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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寶石’ 캐내는 新進 技藝 養成所|新東亞

富者와 美術館

‘숨은 寶石’ 캐내는 新進 技藝 養成所

해머 美術館

  • 최정표 | 건국대 經濟學科 敎授 jpchoi@konkuk.ac.kr

    入力 2016-03-25 13: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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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머 美術館은 1年 내내 講演, 音樂會, 映畫 上映 等 無料 이벤트를 줄기차게 마련한다. 企劃展, 常設展度 空짜다. 고흐 等 印象派 名作에서부터 新進 作家들의 個性 넘치는 作品까지 다양하게 鑑賞할 수 있다.
    • LA 地域 藝術家들을 위한 비엔날레도 연다. 大學 附設 美術館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보면 안 된다.
    美國이나 유럽 大都市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美術館이 많다. 그中에는 ‘숨은 寶石’이라 할 곳이 여럿이다. 特히 大學 附屬 美術館을 注目할 만하다. 名門大로 꼽히는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A) 附設 美術館인 해머 美術館(Hammer Museum)도 그런 境遇다. 事業家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1898~1990)가 1990年에 세운 곳인데, 1994年 UCLA로 運營權이 넘어갔다. UCLA 캠퍼스 바로 옆, 윌셔 불러바드(Wilshire Boulevard)에 있다.

    아먼드 해머는 美國 最大 石油會社 中 하나인 玉豉덴털 페트롤리엄(Occidental Petroleum Corporation) 社長을 지낸 人物. 그는 2億5000萬 달러(約 3000億 원)에 相當하는 個人 蒐集品을 展示하고자 해머 美術館을 세웠다. 그는 20年 가까이 LA카운티 美術館 理事를 지내며 自身의 蒐集品을 이 美術館에 寄贈하기로 約束했다. 하지만 作品 所有權 및 展示 方法 等에서 서로 意見이 맞지 않아 約束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해머는 1988年 會社 建物 옆에 獨立 美術館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工事 中에 會社 株主들이 反對하고 나섰다. 建築費가 繼續 增額됐기 때문이다. 株主들의 訴訟으로 法院은 ‘建築費가 6000萬 달러를 넘지 않도록 한다’고 決定했고, 이에 따라 美術館도 無事히 完工됐다.



    展示 折半을 女性 作家에게

    美術館은 1990年 開館했다. 그런데 한 달 後 해머가 死亡한다. 以後 美術館은 運營資金, 해머의 財産 處理 問題 等으로 各種 訴訟에 휘말렸다. 運營資金은 해머가 내놓은 3600萬 달러 相當의 收益資産으로 調達하는 것으로 結論 났지만, 美術館 所藏品 所有權과 遺家族의 役割 및 權限 問題는 解決되지 않았다. 이에 1994年 UCLA가 運營權을 引受하면서 美術館은 安定的인 支配構造를 마련하게 된다. 아먼드 해머 財團(Armand Hammer Foundation)은 ‘UCLA가 99年間 運營權을 맡는다’는 데 同意했다.



    UCLA는 旣存의 附設 美術館인 와이트 갤러리(Wight Art Gallery)와 그룬왈드 繪畫藝術센터(Grunwald Center for the Graphic Arts)를 해머 美術館에 歸屬시켰다. 또한 해머 財團이 所藏品과 收益財産에 對해 일정한 權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大學 側이 해머 財團의 權限을 縮小하려고 나서면서 摩擦이 빚어졌다. 美術品의 元所有者가 緣故權을 抛棄하지 않는 限 大部分의 美術館은 이런 紛爭에 휘말리곤 한다.

    2007年에 와서야 大學 側과 해머 財團은 새로운 合意에 이르렀고, 美術館 運營도 安定 軌道에 들어섰다. 兩側은 美術館 設立의 基礎가 된 195點 中 92點을 財團이 所有하고, 나머지 103點은 美術館이 所有하기로 했다. 92點의 價値는 5500萬 달러, 103點의 價値는 2億5000萬 달러라고 한다. 아울러 美術館이 所有한 5500萬 달러 相當의 有價證券 等을 利用해 UCLA가 2020年까지 美術館 建物을 사들이기로 했다. 展示 空間 擴充 等에 對해서도 圓滿하게 合意했다. 

    以後 美術館은 繼續 擴張돼 1年 豫算이 500萬 달러에서 2000萬 달러로까지 增加했고, 正規 職員도 100名 以上으로 늘었다. 運營資金은 美術館 所有 收益資産, UCLA 藝術 分野 豫算, 寄附金, 會費 等으로 充當한다. 大學이 支援하는 金額은 運營資金의 10% 안팎이다. 美術館은 每年 彫刻庭園에서 募金을 위한 宴會(Gala Event)를 開催한다. 2014年에는 宴會에서 250萬 달러를 募金했다. 2013年 美術館 觀覽客은 20萬 名에 이르렀다. 主 顧客은 藝術家들이라고 한다.

