討論 : 人組 (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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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意見: 10年 前 (Bonchichi님) - 主題: 이성길의 庶女 maybe is not 承恩尙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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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尙宮이다,숙원아니다 [ 編輯 ]

人組 44卷, 21年(1643 癸未 / 名 숭정(崇禎) 16年) 4月 17日(競進) 1番째記事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pa_12104017_001&tabid=k&mTree=0&inResult=0&indextype=1 兆 貴人(趙貴人)李 寵愛를 獨차지瑕疵 (後宮 李氏)가 怨望을 품고 愛鄕 等으로 하여금 詛呪하게 한 것이다. 大槪 조氏를 해치려는 속셈이었다고 하는데, 事實은 조氏가 스스로 詛呪하여 李氏를 謀害하기 爲한 것이었다고도 한다.

人組 44卷, 21年(1643 癸未 / 名 숭정(崇禎) 16年) 7月 16日(丁未) 1番째記事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pa_12107016_001&tabid=k&mTree=0&inResult=0&indextype=1 하였다. 정민은 곧 (尙宮 李氏이다). 國家의 命令은 반드시 庭園을 통해 나와야 하는데 정민 等을 師事하라는 命을 곧장 內需司에 내려서 禁府에 移牒하여 施行하였으므로 이를 들은 者는 모두 놀라고 恨歎하였다 따라서, 그女는상궁이다,숙원아니다 66.65.3.28 ( 討論 ) 2014年 3月 18日 (火) 08:47 (KST) 答辯

熟議朴氏 이 사람이없는 [ 編輯 ]

人組 6卷, 2年(1624 甲子 / 名 天界(天啓) 4年) 5月 7日(更新) 1番째記事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pa_10205007_001&tabid=k&mTree=0&inResult=0&indextype=1&keyword=%E6%9C%B4%E6%85%B6%E6%96%B0+%E6%B7%91%E5%84%80 임성지(任性之)·권여경(權餘慶) 等은 이미 綱常(綱常)의 罪가 아니고, 또 在職한 사람 中에도 代價를 扈從하지 않은 者가 많은데 朴景信(朴慶新)만을 擧論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숙의(淑儀)의 아비이기는] 마찬가지인데 論列하는 것이 고르지 않으니, 어찌하여 이렇게 加減이 있는가?” 하였다. 이때 紅梅(洪邁)는 後宮의 아비로서 勢力을 믿고 貪慾을 부린 것이 권여경 等보다 甚하였으나 對官(臺官) 中에 돌봐 주는 者가 있어 發論되지 않았으므로 이 分付가 있었다. 賞이 또 이르기를, 熟議(淑儀)의 아비이기는 을 參照권여경過紅梅. 권여경는 광해군後宮숙의홍씨의 아버지,紅梅는 광해군後宮숙의홍씨의 아버지. In English, why they accuse 朴景信 only because (those people) who accuse him are 熟議's father. (Those people)are 권여경 and 紅梅. There is no evidence shown that 朴景信's daughter is 熟議 66.65.3.28 ( 討論 ) 2014年 3月 18日 (火) 08:47 (KST) 答辯

仁祖에 對한 評價 [ 編輯 ]

寄與者가 特定한 書冊이나 텔레비전 連續劇의 影響 下에 形成된 仁祖에 對한 個人的인 先入見을 記述했을 可能性이 있음.
表現이 百科事典 答紙 못하고(예:낙동강 오리알, 卑俗語에 가까운 比喩的인 表現으로 百科事典의 表現으로서는 不適切하다고 여겨짐) 寄與者의 感情이 介入되어 中立性을 毁損했을 念慮가 있음 (예: 人面獸心)---- 128.97.206.102 ( 討論 ) 2008年 11月 30日 (일) 12:56 (KST) 答辯

