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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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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리멘
The Quarrymen

리버풀에서의 演奏 모습(2011年). 왼쪽부터 콜린 헌튼, 렌 게리, 로드 데이비스.
基本 情報
다른 이름 블랙잭스, 조니 앤 門독스
장르 스키플 , 컨트리 , 로큰롤
活動 時期 1956年  ( 1956 ) [1] ?1960年  ( 1960 ) , 1994年  ( 1994 ) -1995年  ( 1995 ) , 1997年  ( 1997 ) ?現在
레이블 그리핀 , 쿼리맨 레코드, 소니 BMG
關聯 活動 블랙잭스, 비틀즈
웹사이트 www .originalquarrymen .co .uk

쿼리멘 (The Quarrymen)은 英國의 스키플 / 로큰롤 그룹이다. 1956年 존 레논 이 리버풀에서 結成하였으며, [1] 1960年 이 그룹은 비틀즈 로 發展하게 된다. 當初에는 레논과 그 學友들로 構成되어 있었으며, 自身들이 다니는 學校 쿼리 뱅크 高等學校 의 校歌의 歌詞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레논의 어머니되는 줄리아 레넌 이 아들에게 밴조 의 演奏法을 알려주었고, 레논과 에릭 그리피스 에게 밴조와 같은 式으로 其他의 조율법과 簡單한 코드와 曲들을 알려주었다.

레논은 이 스키플 그룹을 元來 더 블랙잭스(the Blackjacks)라고 이름하였으나, 公共演藝 前에 그 會名을 바꾸어버렸다. 한 出戰은 레논을 새로운 晦明의 知音字로 說明하고 있으나, 다른 出戰에서는 그와 莫逆한 親舊 피트 쇼튼 이 이름을 推薦했다고 說明한다. 쿼리멘은 파티, 스쿨 댄스, 映畫館, 아마추어 스키플 콘테스트에서 公演하였으며, 1957年 10月 폴 매카트니 가 入團하였다. 1958年 初 매카트니의 薦擧를 통하여 조지 해리슨 이 入團하지만, 레논은 처음에 해리슨이 너무 어린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당시 해리슨은 14살이었다). 매카트니와 해리슨은 모두 리버풀 인스티튜트 에 다니는 學生이었다.

1958年 쿼리멘은 첫 아마추어 錄音을 進行, 버디 홀리의 〈 That'll Be the Day 〉와 매카트니와 해리슨 作曲의 〈 In Spite of All the Danger 〉을 錄音하였다. 쿼리멘이 로큰롤을 志向하면서부터 몇몇 멤버들의 離脫이 이어졌다. 남은 멤버들 卽 레논, 매카트니, 해리슨은 여러 晦明 아래 公演하였으며, 晦明 가운데는 조니 앤 더 門독스, 再페이지 3 等이 있으며 1959年 結局 다시 쿼리멘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갔다. 1960年 쿼리멘은 會名을 '비틀즈(The Beatles, 그 二重的 意味로 인하여)'로 고쳤다. 이 이름은 레논과 그룹의 네 番째 멤버인 스튜어트 섯클리프 가 한밤中에 떠올린 것으로서 이튿날 다른 멤버 둘에게도 알려주었다. 그러나 비틀즈라는 이름이 바로 使用되지는 않고 現地의 클럽에서 더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 실버 비틀즈'라고 바꾸어 活動하였다. 비틀즈는 以後 歷史上 가장 많은 音盤을 판 아티스트가 된다.

1997年 네 名의 生存限 元來의 멤버들이 레논과 메카트니가 처음 만났던 場所에서 열린 40周年 記念 가든 바자 公演에서 再結合하였으며, 1998年부터 여러 나라를 巡訪하며 公演하고 있으며, 네 張의 앨범을 發表하였다. 세 名의 멤버들이 아직까지 쿼리멘을 自處하며 活動하고 있다.

構成員 [ 編輯 ]

各州 [ 編輯 ]

  1. “Biographies” . 《Originalquarrymen.co.uk》 . 2017年 3月 24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