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證法的 唯物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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辨證法的 唯物論 ( 獨逸語 : Dialektischer Materialismus , 러시아語 : диалектический материализм , 英語 : dialectical materialism )은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 블라디미르 레닌 , 이오시프 스탈린 의 巡으로 이어진 마르크스주의 辨證法 體系를 의미하며, 意識이 物質의 反映이라는 唯物論과 우리가 對象을 認識(Intuition)할 때 對象의 固定的인 面을 보는 것이 아니라, 對象의 全體的인 聯關과 함께 그 끊임없는 發展을 본다는 辨證法이라는 두 軸을 中心으로 世界를 解釋하는 理論이다. 1938年에 볼셰비키黨 의 哲學 敎祖로 받아들여진 이 廣範圍한 認識 理論은 國際 共産主義 運動 理論 形成에 强烈한 影響을 주었다.

類的 存在로서 人間 [ 編輯 ]

『獨逸 이데올로기』 親筆 原稿의 첫 페이지이다.

辨證法的 唯物論을 理解하는 데에 第一 첫 番째로 始作하는 것은 人間이 갖고 있는 ‘高度로 發達한 意識’을 어떻게 定義하느냐와 關聯된다. 카를 마르크스의 著書 『獨逸 이데올로기』의 核心은 旣存 헤겔의 觀念論的 辨證法을 批判한 데에 있는데, 여기서 登場하는 核心 槪念이 ‘勞動’( 獨逸語 : Arbeit )과 ‘勞動力’( 獨逸語 : Arbeitskraft )이다. [1]

旣存 靑年헤겔學派의 一員들은 人間의 理性을 抽象性에 限定하는 것을 反對하였으며, 理性이 現實과 抽象 사이를 넘나든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도 亦是 靑年헤겔學派의 一員으로서 헤겔의 哲學을 人本主義의 立場에서 繼承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靑年헤겔學派의 巨頭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의 主張이 結局 人間의 理性을 抽象性의 틀에 가둬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는 이성지(理性知)的 狀態에 놓인 人間 存在라고 할 수 있는 ‘類的 存在’( 獨逸語 : Gattungswesen )에 對해 定義했을 때, 末年 헤겔의 神祕主義 를 批判하고 人間 理性 能力의 絶對性을 擁護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理性도 本質的인 領域은 現象과 獨立的인 界(可知界)에 屬하며 現象이 人間의 理性을 불러올 수 있는 核心的인 役割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理性은 이 獨立된 契에 머문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포이어바흐의 解釋에 따르면 人間의 理性은 結局 現象을 構成하는 集積體로서의 性格으로부터 脫去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人間의 理性이 가시(可視) 次元과 가지(可知) 次元을 넘나드는, 抽象性으로부터 脫皮한 社會的 理性이라는 것을 證明한다. ”라는 포이어바흐의 目的이 스스로의 理論에 따라 崩壞되었음을 批判했다. 마르크스는 結果的으로 포이어바흐의 結論이 結局 헤겔式 觀念論的 辨證法의 誤謬에 다시 빠지는 길밖에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그의 哲學이 社會를 變革하는 意味로서의 哲學으로 기능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唯物論에 기초하여 世界를 觀照할 境遇, 오히려 唯物論 哲學이 갖고 있는 “物質 世界의 運動 法則과 人間의 意識 사이의 關係를 糾明하여 社會 變革을 圖謀한다.”라는 本質的 專制를 배반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結果的으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唯物論을 ‘非一貫的 唯物論’이라 定義하였다. [2]

마르크스는 旣存 靑年헤겔學派의 哲學을 批判하였고, 人間이 스스로의 主體에 對해 ‘類的 存在로서 人間’을 어떻게 構成하며, 그 構成을 推動하는 要素의 性質은 어떤 것인가에 對해 『獨逸 이데올로기』에서 段階的으로 論하였다. 그리고 그 結果 바로 人間을 眞正 이性的 存在인 類的 存在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것이 ‘勞動’이라고 하였다. 勞動은 外部 物質을 創造하려는 人間의 行爲이며, 이性的 活動의 本質的 次元을 規定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人間은 勞動을 통하여 鎭靜 事物 一般의 支配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解放된 存在’로 될 수 있다. [3]

카를 마르크스는 『獨逸 이데올로기』에서 理論的 分析은 모든 社會가 共通的으로 갖고 있는 가장 本質的인 特性에 基盤을 두어야 한다고 强調했다.

모든 社會가 共有하는 첫 番째 特性은 人間은 動物과는 달리 生存을 위해 物理的 環境으로부터 生計手段을 生産하며 歷史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社會 理論의 任務는 人間이 自身들의 生計手段을 어떻게 生産해내는가를 說明하는 것이 된다. [4]

두 番째 共通된 特性은, 人間은 새로운 欲求를 創出한다는 것이다. 生産過程과 消費過程은 하나의 欲求가 充足되면 새로운 欲求가 나타나게 되는 累進的인 方式으로 相互循環하는 關係라고 말한다. 人間은 物理的 欲求로부터 자유로울 때도 生産을 한다. 生産的 勞動은 物理的 欲求를 충족시키면서 人間의 獨特한 創造性을 表現하는 二重的인 過程으로 描寫한다. 그러나 不幸하게도 大部分의 사람들은 分業에 內在한 搾取와 ‘疏外’( 獨逸語 : Entfremdung ) 때문에 勞動 속에서 自身의 潛在力을 表出하지 못 하고 있다. 社會理論이 歷史的 變化와 方向, 源泉을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5]

세 番째 特性은 生産은 搾取와 疏外를 隨伴하는 分業(位階的 階層構造)에 기초한다는 事實이다. 分業은 모든 社會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分化되어 있다는 것을 意味한다. 이러한 分業은 그가 生産手段이라고 일컫는 土地와 資本의 私的 所有에 基礎를 두고 있다고 본다. 生産手段의 私的 所有는 支配集團과 搾取받고 疏外된 殘餘階級들로 이루어진 階層構造를 創出한다. 生産手段을 所有하지 못한 非所有者들은 自身의 勞動과 自身이 生産하는 生産物을 統制하지 못 하기 때문에 搾取받고 疏外된다. 資本家는 消費財를 生産하는 生産라인을 組織하고 또 最終生産物을 所有한다. 人間은 勞動과 같은 人間 特有의 活動에서는 勞動過程은 勿論 勞動結果에서도 排除되어 있기 때문에 人間으로서 自身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하여 逆說的이게도 分業은 프롤레타리아가 自身을 奴隸化시키는 것, 卽 資本을 끊임없이 再生産하는 것을 意味한다. 따라서 社會理論은 現存 社會秩序에서 惠澤을 받는 者가 누구인가에 焦點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6]

네 番째 特性은 理念과 價値는 分業에서 나온다는 事實이다. 觀念과 價値는 人間이 生計를 維持하고 欲求를 創出하고 함께 勞動하려는 實踐的인 努力에서 나온다. 窮極的으로 이데올로기는 大體로 現 狀態를 正當化한다. 마르크스에게 理念과 價値가 分業에서 나온다는 事實은 社會理論이 支配理念의 構造的 源泉과 그러한 信念이 人民에게 影響을 주는 程度에 主眼點을 두어야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7]

