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大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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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大勢
個人 情報
로마字 表記 Jong Tae-Se
出生日 1984年 3月 2日 ( 1984-03-02 ) (40歲)
出生地 日本 아이치縣 나고야詩
180cm
포지션 스트라이커
靑少年 球團 記錄
1997-1999
1999-2002
度슌조선초중급학교
아이찌朝鮮中高級學校
大學팀 記錄
鳶島 出戰 (得點)
2002-2005 朝鮮大學校
球團 記錄*
鳶島 球團 出戰 ( 得點 )
2006-2010
2010-2012
2012
2013-2015
2015-2020
2020
2021-2022
가와사키 프론탈레
VfL 보훔
FC 쾰른
水原 三星 블루윙즈
시미즈 에스펄스
알비렉스 니가타 (賃貸)
마치다 젤非我
112 0 (46)
0 39 0 (14)
0 10 0 0 (0)
0 72 0 (23)
106 0 (45)
0 26 0 0 (9)
0 77 0 (11)
通算 442 (148)
國家代表팀 記錄
2007-20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0 33 0 (15)
* 球團의 出戰回數와 得點記錄은 正規 리그의 公式 리그 競技 記錄만 集計函.

正大勢 (鄭大世, 1984年 3月 2日 ~)는 大韓民國 의 蹴球人이자, 放送人이다. 大韓民國 國籍을 지닌 在日 韓國人 3歲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代表팀 에서 뛰었으며 人民 루니 [1] , 人間 불도저 [2] 等의 別名으로 알려져 있다.

球團 經歷 [ 編輯 ]

2006年 도쿄都 에 있는 朝鮮學校 朝鮮大學校 를 卒業하고, 가와사키 프론탈레 에 入團했다. 팀에서 9番을 달고 攻擊手로 뛰었고, 데뷔 하던 해 7月 19日 가시마 앤틀러스 戰에서 리그 첫 골을 記錄했다.

2010年 7月 正大勢는 獨逸 2部리그 팀 VfL 보훔 으로 移籍하였다. [3] 보훔에서 뛴 첫 시즌 팀은 昇格 플레이오프에 進出하였지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에게 敗하며 팀은 昇格에 失敗하였고 正大勢는 1部 리그 進出이 挫折되었다. 2012年 1月 겨울 移籍 市場에서 FC 쾰른 으로 移籍을 하며 1部리그에 進出을 하였다. 그러나 主戰 選手들에게 밀려 많은 出張을 하지 못했다. 팀은 분데스리가 17位를 記錄하여 降等되었다. 팀이 降等되며 正大勢는 다시 2部리그의 選手가 되었다.

2012年 시즌이 中盤을 넘어서는 現 狀況에서 出戰을 全혀 하지 못한 狀況에 挫折하며 K리그 클래식 으로 進出을 念頭에 둔 狀況에서 2013年 1月 2日 水原 三星 블루윙즈 와 移籍을 合意하였다.

2015年 7月 12日 釜山 과의 遠征 競技를 끝으로 水原 三星 블루윙즈 를 떠나 시미즈 에스펄스 로 移籍했다. 그 後 水原 三星 블루윙즈 는 그의 空白을 메울 代替字로 불가리아 出身 攻擊手인 日里얀 미찬스키 를 迎入하였다.

2021 시즌을 앞두고 FC 마치다 젤非我 에 入團했다.

2022 시즌 終了 後 現役 隱退를 宣言했다. [4]

國家代表팀 經歷 [ 編輯 ]

2007年 東아시아컵 豫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代表로 뽑혔으며, 이듬해 열린 本選에서 日本과 大韓民國을 相對로 各各 1골을 記錄했다.

以後에도 繼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蹴球 國家代表팀 에서 꾸준히 活躍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55年만에 월드컵 本選進出을 할 수 있게 寄與했다. 以後 2010年 FIFA 월드컵 에 拔擢되어 組別豫選 3競技를 全部 選拔出戰했고 비록 팀은 最下位로 탈락했지만 홍영조 , 지윤남 等과 함께 空輸 方面에서 印象的인 活躍을 선보였다.

