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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충귀 開國原從功臣錄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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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충귀開國原從功臣錄券
(陳忠貴開國原從功臣錄券)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寶物
種目 寶物 第1160號
( 1993年 6月 15日 指定)
數量 1軸
時代 朝鮮時代
所有 國有
住所 서울特別市 龍山區 西氷庫로 137,
國立中央博物館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진충귀開國原從功臣錄券 〉(陳忠貴開國原從功臣錄券)은 朝鮮 太祖 진충귀 에게 내린 功臣錄券으로, 大韓民國의 寶物 第1160戶이다.

槪要 [ 編輯 ]

〈진충귀開國原從功臣錄券〉은 朝鮮 太祖 4年(1395年)에 진충귀(陳忠貴)에게 授與된 功臣錄券이다. 진충귀는 太祖 2年(1393年)부터 4年間 僉節制使(僉節制使)로 楊廣道(楊廣道), 警査(京師) 等을 다녔으며, 太祖 3年(1394年)에는 嘉靖大夫(嘉靖大夫) 相議中樞院使(商議中樞院事) 都評議使司(都評議司使)와 義州等處兵馬使(義州等處兵馬使) 義州牧使(義州牧使)를 除授받았고, 太宗 12年(1412年)에 世上을 떠났다.

原從功臣 (原從功臣)이란 太祖가 登極할 때 反對黨의 除去나 卽位式을 도왔거나 王位에 오르기 前에 오랜 期間 동안 죽음을 무릅쓰고 協力을 한 사람들로, 卽位한 해 10月부터 4年 2月까지 13回에 걸쳐 原從功臣으로 褒賞을 받았다. 數次例에 걸쳐 褒賞 下校된 原從功臣의 人員은 文獻上으로 1,698名이며 여기에 開國功臣 58名을 合하면 1,750名이 된다. 이는 申王朝의 創業有功者들을 包含하여 安定을 圖謀하기 위한 前(前) 王朝의 官僚階層을 懷柔 包攝하려는 意味를 지닌 것으로 把握되고 있다.

이 錄券의 크기는 幅 30.8cm, 길이 634cm이며, 3cm 間隔으로 211個의 周旋(朱線)李 그어져 있다. 한 行에 15∼18자로 記錄하였고, 11個의‘吏曹之印(이조지인)’이 捺印되어 있으며, 沮止에 木製軸이 붙은 卷子本이다. 收錄된 功臣의 數는 106名이며 卷末에 發給에 關與한 任員 15名의 職銜과 姓名이 記載되어 있고, 이들 가운데 10名은 手決을 하였다. 이 錄券은 精進(鄭津)의 功臣錄券과 完全히 一致하고 있으므로 精進의 錄券에 收錄된 105名의 名單도 同一하게 나타나며 秀潔한 사람도 13名으로 兩쪽이 서로 한사람만 一致하지 않을 뿐 같은 名單과 手決이다.

上典(賞典)으로는 各各 밭 30結, 奴婢 3名을 賞으로 주고, 父母와 妻에게 封爵(封爵)하며, 子孫에게 科擧試驗을 치르지 않고 벼슬에 오르도록 하며, 後孫에게 罪와 賤役(賤役)을 면하게 해주었다.

이 錄券과 關聯하여 追加的인 資料로 숭정(崇禎) 年間(1628∼1644)의 《三陟晉氏族譜》(三陟陳氏族譜) 初刊本 1冊과 才幹본 3冊, 三間本 6冊에도 같은 內容의 功臣錄權이 收錄되어 있다.

이들 錄券 資料는 朝鮮 前期 開國功臣에 對한 待遇와 國家成立에 影響을 미친 人物에 對한 硏究, 功臣錄의 樣式, 이두문의 使用과 文體 等의 硏究에 重要한 資料로서의 價値를 지니고 있다.

參考 資料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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