뭐 근데 仁祖가 잘한 政治를 한 君主는 아니죠. 김자점이는 大艱辛 確實하고 조氏도 좀 權力慾 센 女子고. -- 윤성현 ( 討論 ) 2008年 11月 30日 (일) 14:39 (KST) 答辯
그러나 위키피디아는 "百科事典"입니다. 個人의 意見을 記述하는 論文도 아니고, 單語 選擇을 함부로 할 수 있는 個人 블로그는 더더욱 아닙니다. 위키피디아는 朝鮮 仁祖에 對한 寄與者의 個人的 意見을 宣傳해서 貫徹시키는 場所가 아니라 '仁祖'라는 賃金에 對한 情報를 提供하는 機能을 하기 위해 存在하는 것입니다. 人組라는 사람에 對해서 情報가 全無한 狀態로 이 項目을 찾는 사람들을 念頭에 두고 되도록이면 個人的 評價를 排除하고 甚至於는 無味乾燥하다고 느낄 程度로 事實의 技術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仁祖의 政治나 김자점이나 조氏에 對한 評價도 歷史를 專門的으로 硏究한 여러사람들의 硏究成果를 보면 寄與者나 말씀하신 分課는 다른 主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評價에 對한 項目은 信賴할만한 根據도 提示하지 않은 채 制限된 情報만을 가지고 있는 寄與者의 個人的인 느낌을 敍述한 느낌이 큽니다. 이런 要素에 對한 放置는 百科事典으로서 提示하는 情報의 信賴性을 沮害하여 韓國語版 위키피디아의 質을 떨어트리는 結果를 가져올 것입니다.
特히 韓國語版의 境遇 위키피디아 利用者 層의 制約으로 여러 分野에 걸쳐 充分한 硏究의 經驗을 쌓지 못하거나 感情을 다스리는 法을 攄得하지 못한 寄與者의 個人感情이 過度하게 介入되어있는 敍述이 많고, 그런 技術이 情緖가 되어있지 않으며, 專門性이 缺如된 一部世帶의 意見만이 反映되어 있는 等 問題가 많은 것이 事實입니다. 왜 아직도 위키피디아가 아직도 參考資料로서 缺陷이 있다고 批判 받는지 다시한番 생각해보시기바랍니다.
그리고 仁祖에 對한 評價의 項目은 앞으로 1個月 以內에 信賴할 만한 根據를 提示하지 못하는 境遇 削除하도록 하겠습니다.---- 76.170.238.101 ( 討論 ) 2008年 12月 1日 (月) 05:10 (KST) 答辯
金自點이 奸臣이 아니라는 건가요? 처음 들어보네. -- 윤성현 ( 討論 ) 2008年 12月 1日 (月) 05:21 (KST) 答辯
確實한 것은 仁祖가 正常的인 君主가 아니었죠. -- 윤성현 ( 討論 ) 2008年 12月 1日 (月) 05:22 (KST) 答辯
一旦 윤성현님에 對한 個人的인 情報는 公開하신 部分에 한해서 제가 把握했습니다만 '金自點이 艱辛이다'라는 部分에 對해서도, '仁祖가 正常的인 君主가 아니라'는 點에서도 윤성현님이 쉽게 斷定을 지을 수 없다는 點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어도 누가 보아도 어느程度 共感이 可能한 硏究의 成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技術이 되어야만이 '百科事典'으로서의 技術의 價値가 있는 것입니다. 歷史를 좋아하시고 歷史를 專攻하시고 싶으시다니까 이 部分을 굳이 記述하시려면 좀더 폭넓고 깊은 硏究가 同伴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윤성현님이 아직 學業에 바쁘지 않을까 하는 憂慮는 있습니다. 一旦 "처음 들어보네"라고 비꼬시는 듯한 말套에서 아직 經驗이나 讀書의 制限이 느껴집니다. 윤성현님의 經驗에서는 처음일 수도 있지만 윤성현님보다 훨씬 前부터 歷史를 깊이 硏究하신 분들에게는 처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歷史 專攻이 아니므로 이 部分에 對해서 寄與할 部分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主張하신 部分과 다른 意見이나 硏究成果가 充分히 存在하리라 믿습니다. 主張을 貫徹시키고 싶으시면 一旦 朝鮮王朝 仁祖實錄의 통독과 人組時期에 對한 硏究成果를 充分히 檢討하시기를 勸해드립니다. 그리고 누군가에 依해 形成되어졌을 先入見이나 (甚至於는 民族意識을 包含한) 自身의 政治的 思想에 對한 執着은 學問硏究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앞으로 歷史를 硏究하시고 싶으시다고 新聞 인터뷰에서 밝히셨으니, 一旦 學問을 하시려면 폭넓은 可能性에 對해, 甚至於는 윤성현님이 只今까지 믿어 疑心치 않았던 것을 正面으로 否定하는 內容에 對해서도, 열린 姿勢로 接近하시는 姿勢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76.170.238.101 ( 討論 ) 2008年 12月 1日 (月) 05:37 (KST) 答辯
只今 김자점이가 奸臣이 아니다 庇護하시나요? 金自點은 奸臣이 確實합니다. 뭐, 仁祖는 事實 不幸도 했고 能力도 딸렸던 王이잖아요. -- 윤성현 ( 討論 ) 2008年 12月 1日 (月) 06:38 (KST) 答辯