그러나 이러한 前提가 妥當한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自然 一般의 作用으로 인해 勞動을 마음껏 享有할 수 없는 始發點(始發點)을 想定해야 했다. 이러한 것의 理由는 勞動이 人間 解放의 源泉이지만, 同時에 마르크스가 살았던 時代에서 人間 스스로가 自然에 對해 受動的일 수밖에 없으며, 事物의 外力에 支配를 받는다는 事實을 서로 連結하려는 市道로부터 衍繹할 수 있다. 이 基礎에 따라 한 歷史의 段階를 規定하는 生産 關係와 生産力의 樣式이 存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私的 唯物論의 發現이다. 人間은 奴隸制 社會에서 限定된 生産力에 따라 限定된 生産 關係를 形成하게 된다. 그에 따라 人間은 참다운 勞動을 行할 수 없으며, 오로지 ‘奴隸勞動’을 한다. 奴隸勞動을 主導하며 奴隸를 所有하는 奴隸主들은 原始 共産制 社會에서 財産을 蓄積한 者들로, 新石器 말 農耕 社會 形成에 일정한 役割을 했던 者들이다. 以後 形成되는 封建 社會에서 奴隸制는 相對的으로 弱化되고, ‘貴族의 支配에 從屬된 小生産者’ 卽 農奴(農奴)가 出現하게 된다. 여기서 農奴는 奴隸 階級이 아닌 平民 階級이며, 일정한 權利가 주어지나 自身의 勞動 能力은 貴族 領地에 歸屬된 狀態이며, 그들의 生産 行爲는 ‘農業的 小生産’으로 定義할 수 있다. 以後 資本主義 社會에서 生産力 算出 行爲는 ‘勞動力 算出’로 代替된다. 여기서 勞動力 算出의 主體는 疏外를 經驗하게 되며, 이 疏外는 過去 社會에서 自然 一般이 人間에게 作用한 外力,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誘發되는 ‘自然에 對한 受動性’을 强化 및 補完하는 役割로 作用한다. [8]

‘疏外’의 具體的 發現 [ 編輯 ]

다음은 資本主義 社會에서 勞動 疏外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對한 例示이자 說明이다. 그리고 疏外에 기초한 資本主義 社會가 어떠한 關係를 통해서 崩壞하는지에 對한 說明이다.

剩餘價値 [ 編輯 ]

勞動力 算出은 勞動과 分明히 다르다. 勞動力 算出은 人間이 갖고 있는 勞動 能力이 搾取者인 資本家에게 專有된 狀態로 發現되는 것을 의미하며, 自律的 行爲가 아닌 受動的 行爲이다. 人間은 勞動을 통하여 價値( 獨逸語 : Wert )를 生産하고, 資本家는 資本主義 社會에서 勞動者가 算出하는 價値를 專有할 수 있다. 이러한 價値를 剩餘價値( 獨逸語 : Mehrwert )라고 한다. 資本主義 社會의 經濟를 뒷받침하는 價値란 剩餘價値이며, 資本家의 利潤은 剩餘價値를 얼마나 增殖하느냐에 따라 決定될 수 있다.

本來 剩餘價値는 政治經濟學的 性格이 아닌 哲學的 性格으로서 使用된 用語였으나, 마르크스가 史的 唯物論의 論理를 完成하기 위해 政治經濟學的 意味로 使用하기 始作하면서 마르크스주의 政治經濟學의 一般的인 用語로 굳어졌다. 剩餘價値는 勞動者의 勞動力 算出 行爲에서 비롯된 價値가 資本家 階級에게 痊愈될 때, 그러한 전유성으로부터 資本家 階級이 利潤을 增大하기 위해 變換한 價値를 의미한다. 따라서 剩餘價値는 資本家가 投下한 資本에 追加的으로 딸려져 나오는 超過分 그 自體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投下된 資本의 總量은 ‘投下總資本’이며, 剩餘價値를 投下總資本으로 나눈 값을 利潤이라고 한다. 資本家 階級은 投下總資本에 對備하여 剩餘價値를 增殖하기 위해 여러 가지 方式을 使用하며, 이러한 方式에 따라 産出된 勞動力을 ‘剩餘價値로의 變換을 위한 剩餘勞動( 獨逸語 : Mehrarbeit )’이라고 한다.

資本主義 社會에서 企業은 競爭을 통하여 더 많은 利潤을 얻으려고 한다. 여기서 競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番째는 技術發展을 通해 ‘必要 勞動 時間’을 減少하여 剩餘價値를 增殖하는 것이다. 두 番째는 剩餘勞動 時間을 增大하여 剩餘價値를 增殖하는 것이다. 세 番째는 勞動力 算出의 ‘社會的 評價’를 下落시켜서 剩餘勞動 時間을 增大하지 않고 剩餘價値를 獲得하는 方式이다. 技術發展은 豫測의 領域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資本家 階級이 統制할 수 없는 領域이다. 그러나 剩餘勞動 時間의 增大는 資本家 階級의 市民的 權限의 一部로, 正當하게 꾀할 수 있는 方式이다. 또한 資本家는 技術發展을 통하여 必要 勞動 時間의 減少가 낮아질 境遇 追加的으로 세 番째의 方式을 竝行한다. 여러 競爭 方式이 作用한 結果 勞動者의 貧困化가 汎敵으로 進行된다.

利潤率의 低下 傾向 [ 編輯 ]

該當 式에 根據하면 다음과 같은 그래프로 利潤率 低下 傾向을 說明할 수 있다. 勞動界수가 높을수록 剩餘價値의 錢鏐가 높기에 崩壞 時點이 느려지나, 同時에 剩餘價値 增殖에 依한 需要減少幅이 높아지기에 需要量 減少 時點에서 利潤率 低下(E2 以上) 선 및 崩壞까지의 減少率이 높아진다.

資本主義 社會에서 持續的인 利潤率 增大를 꾀하기 위해서는 商品의 持續的인 消費가 保障되어야 한다. 그러나 時間이 지날수록 競爭의 水準은 激化될 것이며, 勞動者가 固有的으로 行하는 勞動力 算出의 社會的 評價 水準은 持續的으로 下落할 것이다. 이러한 過程의 結果로 勞動者는 窮乏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消費力을 잃게 된다. 이로부터 資本主義 社會는 過剩供給의 毒素를 막지 못 하게 되며, 需要 能力은 持續的으로 낮아질 것이다.

資本主義下 價値 等式은 資本個, 임금재, 奢侈材가 서로 區分되지 않을 時 時間 變數 黨 다음과 같은 需要-供給 價値 等式이 成立한다.

여기서 各 記號의 說明은 다음과 같다.

  • : 時間 까지의 商品 算出 벡터값
  • : 資本主義國家 내 資本家들의 消費 벡터값
  • : 勞動者의 生活必需品의 벡터값
  • : 商品들의 資本投入計數
  • : 商品들의 勞動投入係數
  • : 實質賃金

이때 資本主義國家 내 資本家들의 利潤 追求 行爲로 인한 適正한 利潤率 上昇 公式은 다음과 같다.

前年度 實質 經濟成長率에 따른 商品 算出 벡터값을 로 假定할 境遇, 利潤率은 을 따른다. 이때 資本 를 따르게 되면서, 利潤率이 增加함에 따라 剩餘價値人 度 높아진다. 그러나 는 發達 程度에 따라 賃金 削減, 勞動力 算出 價値 低下 等 여러 形態로 發現되고, 그 結果 商品 消費 階層의 消費力을 抑制하게 된다.

여기서 各 記號의 說明은 다음과 같다.

  • : 實質 經濟成長率
  • : 不變資本(生産設備, 生産手段, 原料값)
  • : 可變資本(賃金, 流動的 資本市場價格)
  • : 剩餘價値

이 式에 따라 資本主義社會에서 資本家는 利潤率 膨脹을 爲해 끊임없이 剩餘價値를 增殖할 것이고, 그 結果 資本主義社會는 消費低下傾向에 따라 利潤率이 低下하여 週期的인 恐慌을 惹起하다가 崩壞한다.

史的 唯物論 [ 編輯 ]

剩餘價値의 生成과 利潤率의 低下 傾向을 통한 資本主義의 崩壞는 社會가 그 構成要素들 사이에서 不可分의 緊密한 有機的 總體를 이루기 때문에 個別的 要素는 다른 것과 分離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의 傍證이다. 마르크스는 社會構成體를 經濟領域(下部構造)과 非經濟領域(上部構造)으로 나누고 經濟的 土臺가 本質的인 것이고 이것이 모든 非經濟的 上部構造를 決定한다고 보았다.

