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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抵抗 DNA’ 내면화한 北 住民 끌어안아야|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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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抵抗 DNA’ 내면화한 北 住民 끌어안아야

脫北 ‘統一學 博士’의 ‘결이 다른’ 統一 視線

  • 주승현 | 민주평통 諮問委員, 政治學 博士(統一學) joosy3050@naver.com

    入力 2016-02-03 16: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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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人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몽골共和國을 떠올리겠지만 正答은 中國의 네이멍구(內蒙古)自治區다. 네이멍구 몽골人은 몽골共和國 몽골人보다 民族의 習俗을 더 많이 간직하고 산다. 그럼에도 中國 公民이라는 自負心이 크다. 몽골共和國이 아니라 中國을 祖國으로 選擇한 것이다. 北韓 住民이 韓半島의 새로운 統一國家에 同化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韓半島 北部가 네이멍구의 前轍을 밟을 수도 있다.
     北韓에서는 幼稚園 以前부터 어린이에게 樹齡 讚揚의 노래와 ‘우리의 所願은 統一’이라는 노래를 가르친다. 體制 存立의 求心點인 守令과 民族的 課題인 統一을 各各 正體性과 志向性으로 삼은 것이다.  
    脫北民人 筆者가 韓國에 와서 政治學을 통해 分斷과 統一을 工夫한 것은 어쩌면 當然한 選擇인지도 모른다. 非武裝地帶(DMZ)에서 北韓 軍人으로 勤務하며 分斷의 最前線을 目睹했고, 休戰線을 넘어 韓國에 와서는 現實을 통해 脫北者로서의 異物感을 맛보았다. 民族의 아픔은 且置하더라도 執拗하게 내 삶을 괴롭히는 分斷 트라우마와 分斷的 正體性을 克服하는 길은 統一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工夫했다.
    ‘統一’이라는 單語에 對한 韓國 社會의 認識은 내 豫想과 달랐다. 北韓에서 時도 때도 없이 부른 ‘우리의 所願은 統一’이라는 노래는 지난 10年間 宗敎行事와 脫北民 親睦모임에서 全體 合唱으로 두 番 부른 게 全部다. 그것 말고는 노래房에 가서 혼자서 딱 한 番 부른 적이 있다. 내가 統一을 얘기할 때 어느 瞬間 내게 쏟아지는 不便한 視線이 있음을 看破했고 漸次 그 意味를 깨달았다. 統一로 인해 왜 우리가 損害를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訴願의 目錄이 좋은 大學, 좋은 職場, 좋은 配偶者, 좋은 집, 좋은 삶으로 點綴되는 殺伐한 競爭社會에서 ‘우리의 所願은 統一’이라는 노래 歌詞가 들어앉을 空間은 없어 보였다.



    야누스의 두 얼굴, 統一  

    統一을 所望한다 함은 韓國 社會의 一員이 아님을 드러내는 잘못된 單隊號(單隊號) 같았으나 介意치 않았다. 學部와 大學院 全 過程에서 分斷과 統一 問題를 工夫해 우리나라에서 손꼽아도 몇 안 되는 統一學 博士學位를 받았다. 統一을 들여다보고 얘기하는 것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려워서인지 學位를 取得한 몇몇 先輩마저 다른 分野와 職業으로 발걸음을 돌렸으나 나는 愚直하게 統一을 붙잡았다. 그동안 公採로 여러 大企業에 入社했지만 꼬박꼬박 入金되는 月給보다는 ‘統一’이라는 單語가 주는 飽滿感이 훨씬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統一이라는 單語가 洑물처럼 터져 나왔다. 不過 얼마 前까지만 해도 統一 無用論과 統一 忌避論이 社會에 蔓延하고 薔薇빛 統一論은 現實 認識의 低級함과 虛荒함으로 置簿된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狀況만큼은 ‘正말 大舶’이었다. 政府는 勿論이고 政黨과 市民社會團體, 言論과 宗敎뿐 아니라 企業과 個別的 市民의 입에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統一이라는 낱말이 낯익고 친숙하게 오르내린다. 統一 關聯 硏究所의 이름과 세미나 消息을 하루가 멀다 하고 言論을 통해 接할 수 있으며 統一 關聯 金融商品까지 登場했다.



