路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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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資
學者 情報
出生 紀元前 604年 (推定)
中國 楚나라 허난省
死亡 紀元前 6世紀 ~ 紀元前 5世紀 初로 推定
時代 春秋時代
地域 東洋 哲學
學派 道가 의 創始者
傳說에 따르면 老子는 물소 를 타고 周나라 를 떠났다 [1]

路資 ( 中國語 : 老子 , 병음 : L?oz? 라오쯔 [ * ] ; 文化語 : 로자)는 春秋時代 楚나라 哲學者 로 傳해지고 있다. 姓은 李(李), 이름은 이(耳), 諡號는 담(聃)이다.아버지는 韓氏이고 이름은 件이다. 祖上은 풍이族이다.

生涯 [ 編輯 ]

허난省 走狗視 루이 現 사람으로 春秋 時代 末期 周나라의 官吏였으나, 뒤에 官職을 버렸다.

그는 中國 에서 宇宙 의 萬物에 對하여 생각한 最初의 사람으로, 그가 發見한 宇宙의 眞理를 ' '(道)라고 이름지었다. 그 道를 中心으로 하는 信仰을 ' 道敎 '라고 하며, 그는 宇宙 萬物이 이루어지는 根本的인 理致가 곧 '道'라고 說明하였다.

老子의 實體 [ 編輯 ]

司馬遷 (司馬遷)은 《 詐欺 》에서 路資로 想定되는 人物이 3人이 있다고 하였다. (老子 韓非列傳). 첫째로 李珥(李耳, 字는 담(聃=老聃)를 들었다. 그는 楚나라 사람으로 孔子 (禮)를 배운 사람이며, 道德의 말 5千餘 言(言)을 著作한 사람인데, 그의 最後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에 든 사람은 亦是 孔子와 同時代의 老萊子(老萊子)로서, 著書는 15篇 있었다 한다. 세 番째 든 것은 (周)의 태사담이라는 사람으로, 孔子의 事後 100年 以上 經過한 때에 陳(秦)의 獻供 과 會談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老子는 隱君子(隱君子)’이며, 世上에서 말하는 老子라고 하는 이는 隱者로서 그 사람됨을 正確히 알 수 없다.

後世에 老子라고 하면 孔子에게 禮를 가르쳤다고 하는 李珥(李耳)를 생각하는 것이 常例이나, 이이라고 하는 人物은 道가 의 思想이 旺盛하던 時期에 그 思想의 始祖로서 孔子보다도 위인(偉人)이었다고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傳說일지도 모르겠다. [ 模糊한 表現 ]

펑유란 (馮友蘭)은 老子가 戰國時代 의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剛하게 主張한다. 이에 根據하여 老子가 實存人物이라고 假定한다면 最小限 道德經 竹簡本(紀元前 300年頃) 以前일 수밖에 없으며, 韓非子 (紀元前 280~233年)가 道德經을 引用하였으므로 韓非子보다 앞선다. 또 道德經 에는 儒家思想을 批判하는 內容이 많은데, 이는 白書本(甲本은 戰國時代 末期, 乙本은 漢나라 初期) 以後가 反儒家的인 것이며, 竹簡本은 덜하다. [2]

史上 [ 編輯 ]

도는 性質이나 模樣을 가지지 않으며, 變하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恒常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形態의 宇宙 萬物은 다만 度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思想이다.

그의 思想은 그의 著書 <老子 道德經> 속에 있는 '無爲 自然'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사람이 宇宙의 根本이며, 眞理인 度의 길에 到達하려면 自然의 法則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無爲 自然' 思想이다. 卽, 法律·道德·風俗·文化 等 人爲的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의 가장 純粹한 良心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道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後世에 '道敎의 始祖'로 불리고, 그 思想은 '노장 思想' 또는 '道가 思想'으로 發展하여 儒敎 와 함께 中國 精神 思想史에서 重要한 意義를 가지게 되었다. [3]

老子 道德經 [ 編輯 ]

老子의 말이라고 하여 오늘날 《 路資 》(老子道德經이라고도 한다) 上·下 2卷 81張이 남겨져 있다. 거기서 記述되고 있는 思想은 確實히 (道)의 本質, 現象界의 生活하는 哲學 이다. 예컨대 度를 論하여 이렇게 말한다.

'道(道)'는 萬物을 生長시키지만 萬物을 自身의 所有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萬物을 형성시키지만 그 功(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萬物을 성장시키지만 萬物을 主宰하지 않는다'(10장). 이런 事故는 萬物의 形成·變化는 元來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豫定된 目的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由來되었다.

老子의 말에 나타난 思想은 唯心論 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펑유란은 道에 對해서는 思考方式은 一種의 唯物論 으로서 無神論 에 連結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 理解는 뛰어난 것이다. 또 '道(道)는 自然(自然)의 順理를 따른다(法)'(55장)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自己 意志를 가지고 自然系를 支配하는 일은 不可能함을 說明한 것이다. 이 理論은 油價 (儒家)의 賤人感應(天人感應)的 생각을 否定하는 것이기도 하다.

老子가 보인 人生觀은 "柔弱한 者는 生(生)의 道(徒)이다" (76張). "釉藥은 剛剛(剛?)에 勝한다."(36장) "商船(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흘러서 萬物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그러면서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處한다. 때문에 道에 가깝다"(8장), "天下의 留約하기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78장) 等의 句節에서 보듯이 어디까지나 나를 내세우지 않고 世上의 흐름을 따라 世上과 함께 사는 일을 勸하는 것이다. 그러한 思想을 謙下부쟁(謙下不爭) 이라고 하는 말로써 換言(換言)하고 있다.

老子는 또 "道(道)는 日(一)을 생하고 일은 이(二)를 생하고 이는 三(三)을 생하고 三은 萬物을 生한다."(42장)고 하는 式의 一元論 敵人 宇宙生成論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호 [ 編輯 ]

唐나라 顯宗 에 依해 大聲兆(大聖祖)로 追尊되었으며, 宋 晉종 에 依해 太上老君魂원상덕皇帝(太上老君混元上德皇帝)로 追尊되었다. [4]

各州 [ 編輯 ]

  1. Renard, (2002), p.16
  2. 따라서 白書本은 油價를 確立한 孟子 (紀元前 372~289年) 以後의 著作으로 보인다. 이를 綜合해보면, 老子는 孔子 (紀元前 551~479年) 以後, 孟子 以前 사람으로 보이며, 孔子가 老子를 만나 度를 論했다는 說은 信憑性이 떨어진다. 路資 關聯 連帶를 時期的으로 推定하면, 大略 다음처럼 된다. 孔子 -> 老子 -> 道德經 竹簡本 -> 孟子 -> 韓非子 ≒ 道德經 白書本 (이석명, 白書老子)
  3. 글로벌 世界대백과사전
  4. 八月庚申,詔來春親謁?州太?宮。辛酉,以丁謂?奉祀經度制置使。丙寅,禁太?宮五里內樵采。庚午,加號太上老君混元上德皇帝。置禮儀院。

參考 文獻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