안됐지만 現在의 윤성현님하고는 討論이라는 것 自體가 成立이 되지 않을 듯 하군요. 굳이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윤성현님의 나이를 제가 勘案을 해서 마지막으로 答을 드려야 겠습니다. 그렇게 自身만의 世界에 埋沒되서는 누군가가 내는 歷史試驗을 아무리 잘 봐도 歷史學徒로서는 落第點입니다. 제 말이 듣기 싫으시겠지만, 윤성현님은 어떤 主題를 놓고 討論을 하기에 앞서 앞으로도 수많은 經驗과 윤성현님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시고 나서 歷史를 論하십시오. 只今처럼 高等學校 歷史時間에 배운 資料程度나 인터넷을 떠도는 資料, 그리고 現在까지의 自身의 讀書만을 가지고 形成된 歷史觀으로 가지고 어떤 歷史的 評價를 내린다는 것 自體가 윤성현님의 未熟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는 윤성현님의 2倍를 살아왔고 그 2倍라는 時間동안 적어도 自身만의 世界에 埋沒되서 一方的인 主張만을 펴거나 自身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의 主張에 對해 비꼬는 姿勢로만 一貫하면 적어도 學問의 世界에서는 成功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只今은 父母님의 保護下에 맘만 먹으면 世上에 못할 것이 없을 것처럼 생각되시겠지만, 조금만 父母님의 품을 떠나면 只今같은 姿勢로는 堪當못할 어려움이 수없이 자리잡고 있을 겁니다. 現在의 윤성현님의 姿勢는 豫備 歷史學徒라기 보다는 '政治가'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누군가의 主張이 無批判的으로 자리를 잡아 그것만이 唯一한 眞理라고 믿고, 거기에 거스르는 主張을 除去할 수 있다면 어떠한 過激함도 不辭하는 過去歷史家 저지른 政治的 잘못의 踏襲과 恰似합니다. 歷史敎師라면 몰라도 인터뷰의 말씀대로 史學科 敎授가 되고 싶으시다면 甚至於는 只今까지 眞理라고 믿어왔던 意識에 對해서도 한番쯤은 疑心을 해보는 姿勢를 勸誘하고 싶습니다.
제가 윤성현님의 '金自點은 惡人'이다는 主張을 否定하는 것도 김자점이라는 歷史的 人物을 庇護하는 것도 아닙니다. 좀더 直說的으로 말하면 '비호'라는 表現 自體가 現在 윤성현님의 幼稚함을 드러내는 單語입니다. 評價에는 그에 相應하는 根據가 있어야 하고 그 根據는 적어도 多數의 사람이 그 根據를 首肯할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只今 윤성현님의 硏究가 그런 根據가 되기에는 아직 學問的 硏究가 不足하다고 생각합니다. 只今 이글을 보시면 火가 나서 當場 제 아이피 住所라도 찾아서 名譽毁損으로 告訴라도 하고 싶으시겠지만, 앞으로 10年後, 15年後라도 윤성현님이 제가 한 말의 意味를 理解하신다면 앞으로 歷史學을 工夫하시는데 적어도 해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윤성현님이 尊敬하신다는 太宗 李芳遠이라는 人間에 對해서도 尊敬이라는 單語를 쓰기에 앞서 깊은 探究를 해보십시오 윤성현님이 싫어하신다는 쥐로 比喩되는 사람보다도 더 尊敬할 價値가 없는 惡人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世上이 그렇게 單純하게 善과 惡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善의 要素와 惡의 要素, 尊敬할만한 要素와 排擊할만한 要素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歷史的 事件과 사람들의 行動에는 그 時代를 支配하고 當時의 世界觀을 形成하는 環境이라는 要素가 있다는 것도 考慮하십시오. 윤성현님이 10몇年間 겪은 2000年代 初盤을 背景으로 形成된 世界觀으로써 古代史부터 裁斷하는 禹(愚)는 犯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歷史學徒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 當時의 사람들이 윤성현님과 같은 環境에서 成長했다고 假定하는 것입니다.
이걸로 이 페이지에 對해 제가 윤성현님께 드리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밑으로 윤성현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든 특별한 境遇(어떤 境遇인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를 除外하고는 거기에 對應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부디 윤성현님이 希望대로 훌륭한 歷史學者로 成長하시기를 바랍니다. ---- 76.170.238.101 ( 討論 ) 2008年 12月 2日 (火) 14:26 (KST) 答辯
