珍島 남도진性

珍島 남도진性
(珍島 南桃鎭城)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私的
種目 私的 第127號
( 1964年 6月 10日 指定)
面積 41,368m 2
時代 三國時代
所有 國·空·私有
參考 當初 "남도석성(南桃石城)"에서 名稱 變更(2011年 7月 28日 考試)
位置
진도 남도진성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진도 남도진성
珍島 남도진性
珍島 남도진性(大韓民國)
住所 全羅南道   珍島郡 임회면 남동리 149
座標 北緯 34° 21′ 52″ 東經 126° 9′ 53″  /  北緯 34.36444° 東京 126.16472°  / 34.36444; 126.16472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珍島 남도진性 (珍島 南桃鎭城)은 全羅南道   珍島郡   임회면 에 있는 三國時代 의 城郭이다. 1964年 6月 10日 大韓民國 私的 第127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남도진姓은 現在 南東마을을 감싸고 있는 平坦한 大地 위에 돌로 築造된 城이다.

朝鮮 初期에 倭寇가 海岸을 자주 侵犯하여 海岸과 섬 地方에 城을 쌓고 水軍을 派遣하였다. 當時 이 곳의 地名이 '南道抛'였으며 萬戶가 責任者로 派遣되었기 때문에 '南道抛水軍萬戶眞性'이라 하였다. 記錄에 依하면 남道袍에 萬戶가 처음 생긴 것은 朝鮮 世宗 20年(1438年) 正月의 일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現在 남아있는 姓은 世宗 20年 以後에 쌓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性의 둘레는 610m, 높이 2.8m ~ 4.1m 에 이르며, 城門과 甕城 等도 形態가 뚜렸하다. 남도석성은 水軍萬戶眞性으로는 그 遺跡이 잘 남아있어 保存 價値가 매우 크다. [1]

發掘調査 [ 編輯 ]

珍島 남도석성 내 官衙터 發掘調査는 남도석성 내 官衙터 一部를 對象으로 遺構의 存在 有無와 性格 및 殘存狀態를 確認하기 위한 目的으로 2010年 6月 22日부터 2011年 2月 14日까지 동신대學校文化博物館에 依해 發掘調査되었다.

南道布陣은 1438年(世宗 20年)에 萬戶陣으로 設置되었으며 姓은 1491年(成宗 22年) ~ 1498年 (燕山君 5年) 사이에 祝聖되었을 것으로 推定된다. 그리고 1759年(여지도서 出刊) 以前 어느 時點엔가 現在의 位置로 이건된 것으로 보인다.

本 調査는 官衙터였을 것으로 推定되는 城 內 6個 筆地를 對象으로 實施한 것으로 調査結果 確認된 遺構는 排水路와 우물, 석熱, 그리고 近代 家屋터 等이다. 調査中 기와便(車輪門, 請해 波紋, 橫線門, 집先聞 等), 栢子편, 甕器便, 銅錢(常平通寶) 等이 出土되었다. [2]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現地 立看板 參照
  2. 現地 '文化財 發掘調査 案內文(珍島郡수, 동신대學校博物館長) 參照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