特히 組別豫選 첫 競技인 브라질 戰에서 國歌를 부르던 中 눈물을 흘렸는데 이 눈물은 인터넷에서 뜨겁게 話題가 된 바 있다.

기타 [ 編輯 ]

國籍 [ 編輯 ]

大韓民國 國賊으로 日本의 外國人 登錄이 되어있고 大韓民國 旅券을 가지고 있지만 國家代表팀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代表팀 으로 出戰했다.

正大勢는 日本의 外國人 登錄에 祖父母는 大韓民國 國籍과 日帝 强占期 解放 前 朝鮮의 國籍, 둘 中 하나를 選擇할 수 있는 機會를 얻은 狀況에 日本 에서 태어났고 正大勢의 아버지는 大韓民國 國籍으로, 어머니는 朝鮮的으로 登錄했으며 이에 따라 情大勢는 大韓民國 國籍으로 登錄되어 大韓民國 旅券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日本에서 朝鮮學校 에 다니며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朝總聯)系의 影響을 받았고 北韓이 2006年 FIFA 월드컵 아시아 地域 最終 豫選 에서 日本에게 지는 모습을 본 後에 北韓 蹴球 國家代表팀에서 뛰기로 決定했다.

하지만 大韓民國 國籍으로 登錄된 正大勢는 北韓 代表로 뛸 수가 없었고 兩側 憲法上으로는 모든 大韓民國 國民은 出生時부터 北韓 國民이고 反對도 成立하지만 FIFA에서 이를 認定해 그를 北韓 國家代表로 認定할지가 不確實했다.

그러다 在日朝鮮人蹴球協會의 도움 속에 國際蹴球聯盟 (FIFA)에 分斷國家 의 狀況과 自身의 獨特한 家族史를 說明한 自筆 請願書를 보내는 等의 迂餘曲折 끝에 北韓 國家代表가 될 수 있었으며 [5] 大韓民國 旅券 뿐 아니라 北韓 與圈도 同時에 發給됐다.

日本의 外國人 登錄에 大韓民國 國賊으로 登錄돼 있고 北韓 旅券도 받았기에 南北韓을 한 나라로 보는 兩側 憲法에 依據 兩側 國內리그에서는 自國 選手로 뛸 수 있으나 國際 클럽 大會에서도 正大勢가 大韓民國 所屬 球團에서 出戰할 때 自國 選手로 뛸 수 있는지 問題가 되었다.

이에 아시아 蹴球 聯盟 을 비롯한 國際 蹴球界에서는 正大勢가 兩側의 旅券을 받았음을 理由로 大韓民國과 北韓의 事實上 二重國籍 選手로 認定했다. [6]

學歷 [ 編輯 ]

正大勢는 2010年 남아공 월드컵 첫 競技 前 國家가 울려 퍼지던 中 눈물을 흘렸는데 北韓의 出戰 自體도 注目받던 狀況에서 그의 눈물은 큰 話題가 되었다. 같은해 9月에 美國에 있는 韓國人 留學生들이 正大勢의 눈물을 主題로 世界 平和를 祈願하는 動映像을 만들어 올려 美國의 인터넷 雜誌 '와이어드'가 主催한 大會에서 '平和를 가장 잘 傳하는 動映像'이라는 評價를 받으며 對象을 받아 또다시 話題가 되었다. [7]

正大勢는 自己의 國籍 混亂에 對해서 "어릴 때부터 朝鮮學校 에 다니면서 내 나라가 어딘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배웠다. 꿈을 쓰면 '朝鮮 蹴球 國家代表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라고 說明하였다. [8]

經歷 [ 編輯 ]

受賞 [ 編輯 ]

클럽 [ 編輯 ]

일본 가와사키 프론탈레
독일 VfL 보훔
水原 三星 블루윙즈
일본 시미즈 에스펄스

個人 [ 編輯 ]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