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人
(周仁, ? ~ ?)은
傳한
中期의 官僚로,
者
는
文
(文)이다. 祖上은 本來
稔性
(任城) 사람이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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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經濟
가 太子로 있을 때 사인(舍人)李 되었으며, 昇進을 거듭하여
問題
때
태중대부
에 이르렀다. 經濟는 問題의 뒤를 이어 卽位한 後, 바로 主人을
낭중령
으로 삼았다. 主人은 사람됨이 愼重하고 입이 무거워,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는 일이 없었다. 또 언제나 낡은 옷과 때에 찌든 속옷을 입고, 빨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經濟의 寵愛를 받아 寢室 안까지 들어가기도 하였으며, 後宮에서 低俗한 演劇을 할 때에 經濟와 함께 이를 보았다.
主人은 經濟가 죽을 때까지 낭중령으로 있었는데, 끝내 다른 사람의 祕密을 漏泄한 적이 없었다. 經濟가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물어보면, 主人은 이렇게 對答하였다.
主人이 이와 같으니, 經濟는 直接 그의 집을 두 次例나 찾아갔다. 主人은 後날 집을
量陵
(陽陵)으로 옮겼는데, 經濟가 많은 物品을 하사하였지만 모두 辭讓하고 받지 않았다. 諸侯와 臣下들이 주는 膳物도 모두 받지 않았다.
經濟의 뒤를 이어 卽位한
無題
는 主人을 禮遇하였다. 主人은 곧 病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이천석
의 俸祿으로 故鄕에 돌아가 餘生을 보냈다. 子孫은 모두 높은 官職에 올랐다.
[1]
評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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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司馬遷
은 《
詐欺
》에서 主人은 阿諂에 能한 字로, 말과 行動이 奸邪하여
職不意
와 함께 君子들의 비웃음을 샀다고 하는 한便 둘의 行動만은 篤實한 君子의 모습이라고 評하였다. 또, 經濟 때에는 오직 主人만이 普通 사람들보다 훨씬 寵愛를 받았다고 하였다.
出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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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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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는 《詐欺》 卷103의 記錄으로, 《漢書》 卷19에는 經濟가 죽기 前에 이미 隱退한 것으로 記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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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上
(棒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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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祿勳
(낭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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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위
(重大部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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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正
(宗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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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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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位
(代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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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홍려
(佃客, 代行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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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司農
(치속內査, 大農令,
戱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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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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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은 代行, [ ] 안은 垂直(守職; 收拾職)으로 任命된 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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