歷史 唯物論에 따르면 歷史는 原始的 共産主義, 古代 奴隸制, 中世 封建制, 近代 資本主義를 거쳐 窮極的으로 人間 社會가 共産主義에 이르게 된다고 主張한다. 또한 特異한 點은 다른 史官들은 主로 歷史의 解釋過程에서 人物, 事件 等을 重視하는 傾向이 剛한데 反해 歷史 唯物論에서는 生産 手段과 生産量이 歷史의 解釋 過程中 가장 重要한 것으로 본다. 生産 手段을 所有한 者와 所有하지 못한자로 階級이 發生한다고 보며 歷史를 끊임없는 鬪爭의 歷史로 바라보는 葛藤論的 觀點을 가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資本主義 社會 또는 私有財産制를 생각할 때에도 그것은 人間社會에서 떼어낼 수 없는 制度가 아니라 어느 時期에 歷史的으로 成立하고 變化하고 發展되어 온 것으로서 언젠가는 消滅한다고 보았다. 辨證法的 唯物論의 見解를 人間社會의 歷史에 立脚해서 考察한 것이 ‘史的 唯物論’이다. 그리고 이 理論은 實證的 硏究와 相互關係를 맺으면서, 人類의 社會가 아직 階級 差別이나 貧富 差別이 없었던 原始共同體 時期로부터 貧富의 車, 私有財産制가 조금씩 생긴 古代奴隸制로 나아가 여기에 비로소 階級社會가 成立한 것, 또한 封建制 社會가 생기고 이를 이어서 資本主義 社會에 이르기까지의 過程을 實證的·理論的으로 分明히 糾明하려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資本主義 社會를 階級的인 對立이나 差別이 없는 社會主義 社會로 전환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이며, 特히 組織된 프롤레타리아트 및 그 前衛인 政黨의 힘에 依해 새로운 社會가 出現할 것을 豫言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社會의 發展을 矛盾의 發展으로서 科學的으로 分析하고, 資本主義 社會의 內部的 矛盾에 依한 崩壞와 프롤레타리아 의 歷史的 使命에 關한 方向을 提示했다. 空想的 社會主義 와 根本的으로 다른 點은 資本主義 矛盾을 克服할 可能性을 프롤레타리아 自身 속에서 階級 鬪爭 의 必要性만으로 보았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엥겔스에 依하면 歷史의 發展을 推動하는 第1 原因은 人間의 意識이 아니라 物質的 生産樣式이란 것이다. 唯物史觀의 中心은 人間이 生産에 參加할 때는 社會的이 되며 따라서 일정한 生産關係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社會의 經濟構造라고 하는 것은 生産樣式을 뜻하고 生産樣式은 生産力과 生産關係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生産關係란 것은 生産力의 일정한 發展段階에 對應하는 社會關係인데, 그 關係는 主로 그 社會의 주된 生産手段을 所有한 者와 所有하지 못한 者 사이의 階級關係로 表現된다. 資本主義的 生産樣式을 이루는 生産力은 機械工業이고 生産關係는 資本家와 勞動者의 關係로 볼 수 있다. 人間은 類的 存在이기 때문에 生産力은 끊임없이 發展한다. 發展된 生産力과 旣存의 生産關係 사이에 葛藤과 矛盾이 생기게 되고, 旣存의 生産關係가 生産力 發展을 沮害하는 狀況이 될 때 새로운 生産關係에 突入하고 社會變革의 轉機가 到來한다. 이러한 生産關係가 變하면 全 社會構成體로 變化한다는 點에서 生産力과 生産關係는 土臺이며 그 위에 法律的·政治的 上部構造가 생긴다는 것이다. 唯物史觀의 土臺決定論은 經濟社會(土臺)와 國家(이데올로기)의 區分法 成立이 可能한, 自由放任的 資本主義 社會를 母體로 해서 構成한 理論이다. 마르크스·엥겔스는 生産關係의 變化에 따라 原始 共産制 社會, 古代 奴隸制 社會, 中世 封建制 社會, 近代 資本主義 社會, 다시 社會主義社會, 共産主義社會의 次例로 發展한다고 主張하며, 奴隸制에서 資本制까지는 生産手段의 私的 所有가 認定되고 따라서 階級對立이 存在한다는 點에서 人類의 歷史는 階級鬪爭의 歷史라고 規定했다.

社會 發展의 合法則性과 合目的性 [ 編輯 ]

社會 變革의 두 契機는 合法則的 次元과 合目的的 次元이다. 社會變革의 合法則的 次元은 經濟的 生産條件의 具體的 變化를 指稱하는 것이다. 生産力과 生産關係 間의 矛盾이 限界狀況에 이르게 된 變革의 客觀的 條件을 뜻한다. 그러나 合法則的 條件이 무르익었다고 해서 社會變革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合目的的인 意識이 있어야한다. 이러한 意識은 物質的 삶의 矛盾으로부터 說明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的 領域에서는 우리가 葛藤의 本質을 直視하여 이를 意識 鬪爭으로 克服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歷史發展度 合法則的 次元과 合目的的 次元의 辨證法的 相互作用에 依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生産樣式의 變化와 함께 이데올로기的 上部構造의 全面的 變化가 隨伴되기 때문에 意識이 存在를 決定하는 것이 아니라 社會的 存在가 人間의 意識을 決定한다는 것이다.

  1. 社會는 政治, 經濟, 宗敎, 法律, 敎育, 言論, 文化制度들의 構成要素들이 緊密하게 相互關聯된 有機的 總體다.
  2. 物質的 財貨를 生産하는 經濟領域이 社會의 實質的 土臺이며, 다른 領域은 經濟的 土臺에 依하여 決定된다.
  3. 社會變動의 原動力은 經濟的 土臺의 矛盾, 卽 生産力과 生産 關係間의 葛藤에 있다.
  4. 社會에 여러 가지 矛盾과 葛藤이 있으나 經濟的 土臺의 矛盾이 基本 矛盾이며 基本 矛盾에 立脚하여 다양한 矛盾을 統一的으로 把握해야 한다.

辨證法的 唯物論 [ 編輯 ]

1937年 當時 몰로토프 , 스탈린, 보로실로프 (왼쪽順)의 寫眞이다. 스탈린은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블라디미르 레닌의 認識論을 綜合하여 DIAMAT 敎條를 確立했다.

블라디미르 레닌 死後 이오시프 스탈린 은 마르크스주의 辨證法과 唯物論을 國政 哲學으로 敎條化하기 위해 여러 가지 唯物論 書籍을 咀嚼했는데, 代表的으로 『볼셰비키黨史』 第4張인 『辨證法的 唯物論』이 있다. 스탈린 事後인 1958年 에 咀嚼된 『마르크스주의 哲學의 基礎』와 1960年 에 핀란드 出身 蘇聯 共産黨 中央委員會 書記인 오토 빌겔某비치 쿠시넨 ( 러시아語 : Отто Вильгельмович Куусинен )이 著述 및 出版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基礎』는 스탈린의 辨證法的 唯物論 思想을 體系化 하여 整理한 書籍에 該當된다.

칼 마르크스의 同僚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辨證法에서 3大 核心 法則으로 對立物의 統一과 鬪爭ㆍ良質轉化ㆍ否定의 否定을 내세웠다. 스탈린은 이 立場을 繼承하였는데, 1938年 初版에서 '否定의 否定의 法則'란 用語는 登場하지 않았기에 몇 가지 論難이 存在한다. 하지만, 스탈린은 否定의 否定에 關聯된 辨證法 論議에 큰 異見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탈린 事後인 1950年代 中盤 以後에 出版된 辨證法的 唯物論 敎材는 다시 이 法則이 追加되었다.

槪論 [ 編輯 ]

이오시프 스탈린은 『辨證法的 唯物論』에서 마르크스주의 辨證法의 一般論을 네 가지로 整理하였고, 以前의 形而上學的 辨證法과 徹底히 區分하였다. 그 內容은 다음과 같다.

  1. 自然은 物質 構成의 統一된 全體이며, 개물 狀態로서의 自然도 또한 物質 構成의 統一된 全體의 産物이자 그 自體이다. [9]
  2. 自然은 끊임없이 運動하는 狀態이다. [10]
  3. 自然 개물에서 意識으로의 發展은 良質電話로서 나타난다. [11]
  4. 自然 狀態에 存在하는 各 對立物은 鬪爭을 諸般發展法則으로 갖고 있으며, 그것의 發展은 從來의 構造에 對한 質的 變化를 同伴하는 것이기에 革命的이다. [12]

이어서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辨證法의 主要 含意이자 이것의 性格을 規定할 수 있는 다섯 가지 內容을 다음과 같이 定하였다.

