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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호의 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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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호의묘
(黃一晧의墓)
대한민국 忠淸南道 文化財資料
種目 文化財資料 第111號
( 1984年 5月 17日 指定)
數量 1期
位置
부여 가증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부여 가증리
扶餘 가증리
扶餘 가증리(大韓民國)
住所 忠淸南道 扶餘郡 부여읍 가증리 산3번지
座標 北緯 36° 18′ 29″ 東經 126° 57′ 11″  /  北緯 36.30806° 東京 126.95306°  / 36.30806; 126.95306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황일호의묘 (黃一晧의墓)는 忠淸南道 扶餘郡 부여읍 가증리에 있는, 朝鮮 中期의 文臣이며 忠節人 支所(芝所) 황일호(1588∼1641) 先生의 墓所이다. 1984年 5月 17日 忠淸南道의 文化財資料 第111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朝鮮 中期의 文臣이며 忠節人 支所(芝所) 황일호(1588∼1641) 先生의 墓所이다.

조수륜의 가르침을 받았고, 仁祖 13年(1635) 文科에 及第한 後 여러 官職을 두루 歷任하였다. 仁祖 14年(1636) 丙子胡亂이 일어나자 仁祖를 남한산성으로 安全하게 모신 功으로 晉州 牧師에 올랐다. 仁祖 16年(1638) 義州 府尹으로 있을 때 淸나라를 排斥하고 明나라를 돕자는 謀議를 하다가 淸나라 兵士에게 被殺되었다.

墓域 아래에는 正祖 21年(1797)에 세운 神道碑(神道碑:王이나 高官 等의 平生 業績을 기리기 위해 무덤 近處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宋時烈이 글을 짓고 황운조가 글씨를 쓴 것이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