    갑작스러운 統一 붐

     왜 何必 只今 統一을 말하는가. 北韓 住民을 위해서? 아니면 未完의 光復이 70年을 지나서? 永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昨今의 問題에서 答은 ‘統一은 大박’이라는 標題에 있다고 본다. 굳이 에돌 것도 없다. 統一이 民族의 絶對的이고도 神聖한 義務이자 課題라는 命題 말고도, 全 世界가 直面한 危機와 混沌의 時代에 成長과 變化의 動力과 出口를 우리는 統一과 北韓 땅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緋緞 成長이 遲滯된 經濟뿐만 아니라 政治, 安保, 宗敎 等 全 領域을 包含한 地政學的·地境學的·지戰略的 觀點에서 統一은 韓國에 成長의 唯一한 活路이며 生存의 出口가 됐다.
    그러나 統一이 韓國에는 大박, 北韓에는 超大박日 것이라는 論理가 愚昧한 것으로 實證될 可能性도 存在한다. 筆者가 認識하는 分斷은 夫婦의 生離別이자 父母와 子息 間 헤어짐이다. 그리움, 懇切함이 統一을 所願하는 노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分斷 70年이 經過하면서 1000萬 離散家族은 漸次 사라져가고, 統一 노래가 울려 퍼지는 家庭도 찾아보기 어렵다. 비록 한 民族이지만 理念과 制度뿐 아니라 생각과 言語, 體型과 文化까지 딴판인 境遇가 많아 이제는 서로를 알기 위해 講義를 듣고 辭典을 뒤적거려야 한다.
    休戰線을 넘어오기 前 筆者는 DMZ에서 國軍이 내보내는 心理戰 放送을 制壓하는 要員으로 6年間 勤務했다. 韓國에서 보내는 對北 擴聲器 放送을 그 時間만큼 들으면서 服務한 것이다. 그때는 다른 건 몰라도 韓國의 情勢를 把握하고 日常的인 서울 말套를 쓰는 일에는 自身 있다고 確信했다.
    하지만 그런 確信은 歸順한 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날 저녁 KBS 뉴스를 보는 瞬間 알아들을 수 있는 單語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뉴스, 앵커, 野黨과 與黨, 슈퍼마켓과 같은 日常的 用語조차 처음 接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複雜하고 혼란스러워 10分 만에 TV를 꺼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DMZ에서 알아들은 內容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對北放送은 北韓 住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用語만 選擇해 내보낸 것이었다.





    서로 얼마나 알까?

