉仕를 始作했다. 6·25戰爭의 傷痕을 克服하느라 奉仕라는 槪念 自體가 稀薄하던 時節이었다.

그가 일찌감치 奉仕에 눈을 뜬 것은 어린 時節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 全北 群山의 富農이었던 故鄕집에는 늘 거지들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小盤에 밥과 국, 飯饌을 정성스럽게 차려 어린 이 會長이 나르게 했다. “거지라도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은 疏忽히 待接할 수 없다”는 哲學 때문이었다.

그는 1968年부터 女性을 위한 子宮癌 無料檢診을 始作하며 體系的인 醫療奉仕에 나섰다. 또 健康保險이 없던 時節 患者들이 治療費를 떼먹고 달아날 境遇에 對備해 當時 病院들이 받았던 保證金을 없앴다. 그는 “患者들이 治療費 代身 놓고 간 生鮮과 나물이 病院 마당에 수북하게 쌓였던 記憶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李 會長은 1982年과 1988年 奧地와 다름없던 競技 楊平郡과 講院 鐵原郡에 楊平길병원과 鐵原吉病院을 開園했다. 두 病院 모두 收支를 맞추기 힘들었지만 住民들의 付託을 拒絶할 수 없었기 때문. 1995年에는 赤字에 시달리던 白翎島의 赤十字病院을 떠맡아 2001年까지 白翎吉病院을 運營했다.

李 會長의 奉仕는 國內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91年부터는 海外 어린이 心臟病 患者를 無料로 手術하고 있으며, 베트남 꾸이년 時에 한센病 患者를 위한 職業訓鍊센터를 設立해 自活을 돕고 있다.

이 밖에 그는 市民들이 낸 誠金으로 生活形便이 어려운 患者를 돕는 ‘새生命찾아주기운동본부’(1992년)와 ‘歌天彌鄒忽靑少年奉仕團’(1993年)도 設立해 運營하고 있다. 또 2010年부터는 이어령 이화여대 名譽夕座敎授와 함께 0∼3歲 嬰兒를 위한 育兒共同體인 ‘세살마을’을 運營하고 있다.
受賞者의 公的, 學歷 및 經歷을 나타내는 表
公的 ‘이웃과 世上을 품는 女醫師’로 불리는 그는 1957年 서울대 醫大를 卒業하고, 이듬해 仁川에서 産婦人科 議員을 開院한 뒤 半世紀 넘게 醫療奉仕 活動을 繼續해왔다. 子宮癌 無料檢診으로 12萬餘 名에 이르는 韓國 女性들의 健康을 지켰다. 市民들이 參與하는 醫療扶助運動團體를 세워 4000名이 넘는 患者에게 手術費를 支援했다. 特히 無料 心臟病 手術을 통해 世界 13個國 어린이 252名이 새 生命을 찾았다. 이런 功勞로 2003年 國民勳章 無窮花章을 받았으며 지난해 美國 뉴스위크가 發表한 ‘世界를 움직이는 女性 150人’에 選定됐다.

26回(201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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