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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葬된 海警 艦艇 · 遺骨 건져내 遺族 恨 풀어주자”|신동아

Interview

“水葬된 海警 艦艇 · 遺骨 건져내 遺族 恨 풀어주자”

海難救助 專門家 진교중 前 海軍 SSU 大將

  • 김진수 記者 | jockey@donga.com

    入力 2016-02-15 1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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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年 863艦, 1980年 72梃 沈沒 船體·屍身 行方 杳然
    • 863艦은 鈹鍼(被沈)…72定은 流失 可能性 없어
    • 現在 探索·潛水 技法으로 充分히 引揚 可能
    • 國民에게 잊혔지만, 海警도 大韓民國 國民
    2014年 4月 온 國民을 슬픔의 那落으로 빠뜨린 歲月號 沈沒事故. 오는 7月이면 세월호가 2年 3個月 만에 다시 睡眠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海洋水産部는 3月부터 두 달 동안 세월호 船體에 에어백 等을 設置하는 作業을 벌인 뒤 7月엔 歲月號를 引揚해 남은 失踪者 9名(男性 6名, 女性 3名)에 對한 搜索과 船體 整理 作業을 마무리할 豫定이다. 海洋水産部에 따르면, 1月 13日 現在 中國 상하이샐비지 所屬 潛水士 49名 等 139名이 沈沒 地點 위에 떠 있는 바지船에서 生活하며 하루 2次例 潮流 狀況에 따라 水中 作業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歲月號 慘事 餘波로 2014年 11月 創設 61年 만에 解體돼 國民安全處에 編入되는 運命을 맞은 海洋警察(以下 海警)의 船舶 沈沒事件·事故도 再照明해야 한다는 主張이 나왔다. 海軍 海難救助隊(SSU) 隊長을 지낸 豫備役 海軍 大領 진교중(65) 氏가 그 主人公.
    晉氏는 西海훼리호 沈沒事故(1993年), 聖水大橋 崩壞 慘事(1994年), 東海岸 北韓 潛水艇 浸透事件(1998年), 南海 欲知島 近海 北韓 半潛水艇 擊沈(1998年) 等 굵직굵직한 各種 事件·事故의 引揚作戰을 指揮하고 直接 參與한 海難救助 分野 最高 專門家다. 2003年 轉役 後 金融監督院 安全計劃室長으로 있던 2010年엔 海軍의 要請으로 白翎島 隣近에 碇泊한 獨島艦에 머물며 天安艦 引揚計劃을 짜는 데 參與했다.



    海警 史上 初有의 慘事

    그런 그가 海警의 代表 沈沒事件·事故 事例로 드는 건 ‘863艦 沈沒事件’과 ‘72梃 沈沒事故’다. 前者는 1974年 6月 26日 束草港을 出發한 束草海洋警察隊 所屬 警備艇 863艦(181t)李 出港 사흘째인 6月 28日 午前 漁撈 保護를 위한 經費任務 中 氣象 惡化(짙은 안개로 인한 市政(視程) 不良) 및 레이더 故障으로 江原 高城郡 거진港으로 歸航하다 北方限界線 南方 2마일 海上에서 北韓 海軍 艦艇 3隻과 交戰 끝에 沈沒한 事件이다.
    이 事件으로 28名의 乘組員(警察官 14名, 義務·戰鬪警察 13名, 日傭職 補助人力 1名) 中 8名이 死亡하고 18名이 失踪됐다. 北韓軍에게 生捕된 2名(警察官 1名, 義務警察 1名)은 拉北된 것으로 推定된다. 그해 7月 1日 열린 第352次 軍事停戰委員會 當時 北韓 側 代表는 이들 2名의 育成이 錄音된 비디오테이프를 公開한 바 있다. 863艦 沈沒事件은 海警 史上 初有의 慘事였지만, 現在 이 事件을 記憶하는 이는 거의 없다.
    72梃 沈沒事故도 一般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海警들 사이에서만 制限的으로 膾炙될 뿐이다. 事故 經緯는, 1980年 1月 23日 午前 5時20分頃 거진 東方 2.5마일 海上에서 警備任務를 遂行하던 海警 警備艇 72梃(60t)李 氣象狀態 不良 및 航海 裝備 故障으로 인한 航路 錯誤로 다른 警備艇人 207艦과 衝突해 沈沒하고 乘組員 17名(警察官  9名, 義務·戰鬪警察  8名) 全員이 殉職한 것이다.
    國民安全處 海洋經費安全本部(海洋警察廳 後身) 所屬 束草海洋警備安全署 資料에 依하면, 72梃 事故 後 한 달 동안 海警 및 海軍 艦艇, 水産廳 指導線, 漁船 等 年 200餘 隻이 衝突 海域 半徑 50마일權을 搜索했지만 救命벌(緊急狀況 時 乘客을 待避시키기 위해 부풀리는 一種의 고무보트) 等 遺失物만 引揚됐고, 失踪者는 한 사람도 찾아내지 못했다.