    脫北民이 韓國에 와서 느끼는 言語 障壁은 생각보다 深刻하다. ‘개구쟁이’ ‘누룽지’ ‘서비스’ ‘치킨’李 北에선 ‘발개돌이’ ‘가마치’ ‘삯發이’ ‘닭酉찜’이다. 死線을 넘어왔지만 言語조차 理解 못해 學校 授業을 따라갈 수 없던 狀況을 두고 當時 나는 또 다른 死線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脫北民 親舊는 이런 現實을 悲觀해 自殺 試圖까지 했을 程度다.
    이러한 經驗을 한 터라 나는 지난해 脫北 學生의 言語 理解를 돕고자 南側 말을 北側 말로 轉換해주는 스마트폰 앱 開發에 參與했다. 南北韓 言語 飜譯 앱인 ‘글동무’를 만들면서 든 생각은 그동안 韓國 社會에 살면서 또 하나의 言語를 새로 배웠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民族을 規定하는 基本的 部分인 言語마저 이럴진대 다른 分野는 오죽하랴.
    韓國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事情은 비슷하다. 얼마 前 公職者를 對象으로 한 講義 幕間에 前날 다녀온 脫北民 定着施設 하나院에 對한 얘기가 나왔다. 하나院의 脫北民과 對話가 안 통해 그곳 職員들이 通譯을 해줬다며 ‘文明社會에 하루빨리 適應해야 한다’는 式의 對話가 오가는 걸 보고 우리 社會의 多少 一方的이고 偏向的인 意識도 矯正이 必要하다고 느꼈다. 勿論 韓國에 自發的으로 入國한 이들이 이 社會에 適應해야 한다는 데는 同意한다. 하지만 脫北民의 韓國 社會 適應만큼이나 그들에 對한 韓國 社會의 理解도 重要하다. 統一國家에서 北韓 住民에게만 韓國으로의 一方的 童話와 適應을 强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政治學科에 入學해 첫 授業에서 들은 避難民 出身 敎授님의 말씀이 아직도 腦裏에 남아 있다. “大韓民國에서 政治學의 中心과 目標는 分斷 克服과 統一에 있다. 政治學徒이든, 政治人이든 第1의 目標와 召命은 分斷된 나라를 統一하는 것이다. 統一을 이루지 못한 채 아무리 國際社會에서 國家의 發展과 文明을 얘기해본들 分斷 問題조차 解決 못하는 우리를 뒤에서 비웃는 現實을 잊어서는 안 된다.” 世界 唯一의 分斷國에서 最高의 目標는 統一 民族國家를 세우는 것이어야 하는데도 우리는 이 重要한 課題를 묻어버리고 살아온 게 아닐까.  
    統一學 博士인 筆者에게 사람들이 眞談 半, 弄談 半으로 자주 묻는 것은 大槪 統一이 언제쯤 될 것이냐다. 그다음은 ‘統一 後 잘나갈 職業’에 關한 것이다. 두 番째 質問에 答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첫 番째 質問에 對한 答은 아무래도 신중해야 한다.   

    統一 問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누가 統一을 主導하고 責任지느냐는 것이다. 冷靜하고 冷酷한 國際政治에서 分斷國이 對等한 狀況에서 合意統一을 이룬 事例는 거의 없다. 各各의 政府는 自身들의 思想과 體制로 統一하기를 固執하며, 이를 위해 힘의 主導權을 다투면서 統一을 이루려 하게 마련이다.



    ‘合意型 吸收統一’

    南과 北의 現實도 매한가지다. 結局 優越한 體制와 制度가 立證된 政府가 다른 한쪽을 說得하면서 統一을 ‘主導’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主導’와 ‘主體’는 嚴密하게 區分돼야 한다. 한쪽 政府가 다른 政府를 리드하며 統一을 ‘主導’할 수는 있지만, 統一의 ‘主體’는 南北韓 모든 住民이어야 한다. 結局 統一은 各各 主權者로서 自身들의 權利를 行使할 수 있는 投票權을 가진 個人들에 依해 決定되기 때문이다. 主體가 되지 못한 한쪽의 住民이 客體가 돼 自發的으로 二等市民으로 나앉을 理 萬無하다.
    統一의 方法도 마찬가지다. 여러 갈래의 方法論이 있지만 힘의 反映일 수밖에 없는 統一은 高潔하고도 感性的인 搜査로 채워진 統一 方案에 따라 進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可變的이면서 力動的인 하나 됨의 過程에서 南北 住民의 自由意思가 反映되지 못한 非民主的이고 一方的인 經路를 통한 統一은 衝突을 避할 수 없을 것이다.
    獨逸을 보자. “우리도 國民이다”라는 口號를 외치며 베를린 障壁 崩壞를 主導한 것은 東獨 住民들이다. “우리는 하나의 民族이다”라는 슬로건으로 統一 政府 構成에 投票한 主體는 桐·西獨 住民 모두다. 合法的 方式과 民主的 節次를 통해 東獨이 自身들보다 優越한 西獨으로 自發的으로 編入한 獨逸 統一은 우리가 생각하는 吸收統一이 아닌 ‘合意型 吸收統一’로 보는 게 맞다.
    東獨 住民이 選擇하고 西獨 住民이 呼應한 合意型 吸收統一의 成功 열쇠는 그 內容에 있다. 西獨으로의 編入을 選擇한 東獨 住民에게는 統一國家에서 同等한 主體로 待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希望이 있었고, 東獨 住民을 받아들인 西獨 住民은 獨逸 民族統一의 所望을 이뤄냄과 同時에 統一을 위해 經濟的 犧牲도 甘受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한 새로운 統一國家를 통해 獨逸 民族이 새롭게 跳躍하겠다는 洞·西獨 住民 모두의 希望이 統一 過程에 오롯이 담겼다.
    우리의 事情은 어떠한가. 統一을 主導한다면서도 主體인 南北 住民의 마음을 確保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特히 統一의 相對인 北韓 住民은 아예 考慮하지도 않는 듯하다. 過去 韓國에 온 數十萬 朝鮮族 同胞가 二等國民으로 差別받는 狀況을 目擊한 北韓 엘리트들이 그것이 統一 後 自身들의 未來로 생각하고 北韓 主導 統一에 더욱 極盛이었다고 한다. 最近에는 적지 않은 엘리트가 脫北하지만 大多數의 目的地는 韓國이 아니다. 美國, 中國, 유럽이 먼저이고 그다음으로 韓國을 行先地로 擇한다는 것이 엘리트 脫北民이 들려준 傳言이다.