  1. 제현상의 普遍的 關聯과 相互依存性
  2. 自然과 社會에서의 運動·變化·發展 (大體로 强調되지 않음)
  3. 量的 變化에서 質的 變化로의 履行으로서 發展
  4. 對立物議 鬪爭으로서의 發展
  5. 辨證의 一般的 圖式으로서 否定의 否定 法則 (스탈린 死後에 追加)

同時에 마르크스주의 辨證法이 觀念論 哲學과 比較될 수 있는 理由를 세 가지로 整理하였다.

  1. 世界는 客觀 實在의 總體로서 物質이다. [13]
  2. 存在(Бытие)는 모든 客觀 實在의 가리키며, 物質의 自己 運動과 다르지 않다. 意識은 物質의 反映이며, 意識은 辨證 鬪爭을 통하여 變化·發展하고 客觀 實在의 矛盾 程度를 統一的으로 解釋할 수 있다. [14]
  3. 自然 法則에 關한 知識은 社會·歷史 發展 法則, 客觀的 認識論(物理學·心理學 等), 分析的 生物學에 따라 規定할 수 있으며, 이것들은 科學을 規準한다. 따라서, 辨證法의 論理 위에 세워진 社會主義는 科學이다. [15]

이러한 哲學은 經濟的 生産力에 따라 進行되는 社會 發展 經路는 螺線的 發展性의 形態를 갖고 있으며, 文明化 된 人間과, 그렇게 되지 못 한 人間을 共産主義 哲學 一般論에 따라 區分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觀點은 認知心理學 理論街人 레프 非고츠키 (Лев Выготский, 1896 - 1934) 等이 나올 수 있는, 認知科學이 發達할 수 있는 土壤을 만들었지만, 70年代부터 거듭된 現代 物理學의 發展으로 인해 DIAMAT 原理에 對한 새로운 解釋이 登場하게 되었다. 이는 生産 關係와 生産力 間의 矛盾으로 인해 끝없이 變化 發展하는 旣存 카를 마르크스의 唯物論을 넘어서 모든 自然物의 對立과 鬪爭을 통한 變化-發展을 敎條化했던 蘇聯의 正統 辨證法的 唯物論 진영에게 理論的 修正의 傾向性을 불러왔다. [16]

物質 [ 編輯 ]

辨證法的 唯物論에서 物質은 基本的으로 不滅性을 가지며, 有(有)의 存在 樣式 一般이다. 따라서, 辨證法的 唯物論에서 定義하는 物質 槪念은 科學에서 다루는 物質 槪念을 包含하면서도, 哲學的인 性格을 갖는 것이다.

레닌은 『哲學 노트』에서 形式論理學을 批判하였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原子論과 같은, 쪼개지지 않는 微細한 固體라는 物質 觀點이 形式論理學이 갖는 物質 觀點의 限界라고 批判하였고, 近代 以後 科學의 成果를 擁護하는 한便, 物質이 各 對立物 사이에서 進行되는 鬪爭의 가장 本質的인 側面을 現像하는 것이라고 봤다.

物質은 對立物議 鬪爭, 相互 統一의 過程 自體이며, 끊임없이 自己 運動하는 實體이자 存在 本質이고, 意識을 派生하며, 各 矛盾의 進行 水準을 媒介하는 가장 基本的인 存在라고 하였다.

스탈린은 『辨證法的 唯物論』에서 物質에 對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正義를 接受하고 이것은 有(有)의 存在 樣式이라고 定義하였다. 卽, 物質은 萬物의 第一 根源이며, ‘있음’ 그 自體로서 普遍的인 存在 樣式이 物質이라는 것이다. 이는 物質 常委에서 物質을 創造하는 그 어떠한 存在가 存在할 수 없음을 主張한 것이며, 萬有(萬有)가 物質 스스로의 存在 樣式이면서 同時에 派生物이라는 것을 規定한다.

有(有)의 存在 樣式은 그것이 本來的으로 作用한다는 點에서 動的 性格을 갖고 있으면서도, 存在 그 自體를 規定한다는 性格에서 政敵 性格을 갖고 있다. 動的 性格에서 有意 存在 樣式은 科學에서 認識하는 物質의 性格으로 作用한다. 根源 物質과 그 物質로부터 생겨난 여러 粒子는 相互 作用을 통해 多樣한 粒子를 만들어낸다. 根源 物質은 萬有를 派生하는 同時에, 그것의 性質 一般을 規定하는 最上位의 原理이다.

運動 [ 編輯 ]

스탈린은 自然狀態의 모든 物質이 '對立物議 鬪爭' 狀態에 있다고 分析하였고, 이것을 運動(Движением, 運動)의 一般性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萬物은 運動 狀態에 있는데, 可視的으로는 멈춰있는 것으로 보이는 理由는, 人間이 對立物을 實際的으로 觀察할 때는 그들 鬪爭 狀態에서 規定되는 한 段階의 양태만 確認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樣態는 時間性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으며, 이 變化는 暴發的이고 革命的이나 可視的·感覺的으로 觀察하면 如前히 멈춰있는 形態로 보일 뿐이라고 하였다. [17] 이 立場은 다음과 같이 整理할 수 있다.

運動은 各 對立物의 相互 鬪爭을 의미하며, 矛盾 그 自體를 의미한다. 運動의 存在는 矛盾 進行을 意味한다. 다시 말하여, 運動은 各 對立物의 相互 聯關을 稱하는 것인데, 이는 意識 行爲인 辨證 鬪爭을 包括하고 있다. 이는 “思辨的 事由는 오직 事由가 矛盾을 自己 內에 굳건히 붙잡고 있다는 事實에 그 本質이 있다.”라고 한 헤겔의 立場을 繼承한 것인데, 마르크스주의에서 思辨的 事由는 階級 意識으로 여겨지고, 階級 意識은 矛盾을 理解·把握하면서, 矛盾이 갖는 鬪爭의 性格을 그대로 存續하기 때문이다.

事物 現象들이 相互 依存하고 制約한다는 것은 그것들이 運動 속에 있다는 것을 意味한다. 事物 現象은 要素와 構造에 依해 規定되는 屬性에 맞게 運動하며 다른 事物 現象들과 關係를 맺는다. 그러므로 事物現象들을 聯關과 運動의 見地에서 考察하여야 그 本質과 屬性, 運動法則을 正確히 把握하고 그것을 成果的으로 改造하기 爲한 科學的 方道를 찾을 수 있다.

物質의 存在形式으로 '運動 狀態'를 들고, 다양한 粒子를 擧論한다. 當時 量子力學 이 發達한 狀態는 아니었으나, 스탈린은 英國의 科學者인 어니스트 러더퍼드 (Ernest Rutherford)의 物理學 硏究 成果를 擧論하면서, 原子도 또한 鬪爭 狀態인 多數의 粒子 狀態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나눠진 粒子도 또한 鬪爭 狀態인 多數의 다른 粒子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電子 , 陽性子 等도 運動의 한 存在形式人 것이다. [18]

意識 [ 編輯 ]

意識(Сознание, 意識)은 物質의 反映으로, 物質이 없으면 意識은 成立할 수 없다. 이러한 理由로 인해 意識은 獨自的으로 誕生될 수 없다. 그러나, 意識이 創造된다면 意識은 必是 矛盾을 갖고 있기에 辨證法的 過程을 導出시키는 原因字로 作用하고, 이러한 點에서 意識은 人間이 行하는 辨證 鬪爭의 主要 材料로 된다. 只今까지 이어진 歷史 發展과 科學 發展, 그리고 制度化 等도 모두 人間의 意識 活動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辨證法的 唯物論』 第4章에서는 思惟에 따른 鬪爭 行爲를 意識 活動으로 規定하며, 物質 反映을 通한 思惟의 創造는 物質에서 意識으로 나아가는 一般的 經路라고 規定하였다. 例를 들어, 人間이 '謝過'라는 과일을 觀察하고 그것의 맛, 色, 植物學的 特性 等을 考慮해야겠다는 意識으로의 發展이 進行된다면 이것을 위의 發展形式의 한 例라고 規定할 수 있다. 이러한 高度의 活動은 높은 知能을 가진 人間에게서 特出나게 發生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注意해야 할 것은, 意識으로 認定할 수 없는 條件的 反應이 存在한다는 것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것을 두 가지로 要約하였다.

