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노 그란디
(Dino Grandi,
1895年
6月 4日
~
1988年
5月 21日
)는
이탈리아
의
파시스트
政治가
,
外交官
이다. 外務相(1929年 ~ 1932年)과 런던 駐在 이탈리아 大使 (1932年 ~ 1939年)를 歷任했으며, 以後 法務相,
파시스트 最高評議會
議長을 지냈다.
第2次 世界大戰
直後 남아메리카로 亡命하였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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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볼로냐 週
의
모르다노
에서 태어난 그란디는
第1次 世界 大戰
에 參戰한 後 1919年에
볼로냐 大學
에서 經濟學科 法學을 專攻했다. 1914年에
베니토 무솔리니
와 두番 만난 以後 무솔리니에 感化된 그란디는 初期 이탈리아의 參戰에 積極的인 擁護者가 되기도 했다.
25歲되던 해인 1920年에
검은 셔츠團
에 加入한 그란디는 무솔리니와 함께 初期 멤버였으나, 1943年 聯合軍의 시실리 侵攻 作戰인
허스키 作戰
이 開始된 後, 무솔리니를 攻擊했고 무솔리니의 解任을 19 代 7로 可決시켰다. 무솔리니는 國王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歲
에게 달려갔으나, 國王 亦是 파시스트 評議會의 決定에 同意하여 무솔리니를 失脚시키고 그를 逮捕했다.
以後 무솔리니는
아돌프 히틀러
가 보낸
오토 스코르체니
에 依해 救出된 後 이탈리아 北部에
이탈리아 社會共和國
을 세웠고, 그란디는
1944年
2月 8日
~
2月 10日
에 걸친 裁判에서 死刑 宣告를 받았다. 그러나 그란디는 1943年 여름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가 統治하던
스페인
으로 도망친 後였다. 그는 그 後
포르투갈
에서 1943年부터 1949年까지 살았으며 1960年代에는
브라질
에서 살았다.
1988年
故鄕 볼로냐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