    忠魂塔엔 位牌만…

    以後 海警은 863艦 事件과 72梃 事故를 비롯해 海警 創設 以來 桐·西·南海에서 祖國과 民族을 위해 全社·殉職한 海警 英靈들의 넋을 追慕하기 위해 1986年 12月 東海가 훤히 바라보이는 江原 속초시 장사동 海岸가 언덕에 海洋警察忠魂塔을 建立했다. 2016年 1月 現在 戰死者 26名과 殉職者 148名 等 174名의 位牌(警察官 114位, 義務·戰鬪警察 59位, 日傭職 1位)가 奉安돼 있으며, 2003年 5月 國家報勳施設로 登錄됐다.





    ▼ 863艦 事件과 72梃 事故의 再照明을 主張하는 當爲性은.
    “國家를 위해 犧牲한 사람은 國家가 마땅히 責任져야 한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의 屍身을 찾아내 제대로 禮遇하고, 遺族의 아픔과 恨을 달래고 풀어줘야 後孫들에게도 愛國心이 생겨난다. 陸軍은 훨씬 오래前人 6·25戰爭 戰死者 遺骸도 發掘하지 않나. 863艦 事件과 72梃 事故는 30~40餘 年 前 일이지만 只今은 世上이 바뀌었다. 1人當 國民所得(GNI)李 그때보다 20~50倍 以上 늘었고, 國際社會에서 大韓民國 位相도 높아졌다. 船體 探索 및 引揚 技術도 눈부시게 發達했다.
    先進國이란 게 뭔가. 個人의 生命과 存在 價値를 尊重해주는 나라 아닌가. 美國과 유럽 國家들이 왜 戰鬪에서 剛할까. 軍人과 警察이 作戰 中 變을 當해도 國家가 그 家族까지 책임지기에 忠誠心이 절로 우러나는 거다. 한便으론 많은 海難事故 現場을 누빈 專門家로서 默過할 수 없는 責任意識도 느낀다.”
    ▼ 海軍 出身이니 當時 海警의 事件·事故에 對해 알 만한 位置에 있지 않았나.
    “1974年 海軍士官學校를 卒業하고 少尉로 任官되자마자 7年間 警備艦을 탔다. 그 時節 陸上 勤務를 한 番도 못했다. 그런데 72梃 事故 當時엔 공교롭게도 바로 隣近 海域에서 勤務했다. 海軍 第1해歷史 所屬으로 80t級 高速艇 艇長(大尉)으로 있었다. 그럼에도 事故 消息을 全혀 알지 못했다. 같은 海域에서 勤務한 同僚 正裝 3名도 다 몰랐다더라. 1980年 1月이 어떤 때인가. 1979年 10·26事件과 12·12事態 直後라 敏感한 情報가 遮斷된 탓일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11月 海警에 몸담았다 退職한 知人들에게서 偶然히 863艦 事件과 72梃 事故 이야기를 傳해 듣고는 搜所聞 끝에 束草에 자리한 海洋警察忠魂塔을 直接 찾아가본 後 事實을 알게 됐다.”



    72梃 沈沒 水深은 80~120m

    束草海洋警備安全署에 따르면, 863艦 事件 戰死者 8名의 屍身은 當時 引揚돼 後날 國立墓地에 安葬됐지만 失踪者 18名은 屍身을 찾지 못해 忠魂塔에 位牌만 奉安돼 있다. 72梃 事故의 境遇 殉職한 17名 全員의 屍身을 찾지 못했다.
    ▼ 事件·事故 當時엔 왜 沈沒한 船體와 屍身을 제대로 引揚하지 못했다고 보나.
    “그때의 船體 探索 및 引揚 技術과 裝備로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引揚作業에 對한 意志도 稀薄했을 테고. 그러나 只今은 事情이 다르다. 2002年 6月 第2延坪海戰 때 沈沒한 海軍 高速艇 참수리 357號(170t)뿐 아니라 1200t級 哨戒艦인 天安艦度 건져내지 않았나. 6825t에 達하는 歲月號度 引揚하려는 만큼, 引揚 技術과 裝備가 過去와는 比較가 안 될 만큼 發達했다.
    潛水 技法만 해도 예전엔 潛水師가 空氣桶을 등에 메고 最大 水深 40m까지만 可能한 스쿠버 技法밖에 없었지만, 現在는 高壓 체임버를 利用해 壓力을 調整한 後 最大 300m까지 潛水할 수 있는 飽和潛水 技法이 있다. 이 技法으로 내가 1999年 3月 南海 欲知島 近海에서 北韓 半潛水艇 引揚에 成功했다. 水深이 147m였는데, 美國 海軍이 1990年代 初에 세운 水深 98m 船舶 引揚 記錄을 깨뜨리고 기네스북에 登載됐다. 飽和潛水 技法 外에 誘引潛水정이나 遠隔 水中探索 裝備를 갖춘 無人潛水艇(ROV)을 動員할 수도 있다. 技術的으로 全혀 問題없다. 海軍 SSU뿐 아니라 民間業體들도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863艦과 72程度 引揚할 수 있다는 건가.
    “863艦은 正確한 沈沒 位置만 알아내면 愁心과 鳥類 情報가 다 나올 테니 可能하리라고 본다. 引揚은 此後 問題이고, 一旦 船體가 어디에 가라앉았는지부터 探索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探索은 어렵지 않다. 海底探査龍 水中音波探知機 사이드 스캔 소나(Side Scan Sonar)로 알아낼 수 있다. 길이 2m짜리 物體도 찾아낸다. 그런데도 여태껏 探索할 努力과 試圖조차 하지 않은 게 問題다. 따라서 沈沒 船體 有無부터 探索한 後 狀態가 어떤지 確認하고 船體 或은 遺骨 引揚 與否를 決定하는 게 順序다. 船體 引揚이 힘들다면 遺骨이라도 건져야 한다는 얘기다. 72梃의 境遇는 簡單하다. 船體가 가라앉은 海域의 水深이 80~120m다. 그건 해도(海圖)에 나오니 確實하다. 引揚作業 期間은 30日假量이면 充分할 것이다.”
    ▼ 오랜 歲月이 흘러 船體와 屍身 狀態가 穩全하지 않을 텐데.
    “海軍이나 海警의 艦艇은 一般 船舶과 다르다. 좋은 鐵板을 써서 船體 腐蝕이 적다. 例를 들어 1905年 러·日戰爭 當時 鬱陵島 앞바다에 沈沒한 러시아 巡洋艦 돈스코이號의 境遇 100年 以上 지났는데도 腐蝕 狀態가 甚하지 않다. 바닷속은 空氣와의 接觸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또한 바닷물은 鹽度가 높고 東海의 水溫도 3~5℃로 일정하게 維持돼 屍身의 腐敗도 陸上보다 훨씬 더딜 수밖에 없다.”