  1. 人間이 가진 物質的 特性과 外部에 存在하는 物質的 特性에 따른 機械的인 反應. (水龍城에 따른 反應性)
  2. 事物 認知에 따른 機械的 反應인 可視的 인지에 따른 모든 後續 行爲. [19] (感受性)

卽, 人間이 生物學的 原理에 따라 특수한 物質에 따른 機械的인 反應을 보인다면 그것은 意識 行爲가 아닌, 對立物의 運動 ― 物質 自體의 機械的 運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도 亦是 辨證 過程 [20] 에 包含이 되는 要素이나, 意識은 아니다. ―으로 規定해야 할 것이다. 例를 들어 人間이 뜨거운 것에 닿아서 자연스럽게 그것으로부터 멀리 避하게 된다면 이것은 意識 行爲라고 할 수 없다. 또한 可視的 領域에서 보여지는 것에 對한 後續 行爲도 또한 意識 活動이라고 規定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은 電子와 같은 意識과 後者와 같은 感受性도 또한 物質로부터 派生된 것이며, 둘 다 물질性을 內在한 것이기에 本質的으로 둘은 하나라고 規定했다. 그리고 人間을 둘러싼 모든 環境에는 物質이 必須的으로 存在한다는 點에서 人間은 高次的 意識 行爲를 하는 '理性的 人間'으로 나아갈 可能性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21]

스탈린은 辨證法的 內容을 갖고 있는 人間의 意識과 그로 인한 모든 意識的 活動이 外部로 作用할 때, 그 意識을 그대로 對象에게 以前되지는 않는다고 보았으며, 意識이 ‘理性의 論理가 作用하는 空間’에서 벗어나는 卽時 그것은 現象 世界의 物的 刺戟으로 化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對象은 私有 主體가 가진 辨證法的 矛盾性을 곧바로 이을 수 없으며, 私有 主體의 實踐은 對象에게 一種의 ‘複雜性이 增大된 物的 刺戟’인 것이다. 이러한 物的 刺戟을 派生시킨 私有 主體가 가진 辨證法的 內容을 對象이 認識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集團的인 實踐과 鬪爭이 先行되어야 함을 强調하였다. 한便으로, 스탈린은 意識이 純粹한 形態로 對象에게 移轉될 수 있다는 類의 모든 믿음은 觀念論的 虛像이며 非科學에 지나지 않다고 하였다. [22]

意識에 對한 이러한 規定은 레닌의 『哲學 노트』와 密接한 聯關을 갖는다. 그는 搾取社會의 哲學을 硏究했고 그 哲學들이 갖는 '意識에 對한 規定性'을 밝혔다. 例를 들어, 古代 哲學者인 피타고라스(Pythagoras)와 플라톤 (Platon)은 人間이 갖는 意識과 世界 사이가 갖는 形而上學的 連結性을 幾何學的으로 考慮했다는 點에서 劃期的이라고 할 수 있으나, 自己意識을 否定하고 오로지 對象意識만이 存在한다고 봤다는 點에서 限界를 갖고 있으며, 부르주아 哲學者인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1762 - 1814)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1775 - 1854)은 오직 그것의 合法則性을 自己意識 속에서만 찾았다는 點에서 限界를 갖는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 兩 哲學은 人間 意識과 世界運動의 合法則性을 考慮하려는 試圖인 點에서 發展의 한 斷面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 主張을 細分化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 이오니아 學派(Ionian School)는 自然物의 機械的 屬性을 認識하고 이 基礎 위에서 物質의 運動性을 糾明하려고 한 學派이다. 自然物이 갖는 客觀的 屬性을 硏究했다는 點에서 意義가 있으나, 物質과 意識 사이의 合法則性 糾明은 進行하지 못 했다는 點이 限界이다. [23]
  • 피타고라스 學派(Pythagoreans)의 코스모스(Cosmos)는 對象意識과 世界 運動의 連結性을 糾明하려는 最初의 試圖이다. 그들은 '質的 電話로서의 意識'에 對해 알지 못 하였으나, 宇宙가 갖는 自然的 秩序로부터 派生되는 '質的 電話로서의 意識'을 對象意識으로 把握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對象意識이 自然的 秩序 自體이자, 派生 秩序를 規定하는 核心 要素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이 스스로의 肉體와 低次元의 物質이 對象意識과 不可分의 全一性을 갖는다는 것을 認識하지 못 했으며 [24] , 이들이 말하는 意識은 靜的이며 非辨證法(非辨證法)的 觀念이라는 點에서 限界를 지니고 있다. 이는 엘레아 學派(Eleatics)도 또한 비슷하게 갖고 있는 特徵이다. [25]
  •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는 油田(Panta rhei, 流轉)의 論理를 통하여 로고스(Logos)가 形象을 取할 때 갖는 辨證法的 屬性을 밝혔으며, '矛盾에 따라 運動하는 世界'라는 槪念을 最初로 提示하였다. 그러나, 低次元에서 高次元으로 나아가는 것, 卽, '質的 電話로서의 意識'은 밝히지 못 하였다. [26]
  • 소크라테스(Sokrates)는 靈魂(Daimon), 플라톤은 이데아(Idea) 槪念을 통하여 現象과 本質을 區分하였다. 이들은 客觀的 認識(Ethos)을 통하여 가지式(Doxa, 假知識) 뒤에 숨겨져 있는 靜的인 本質을 貫通해야 한다는 二元論的 哲學을 展開하였다. 플라톤에 따르면, 靈魂은 이데아의 조각을 構成하는 同質的인 次元이며, 그저 다른 位置를 占有할 뿐이라는 點에서 둘은 本質的으로 같다. 이들은 低次元에서 高次元으로 나아간다는 意味에서는 '具體性이 缺如된 形態의 辨證法 圖式'을 事由했으나, 如前히 物質과 意識 그리고 自己意識과 對象意識이 不可分의 全一性을 갖고 있다는 點을 認識하지 못 하였다. [27]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本質(Idea)을 構成하는 두 가지 要素로 質料(Hyle)와 形象(Eidos)을 들었고, 이러한 點에서 本質은 그것 自體를 媒介하는 事物存在와의 聯關性을 排除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事物存在가 가는 可能胎(Dynamis)를 附與하고, 그것이 現實性에 依해 發展된 모습을 現實態(Entelecheia)라고 하여, 理想과 現實 사이의 '具體的 辨證法 圖式'에 對한 最初의 事由를 내비쳤다. 그러나, 그는 如前히 物質에서 意識으로의 質的 電話를 認定하지 않았으며, 儀式을 獨自的인 것으로 看做하였고 事物存在의 可能胎를 靜的인 것으로 看做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調律하는 未知의 超越的 存在를 想定했다는 點에서 限界가 있다. [28]
  • 에피쿠로스 學派(Epicureans)는 데모크리토스의 古代唯物論을 取하여 最初로 '質的 電話로서의 意識'을 自己意識의 形態로 내보였다. 以後 登場한 스토아 學派(Stoics)는 自己意識과 對象意識 사이의 連結性을 想定하였고 그 結果 物質과 意識, 自己意識과 對象意識 사이의 全一性을 갖춘 哲學의 모습을 보여줬다. 以後 플로티노스 (Plotinos)는 이를 批判的으로 綜合하였는데, 이를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라고 한다. 이 哲學은 後代에 登場할 急進的 부르주아 哲學의 始原的 役割을 하였다. [29]
  • 로마 가톨릭이라는 宗敎性이 支配했던 封建主義社會에서 哲學은 오직 宗敎의 論理를 正當化하기 위해 利用되었다. 이러한 點에서 獨自的 哲學 發展은 停滯되었으나, 부르주아가 成長하자 다시 獨立된 意味로서의 哲學이 前面에 登場하게 되었다. 以後 宗敎性에 依해 가리워진 哲學에서 宗敎性을 除去하는 作業이 '獨自的인 意味로서의 哲學' 發展의 一般的 樣式으로 되었다. 그것은 宇宙論, 唯物論, 意識性, 良質轉化, 辨證法 等의 여러 論理가 開發된 것으로 說明할 수 있다. [30]

그는 헤겔의 『對論理學』(Wissenschaft der Logik)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自己意識과 對象意識 사이의 連結性 問題를 解決할 수 있는 端初가 열렸다고 敍述했으며, 以後 高度의 意識 活動인 勞動과 人間解放이라는 두 主題를 密接하게 連結하여 人間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힌 最初의 哲學者가 카를 마르크스라고 하였다.

