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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坐礁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新東亞

“천안함이 坐礁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

天安艦 映畫에 憤怒한 최원일 前 天安艦 艦長

  • 組成式 記者 │mairso2@donga.com

    入力 2013-09-24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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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表現의 自由 尊重하지만 거짓 坐視할 순 없어
    • 映畫 製作陣과 李石基가 어떻게 다른가
    • 北 潛水艦 攻擊 全혀 생각지 못했다
    • 목숨 걸고 映畫 上映 막겠다
    “천안함이 좌초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

    2010年 4月 7日 京畿 城南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記者會見에서 눈물을 흘리는 최원일 當時 天安艦 艦長.

    9月 4日 法院은 天安艦 事件 關聯 海軍 將校와 犧牲者 遺家族 5名이 낸 다큐멘터리 映畫 ‘天安艦 프로젝트’에 對한 上映禁止 假處分申請을 棄却했다. 表現의 自由를 認定해야 한다는 理由에서다. 그에 따라 이 映畫는 다음 날 全國 33個 劇場에서 上映됐다. 映畫 上映을 두고 贊反兩論이 이는 가운데 海軍과 遺家族은 “犧牲者들을 두 番 죽이는 일”이라며 憤痛을 터뜨린다. 다큐멘터리 映畫는 事實에 根據해야 하는데, 억지와 歪曲, 虛僞로 가득 찼다는 主張이다.

    ‘신동아’는 前 天安艦 艦長 최원일(45) 中領을 인터뷰해 무엇이 問題인지 짚어보기로 했다. 事件 以後 崔 中領이 正式 인터뷰에 應한 것은 이番이 처음이다. 海軍本部 側은 “여러 媒體에서 崔 中領 인터뷰를 要請했지만 新東亞에만 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얼굴을 내밀고 싶지는 않다”는 崔 中領의 뜻을 尊重해 인터뷰는 電話와 書面으로 進行됐다. 崔 中領은 現在 海軍敎育司令部 基準敎理處長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大體로 차분하게 意見을 말했으나 때로 激한 感情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숨 걸고 (映畫 上映을) 막겠다”는 表現에서 그의 切迫한 心情이 드러났다.

    ▼ 假處分申請 棄却에 對한 意見은.

    “一旦 法院 判決은 尊重한다. 그러나 46名의 所重한 部下를 잃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죽어도 이 映畫를 認定하지 못하겠다. 이 映畫는 우리 天安艦 將兵들과 遺家族을 精神的, 社會的으로 殺人하고 北韓의 挑發을 稀釋함으로써 大韓民國 젊은이들의 崇高한 兵役 義務를 價値 없게 만들었다.”



    ▼ 法院은 “映畫는 合同調査團 報告書와 다른 意見이나 主張을 表現한 것으로, 虛僞事實을 摘示해 申請人들의 名譽를 毁損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判示했다.

    “다큐멘터리는 事實을 基盤으로 해야 한다. 映畫를 보면 알겠지만, 신상철·이종인 두 사람 主張만 繼續 나온다. 政府 發表 內容은 極히 一部만 紹介하고 大部分 이를 反駁하는 內容이다. 客觀的 主張이 全혀 없다. 法院 判斷은 받아들이지만, 映畫 內容은 認定 못 한다. 抗告할 計劃이다.”

    “北韓 立場 正確히 代辯”

    “천안함이 좌초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

    다큐멘터리 映畫 ‘天安艦 프로젝트’를 둘러싼 論難이 繼續되고 있다.

    한국해양대 出身인 신상철 氏는 海軍 中尉로 勤務한 後 10年間 朝鮮海運業界에 몸담았다. 天安艦 民軍合同調査團에 參與했던 그는 事件 初期부터 只今까지 꾸준히 坐礁 疑惑을 提起해왔다. 映畫에서 申 氏는 天安函이 坐礁된 後 漂流하다가 國籍不明의 潛水艦에 부딪혀 沈沒했다고 主張한다. 이종인 알파潛水技術公社 代表도 坐礁를 確信한다. 李 氏에 따르면 천안함은 暗礁에 바닥이 긁힌 狀態에서 벌어진 틈으로 바닷물이 들어가 重力에 依해 切斷됐다는 것이다.

    崔 中領은 訴訟에 參與한 遺家族과 함께 法院 審理 過程에서 이 映畫를 봤다.

