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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

光州 환벽당 一圓
(光州 環碧堂 一圓)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名勝
種目 名勝 第107號
( 2013年 11月 6日 指定)
時代 朝鮮時代
位置
광주 환벽당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광주 환벽당
光州 환벽당
光州 환벽당(大韓民國)
住所 光州廣域市 北區 環碧堂길 10
座標 北緯 35° 11′ 08″ 東京 127° 00′ 10″  /  北緯 35.18556° 東經 127.00278°  / 35.18556; 127.00278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환벽당
(環碧堂)
대한민국 光州廣域市 記念物 (解止)
種目 記念物 第1號
( 1972年 1月 29日 指定)
( 2013年 11月 6日 [1] 解止)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환벽당 (環碧堂)은 無等山 자락인 광주호 上流 창계天茄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亭子 다. 1972年 1月 29日 光州廣域市의 記念物 第1號로 指定되었다가, 2013年 11月 6日 大韓民國의 名勝 第107號 光州 환벽당 一圓 으로 昇格되었다.

높다랗게 자리잡은 이 亭子는 四寸(沙村) 김윤제 (金允悌, 1501 ~ 1572)가 지었다. 堂號는 신잠(申潛)李 지었다. 식영정 과의 距離가 約 250미터 程度 되는데, 환벽당 主人 김윤제와 식영정 主人 김성원이 창계천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서로 往來하였다고 한다. 鄭澈 이 14歲에 김윤제를 偶然히 만나고 27歲에 官職에 나갈 때까지 10餘 年 동안 留宿하였던 곳이 바로 環碧堂이다. 송시열 이 版額을 썼으며 임억령 의 詩가 懸板에 걸려 있다.

鄭澈의 玄孫 整數環이 김윤제의 後孫으로부터 사들였으며, 只今은 정철의 셋째 아들 정근명의 後孫 宗中이 管理하고 있다.

槪要 [ 編輯 ]

環碧堂은 四寸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老年에 自然을 벗 삼아 後學養成을 目的으로 建立한 南道地方의 典型的인 유실형(有室形)精子로 가까이에는 無等山 원효계곡의 繫留가 흐르며 溪谷아래 증암천(甑巖川) 周邊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壯觀을 이뤄 者尾炭(紫薇灘)이라 불렀으며, 特히 이곳은 無等山을 비롯한 원효계곡의 줄기를 따라 自然 風光이 秀麗한 地域으로 예로부터 詩人墨客들이 자주 드나드는 名勝地였다.

환벽당 北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四寸 김윤제가 살았던 忠孝마을과 증암천 너머에는 松江 鄭澈이 살았던 枳實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松江과 四寸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傳說이 깃든 兆臺(釣臺)와 龍沼(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歷史的 價値가 뛰어난 곳이다.

俛仰亭 宋純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建立하고 3年이 지난 뒤 1563年 식영정의 詩를 次韻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兄弟의 程子라고 하면서, 瀟灑園과 식영정, 環碧堂을 가리켜 한 棟(증암천)안에 세 名勝 卽, 一洞之三勝이라 말한다.

環碧堂은 環壁(環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自然景觀을 이루고, 詩歌文學과 關聯된 國文學史的인 人文學的 價値가 매우 큰 곳이며, 別墅原林으로서 價値가 優秀한 湖南의 代表的인 누정文化를 보여주는 곳이다.

環碧堂이 位置한 곳은 無等山 北陵의 稜線으로 北峯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地脈 中의 하나이며, 四寸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忠孝마을 南쪽 200m地點에 있다. 또한 光州와 潭陽을 境界로 흐르는 증암천(別稱 : 者尾炭)을 사이에 두고 南쪽 無等山에서 北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山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景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周邊에는 四寸 김윤제가 살았던 忠孝마을과 松江 鄭澈이 살았던 枳實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蒼暗村이 있으며, 이 마을들 周邊으로 식영정(息影亭)과 俛仰亭(?x仰亭), 송강정(松江亭), 隱居를 爲한 毒修正(獨守亭)과 瀟灑園(瀟灑園), 환벽당(環碧堂) 等 10餘個 精子가 素材海 있어 이 一帶가 朝鮮時代 원림 文化의 中心地域으로서 價値가 뛰어나다.

環碧堂은 當代 最高의 碩學들인 宋純, 임억령, 梁山甫, 김인후, 金成願, 기대승, 고경명 等이 드나들던 곳으로 秀麗한 自然景觀을 鑑賞하고 詩文과 歌詞를 지으며 風流 文化의 極致를 이룬 朝鮮時代 士林文化의 中心으로서 歷史 文化的 價値가 뛰어나다.

環碧堂의 初期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詩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三衍 김창흡(三淵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를 통해 그 當時의 原林의 植物相과 造景樹種을 斟酌할 수 있고, 金成願(1525~1597)의 “서하당遺稿“ 에 ”城山界류탁열度”等의 그림이 남아있어 人文的 價値가 있다.

환벽당 關聯 市·門은 當代의 一流 文人들로서 임억령, 기대승, 宋純, 김인후, 소세양, 鄭澈, 백광훈, 고경명, 權韠度,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鉏棒令 等 詩人墨客의 市價가 傳해져 人文學的 價値가 있다.

寫眞 [ 編輯 ]

參考 圖書 [ 編輯 ]

  • 박선홍 (1976年 5月 1日). 〈古跡 | 환벽당〉. 《無等山》 初版. 光州: 全南每日出版局. 170쪽.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光州廣域市 告示 第2013- 172號 Archived 2017年 8月 6日 - 웨이백 머신 ,《光州廣域市 文化財(記念物) 指定 解除》, 光州廣域市長, 2013-11-06

參考 文獻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