李芳遠에 對해선 엄청난 硏究를 나름 한 사람입니다. 惡人이었어도 그래도 世宗의 太平時代를 연 것은 否定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金自點이 歷史上으로 따졌을 떄 果然 이 사람이 朝鮮 政治思想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나요? 아닙니다. 昭顯世子를 죽였다는 背後에도 있고 淸나라에 가서 쪼짤댄 權謀術數밖에 모르던 人間일 뿐이죠. 그리고 幼稚하다. 이거 참 表現 거시기 하군요. 名譽毁損은 아니지만 氣分이 좋진 못하네요. 事實 仁祖는 좀 불쌍했다 치더라도 金自點은... 歷史的 評價나 할 資料나 있는 作者인지 그저 仁祖反正에 參加하여 광해의 實利外交를 否定하고 自身의 權力을 向해 임경업까지 謀陷하고, 소현세자 殺害 背後에다가... 이렇게 많은데 金自點이 惡人이 아니란 것은 믿을 수 없네요. -- 윤성현 ( 討論 ) 2008年 12月 2日 (火) 14:31 (KST) 答辯
마지막으로 한마디...否定할 수 없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는 마십시오. 윤성현님이 앞으로 大學, 大學院을 가면 그 否定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을 否定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金自點이 惡人이 아니란 것을 믿으실 수 없어도 '惡人이 아니다'라고 根據를 가지고 主張할하는 사람도 어디선가 나올 지 모릅니다. (저는 歷史學徒가 아니므로 金自點의 惡人 論爭은 패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方面에 對해서는 제가 윤성현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리고 只今 위키피디아 床에서 윤성현님을 說得하기 위해 밤을 새워서 資料를 찾고 硏究하기 위해 낼 時間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리고 只今은 대단하시다고 스스로 評價하실 '나름 한 엄청난 硏究'程度로는 不足함을 느끼실 때가 올 겁니다. 아직은 高等學生이니 빨라도 앞으로 7, 8年 後의 일이 되겠군요. 그 때가 되면 只今 基準으로는 正말로 荒唐할 經驗과 質問 그리고 윤성현님의 硏究에 對한 批判에 直面하시게 될 겁니다. 거기에 얼마나 柔軟하게 對處할 수 있느냐가 윤성현님의 歷史學者로서의 成敗를 가늠하게 될 겁니다. 위키피디아에서 趣味水準으로 하는 編輯活動과 프로 歷史學者로서의 硏究의 水準은 분명한 差異가 있습니다. 韓國語版 위키피디아가 아쉬운 點이 그런 프로水準의 專門性을 가진 분들의 參加가 다른 나라 言語판에 비해서 적다는 것임을 여러 곳에서 느낍니다. 위키피디아에서 一般 使用者 以上의 權限을 가지고 있으신 것 같으니 위키피디아의 存在意義에 對해서도 깊이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 76.170.238.101 ( 討論 ) 2008年 12月 2日 (火) 14:46 (KST) 答辯
뭐 제가 보기엔 꽤 큰 硏究죠. 龍의 눈물 보면서 感歎도 하고, 왜 兄弟들을 쳐죽였을까... (參考로 金自點이 惡人이 아닌 善人이라 말하는 歷史學者는 한 名도 없습니다.) 뭐 批判이라 대놓고 말하시는 거 저의 꿈을 짓밟아버리시는 거 아닌가요? -- 윤성현 ( 討論 ) 2008年 12月 2日 (火) 15:16 (KST) 答辯
제 꿈을 無慘히 짓밟으시고 저보고 幼稚하다 하시니 人身 攻擊에 準하는 것 같군요. 님께서 말씀하신 그 忠告(?)라는 것도 받길 鄭重히 拒否하겠습니다. -- 윤성현 ( 討論 ) 2009年 1月 18日 (일) 14:40 (KST) 答辯
나도 듣기 싫은 말 몇마디 했다고 數 많은 말 中에 表現하나 가지고 말꼬리나 붙잡고, 極端的인 表現도 서슴지 않는데다 無慮 한달 半에 걸쳐서 뒤끝의 끝을 보여주는 어린애하고는 더 以上 입씨름하느라 時間浪費할 생각 없으니 좋을대로 하시길. 그냥 偶然히 過去 投稿記錄 훑어보다 發見했다만, 管理者 選擧에서 왜 그렇게 反對意見이 많았고 그 意見의 內容 大部分이 一貫되게 一致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듯. 社會나가면 아니 當場 조금만 더 깊은 水準으로 工夫를 하겠다고 나서면 그보다도 더한 表現 面前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니 그 때가서 衝擊받지 마시길.-- 76.170.238.101 ( 討論 ) 2009年 4月 25日 (土) 18:52 (KST) 答辯

이성길의 庶女 maybe is not 承恩尙宮 [ 編輯 ]

仁祖實錄says that尙宮 李氏(尙宮 李氏) is 이성길(李成吉)의 庶女. She disrespected 人렬王后,so she was then ordered to marry to구오(具?). However, 仁祖實錄 says maybe 尙宮 李氏 was in affair with 人組, so is she really a 承恩尙宮? There is no answer. Thus, I would say putting her into 人組's 後宮 is not quite right. Thank you! Bonchichi ( 討論 ) 2014年 5月 6日 (火) 03:19 (KST) 答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