    統一에 ‘統一’을 묻다

    過去와 달리 南韓 消息을 公公然하게 接하는 北韓 住民이 信賴하는 韓國 關聯 情報는 脫北民이 傳해주는 消息이다. 하지만 只今 北韓 社會에 異常한 所聞이 떠돈다고 한다. 大多數가 適應에 失敗한다거나, 差別과 偏見이 蔓延하고 利己主義가 得勢해 脫北民 相當數가 脫南海 海外를 떠돈다는 所聞이 그것이다. 北韓으로 되돌아간 脫北民이 이런 所聞을 確認해주는 役割을 하고 있다.
    지난해 韓國에 入國한 脫北民은 1088名이다. 2006年 2000名을 넘긴 後 2900名까지 늘어난 2009年과 比較하면 크게 줄었다. 脫北民이 줄어든 理由에 對해 專門家들은 大體로 金正恩 政權의 國境 統制 强化를 要因으로 꼽지만 그것만으로는 說明이 不足하다. 김정일 政權 때도 國境 統制가 허술하지 않았다. 다양한 角度로 分析해봐야겠지만 7~8年 前부터 北韓에 餓死者가 發生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볼 必要가 있다. 脫北民 大多數는 經濟的 理由에서 脫北한다. 따라서 北韓의 經濟狀況이 나아진다면 목숨을 걸고 脫北할 理由가 없어진다.
    또한 韓國에 定着한 脫北民의 어려운 삶에 對한 얘기가 傳해지고, 特히 먼저 定着한 이들이 家族, 或은 親戚의 脫北을 挽留하고 있다. 이러한 事情을 읽은 北韓 當局은 最近 ‘우리民族끼리’ 等의 사이트를 통해 現在 北韓이 天地開闢했으며 돌아오면 모든 것을 容恕해준다는 메시지를 繼續 내보낸다. 貧困과 差別, 剝脫의 傷處가 가득한 脫北民 失業者가 홀로 집에서 燒酒를 들이켜다가 北韓의 誘惑을 接하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노르웨이 出身 平和學者 요한 갈퉁은 “戰爭이 끝난다고 平和가 찾아오는 게 아니고,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戰爭보다 더 殘忍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分斷이 끝나고 韓半島에 到來할 統一은 또 다른 葛藤의 始作일 수도 있다. 地理的·物理的 分斷을 넘어 이념적 分斷으로 서로를 敵對하고 憎惡해온 춥고 어둡던 分斷史와 不信의 惡循環이 統一로 인해 거칠게 表面化할 公算이 크다. 統一의 課題는 統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統一로부터 始作될 수 있다고 筆者가 主張하는 까닭이다. 統一에 ‘統一’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3萬 名도 안 되는 脫北民은 韓國 人口 5100萬 名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런데도 우리 社會는 이들마저 껴안지 못하고 있다. 自發的으로 韓國에 들어온 脫北民의 事情이 이러한데 韓國에 對해 敵對感을 갖게 하는 敎育을 받고 成長한 北韓 住民이 統一國家에 同化되기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社會가 2500萬 北韓 住民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分斷 100年 안 되도록…”