    ▼ 映畫를 본 所感은.

    “眞實 歪曲 次元을 넘어 (南韓) 自作劇이라고 主張하는 北韓 立場을 正確히 代辯한다. 우리를 魚雷로 攻擊했던 그들이 韓國 社會에서 沈沒 原因을 두고 自中之亂이 벌어진 걸 지켜보며 웃을 일을 생각하면 나와 天安艦 將兵들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 大韓民國 社會를 顚覆하려 하는 李石基와 映畫를 만든 製作陣이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다. 이 映畫는 天安艦을 攻擊하는 또 다른 北韓 潛水艦이며, 映畫 속 메시지는 魚雷와도 같다.”

    ▼ 무엇이 가장 큰 問題點인가.

    “無分別하고 無責任한 疑惑을 마치 事實인 것처럼 얘기해 나라를 위해 高貴한 犧牲을 한 將兵과 遺家族 名譽를 毁損한 것이다. 政府 公式 發表를 信賴하는 國民 생각을 혼란시키는 等 問題點이 많은 映畫이므로 決코 上映해선 안 된다. 特히 ‘12歲 以上 觀覽可’라는 게 問題다. 靑少年의 國家觀에 큰 混亂을 줄 것이 自明하다.”

    ▼ 그間 提起된 疑惑에서 더 進展된 內容이 있나.

    “全혀 찾아볼 수 없다. 이미 事實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신상철과 이종인의 虛荒된 主張을 事實인 것처럼 包裝하기 위해 다큐 形式으로 映畫를 製作했다. 다큐 形式이라고 主張하는데 客觀的 事實을 全혀 反映하지 않았다.”

    記者는 開封 첫날인 9月 5日 서울市內 한 劇場에서 映畫를 봤다. 저녁 前 午後 時間帶라 그런지 觀客은 적었다. 映畫에서 提起하는 疑惑의 核心은 坐礁다. 內容의 事實 與否를 떠나 다큐멘터리 映畫치고는 緻密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構成이 매우 허술하다. 專門家 意見도 貧弱하고 論理 展開도 엉성하다.

    “天安艦 바닥은 깨끗하지 않았다”

    ▼ 映畫는 坐礁 疑惑을 提起하는데.

    “映畫는 科學的으로 檢證된 民軍合同調査團 調査結果를 徹底히 否定하고 坐礁나 衝突에 依해 天安函이 沈沒했다고 主張한다. 國民이 이 映畫를 보고 그대로 믿는다면, 나를 비롯한 生存 將校들과 當時 指揮界線에 있던 海軍 將校들은 職務를 遺棄한 셈이고, 殉職 將兵들은 事故에 依해 死亡한 것으로 看做돼 名譽를 深刻하게 훼손당한다.”

    ▼ 배 밑바닥에 난 스크래치 자국이 坐礁의 한 證據라고 主張한다.

    “事故 6個月 前 두 番 修理를 하고 바닥에 페인팅을 해 깨끗한 狀態였는데 事故 以後 스크래치 자국이 났다고 主張한다. 全혀 事實이 아니다. 천안함은 2008年 10月 鎭海 修理窓에서 船底(船底) 페인팅을 했다. 以後 事件 날 때까지 한 적이 없다. 天安艦과 같은 哨戒함은 5~6年에 한 番 오버홀(overhaul·精密修理)을 받는다. 천안함은 2009年과 2010年에 한 番씩 自體 整備를 했다.”

    崔 中領은 소나돔(음파탐지기 덮개)과 關聯한 疑惑도 一蹴했다. 映畫에서 신상철 氏는 “배는 航海할 때 函數가 조금 뜬다”며 “배 바닥의 소나돔이 損傷되지 않았다고 坐礁가 아니라는 건 잘못”이라고 指摘한다. 崔 中領의 反駁이다.

    “軍艦은 느리게 가면 函數가 뜨지 않는다. 20노트(藥 37㎞) 以上 달릴 때만 函數가 0.5~1m 뜬다. 當時 天安艦 速力은 6.7노트였고 函數가 조금도 뜨지 않았다. 前提가 잘못된 억지 主張이다. 신상철 氏는 高速艇을 타본 經驗이 없는 사람이다.”

