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마 야요이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 쿠私馬 야요이 에서 넘어옴)

구사마 야요이
身上情報
出生
마쓰모토視
職業 彫刻家 , 小說家 , 畫家 , 作家 , 데생畫가 , 寫眞家 , 設置 美術家 , 槪念美術 作家 , 패션 디자이너 , 비디오 아티스트 , 行爲 藝術家 , 콜라주 製作者 , 制度史 , 視覺 藝術家
學歷 교토市立 藝術大學
思潮 抽象畫 , 現代 美術 , 女性主義 美術 , 팝 아트
受賞 勳4等 旭日小首長
다카마쓰노미야 殿下記念 世界文化相 (2010)
Women's Caucus for Art Lifetime Achievement Award (2006)
文化功勞者 (2009)
文化勳章 (2016)
아사히上 (2000)
主要 作品
A Message of Love, Directly from My Heart unto the Universe
影響
웹사이트 www .yayoi-kusama .jp

구사마 야요이 (草間 彌生, 1929年 3月 22日 ~ )는 日本 의 彫刻家 兼 設置美術家이다.

쿄토市立 美術 工藝學校(現 교토預貸 ) 卒業. 1929年 日本 나가노縣 에서 出生, 1957年부터 1972年까지 뉴욕에서 作品 活動을 展開하였다. 1977年 日本으로 돌아온 야요이는 나이 48歲부터 現在까지 精神病院에 入院한 狀態로 病院에 구사마 스튜디오를 만들어 作品活動을 進行해오고 있다. 1993年 베니스 비엔날레 日本觀에 初代日本 代表로 參與하였으며 2004年 도쿄모리 美術館 에서 KUSAMA TRIX 奠을 오픈하였다. 시드니 비엔날레 (2000), 타이페이 비엔날레 (1998) 等 多數의 大型 國際展示를 비롯, 總 100餘 會議 團體戰 및 100餘 會議 個人展을 오픈하였다. 文學活動으로는 20餘卷의 媤집 및 小說을 出刊하기도 하였다.

生涯 [ 編輯 ]

어린 時節 [ 編輯 ]

日本 나가노 에서 태어나 자란 쿠사마는 어렸을 때부터 精神疾患을 앓았다. 1926年 히로히토 國王의 王位 繼承, 1931年 滿洲 侵攻 그리고 當時의 不吉한 戰雲 모두가 구사마에게 커다란 影響을 미쳤다. 그女는 少女 時節을 戰爭 狀況 속에서 보냈으며, 實際로 軍需 工場에서 落下傘 재봉 일을 하기도 했다. [1] 그女의 狀態를 病이라 認識하지 못한 어머니로부터 매질을 當하는 等 야요이의 어린시절은 自身의 狀態를 理解받지 못한 채 깊은 傷處 속에 지나가게 되었다. 日本의 富裕한 家庭에서 4男妹 中 長女로 태어난 그女는 열 살무렵부터 甚한 錯亂症狀을 보였다. 幻影을 보기 始作하며 發作과 錯亂에 시달렸으나 이를 제대로 理解하지 못한 그女의 어머니는 '敎育이 不足한 탓'이라며 體罰을 加했다.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고 강박증에 시달리던 구사마는 어린시절 治癒받지 못한 채 成長하게 된다.

作家 時節 [ 編輯 ]

그女는 집안의 빨간 꽃무늬 食卓褓를 본 뒤, 눈에 남은 殘像이 온 집안에 보이는 經驗을 하게 된다. 둥근 물방울 무늬로 變形되어 繼續해서 視線과 自身의 身體에까지 따라붙었던 물방울 무늬는 그女가 平生에 걸쳐 하게 되는 作業의 重要하고도 唯一한 素材가 된다. 自身의 歡迎을 가지고 繼續해서 作業하던 그女는 1952年 23歲 때 마츠모토 市民 會館에서 열린 展示에서 나가노 大學의 精神 醫學 敎授인 니시마루 시호 博士에 依해 自身에게 精神疾患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시호 博士는 그女의 作業에 持續的인 關心을 가지기 始作했다. 쿠사마에게 自身의 病的 精神 狀態를 깨닫게 해주었다. 以後 1966年 베니스 비엔날레 에서 그女는 招請받지 못한 作家로서 展示場 앞 잔디에 約 1500餘個의 물방울 무늬 오브제를 깔아놓는다. '個當 2달러!'였던 쿠司馬懿 사인이 적힌 수많은 물방울은 觀覽客의 關心을 받았고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 에 招請狀을 받게한다.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