스탈린은 헤겔이 定義한 思惟의 性格을 ‘理性的 認識’으로 代替하였다. 假令, 對立物議 鬪爭으로서 現像하는 物質, 그 物質이 內包하고 있는 矛盾 程度를 包含하는 意識은 그 自體로서 辨證 없이 限界가 存在하면서도, 理性的 意識은 思惟 一般이 갖는 〈對立物의 統一〉을 追求한다. 對立物의 統一을 追求하는 理性的 認識(私有)의 性格은 다시 各 意識의 矛盾性을 把握하는 能動的인 役割을 할 수 있게 하고, 矛盾의 發展的 轉換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스탈린은 理性的 意識은 階級 意識이라고 하였다. 階級 意識은 諸般 經濟 活動의 가장 尖銳한 矛盾을 認識함으로써 達成할 수 있다.

時空間性 [ 編輯 ]

時空間性을 悟性 範疇에 依한 主觀에 내맡긴 칸트나, 時空間性이 物質의 運動과 無關하게 미리 주어져 있다고 보는 뉴턴的 機械論과 달리 스탈린은 物質 運動 自體가 時空間性이라고 하였다. 例를 들어, 時間은 絶對的으로 주어져 있어서, 運動과 無關하게 흐르는 게 아니라, 物質의 運動의 連續的인 必然의 結果와 이어지며, 空間은 그러한 物質 運動이 存在하는 모든 곳에 前提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觀念論 世界觀의 時空間成果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特히 主觀的 觀念論者들은 時空間이 悟性 範疇나 本有에 依해 미리 주어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31]

矛盾性 [ 編輯 ]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量的 變化의 質的 變化라는 '良質轉化', 그리고 發展의 方向性에 對한 問題인 '否定의 否定의 法則'에 對해 言及했고, 矛盾性(Противоречие, 矛盾性) 部分은 '對立物議 統一과 鬪爭의 法則'이라는 主題로 다루었다. 여기서 言及되는 '對立物議 統一'은 元來부터 矛盾을 줄이는 過程으로서의 統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오시프 스탈린에 따르면, 矛盾性은 모든 意識 活動으로부터 認識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意識은 矛盾性을 갖고 있으나, 同時에 그 矛盾性을 認識하고 變化·發展으로 向하는 積極性을 存在할 수 있게 해주는 思惟 自體이다. 스탈린은 意識의 矛盾性과 그 矛盾을 發展으로 나아가게 하는 過程을 다음과 같이 簡略化하였다. [32]

  1. 物質은 各 相互 矛盾을 體化하는 對立物의 總體이며, 이를 物質이라고 한다.
  2. 意識은, 그 意識을 派生시킨 對立物의 總體로서 物質이 갖는 矛盾을 包含한다.
  3. 矛盾性이 存在하는 意識은 그 自體로 自由의 要件을 充足할 수 없으나, 이 意識에 對한 經驗的 實踐과 內在的인 省察 過程인 辨證 行爲는 自由意志的이다. [33]
  4. 矛盾性이 變하면 樣態도 變化하며, 辨證法的 鬪爭 狀態에 있는 모든 意識은 그것이 辨證法의 層位에서 머무는 限 '存在'(Бытие)라고 볼 수 있다.
  5. 矛盾性을 認識한 意識은 自由意志的이며, 矛盾性을 認識하지 못 한 認識은 機械·感覺 認知 [34] 이며, 이는 決定論的이다.
  6. 物質의 機械的 運動으로 대표되는 矛盾은 '非敵對的 矛盾'(Неантагонистический противоречие)美며, 勞動과 그 勞動 以下의 算出 行爲 [35] 에 連繫된 生産力, 그리고 生産關係 사이의 意識 矛盾은 '敵對的 矛盾'(Антагонистические противоречие)이라고 한다. 前者는 非暴力的으로 解決할 수 있는 矛盾이나, 後者는 暴力, 그리고 이에 따르는 具體的인 行動을 隨伴해야만 解決할 수 있는 矛盾이다.
  7. 鬪爭 當面에서 發展의 本質을 擔當하는 矛盾은 '主要 矛盾'(Основное противоречие)이며, 이 主要 矛盾으로부터 派生된 矛盾은 '派生 矛盾'(Полученное противоречие) 또는 '부차 矛盾'(Вторичное противоречие)이다.

(2)를 통하여 人間은 비로소 무언가에 對해 事由(辨證)할 때라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反面, 機械的인 認知는 自由가 아닌, 事物의 反映性에 受動化되는 것에 不過하다. (2)에서 (3)으로 나아가는 過程에서 '意識 行爲 안에서의 自由意志'에 對한 部分은 카를 마르크스 의 論文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自然哲學의 差異』에서 端的으로 確認할 수 있다. 이에 對한 內容은 '良質轉化' 目錄에서 詳細히 論한다.

스탈린은 類人猿이 生物學的 進化를 통하여 거듭 現生人類로 發展하였을 때 抽象性에 對한 接近度度 또한 높아졌고 [36] , 그 結果로 自然萬物에 對한 意識 行爲를 해나가면서 스스로 矛盾을 體驗하고 體化하는 同時에 그 矛盾을 解決하려는 鬪爭 行爲를 이어나갔다고 봤다. 그리고 그것의 歷史的 一般法則으로 '樣態'로서 나타난 것이 經濟私的 層位에 있고,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레닌주의 段階論에서 말하는 發展 樣相의 흐름이라고 하였다.

勿論 『辨證法的 唯物論』 第5張의 辨證法에 關한 內容을 解釋했을 때, 矛盾性에 따른 樣態의 變化 樣相은 單純히 經濟私的(歷史的) 層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當時의 科學 發展도 이러한 矛盾性의 認識에 따른 發電의 延長線이라고 하였으며, 人間이 겪는 모든 問題와 그것의 解決 方式에도 또한 矛盾性 認識에 기초한 矛盾의 發展的 轉換에 있다고 봤다. [37]

(7)을 통하여 革命의 成功과 失敗를 가늠할 수 있다. 假令, 主要 矛盾을 부차 矛盾으로, 부차 矛盾을 主要 矛盾으로 하여 革命力量資源을 編成한다면 革命에 失敗를 가져올 것이다.

良質轉化 [ 編輯 ]

『辨證法的 唯物論』 第6章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은 어떻게 機械的 物質일 뿐인 人間이 抽象的 思惟로의 進化가 可能했냐에 對해 良質轉化(Закон перехода количественных изменений в качественные, 量質轉化)의 論理로 說明한다. 스탈린은 모든 分子 構造는 物質이고 따라서 分子의 集積體人 人間도 또한 物質이라고 하였으며, 그 證據로 生物學 分野에서 進化論 의 發達을 提示했다. 그리하여 스탈린을 이를 要約하며 “意識은 物質 發展의 한 産物이다.”라고 하였다.