    天安艦 事件을 調査한 國防部는 김동식 當時 海軍 2艦隊司令官에 對해 停職 3個月의 懲戒를 내렸다. 懲戒 事由 中 하나가 ‘北韓 潛水艦이 基地를 離脫해 所在不明日 境遇 警備함은 機動速力을 12~15노트로 높이도록 한 作戰司令部의 指示를 傳播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當時 天安函이 低速 起動을 했음을 말해준다. 同時에 우리 軍이 北韓 潛水艦 關聯 情報를 入手하고도 對備態勢를 갖추지 않았음을 뜻한다.

    映畫에서 이종인 氏는 船舶 構造를 說明하면서 天安函이 낮은 水深에서 큰 暗礁에 부딪혀 龍骨이 切斷됨으로써 두 동강이 났다고 主張한다. 崔 中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反駁했다.

    “生存 將兵 58名 모두 事件 當時 爆發音을 들었다고 證言했다. 그리고 海軍 艦艇이 坐礁해 그런 式으로 切斷된 前例가 없다. 構造的으로 不可能하다. 軍艦 構造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數學的으로 안 맞는 主張”

    “천안함이 좌초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

    2010年 4月 24日 크레인으로 引揚돼 바지船 위에 올려진 天安艦 函數.

    映畫는 天安函이 水深 4.5m에서 坐礁했다고 主張한다. 이에 對해서도 崔 中領은 事實無根이라며 어이없어했다. 當時 천안함은 水深 4.5m에서 航海한 적이 없다는 것. 이는 航跡記錄이 立證한다고 한다. 映畫 속에서 이종인 氏는 天安函이 水深 4.5m에서 坐礁한 後 5~7分間 動力을 잃고 2.5㎞ 떨어진 地點까지 떠내려가 거기서 切斷됐다고 主張한다. 이에 對해 崔 中領은 科學的 根據를 들이대며 反駁했다.

    “新 氏 主張대로 6分間 2.5㎞(1.4마일)를 移動하려면 陷穽 速度가 14노트 以上이어야 한다. 坐礁된 狀態에서 無重力으로 어떻게 그 速度로 갈 수 있나. 數學的으로도 맞지 않는 主張이다.”

    1노트는 한 時間에 1마일(1.85㎞)을 가는 速力이다. 6分間 1.4마일이라면 60分, 卽 한 時間에 14마일을 갈 수 있다. 卽, 時速 14노트인 셈이다.

    ▼ 왜 愁心 낮은 白翎島 가까이에서 低速 機動했나.

    “천안함은 指示받은 作戰 區域에서 頂上 機動했다. 艦長 赴任 後 그때까지 16回 出動했는데, 그 區域만 8回 出動해 110日間 任務를 實施했다. 規定에 警備區域 내 平常時 機動速力은 艦長이 判斷하게 돼 있다. 事件 前날 風浪注意報가 發令돼 大淸島(白翎島 後方 섬) 뒤쪽으로 避港하기도 했다. 다음 날 날씨가 좋아져 다시 作戰區域으로 나왔는데 波高가 3.5m로 如前히 氣像이 좋지 않았다. 諸般 與件을 考慮해 機動速力을 決定했다.”

    天安艦 民軍合同調査團은 事故 地點의 水深이 47m라고 發表했다. 하지만 天安艦 作戰官 박연수 大尉는 法廷에 證人으로 나와 水深에 對해 “20m 안팎이었다”고 말해 論難을 일으켰다. 朴 大尉의 證言은 事件 初期 國防部 發表와 一致한다. 當時 國防部는 國會 國防委員會에서 “천안함은 白翎島 西南方으로 1.8㎞ 떨어진 水深 24m 海域에서 事故가 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以後 合同調査團은 天安函이 水深 47m 支店에서 沈沒했다고 發表했다. 距離를 計算해보면 白翎島에서 2.5㎞ 떨어진 海域이다. 白翎島에서 가까울수록 水深이 낮을 수밖에 없다. 水深이 낮으면 暗礁에 부딪힐 可能性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天安艦 坐礁說을 主張하는 사람들에게 朴 大尉의 證言은 뜻하지 않은 ‘好材’였다.

    ▼ 沈沒 當時 水深이 正確히 얼마인가. 天安艦 作戰官의 말이 다른데.

