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州 靑龍四肢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四肢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Stupa of State Preceptor Bogak at Cheongnyongsa Temple Site, Chungju)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種目 國寶 第197號
( 1979年 5月 22日 指定)
時代 朝鮮 時代
位置
충주 청룡사지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충주 청룡사지
忠州 靑龍四肢
忠州 靑龍四肢(大韓民國)
住所 忠淸北道 忠州市 소태면 오량리 산32-2
座標 北緯 37° 07′ 57″ 東京 127° 50′ 24″  /  北緯 37.13250° 東經 127.84000°  / 37.13250; 127.84000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보각國師定慧圓融塔
(普覺國師定慧圓融塔)
대한민국 忠淸北道 有形文化財 (解止)
種目 有形文化財 第31號
( 1976年 12月 12日 指定)
( 1979年 5月 22日 解止)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忠州 靑龍四肢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은 忠淸北道 忠州市 소태면에 있는 僧塔 이다. 大韓民國의 國寶 第197號로 指定되어 있다. 高麗 末의 僧侶 普覺國師 婚需 의 僧塔이다.

槪要 [ 編輯 ]

청계산 中턱의 靑龍寺에 자리限 塔으로, 普覺國師의 舍利를 모셔놓았다. 普覺國師(1320∼1392)는 高麗 後期의 僧侶로, 12歲에 어머니의 勸誘로 出家하여 僧侶가 되었으며, 以後 佛敎의 經典을 두루 硏究하여 높은 名聲을 떨쳤다. 特히 戒律을 굳게 지키고 道를 지킴에 操心하였으며, 文章과 글씨에도 能하였다. 朝鮮 太祖 元年(1392)에 73歲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王은 '보각'이라는 諡號를 내리고 塔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塔을 세우도록 하였다.

塔은 全體가 8角으로 造成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基壇(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塔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塔身(塔身)을 完成하였다. 基壇은 모서리를 둥글게 處理한 8角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蓮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蓮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獅子賞과 구름에 휩싸인 龍의 모습을 交代로 새겼다. 塔身의 몸돌은 各 面마다 武器를 들고 서 있는 神將像(神將像)을 精巧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力動的으로 表現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木造建築의 아름다운 지붕 曲線이 살아난 듯하다.

太祖 3年(1394)에 完成을 보게 된 이 塔은 樣式上 鐘模樣이 主流를 이루던 時期에 8脚의 平面을 이루는 形式으로 建立된 몇 안되는 塔 가운데 하나로, 朝鮮時代 前期 造形美術의 標本이 되는 貴重한 遺物이다. 또한 塔 가득히 새겨진 彫刻과 둥글게 부풀린 外形이 어우러져 華麗함을 더해주고 있다. 塔身의 기둥과 지붕의 曲線,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龍머리彫刻 等에서 木造建築의 樣式을 엿볼 수 있어 當時의 建築과 比較하여 鑑賞할 만하다.

寫眞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