스탈린은 모든 異質的인 物質의 婚材는 根源物質의 羅列이며, 그것에 '質的인 變化'를 附與한다면 그것은 '量的인 變化'와 같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自然哲學의 差異』라는 論文에서 論한 것이다. 그리스의 哲學者인 데모크리토스(Demokritos)는 모든 事物은 原子(atom)라는 쪼개지지 않는 性質의 單純 羅列이라고 한 同時에 그것의 質的으로의 轉換을 認定하지 않았다. 反面, 後代에 登場한 哲學者 에피쿠로스(Epikouros)는 데모크리토스의 前提를 認定하면서도 同時에 그러한 羅列 속에서의 質的 轉換을 통한 自由意志(ataraxia)의 發現의 可能性을 論했다. 勿論 後者의 槪念은 '人間의 快樂'이라는 層位에서만 自由意志를 다뤘기에 限界가 있었으나 이러한 類의 哲學은 '自己意識의 哲學'이라는 最初의 形態를 가져왔으며, 스토아 學派 라는 統一的인 唯物主義 事故로 나아가는 데에 架橋 役割을 했다고 評價했다. 이에 따르면, 人間이 갖는 意識的 活動은 物質에 內在된 本質的 屬性이며, 그것은 根源物質의 量的 配列로 인한 必然的 結果이다. 그리고 人間의 意識 行爲가 갖는 始初的 運動性은 物質의 一般性의 發現에서 推動되었다고 할 수 있다. [38]

同時에 스탈린은 이러한 '認識 活動에서의 自由意志性'은 오직 本質的인 對立物議 鬪爭에서 導出된 良質電話로부터만 나올 수 있으며, 人間은 高次的인 物質이라는 點에서 이러한 本質的인 對立物議 鬪爭으로 인해 나타나는 屬性을 包含하는 存在라고 規定하였다. 이에 따르면, 人間은 오히려 無限한 可能性을 갖는 物質의 産物이기에 同時에 自由를 가질 수 있는 存在이며, 解放의 可能性이 열린 存在라는 것이다. 이에 追加하여 스탈린은 '잘못된 眞理'를 說破하는 宗敎, 그리고 事由 側面을 考慮하지 않은 狀態에서 '可視的인 自由'를 主張하는 類의 自由主義, 아나키즘 哲學은 오히려 人間에게 隸屬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39]

否定의 否定의 法則 [ 編輯 ]

'否定의 否定의 法則'( 獨逸語 : Das Gesetz der Negation der Negation , 러시아語 : Закон отрицания отрицания )이라는 말은 프리드리히 헤겔의 '三段法'으로부터 생겨난 用語이며, 以後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自身의 著書 『반뒤링론』에서 唯物論의 辨證法 問題에서 '否定의 否定의 法則'을 再正立하였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辨證法的 唯物論』에서 '否定의 否定의 法則'을 明示하지 않았지만, '各 分野에서 第反物質이 갖고 있는 普遍的 屬性으로의 다가감'의 原因으로서 辨證法을 明示하고 있다. 以後 1958年 에 出版된 『마르크스주의 哲學의 基礎』에서는 다시 '否定의 否定의 法則'李 追加되었다. 이 '否定의 否定의 法則에서는 正(正), 半(反), 合(合)이라는 세 가지 要素가 登場한다. 여기서 '正'이란 辨證法的 過程에서 '飯'李 目標로 하는 鬪爭 對象을 意味한다. 여기서 '正'李 '飯'과 함께 따라나올 수 있는 理由는 '正'에 '矛盾性'이 存在하기 때문이다. 反定立을 통하여 '合'李 되었을 境遇, 이 '合'은 以前의 '正'보다 더욱 最小化된 矛盾性을 지닌 意識이 된다.

그러나, 이 '合'도 또한 矛盾性을 갖고 있기에 '正'李 된다. 그러나, 이 半定立 過程에서 保存되는 屬性이 存在한다. 헤겔은 이를 '止揚'(Aufheben)이라고 했다. 例를 들면, 文化 層位에서의 革命은 그것이 文化 革命이라는 것을 표식할 수 있는 共通된 屬性이 存在하며, 經濟나 政治 側面에서도 마찬가지이다. 卽, 社會主義國家 에서 文化는 前衛 階級인 프롤레타리아에 依해 能動的으로 創造되는 것이며, 經濟는 國有化와 勞農同盟에 기초한 計劃 經濟 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政治는 革命的 黨을 中心으로 뭉친 勞動者·農民의 直接 統治 機構인 소비에트의 普遍化로 대표된다. 모든 人類는 이 辨證法的 過程을 통해서 人類는 낡은 關係를 淸算하고 새로운 意識이 支配하는 社會에서 삶을 꾸리게 된다. 그러나 이 過程에서 人類는 그間 經驗하지 못 한 새로운 形態의 矛盾性을 다시 體得하게 되고 다시 鬪爭 狀態가 된다. 이 過程에서 人類는 그러한 矛盾 關係에서 解答을 찾는 데 오랜 時間을 쏟을 수 있고 그 反對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매段階에서 나타나는 矛盾 程度의 差別性에 따라 否定의 否定의 法則에 따른 辨證 過程의 進陟度는 느릴 수도, 빠를 수도 있으며, 反動의 可能性도 갖고 있는데 따라서 이 發展 樣相은 線形的인 同時에 나선의 形態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0]

普遍性과 個別性 [ 編輯 ]

『辨證法的 唯物論』 第7章에서는 「普遍과 個別」·「內容과 形式」·「本質과 現象」·「原因과 結果」·「必然과 偶然」·「可能과 現實」·「眞理와 誤謬」라는 일곱 가지 小主題를 論하고 있는데, 모든 小主題는 普遍性(Общее, 普遍性)과 個別性(Особенное, 個別性)을 밝힌다는 目的下에 쓰여진 部分이라 본 文書에서는 普遍性과 個別性에 對해서만 다룬다. [41]

이 主題에 따르면, 個別的인 것과 普遍的인 것은 辨證 段階에 따라 流動的으로 變할 수 있으며, 서로 斷絶된 것이 아닌 相互依存的인 것이다. 例를 들면, 붉은色 水性물감이 들어간 붉은 빛을 보이는 물, 草綠色 油性물감이 들어간 草綠 빛을 보이는 기름이 있다고 假定할 때, 辨證 段階에서 '色'(色)을 重視한다면 該當 液體의 色깔이 普遍的인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 特性은 個別的인 것으로 認識할 수 있다. 다른 段階에서 該當 複合物의 液體 屬性을 重視한다면, 그것은 물과 기름이라는 것이 普遍的인 要素로, 그리고 色깔은 個別的인 要素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普遍 및 個別 判斷은 그 물節 土臺에 기초한 判斷이라는 하나의 空間 안에 머물러있다. 卽, 普遍性과 個別性은 本質的 層位에서 매 辨證 段階에 따라 內容이 變할 수 있으나, 根本的으로는 하나의 單一함을 이루고 있다는 意味로서의 普遍性과 個別性이란 것이다.

이오시프 스탈린 은 資本主義社會에서 社會主義社會로 나아가기 위한 鬪爭에서 普遍的인 것은 經濟私的 層位에서 論해지는 生産力의 發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였다. 生産關係 사이의 矛盾으로 인한 尖銳한 階級矛盾, 또는 다른 矛盾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이러한 矛盾은 人類史에서 人類의 進步를 이끈 主된 變數라고 하였다. 그러나, 同時에 個別性도 또한 革命의 普遍性을 堅持하는 立場에서 相當히 重要한 것으로 된다. 個別性은 本質的으로 普遍性으로부터 나온 破片化 된 斷面이라는 點에서 外面할 수 없는 現實인 것이다. 이러한 個別性은 革命 過程에서 나타나는 民族 矛盾, 人種 矛盾 等 다양한 것들에 該當하는 境遇가 많다. 스탈린은 이를 '單一性'(Единичное, 單一性)이라고 하였다. 同時에 매段階에서 個別性으로 取扱되는 것도 辨證 過程에서 普遍性으로 轉換될 수 있는 一般的 性質을 規定했다는 點에서 形而上學的 辨證法과 區分할 수 있다. 形而上學的 辨證法은 처음부터 固定된 普遍性을 미리 定해놓기 때문이다. 그들은 普遍性과 個別性을 完全히 獨立된 것으로 取扱하며, 個別性은 永遠히 個別的인 것이고, 普遍的인 것은 永遠히 普遍的인 것이다. 卽, 이러한 辨證主義에서 實踐은 重視되지 않으며, 오직 外部에 失體하는 眞理라는 神祕的 要素(客觀的 觀念論)와, 內的인 主觀性으로부터 비롯된 眞理라는 主情主義(主情主義)的 眞理觀(主觀的 觀念論)만을 强調한다.