    해머 美術館은 年中 끊임없이 다양한 行事를 開催하는 것으로 有名하다. 一週日에 6日假量 夜間 行事를 열 程度다. 各種 敎育 프로그램부터 講演, 讀書會, 심포지엄, 映畫 上映, 音樂會 等이 열리는데 大部分 無料다. 企劃展, 常設展度 無料다. 2006年에는 300席을 갖춘 빌리 와일더 劇場(Billy Wilder Theater)을 마련해 各種 行事는 더욱 活氣를 띠게 됐다. 빌리 와일더는 有名한 유대系 美國人 저널리스트이자 映畫監督으로, 그의 아내가 500萬 달러를 寄附해 이 劇場을 세웠다.



    Made in LA

    1990年 11月 28日, 해머 美術館은 開館 記念 展示로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個人展을 열었는데, 以後 有名 同時代(Contemporary) 作家의 個人展을 여는 것이 慣例가 됐다. 그間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作家를 再照明하고 이들에게 名聲을 안겨주는 機會가 됐다. 代表的인 事例가 2003年의 本테코(Lee Bontecou) 回顧展이다. 해머 美術館은 折半 以上의 展示를 女性 作家에게 割愛하고, 매우 創意的인 海外 및 地方 作家에게도 展示 機會를 提供한다.
     
    2010年에는 ‘Made in LA’라는, 로스앤젤레스 藝術家만을 위한 비엔날레를 만들었다. 2012年에 첫 開催된 비엔날레에 60名의 作家가 參與해 해머 美術館을 비롯한 LA 여러 곳에서 行事가 열렸다. 이 비엔날레는 作家에게 現金 10萬 달러를 授與하는 ‘Mohn Award’를 만들었는데, 個人 作家에게 주어지는 國際的으로 가장 큰 額數의 賞이다. 2014年 2回 ‘Made in LA’에서는 Morn Award 外에도 賞金이 各各 2萬5000달러인 ‘Career Achievement Award’와 ‘Public Recognition Award’를 授與했다. 賞金 大部分은 이 地域 有名 富者 컬렉터 파멜라 몬(Pamela Mohn)과 몬 家門 財團(Mohn Family Foundation)으로부터 寄附받는다.

    아먼드 해머는 美國 財界 및 政界에 莫强한 影響力을 行使한 巨物이다. 그는 컬럼비아大 醫大 出身의 醫師였지만, 곧 事業에 뛰어들어 엄청난 富를 蓄積했다. 그는 蘇聯의 權力者들과 特殊關係를 維持하며 1921年부터 10餘 年間 蘇聯을 來往했는데, 이러한 履歷이 事業의 밑천이 됐다. 蘇聯과의 貿易을 통해 많은 富를 쌓아올린 해머는 이런 過程에서 二重 스파이란 誤解를 받았고, 情報 當局으로부터 監視를 받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出身의 유대人 父母를 뒀기에 胎生的으로 蘇聯과 特殊關係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醫師였는데, 醫藥品 關聯 事業을 하면서 蘇聯에 醫藥品과 化學製品을 팔았다. 아버지가 一連의 犯罪 嫌疑로 拘束된 後 아들들이 아버지의 事業을 이어받아 크게 성공시켰다. 해머는 레닌을 直接 만났을 만큼 事業 手腕을 發揮하며 美國 製品과 蘇聯 製品을 適切하게 交易했다. 해머는 冷戰 以後에도 蘇聯 및 東歐圈 國家들과의 關係를 이어나갔다.

    해머는 1957年 美國에서 가장 큰 石油會社 中 하나인 玉豉덴털 페트롤리엄의 最高經營者가 됐고, 죽을 때까지 이 會社를 支配했다. 이 時期에 그는 유럽 印象派 및 後期 印象派 作品을 特히 많이 蒐集했는데, 이들 作品이 後날 해머 美術館을 세우는 ‘種子’가 됐다.

    그는 有力 政治人들과도 交流가 깊었다. 닉슨 大統領에게 많은 後援金을 냈고, 앨 고어 副統領과는 매우 가까운 親舊 사이였다. 敎育, 醫療, 藝術 分野에서 다양한 慈善事業을 벌였고, 노벨平和賞 候補로도 오르내렸다. 1986年 ‘포브스’誌는 그의 純 財産이 2億 달러라고 報道했다.

    美術館은 所藏品을 다섯 部門으로 나누어 管理한다. ①그룬왈드 센터(Grunwald Center for the Graphic Arts) ②조각庭園(Franklin D. Murphy Sculpture Garden) ③해머 컬렉션(Armand Hammer Collection) ④도미에 컬렉션(Daumier and Contemporaries Collection) ⑤해머 同時代 컬렉션(Hammer Contemporary Collection)이다.


    ‘諷刺의 巨匠’ 도미에 作品 多量 所長


    그룬왈드 센터는 4萬 點이 넘는 版畫, 드로잉, 寫眞, 作家 스케치북, 作品 아카이브 等을 保有했다. 르네상스 時代부터 現在까지의 作品이 網羅돼 있다. 렘브란트, 피카소 等의 作品은 勿論 우키요에 等 日本 에도 時代 版畫 作品도 볼 수 있다.