    “作戰觀이 正確한 數値가 기억나지 않아 그렇게 말한 것이다. 當時 天安函이 機動한 作戰區域 水深은 조금씩 다르다. 여기에 對해선 合同調査團이 正確히 調査해 發表했다.”

    映畫는 이와 關聯해 潛水艦 專門家로 통하는 在美科學者 안수명 博士의 證言을 紹介한다. 安 博士는 “獸心 20m에서 天安函이 潛水艦에서 發射된 魚雷에 맞을 可能性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天安艦 吃水(2.9m)를 勘案하면 潛水艦이 魚雷攻擊을 하기에 너무 좁은 空間이라는 것이다. 崔 中領은 이에 對해 “獸心 20m에서도 얼마든지 魚雷 攻擊이 可能하다”고 反駁하면서 “映畫엔 科學者 見解보다 軍人 見解를 넣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對潛 警報 없었다”

    ▼ 천안함이 TV 視聽과 圓滑한 携帶電話 通話를 위해 白翎島 가까이로 接近했다는 疑惑도 提起됐는데.

    “몰라서 하는 얘기다. 요즘은 모든 陷穽에서 衛星으로 TV를 본다. 陸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TV가 잘 나온다. 携帶電話 얘기도 말이 안 된다.”

    ▼ 當時 合參이나 海軍 指揮部에서 北韓 潛水艦 機動에 關한 情報를 傳播하거나 潛水艦 攻擊에 對備하라는 指示를 내린 적이 있나.

    이 質問에 그는 곤란하다는 듯 망설이다가 “없었다”고 말했다.

    ▼ 當時 西海에선 韓美聯合 對潛(對潛)訓鍊이 進行됐다. 天安艦 機動은 이와 상관없는 것이었나.

    “全혀 상관없었다. 聯合訓鍊 場所는 事故 海域에서 南쪽으로 200㎞ 가까이 떨어진 곳이다.”

    ▼ 天安艦 같은 中型級 軍艦이 白翎島에 近接해 水深이 낮은 곳에서 低速 機動한 것은 잘못된 作戰 아니었나.

    “敵의 誘導彈과 海岸砲 威脅에 對備하기 위해서였다.”

    ▼ 潛水艦 攻擊에 脆弱한 機動이었다.

    “結果論的인 얘기다. 當時로선 最上의 作戰이었다.”

    ▼ 合參 指示였나.

    “바로 위에서 指示받았다. 北韓의 監視·打擊手段으로부터 遮蔽하기 爲해 白翎島의 地形的 利點을 利用해 近接 起動한 것이다.”

    ▼ 北韓의 潛水艦 攻擊 可能性을 생각한 적이 있나.

    “全혀 생각지 못했다.”

    그는 “沈沒 當時 狀況을 말해달라”는 要請에 “말하고 싶지 않다. 映畫 內容에 對해서만 얘기하자”며 不便한 氣色을 드러냈다.

    ▼ 처음에 2艦隊司令部에 坐礁라고 報告한 理由는.

    “通常的 次元에서 말한 것이다. 狀況을 說明하기 힘들고 構造가 優先이니 坐礁라고 表現했을 뿐이다. 道路에서 交通事故 나면 事故 原因을 糾明하는 것보다 人命構造가 急하지 않나.”

    ▼ 魚雷 攻擊이라고 判斷한 理由는.

    “艦尾가 없어진 걸 보고 그렇게 判斷했다. 느낌이 그랬다.”

    ▼ 艦尾가 안 보였을 때의 心情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只今 이렇게 말하는 것이 몹시 힘들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疏通한다면서 一方 主張만”

    “천안함이 좌초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

    3月 27日 白翎島 隣近 天安艦 爆沈 海域에서 열린 天安艦 46勇士 海上 慰靈祭에서 遺家族들이 嗚咽하고 있다.

    ▼ 映畫는 天安艦 將兵 構造와 引揚作業이 故意的으로 늦게 이뤄졌다는 疑惑을 提起한다.

    “救助作業이 늦어진 데는 그만한 理由가 있다. 關聯 裝備와 배가 다 鎭海에 있다. 거기서 올라오니 時間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事故 海域은 是正이 짧고 물살이 빨라 潛水夫들이 엄청 苦生했다. 限界水深을 뛰어넘어 목숨 걸고 構造에 나섰다. 自己 子息이 죽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거다. 强盜가 侵入해 사람이 죽었는데 自作劇이라고 主張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 自作劇이라니?

