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담 (150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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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담 (洪曇, 1509年 ~ 1576年 )은 朝鮮 中期의 文身이다. 本貫은 南陽 (土洪) . 領議政 홍언필 의 조카이며, 領議政 洪暹 의 四寸이다. 그리고 南袞 過度 姻戚關係를 形成했다.

生涯 [ 編輯 ]

中宗 때 文科에 及第하여 弘文館正字, 修撰, 檢討官, 正言을 지냈고 明宗 때 吏曹佐郞, 議政府死因, 司憲府掌令, 弘文館應敎, 侍講官, 司諫院사간, 司憲府執義, 弘文館前漢 等을 거쳐서 1550年 弘文館 直提學 이 되었고 곧 同副承旨 가 되었다. 1551年 에는 右副承旨 가 되었고 以後 右承旨 로 옮겨서 參贊官을 겸하다가 左承旨 로 昇進했고 1553年 에는 承政院 都承旨 가 되었다. 以後에 1554年 에 全羅道觀察使로 外職으로 나갔다가 同知中樞府事로 돌아온 뒤 漢城府 左尹 으로 옮겼다. 以後 謝恩使로 明나라에 다녀온 뒤에 刑曹參判 으로 옮겼다가 1556年 에는 司憲府 大司憲 , 弘文館 副提學 等을 지냈고 1557年 에는 兵曹參判 이 되었다가 다시 司憲府 大司憲 을 거쳐서 1558年 에는 禮曹參判 이 되었다. 以後 다시 京畿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갔다가 1559年 에는 司諫院 大司諫 으로 內職으로 돌아왔고 다시 1560年 에 慶尙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갔다가 1561年 에 同知中樞府事로 돌아온 뒤에 紅酒牧師로 다시 外職에 나갔다. 그러다가 1564年 刑曹參判 으로 內職에 다시 돌아왔고 以後에 다시 承政院 都承旨 가 되었다가 共助參判 으로 옮겼다. 그러다 1565年 漢城府判尹 으로 乘車하면서 政經의 班列에 올랐고 다시 咸鏡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갔다가 宣祖 卽位 後 1568年 兵曹判書 가 되었고 1569年 에는 吏曹判書 가 되었다. 以後 1574年 에는 都摠管이 되었고 以後 禮曹判書 가 되었고 知義禁府事 右參贊 을 歷任하다가 1576年 에 別世한다. 조광조 의 身元에 反對를 했고, 鄭澈 等의 士林派와 對立했다.

家族 [ 編輯 ]

正郞 홍언狂(洪彦光)李 아버지, 領議政 홍언필 이 伯父이고, 領議政 洪暹 이 四寸이며, 領議政 南袞 過度 姻戚關係를 形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