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陜川 靈巖사지

陜川 靈巖사지
(陜川 靈岩寺址)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私的
種目 私的 第131號
( 1964年 6月 10日 指定)
面積 69,336m 2
時代 新羅
位置
합천 영암사지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합천 영암사지
陜川 靈巖사지
陜川 靈巖사지(대한민국)
住所 慶尙南道 陜川郡 가회면 黃梅山로 637-97 (둔내리)
座標 北緯 35° 28′ 27″ 東京 128° 0′ 10″  /  北緯 35.47417° 東京 128.00278°  / 35.47417; 128.00278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陜川 靈巖사지 (陜川 靈岩寺址)는 慶尙南道   陜川郡   가회면 , 黃梅山 의 南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1964年 6月 10日 大韓民國 私的 第131號 陜川靈巖사지 로 指定되었으나, 2011年 現在의 名稱으로 變更되었다. [1]

槪要 [ 編輯 ]

黃梅山의 南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年代는 正確히 모르나, 高麗 顯宗 5年(1014)에 的然禪師가 이 곳에서 83歲에 入籍했다는 記錄이 있어, 그 以前에 세워진 것으로 推定된다. 또한 國立中央博物館에 있는 홍각선私費의 彫刻 中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私費가 886年에 세워졌다는 點에서 영암사의 連帶를 斟酌할 수 있다.

發掘을 통해 調査해본 結果, 佛像을 모셨던 金堂·西琴當·回廊터·其他 建物터가 確認되어 當時 절의 規模를 알 수 있고, 金堂은 3次例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統一新羅時代에 만든 雙獅子石燈 (寶物 第353號)·三層石塔·鬼斧·當時의 建物 받침돌·各種 기와조각 들이 남아있다. 特히 金銅如來立像은 8世紀頃의 것으로, 절의 創建連帶를 살피는데 重要하다.

영암사의 建物터는 一般 査察 建物과 다른 몇 가지 特徵이 있다. 金堂이 있는 上段 築臺의 中央 突出部 左右에 階段이 있는 點, 金堂址 連席에 얼굴模樣이 彫刻되었고 後面을 除外한 3面에 動物相을 돋을새김한 點, 西南쪽 建物터의 基壇 左右에 階段이 있는 點이 特異하다. 이러한 特徵과 더불어 절터 內에 흩어져있는 石造物은 異色的인 느낌마저 준다.

造形의 特異함과 立地 條件, 西南쪽 建物의 區劃안에서 많은 裁可 나오는 點으로 보아 新羅 末에 盛行한 密敎의 手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關聯 文化財 [ 編輯 ]

陜川 靈巖사지 쌍사자 石燈(陜川 靈岩寺址 雙獅子 石燈)은 南北國 時代 9世紀 新羅의 石燈이다. 大韓民國의 寶物 第353號로 指定되어 있다.

現地 案內文 [ 編輯 ]

1984年에 절터 一部의 發掘調査를 통해, 佛像을 모셨던 金堂(金堂)과 西琴當(西金堂), 回廊(回廊)과 附屬된 建物터 等이 確認되었다. 元來의 절에는 塔, 石燈, 金堂이 一直線으로 配置되었고, 金堂의 東西에 各各 1基의 碑石이 있었던 것과, 金堂이 세 次例에 걸쳐 改築되었음이 確認되었다. [2]

統一新羅時代 末부터 高麗時代에 걸치는 各種의 기와와 함께, 8世紀頃의 金銅如來立像(金銅如來立像)李 出土되어, 이 절의 創建連帶를 斟酌하는데 좋은 端緖가 되고 있다. [2]

영암사라는 이름은 입으로 傳해지는 것일 뿐, 正確한 記錄에서 確認된 것은 아니어서, 절의 正確한 이름과 來歷은 알 수 없다. [2]

各州 [ 編輯 ]

  1. 文化財廳考試制2011-116號 Archived 2017年 11月 9日 - 웨이백 머신 , 《國家指定文化財(私的) 指定名稱 變更 및 指定·解除 考試》, 文化財廳長, 大韓民國 官報 第17560號, 392面, 2011-07-28
  2. 現地 案內文 認容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