    統一 問題를 工夫하면서 筆者는 北韓 住民의 正體性을 探究하거나 統一 以後를 對備한 硏究를 거의 보지 못했다. 一方이 主導하는 統一이 進行된다면 他方이 갖는 地域的, 抵抗的 正體性은 想像을 超越할 程度일 것이다. 特히 北쪽 地域이 갖는 歷史的 正體性은 抵抗的 正體性과 그 櫃를 같이한다. 몽골, 거란족, 隋나라와 唐나라 大軍을 비롯해 5000年 동안 約 1000回의 侵略을 물리친 抵抗의 後裔가 北쪽 住民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北韓은 近現代史의 注入式 敎育을 통해 꾸준하게 抵抗의 正體性을 鑄繰하고 내면화했다. 이를테면 美國 商船 제너럴셔먼호를 大同江에서 불태운 1866年을 近代史의 起點으로 한다든지, 日本 植民地 時期의 抵抗組織 ‘打倒帝國主義’를 結成한 1926年을 現代史의 起點으로 보는 視角은 우리의 近現代史와는 根本이 다르다.
    어디 그뿐인가. 6·25戰爭을 美國과 追從勢力의 侵略戰爭으로 規定한 것, 體制 存立의 70年을 帝國主義의 封鎖와 壓殺에 對抗한 歷史로 認識하는 것은 事實關係를 떠나 北韓 住民의 意識과 身體에 抵抗의 正體性이 오랫동안 耐火·强化돼왔음을 말해준다. 北韓 當局은 1月 6日 水素爆彈 實驗에 成功했다고 主張하면서도 ‘美國의 侵略’ 운운하며 抵抗의 正體性을 住民들에게 强調했다.
    萬若 統一 以後 昨今의 韓國 社會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差別과 排除가 繼續해 나타난다면, 北韓 住民이 賤民資本主義의 貪慾을 目擊한다면 이에 對한 反撥과 거센 抵抗이 衝突과 再分斷으로 불거져 大박의 未來를 한瞬間에 破壞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筆者는, 統一의 時期는 民族 構成員 모두가 진인사대천명의 姿勢로 臨할 때가 適期(適期)이며 그 至難한 過程에서 南北韓 住民이 同等한 主體가 될 때 眞正한 大舶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統一만이 모두가 살길이라고 主張하고 싶다. 分斷 環境이나 分斷的 사고 或은 統一 準備의 未備 等이 統一 意志를 沈潛케 하는 原因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더욱 나은 未來와 삶의 터전을 約束하는 統一의 目的性을 半減하는 絶對的 理由가 될 수는 없다. 統一은 最後의 分斷國家라는 汚名에서 벗어나 民族이 穩全히 回復되고 또한 우리가 只今까지 넘지 못한 富强한 先進國으로 가는 門턱을 넘게 할 唯一한 出口다.
    따라서 나는 모처럼 速力이 붙은 統一에 對한 關心과 熱望이 올해에도 繼續돼 統一의 그날까지 이어지기를 希望한다. 統一은 겉치레가 아니라 所重한 것을 더 以上 잃지 않으려는 切實함이다. 統一을 外面하다가는 民族의 雄飛와 未來를 保障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點을 아프게 생각해야 할 때가 只今이다. “分斷 100年이 되지 않도록 努力합시다.” 知人들과 나눈 올해 新年人事다. 

    ※筆者는 最年少 脫北人 博士다. 연세대 政治外交學科를 卒業하고 同 大學院에서 碩·博士學位를 받았다. 現在 民主平和統一諮問會議 諮問委員, 統一部 統一敎育院 및 명지대·서울신학대 講師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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