    “流失 可能性 거의 없다”

    ▼ 수많은 海難救助 經驗을 통해 그런 일을 直接 겪어봤을 것 아닌가.
    “그렇다. 欲知島 近海에서 北韓 半潛水艇을 引揚할 때도 沈沒한 지 거의 1年 만이었는데, 屍身이 그대로 있었다. 地上에서 颱風이 불더라도 水深 20m 以上 바다 밑에 安着된 船體 안에 있으면 屍身은 保存된다.”
    ▼ 遺失됐을 可能性은.
    “863艦은 交戰 中 沈沒했으니 事件 當時 一部 屍身이 流失돼 引揚됐지만, 72定은 流失 可能性이 거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벌써 屍身이 發見됐어야 한다. 船舶은 選手(船首)끼리 부딪치면 가라앉지 않는다. 따라서 時間 餘裕가 있어 事故 當時에 人命을 救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船體와 屍身이 全혀 發見되지 않은 건 72情이 警備 交代 中 짙은 안개로 인해 다른 警備艇 207艦과 衝突하면서 船體 側面을 받혀 沈沒한 탓이다. 그럴 땐 船體에 구멍이 뚫려 몇 分 안에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天安艦과 비슷한 境遇라고 본다.”



    “屍身 引繼 前 稅收 시킨다”

    ▼ 引揚 與否는 政府 意志에 달렸을 것 같다.
    “863艦과 72梃의 乘組員들은 우리 領海를 지키려다 죽음을 맞았다. 나라를 위해 숨진 그들이 아직도 차디찬 바닷속에 收藏돼 있는데, 왜 政府는 찾으려 努力하지 않나. 第2延坪海戰이나 천안함 被擊事件으로 死亡한 將兵들에 對해선 國家的인 追慕 行事가 이어지지만, 30~40餘 年 前 숨진 海警과 義務·戰鬪警察들은 우리 모두 잊고 있다. 拉北된 지 올해로 42年이 되는 863艦 乘組員 2名의 生死 確認과 送還을 主張하는 외침 한 番 들어보지 못했다. 大韓民國은 海洋國家다. 그런 나라에서 海警은 우리 國民이 아닌가.”
    ▼ 海難救助 專門家로서 使命感이 큰 듯하다.
    “自負心이 있다. 1993年 처음 海難救助隊 大將을 맡자마자 292名의 死亡者를 낸 西海훼리호 沈沒事故와 맞닥뜨렸다. 當時로선 史上 最惡의 海難事故였다. 以後 무슨 運命의 장난인지, 每番 엄청난 海上 事件·事故를 잇달아 接하고 收拾하다보니 構造 노하우가 저절로 생겼다. 專門家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다.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와 部下들에게 이런 생각을 注入했다. ‘바다에서 궂은일 하면 福(福)이 온다’고. 그래서 바다에서 건진 屍身을 引繼할 땐 洗手부터 시켰다. 얼굴과 몸에 시커멓게 펄 흙이 잔뜩 묻은 家族의 屍身을 對하면 遺族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겠나.”
    朴槿惠 大統領은 顯忠日을 하루 앞둔 2014年 6月 5日 國家有功者와 遺家族들을 靑瓦臺로 招請한 午餐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晉氏가 “絶對 잊을 수 없다”는 말이다.
    “大韓民國이 오늘의 發展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自身의 生命까지 바쳐가면서 나라와 國民을 위해 獻身하셨던 많은 分의 崇高한 犧牲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나라를 위해 犧牲하신 분들의 崇高한 뜻이 永遠히 記憶되고 報答받는 나라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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