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事件
(
말레이語
:
Peristiwa 13 Mei
,
中國語
:
五一三事件
)은
1969年
5月 13日
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에서 勃發한
말레이族
과
中國系 말레이시아人
間의 人種 暴力 事件이다. 이 事件의 씨앗은 1969年 5月 10日에 치러진
1969年 말레이시아 總選
에서
民主行動黨
(DAP)과
말레이시아 民衆運動當
等 中國系 支持 政黨의 躍進이었다.
公式 死亡者는 196名으로 大部分 中國系가 犧牲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國際 言論 消息通 等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600名이 死亡했다고 報道하기도 했다. 當時 말레이시아의
量 디페르투안 아공
人
이스마일 나시루딘
은 國家非常事態를 宣布하고 그 結果
말레이시아 議會
의 機能이 停止되었다. 議會가 停止되면서 1969年부터 1971年까지 一時的으로 말레이시아 統治를 위해 臨時 政府機構인
國家運營委員會
(NOC)가 運營되었다.
이 事件은 말레이시아 招待
總理
툰쿠 압둘 라만
이 與黨
統一말레이國民組織
內部에서
압둘 라자크 후세인
에게 權力을 移讓할 것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政治史에서 重要한 事件으로 評價받는다. 새로 總理에 오른 압둘 라자크 후세인은 新經濟政策(NEP)을 施行하여 國內 政策을 말레이인에게 유리한 方向으로 轉換했고 "
케투아난 멜라油
(말레이의 霸權)"으로 잘 알려진 말레이인 優越主義 이데올로기에 따라 말레이인의 權力을 强化하기 위해 政治 體系를 再構成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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