普遍性과 個別性을 定立한 것에 基盤하여 나머지 여섯 가지 小主題에 對해선 다음과 같이 要約할 수 있다.

  1. 內容 (Содержание) 과 形式 (Форма): 革命家들의 集團 討論을 통해 決定된 內容은 時間的으로 移轉에 觀察된 것에 基盤한 內容이다. 이러한 點에서 決定된 內容은 形式이다. 反面, 實質的 內容은 實踐의 過程에서 繼續 變化한다. 革命家들은 觀察을 통해 實證된 事實에 基盤하여 內容은 流動的으로 변화시켜야 하며, 形式主義에 얽매여서 안 된다. [42]
  2. 本質 (Сущность) 과 現象 (Явление): 基本的으로 '本質'은 多樣한 '懸賞'을 取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思惟의 論理性으로만 本質을 안다고 自負하면서, 現象을 外面한다면 그것은 形而上學的 論理와 다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辨證法에서 本質은 現象을 客觀的으로 把握하는 매 實踐에 따라, 그리고 그 實踐을 통해 行해지는 辨證 過程으로 導出되는 것이다. 勿論 '內容과 形式'과 마찬가지로 事實에 基盤하여 流動的인 實踐과 計劃을 實行해야 하지만, 現象에 埋沒되어 本質的인 部分을 놓쳐서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鬪爭은 本質과 現象, 이 두 가지의 槪念을 連結시키는 데에 그 核心이 있다. [43]
  3. 原因 (Причина) 과 結果 (Следствие): 結果는 辨證 段階에 맞춰서 돌아가는 發展 程度와 수많은 變數의 組合이다. 萬若 모든 結果에 對해 이데올로기的 原因子만 따지게 된다면 非現實的인 夢想家에 不過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共産主義者는 現實的인 原因子와 이데올로기的 原因子, 이 두 가지를 批判的으로 檢討할 姿勢를 가져야 한다. [44]
  4. 必然 (Необходимость) 과 偶然 (Случайность): 우리가 흔히 '偶然'이라고 부르는 것은 本質的으로 機械的 反應에 따른 蓋然의 結果라는 點에서 蓋然과 커다란 差別性이 없다. 同時에 共産主義 最終 勝利로 나아가는 辨證 鬪爭의 進步性은 偶然이 아닌 必然이며, 두 省察은 모두 科學的 見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革命家들은 機械的 反應에 따른 蓋然性, 偶然性을 後者와 區分할 수 있어야 하며, 狀況에 따라 電子를 能動的으로 利用해야 한다. [45]
  5. 可能 (Возможность) 과 現實 (Действительность): 革命家들은 마르크스주의 辨證法에 따른 革命의 可能性과 普遍的 尺度에 對한 認識과 現實에서 맞딱드리는 具體的인 問題를 區別할 수 있어야 한다. 革命的 樂觀과 冷酷한 現實主義라는 두 가지 立場이 서로 琉璃(遊離)하지 않게 해야 한다. [46]
  6. 眞理 (Правда) 와 誤謬 (Ошибка): 眞理는 酒酊(主情)的이거나, 固定된 무언가가 아니며, 實踐 없이 豫見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卽, 眞理는 能動的인 實踐을 통해 알아내는 것이며, 매 辨證 段階에 따라 그 內容도 變한다. 그러나 人間의 認識 能力은 完全하지 않기에 實踐의 過程에서 誤謬를 犯할 수 있는데, 革命家들은 이 誤謬를 犯하는 것에 對해 能動的으로 對處해야 한다. 誤謬는 現實 空間에서 일어나는 鬪爭에서 頻繁히 나타날 수 있으나, 그것은 同時에 革命的 反省(反省)을 불러오며, 이것도 亦是 實踐의 一部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7]

社會主義 建設 過程에서 個別性과 普遍性을 結合하여 革命을 이끄는 것은 相當히 難解한 作業이며, 徹底히 科學的인 方法으로 貫徹되어야 한다. 各國 革命的 黨 中央委員會는 國家의 特性, 各 地域의 特色 等 基層單位의 具體的인 事案을 緻密하게 分析하고 그것을 辨證法的 唯物論에서 中核으로 取扱하는 普遍性과 連結해야 한다. 이러한 點에서 革命은 普遍性과 個別性을 連結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普遍性과 個別性은 둘 다 重視된다고 할 수 있다. 認識論的 觀點에서 이러한 觀點은 個別性(感性的으로 주어진 것) 안에 普遍性(理性的으로 주어진 것)이 있으며, 普遍性 안에 個別性이 있다는 合理主義 敵 前提로 說明될 수 있다. 바로 革命事業은 現實(reality)에서 抽象(abstracting)으로, 抽象에서 現實로 넘나드는 力動性의 連續인 것이다. [48]

參考 文獻 [ 編輯 ]

  •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譯, 『獨逸 이데올로기』(청년사, 1988年)
  •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 카를 마르크스 저, 『資本』(白衣, 1990年)
  • 조나단 터너 저, 김문조 譯, 『社會學理論의 形成』(일신사, 1997年)
  • 전경갑 저, 『現代社會學의 理論』(한길사, 1997年)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카를 마르크스 저, 『資本 I-2』(白衣, 1990年) pp. 217 - 220
  2.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驛. 1988年. 獨逸 이데올로기 I . 청년사. pp. 52-53
  3.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驛. 1988年. 獨逸 이데올로기 I . 청년사. p. 51
  4.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驛. 1988年. 獨逸 이데올로기 I . 청년사. p. 41
  5.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驛. 1988年. 獨逸 이데올로기 I . 청년사. p. 42
  6.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驛. 1988年. 獨逸 이데올로기 I . 청년사. p. 43
  7.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驛. 1988年. 獨逸 이데올로기 I . 청년사. p. 47
  8. 카를 마르크스 저. 박재희 驛. 1988年. 獨逸 이데올로기 I . 청년사. pp. 61-62
  9.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89
  10.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92 - 93
  11.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107
  12.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134
  13.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43
  14.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63 - 66
  15.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101
  16. 스티븐 호킹 著, 《時間의 歷史》 pp. 50 ~ 52
  17.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51
  18.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52 - 55
  19. 이 樣相은 矛盾性이 높은 意識 行爲와 差別性이 事實上 없다고도 할 수 있다.
  20. 또는 辨證 鬪爭이라고도 할 수 있다.
  21.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68 - 75
  22.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69 - 70, 73 - 74
  23.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p. 202
  24. 二元論의 問題라고도 할 수 있다.
  25.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pp. 203 - 209
  26.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pp. 217 - 220
  27.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pp. 234 - 238
  28.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pp. 244 - 249
  29.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pp. 254 - 260
  30. 블라디미르 레닌 저, 홍영두 譯, 『哲學 노트』(1989年, 論藏) pp. 276 - 280
  31.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58 - 60
  32.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79 - 80
  33. 따라서 人間은 思惟할 때와 最終的인 人間解放을 이룰 때만 自由로울 수 있다.
  34. 矛盾性이 解決되지 않았거나, 解決하려는 意志가 없는 것 等.
  35. 勞動力(勞動과 勞動力은 다르다)
  36. 『辨證法的 唯物論』 第8章에서는 "생생한 地殼에서 抽象的 思惟로"라고 端的으로 表現된다.
  37.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82 - 85
  38.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105
  39.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07 - 112
  40.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19 - 122
  41.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132
  42.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40 - 141
  43.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 144
  44.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49 - 150
  45.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55 - 157
  46.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60 - 161
  47.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63 - 165
  48.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134 -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