    1967年 만들어진 彫刻庭園에는 칼더, 마티스, 湖岸 迷路, 헨리 무어, 이사무 노구치, 로댕, 데이비드 스미드 等 有名 作家들의 70點 넘는 彫刻 作品이 展示돼 있다. 해머 컬렉션은 이름 그대로 해머의 蒐集品이다. 規模는 크진 않지만, 해머가 數十 年에 걸쳐 嚴選한 유럽 및 美國의 名品들로 構成돼 있다. 렘브란트, 고야, 모로, 고갱, 고흐 等의 作品이 包含됐다.

    都彌에 컬렉션은 19世紀 프랑스 版畫家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의 作品과 當時 揷畵 作家들의 作品으로 構成돼 있다. 해머 美術館이 所藏한 도미에 作品은 7500餘 點으로, 프랑스를 除外하고 가장 많은 도미에 作品을 갖고 있다. 渡美에는 ‘캐리커처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린 當代 最高의 캐리커처 作家로, 主로 부르주아, 政治人, 貴族들의 僞善을 諷刺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美術館이 所藏한 도미에 作品 中 꼭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돈키호테와 산초 板子’(Don Quixote et Sancho Panza·1866~1868)다. 돈키호테 小說의 內容을 그대로 聯想시킨다.

    渡美에는 프랑스 南部 마르세유에서 가난한 琉璃職工의 아들로 태어났다. 8歲  때 파리로 移住해 正規 學校에 다니지 못한 채 어려운 幼年 時節을 보냈다. 藝術에 남다른 才能을 보여 暫時 美術 敎育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獨學으로 工夫했다.

    그는 時事漫畫家(caricaturist)로 名聲을 떨쳤다. 社會를 諷刺하고 權力을 批判하는 揷畵를 많이 그려 大衆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루이 필립 王을 批判한 揷畵 때문에 6個月間 獄살이를 했다. 末年에는 實名(失明)하는 不運을 겪었다.

    해머 同時代 컬렉션은 1999年부터 현대 및 컨템퍼러리 作品을 對象으로 作品 蒐集을 하는데, 最近 들어 所藏 作品 數가 빠르게 增加하고 있다. LA 地域 美術愛好家들의 後援 德分이다. 2012年에는 오랜 期間 美術館을 後援해온 篤志家 2名이 第2次 世界大戰 以後 作品 150點을 寄贈했다. 여기에는 잭슨 폴록, 빌렘 드쿠닝, 필립 거스桶 等 美國의 1世代 抽象表現主義 作家들의 作品들이 있다.



    ‘코덱스 해머’의 運命

    해머 美術館에서는 고흐 作品도 만나볼 수 있다. 그中 한 點인 ‘생레미 病院’(Hospital at Saint-Remy, 1889)은 고흐가 고갱과 크게 다툰 後 생레미에 있는 精神病院에 入院해 있을 때 그린 作品이다. 고흐가 自身의 傑作 ‘별이 빛나는 밤’(뉴욕현대미술관 所長)을 그린 곳이 생레미 病院이다. 렘브란트의 ‘검은 帽子를 들고 있는 男子’(Portrait of a Man Holding a Black Hat, 1637)도 눈여겨봐야 할 作品이다. 렘브란트는 自畫像을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도 그中 하나다. 亦是 해머의 蒐集品이다.

    해머가 가장 자랑한 蒐集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自筆로 쓴 科學 空冊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다. 그는 이를 1980年 競賣에서 512萬 달러에 사들였다. 이 空冊은 18張이 半으로 접혀져 앞뒤에 글이 쓰여 있기에 모두 72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빈치가 쓴 30餘 個의 저널 中 가장 有名한 것이다. 해머는 이 空冊을 사들인 後 그 이름을 ‘코덱스 해머(Codex Hammer)’로 바꿨다.

    하지만 美術館은 運營資金을 마련하기 위해 1994年 11月 뉴욕 크리스티 競賣에 이 空冊을 내놓았고, 빌 게이츠가 3080萬 달러에 落札받았다. 自然히 이름도 ‘코덱스 레스터’로 還元됐다. 빌 게이츠는 다 빈치의 遺産을 마이크로소프트 弘報에 有益하게 利用하고 있다. 



    崔 情 票


    ● 1953年 慶南 河東 出生
    ● 美國 뉴욕주립대 博士(經濟學)
    ● 公正去來委員會 非常任委員,  建國大 상경大學長
    ● 著書 : ‘經濟民主化, 政治人에게 맡길 수 있을까’ ‘財閥들의 特別한 外道’
       ‘韓國財閥社硏究’  ‘公正去來政策 虛와 실’ ‘韓國의 그림價格指數’ 等
    ● 現 건국대 經濟學科 敎授, 經實聯 共同代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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