    “政府 次元에서 보면 그렇다. 南韓의 自作劇이라는 北韓 主張에 同調하는 것이니.”

    ▼ 沈沒에 對해 艦長으로서 어떤 責任을 느끼나.

    “사랑하는 部下 46名이 犧牲된 데 對해 指揮官으로 當然히 責任을 느낀다. 그러나 天安艦 將兵은 平時 對備態勢 狀況에서 各自 맡은 任務를 徹底히 遂行하고 주어진 狀況과 條件에서 最善을 다했다. 잘 알다시피 천안함이 保有한 소나 體系로는 潛水艦 探知가 어렵고 音響航跡魚雷를 막는 것이 現實的으로 不可能하다.”

    ▼ 映畫는 ‘疏通’을 强調한다.

    “製作社 側은 우리 社會의 硬直性을 알리기 위해 映畫를 만들었다고 主張한다. 하지만 정작 自身들은 疏通을 위한 努力을 全혀 안 했다. 映畫 속 어디에도 國防部 意見이나 閔君合同調査團의 調査結果를 提示하지 않는다. 疏通을 위한 映畫라면 政府 見解를 반드시 反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現在 天安艦 生存 將兵 58名 中 23名이 轉役했다. 崔 中領이 多少 激昂된 목소리로 말했다.

    “萬若 映畫에서 提起한 疑惑이 事實이라면 轉役한 將兵들이 가만히 있겠나. (只今은) 民間人인데. 그 입을 어떻게 다 막을 수 있겠나. 그리고 내가 무슨 廉恥로 살아남을 수 있겠나. 生存 將兵들은 事故 以後 飮食을 먹으면 吐하고 잠을 제대로 못 자는 苦痛을 겪었다. 映畫는 殉職한 天安艦 將兵들을 두 番 죽인다. 只今도 똑같은 環境에서 勤務하는 將兵은 뭐란 말인가. 坐礁라면 내가 나오자마자(구조되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2月에 父親이 돌아가셨다. 海軍 水兵 出身인 父親은 天安艦 事件에 衝擊을 받아 드러누웠다. 遺家族은 映畫 內容에 손발을 부들부들 떤다. 그 心情이 오죽하겠나.”

    ▼ 生存 將兵들은 映畫에 對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제도 몇몇 將兵과 通話했다. 映畫에 對해선 다 나하고 같은 생각이다. 다들 憤慨한다. 하지만 現役 身分이니만큼 나서지 말고 熱心히 勤務나 하라고 激勵했다. 正말 抑鬱하고 悲痛하다. 피눈물이 난다. 나를 비롯해 生存 將兵들은 1年間 調査를 받았다.”

    映畫人들의 抗議

    그는 “李石基 事態를 보면서 이 映畫와 같은 脈絡이라고 생각했다”며 天安艦 事件에 對해 疑惑을 提起하는 사람들을 從北勢力과 同一視했다.

    “李石基처럼 韓國 社會를 분열시키는 映畫다. 목숨 걸고 이 映畫를 막겠다. 表現의 自由는 尊重받아야 하지만 거짓이 판치는 걸 내버려둘 순 없다.”

    9月 7日 메가박스는 映畫 ‘天安艦 프로젝트’의 上映 中斷을 決定했다. 開封한 지 이틀 만이다. 메가박스 側은 “一部 團體의 剛한 抗議 및 示威 豫告로 인해 觀覽客 間 現場 衝突이 豫想돼 一般 觀客의 安全을 保障하기 위해 不得已하게 配給社와 協議해 上映을 取消하게 됐다”고 밝혔다.

    映畫 製作陣과 製作·配給社는 9日 緊急記者會見을 열어 이 事態에 對한 憂慮를 나타냈다. 會見에는 韓國映畫人會議, 韓國映畫監督組合, 韓國映畫製作家協會 等 12個 映畫團體 關係者들이 參席했다. 이들 團體는 眞相糾明委員會를 發足해 이番 事件의 原因을 糾明하고 메가박스 側에 映畫 再上映을 要求하기로 決意했다. 이에 앞서 韓國映畫評論家協會는 聲明을 發表해 “上映 中인 映畫는 政治的 理由로 中斷될 수 없다”며 “메가박스는 卽時 ‘天安艦 프로젝트’를 上映하라”고 促求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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