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意皇后
(慈懿皇后,
1144年
~
1200年
7月 16日
(
陰曆 6月 4日
))는
南宋 光宗
의 皇后이며
영종
의 母后이다. 이름은
이봉낭
(李鳳娘)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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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河南
의
安養
사람으로 節度使를 지낸 이도(李道)의 딸이다.
[3]
그女의 아버지는 門밖에 검은 새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보고 딸의 이름을 鳳낭이라 지었다.
[4]
高宗
의 推薦으로 그의 孫子인 朝暾의 비가 되었는데, 이봉낭은 時調夫人 高宗과 詩賦
孝宗
사이를 離間질하여 두 사람의 노여움을 샀다.
[5]
1189年
孝宗의 양위로 朝暾이 卽位하자 二峯낭 또한 皇后가 되었는데, 代身 황흡은 曉鐘에게 李氏가 皇后로서 禮儀를 차릴 수 있을지 念慮된다고 告하였다.
[4]
그女는 自身의 地位를 確固히 하기 위해 아들 歌王 兆擴을 太子로 冊封하려 하였는데 孝宗은 光宗이 卽位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서두를 必要가 없다고 그女의 請을 拒絶하였다.
[3]
이봉낭은 "妾이 直接 歌王을 낳았는데 왜 안된다는 것입니까?" 하고 高宗의 兩者였던 孝宗의 出身에 빗대어 不滿을 표하였고 孝宗은 크게 怒하였다.
[3]
以後 二峯낭은 끊임없이 光宗과 孝宗 사이를 離間질하였고 光宗이 病席에 누운 曉鐘을 問安하러 가려 하자 그를 말리기도 했다.
[6]
이봉낭의 放恣함에 孝宗의 皇后인
成熟皇后 史氏
는 이봉낭을 불러 꾸짖었지만 이봉낭은 孝宗의 繼妃인 史氏의 말을 無視했다.
[7]
이봉낭은 嫉妬가 甚한 女人이었는데, 光宗이 손을 씻다가 自身의 시중을 드는 宮女의 손이 아름답다고 여기자 宮女의 두 손을 잘라 饌盒에 넣어 光宗에게 보냈으며, 光宗이 宮을 비운 사이 그가 寵愛하던 黃貴妃 黃氏를 때려죽이기도 했다.
[3]
이 事實을 알게 된 光宗은 큰 衝擊을 받아 病席에 누웠고 精神 異常 症勢를 보이기 始作했다.
[8]
光宗의 病이 심해지자 이봉낭은 그를 代身해 國事를 處理했고, 親庭의 一家親戚 100餘名에게 官職을 하사하는 等 權力을 濫用했다.
[9]
家計
[
編輯
]
各州
[
編輯
]
- ↑
《
訟事
》(宋史) 卷243 〈列傳〉(列傳) 第2 后妃(后妃) 河 - 自意二皇后(慈懿李皇后)
- ↑
《
訟事
》(宋史) 卷37 〈本紀〉(本紀) 第37 영종(寧宗) 1 - 慶源(慶元) 6年 6月 巫子(戊子) 記事
- ↑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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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관핑, 《中國史 列傳 后妃》, 한정민 驛, 달過小, 2008, p.264~p.266,
ISBN
978899122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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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位, 장허性, 《中國을 말한다 11》, 이원길 驛, 신원문화사, 2008,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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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位, 장허性,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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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位, 장허性,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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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位, 장허性,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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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位, 장허性,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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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오, 《西太后의 人間 經營學》, 강성애 驛, 知識旅行, 2008, p.131,
ISBN
9788961090391